Abhijit V. Banerjee and Esther Duflo, Poor Economics: A Radical Rethinking of the Way to Fight Global Poverty

Financial Times 에서 ‘올해의 책’ 으로 선정했다는 기사를 읽고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이에 더해 이 책에 대한 추천사중 <괴짜 경제학> 으로 유명한 Steven Levitt 이 쓴 “경제학이 (이 세상에)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 이라는 문구가 결정적으로 마음을 움직였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세상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고민해 보았음직한 문제이고, 그중 거의 대부분이 평생토록 명쾌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모든 학문은 세상에 무언가를 공헌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사회과학, 그 중에서도 먹고 사는 문제과 직결되는 경제 현상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경제학이 현대에 가지는 존재 가치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은 이 학문을 업으로 삼기로 결심한 이후 내가 거의 매일같이 생각하는 주제이다. 그에 대한 해답은 아닐지언정 어떤 힌트는 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같은 것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전 세계의 거의 대부분은 빈곤에 시달린다. 세계 인구의 13%가 하루에 1달러가 채 되지 않는 돈으로 연명한다.  이 책은 부제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어떻게 하면 전세계적으로 만연해 있는 빈곤을 가장 효과적으로 퇴치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하는 책이다. ‘준비한다’ 라는 단어를 억지로 가져다 쓴 것은, 이 책이 그 자체로서 어떤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은 가장 올바른 해답을 찾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기능한다. 즉 ‘왜 빈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와 ‘그렇다면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두가지 큰 질문이 있다면, 이 책은 전자에 거의 모든 노력을 소진한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그러하듯이, 이 책은 쉽게 해답을 내지 못하고, 그럴 생각도 별로 없어 보인다. 다만 특정 문제를 야기시키는 원인에 대한 효과적인 분석을 행하는 것만으로도 그 다음 단계에 행해져야 할 대안의 마련을 조금 더 용이하게 만든다. 그 대안은 각국 정부의 정책 변화가 될 수도 있고, 시민 의식구조의 개혁이 될 수도 있으며, 선진국에 의한 원조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책의 저자 두사람의 몫은 아닌 셈이다.

빈곤 퇴치에 대한 상이한 시각 두개가 존재한다. 하나는 Jeffrey Sachs 라는 컬럼비아대 교수에 의해 대표되는 공급 중심의 시각이다. Sachs 는 선진국에 의한 원조에 의해 빈곤에서 탈출하는 가장 기본적인 해결책이 열린다고 주장한다. 즉 아주 기본적인 위생 문제를 해결하고 한사람이 하루에 먹고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이를 토대로 빈곤에 시달리는 국가들은 그 다음 레벨 – 빈곤 이후의 자생적인 경제 모델의 발전 – 로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UN 에서 활동하는 안젤리나 졸리도 이쪽이다. 다른 하나는 William Easterly 라는 뉴욕대 교수에 의해 주창되는 수요 중심의 시각이다. 그는 무분별한 원조 프로그램은 오히려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인 시장 구조를 왜곡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원조 프로그램이 빈곤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는 원조 이전에 시장 구조를 보다 확실하게 정립하자고 주장한다. 삭스와 이스털리는 같은 맨하튼에 적을 두고 있고, 이 주제로 매년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이 책의 저자인 Banerjee 와 Duflo 는 이들과 한발 떨어진 매사추세츠 보스턴 근처의 MIT 에 재직하는 교수들이다. 그리고 이들 저자는  <Poor Economics> 에서 공급이 먼저냐 수요가 먼저냐로 다투기 이전에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간단하게 “그때 그때 달라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의 주장은 사실 그리 간단치가 않다.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이 이들의 핵심 결론이기도 하다. 수요 중심의 해결책이 먹히지 않을 때도 있고, 공급 중심의 해결책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왜” 그러한 노력들이 실패로 돌아갔는지 일일이 나누어 살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들은 놀라울 정도의 방대한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각각의 이슈들에 대한 검증을 한다. 아이보리 코스트, 인도와 중국, 브라질과 방글라데시등 빈곤층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을 직접 발로 돌아 다니며 실제 빈곤층에 속한 계층을 일일이 인터뷰했다. 각각의 정책들이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미시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그 이후 이들의 삶은 경제학적으로 재해석하고, 경제학적인 “도구” 들을 이용해 원인을 분석한다. 한가지 놀라운 점은 이들이 경제학적 방법론으로 빈곤 현상을 분석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은 아주 간단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원론 수준의 경제학적 지식만을 이용해 세부적인 현상들에서 하나의 일관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다. 그 과정에는 논리적인 비약도 없고 억측이나 과장도 없다. 철저히 인터뷰와 통계 수치만을 이용해 도출해낸 결과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반박하기 힘들다. 이들이 그 이후 제시하는 해결책, 혹은 대안이라고 불릴만한 아이디어들은 원인 분석에 비해 훨씬 추상적이며 얄팍하지만 그 것이 이 책의 큰 흠집이 되지는 않는다.

간단하게나마 이 책의 “결론이자 또다른 연구의 출발점” 이 될만한 내용을 적어 본다. 즉 “왜” 빈곤층은 계속해서 빈곤한 상태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대략적인 이유 다섯가지다.  첫째, 빈곤층의 대부분은 충분한 올바른 정보를 얻을 기회가 없다. 이들은 또한 옳지 않은 정보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위생 문제부터 섹스, 마약, 식습관등 기본적인 것들에서조차 이들은 제대로 교육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살아간다. 둘째, 이들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것들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즉 더 많은 부양 가족과 더 적은 유산, 더 불안정한 일자리등의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셋째, 이들을 빈곤으로부터 탈출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몇몇 시장들이 제대로 정의되거나 설립되어 있지 않다. 이는 정부의 부패부터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수렴되는 경제학적 행동들까지 다양한 이유들로부터 형성된다. 넷째, 빈곤층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적다. 원래부터 가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지와 이데올로기, 저항등의 이유때문이기도 하다. 다섯째, 이들은 다음 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즉 혁신이나 도전등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모멘텀이 상대적으로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시 처음 이 책을 구입하기로 마음먹을 당시 가졌던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이 책이 경제학이 세상에 해줄 수 있는 그 어떤 가치를 제공해주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내 개인적인 대답은 그렇다, 이다. 이 책은 경제학이라는 학문 안에 갇혀 있지 않다. 즉 이 책의 저자들이 결론을 대신하는 마지막 장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이들은 현대 경제학이 자랑하고 내세우는 수학적인 엄밀성이나 현상들에 대한 일반화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그러한 경제학의 경향성을 배척하기까지 한다.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한가지, 지금 이시간에도 굶어 죽어 가고 있는 수많은 이들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는 데에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학이라는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것 뿐이다. 즉 이 책은 한 학문 분야라는 “바닥” 에서 내공을 인정받기 위해 쓰는 추상적인 언어 유희가 아니다.  Duflo 가 대학원 시절 실제 인도에 가서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며 시작된 이 책은 그러한 실제적인 접근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결코 성급하게 앞서가지 않는다. 지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치밀한 현상 고증과 통계적 수치를 제시하면서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경제학적 함의를 차근 차근 설명한다. 그리고 그 치밀한 논증 위에 그들이 원래 하고 싶었던 주장을 얹는다. 과격하지 않지만 분명한 어조로 전달한다. 행동해야 한다고. 그냥 행동하면 안되고, 아주 잘, 조심스럽고 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완성된다. 빈곤과 “싸우기” 위한 “극단적”인 “생각”. “싸운다” 혹은 “극단적” 이라는 단어가 이 책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그리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전적으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논리적인 엄밀함덕분이다. 그 안에 수학 공식은 존재하지 않고, 어려운 경제학적 개념도 등장하지 않는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쉽게 읽히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치열한 고민을 요구하고, 뒤이어 뜨거운 가슴도 요구한다. 경제학이, 아니 학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실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런 책을 쓰는 것이 아닐까.

찾아보니 아직 국내에 번역이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하루 빨리 번역되어 소개되기를 바란다. 이제 한국은 세계 20위권의 “부자나라” 이고, 빈곤에서 가장 빨리 탈출한 모범 사례로 종종 소개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 나라가 가진 노하우를 더 발전해야 하는 나라들에게 전달하고 도움을 줄 때가 왔다. 세계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이 책은 그런 고민을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여담. 젊은 경제학자가 받을 수 있는 영예로운 상들이 여럿 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상 두가지는 매년 40세 이하 경제학자중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한명에게 수여하는 John Bates Clark Medal 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아주 젊은 학자에게 수여하는 MacArthur “genius” Fellowship 일 것이다. 이책의 공저자인 프랑스인 Duflo 는 이 두개의 상을 모두 받았다. 한마디로 천재라는 얘기다. 천재가 머리를 좋은 방향으로 쓸 때 세상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여담2. 유학오기 전 만났던 여자친구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라는 책을 읽고 있다고 내게 잠깐 보여준 적이 있다. 유심히 살펴 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 여자친구를 가끔 떠올리 때마다 이상하게 그 책이 함께 떠올랐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 친구는 무척 이뻤고, 이쁜 만큼 옷도 잘 입었고, 명품도 좋아하는 친구였다. 내게 항상 생각없이 산다고 구박을 들었고, 편하게 먹고 살기만 하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랬던 친구가 왜 그 책을 20대 중반이던 그 당시 읽고 있었는지 이 책을 읽고나서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왜 그랬을까?

St. Vincent: Strange Mercy

텍사스 댈러스 출신 싱어송라이터 Annie Clark 의 스테이지 네임인 St. Vincent 의 세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나는 이 앨범을 통해 Clark 의 음악을 처음 접했다. Sufjan Stevens 의 투어링 멤버로 경험을 쌓았고 Beck, Liars 등과 콜라보레이션 경험이 있다고 한다. 기타부터 오르간, 베이스, 피아노, Moog, 실로폰까지 거의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면서 앨범을 녹음하는 다재다능한 아가씨인 것 같다.

조니 미첼부터 니코, 피오나 애플, 파이스트로 이어지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계보를 성공적으로 잇는 듯한 매력적인 보컬과 쇳소리가 조금 더 많이 들어간 (그리고 더 많은 건반 사운드도..) 서프잔 스티븐스의 음악을 듣는 듯한 사운드스케잎이 감상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당시 기괴하다고 느낄 정도로 그녀 특유의 사운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것과 반복해서 계속 듣고 있는 요즘 이 앨범에서 느끼는 달콤함 사이에는 꽤나 큰 간극이 있는 편인데, 이 앨범에서 받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인상중 하나는 ‘긴장감’ 정도인 것 같다. 좁고 낡은 방은 몇가지 악기들과 (코러스가 배제된) 목소리를 통해서 꽉 채우고 있다는 점은 앞서 포스팅한 플로렌스 앤 더 머쉰의 소포모어 앨범이 주는 – 광활하게 펼쳐 놓은 공간에 역시 광활한 사운드를 마구 던져 놓는 – 느낌과 확연히 다른 점일 것이고, 그 부분에서 이 앨범이 하나의 완성된 앨범으로서 가지는 통일성을 유지시키는 힘이 나오는 것일 게다. 이 긴장감은 부정적이기 보다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앨범의 상승작용을 돕는 역할을 한다. 앨범에 조금 더 집중하게 만들고,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텐션을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선사한다. 소위 우리가 흔히 말하는 ‘hook’ 이 도처에 깔려 있는 느낌이다. 재미있고, 신선하다. 지루하지 않으면서 자기 색깔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 잘 만들어진 좋은 앨범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이 앨범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Florence + the Machine: Ceremonials

Florence + the Machine 의 통산 두번째 정규 앨범이다. 이미 많은 매체들로부터 상찬을 받았고 소위 말하는 올해의 앨범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팝, 소울, 록등 현대 영미 음악의 주류 음악들의 필수 요소들을 프론트워먼 Florence Welch 의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를 중심으로 잘 우려내고 있는 듯 하다. 이들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wall of sound 를 높이 쌓아 올림으로써 꽤 웅장한 사운드스케잎을 선보인다. Welch 의 목소리는 겹겹이 쌓인 코러스와 함께 하면서 가스펠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져 나오는데, 이에 더해 오르간, 퍼커션, 현악 세션등 다양한 악기가 역시 이들 음악의 층위를 두텁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굳이 고약하게 이야기하자면 평론가들이 참 좋아할 만한 음악이다. 데뷔 앨범에서 이미 안정적인 송라이팅 능력과 각종 장르를 혼합 교배하는 능력에서 탁월한 재능이 있음을 인정받았던 그녀이기에 소포모어 앨범에서는 무언가 ‘야심’ 이라는 요소를 삽입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케이드 파이어가 그러 했듯이, 기본적으로 중심을 잃지 않는 작곡 방식을 유지한다면 이런 식의 전략은 먹혀들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장르가 보기 좋은 모양새로 결합되어 있는 것은 잘 알겠는데 그 안에서 새로운 창조성이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고 매끈하게 잘 빠져 있지만, 올해 반드시 언급되어야 하는 앨범으로 꼽기에는 글쎄.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는다.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라는 작가의 글이 좋다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이 들어 왔다. 나는 잘 모르는 평론가의 현학적인 평가보다는 나와 친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투박하게나마 표현한 칭찬에 더 끌린다. 그들이 좋다고 하면 나도 읽어볼 요량이 있다. 그래서 이 작가의 책을 한권 골라 봤다.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냥 제목만 보고 가장 끌리는 한권을 골라 주문했다. 때로는 너무 많은 사전 정보가 오히려 올바른 선택을 방해하기도 한다. 사실 작가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믿음, 아니 아주 약간의 호기심만 있다면 그 작가의 저작중 랜덤하게 고른다는 것은 그리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도 않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은 장편 소설이다. 주인공이 있고, 그가 회상하는 1991년이 있다.  그가 사랑했던 여자가 있고, 그가 만들어 보고자 했던 나라가 있으며 그 나라의 주변을 살아 갔던 다른 사람들이 있다. 그가 회상하는 1991년은 과거 100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의 궤적속에서 존재한다. 그 역사의 거대함속에서 때로는 소멸되어 가고 때로는 서로 부둥켜 안고 버티어 내는 개인이 존재한다. 주인공은 회상이라는 방식을 통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이야기하지만 사실 역사와 국가라는 거대한 구조물 앞에서 보잘 것 없는 개인중 하나로 존재하는 자기 자신의 위치 또한 잘 알고 있다.

김연수라는 작가가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개인을 소재로 소설을 써 왔다는 사실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씨네21의 김혜리 기자와 행한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때로는 연애와 사랑을 소재로도 글을 써 왔다는 사실도  그의 저작 목록을 확인하면서 알게 됐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도 성글고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역사와 사랑, 이 두가지에 대한 소설이다. 서사 구조는 마치 폴 오스터의 브루클린 풍자극을 보는 듯 꼼꼼하게 짜여져 있다. 소설의 전반부에 깔아 놓은 복선들은 중반부에 이르러 국면이 전환되면서 소설의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요긴하게 쓰인다. 미스테리적인 구조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제법 빠른 편이다. 재미있다는 얘기다. 구조를 파악하며 읽을 때 느끼는 지적인 흥미도 꽤 된다. 여기에 더해 (나는 비록 손발이 약간 오그라들 정도로 유치하게 느꼈지만) 소설 곳곳에서 풍부하게 제공되는 인문학적 배경들은 어쩌면 약간의 지적 허영심까지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장편 소설을 통해 이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역사의 슬픔 앞에 한없이 무기력한 한 인간이 어떻게 뒤틀려 가고 그 과정에서 소외되어 가는 인간 존재의 외로움? 혹은 그 거대한 파도 위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고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 인간성, 혹은 사랑에 대한 가치? 잘 모르겠다. 되게 재미있게 읽긴 읽었는데 글자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강한 이미지가 없었기 때문일까, 나는 책을 다 읽은 후 한참동안 생각을 골똘히 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약간 헷갈렸다.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 가며 ‘해답’ 혹은 ‘해설’ 을 읽는 행위는 개인적인 궁금증은 해소할 수 있을 지언정 그리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길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그의 문장은 정갈하게 쓰인 편이지만 가끔 허황된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그래서 본받고 싶지는 않다. (내가 한자 세대가 아니기 때문일까!) 나는 여자친구와 데이트할 때 그렇게 장황한 어휘를 구사하며 철학과 역사에 대해 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이 달콤하다거나 애달프게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맥거핀처럼 쓰이는 느낌이 들어 그리 기분이 썩 좋지도 않았다. 이길용이라는 인물을 창조해 내는 과정은 무척 흥미로웠다. 이 소설이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의 존재때문일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영화 <피와 뼈> 와 <타인의 삶> 이 생각났다. 그 영화들처럼 강렬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 소설과 김연수라는 작가를 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소설 두세편을 더 읽어볼 참이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덧. 어제는 김연수의 소설을 읽었고 오늘 저녁에는 임연수를 구워 먹었다.

memo1


1. 내가 잘하는 것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따위인 것 같다. 동적이기 보다는 약간 더 정적인 것을 잘 하는 듯.

2. 내년 여름에 한국에 가기 위해서는 “지금”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3. 이쯤되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명동에 나간다는 건 정말 그날을 즐기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사회적인 현상의 한가운데에 자신을 놓아 두고 싶다는 욕망에 이끌리기 때문이 아닌지 ㅋ

4.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건 그 대상중 일부가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지 않은 것 같다. 오해나 질투같은 감정은 배제하고서라도.

5. 내일은 무한도전과 풋볼 중계, 독서, 그리고 성탄 자정 미사로 보낼 생각이고, 성탄절은 K 를 새벽에 공항으로 바래다주고 잠깐 눈을 붙인 뒤 NBA 개막전 경기들을 보다가 책을 마저 읽을 생각이다. 26일부터는 정상적으로 학교로 출근해서 논문을 조금씩이나마 읽고 써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는 상태이고, 언제 하는지만 결정하면 된다. 이렇게 전적으로 의지에 달린 문제가 오히려 명쾌해서 더 좋다.

6.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면서 손글씨와 손편지의 매력을 다시금 깨달았다. (참고로 악필이다) 한동안 전자우편과 전자책, 모니터와 컴퓨터 따위에 경도되어 있었는데 (나뿐만은 아니겠지만 여튼) 다시 아날로그적인 삶으로 조금씩 돌아가려고 한다. 신문도 종이 신문을 보고, 논문도 왠만하면 다시 프린트해서 읽고,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사서 읽을 것이다. 시간의 경중을 따지는 사무적인 일이 아니라 안부를 묻거나 감정을 전하는 일이라면 며칠이 걸리더라도 손편지를 써서 종이를 통해 전달하고 싶다. 나는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코를 가지고 있지만, 종이 편지에서 느껴지는 촉감과 획 하나 하나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같은 것은 잘 느낄 수 있다. 그런 것들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아 왔다. 우선 이메일 주소가 아닌 진짜 그 사람이 사는 곳의 주소를 다시 물어 보러 다녀야 겠다. 물론 전자 우편와 스마트폰을 통해서 -_-

7. 보고 싶은 사람이 세명쯤 있다.

8. 그러고 보면 미국에 오고 난 후부터 크리스마스와 설날, 추석, 그리고 내 생일이 내 삶에서 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 것 같다. 대신 부활절과 11월 넷째 주, 그 사람의 생일과 5월 첫째 주가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됐다.

9. 방학이 시작된 후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다시 늦어지고 있다. 다시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겠다.

10. 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언제쯤 한국으로 가는 편도 비행기 티켓을 끊어볼 수 있을까. 진짜 기분이 좋을 것 같다.

Laura Marling: A Creature I don’t Know

영국 포크 음악계의 신성, 로라 말링의 올해 발표된 세번째 앨범이다. 1990년생의 이 아리따운 아가씨는 17세에 EMI 와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했고 18세이던 2008년 공식 데뷔 앨범을 발표했으며, 그 이후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왔다. 갑작스럽게 획득한 명성에 흔들리지 않는 꾸준한 자기 성장을 기반으로 2010년 놀라운 소포모어 앨범 <I Speak because I can> 을 발표한 뒤 1년만에 다시 세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이 싱어송라이터의 목소리는 아델의 그것만큼이나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다. 낮고 허스키한 면은 아델과 비슷하지만 절창으로 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델과 달리 로라 말링의 보이스는 spoken words 에 가깝다. 가사, 아니 어떤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듯 보인다. 이번 앨범도 그녀의 뛰어난 가사 전달력과 – 도저히 스무살 남짓한 나이에 썼다고는 믿기지 않는-  깊이 있는 가사들이 이 앨범의 처음 몇번의 감상을 압도하지만, 두번째 앨범에 비해 한껏 풍성해진 사운드가 이내 곧 그녀의 음악적인 변화를 짐작케하기도 한다. 기타와 건반등 단촐한 악기 구성을 선호했던 지난 앨범들에 비해 이번 신작은 관악기와 현악기의 적극적인 사용이 눈에 띈다. 리드미컬한 곡의 구성도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아마도 이러한 다양한 악기 구성과 다른 장르와의 혼합이 그녀의 메시징 효과를 떨어뜨린다고 불평할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약간은 산만하다고 지적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나쁘게 받아 들이지 않았다. 이제 막 스무살을 넘긴 뮤지션이 호기심이 없다면 그것도 참 비극적인 일일 것이다. 그녀는 찬란한 커리어의 첫걸음을 이제 막 뗀 상태이며, 그녀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시도해도 괜찮다는 일종의 면책특권을 모두에게 받은 상태다. 릴리 알렌이 특유의 감각과 센스로 톡톡 튀는 음악을 만들어 내고 아델이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깊이있는 성량과 보이스 컬러로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리면서 각자의 음악 세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 중이라면 로라 말링은 포크 본연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주변 영역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혀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좋다. 최소한 악기를 한두개 더한다고 해서 그 아름다운 목소리가 가려 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러면 됐다.

로라 말링의 팬으로서 특별히 사진 몇장을 투척한다 -_-

자 여기 비디오도 있다 -_-

Dum Dum Girls: Only in Dreams

요즘 미국 인디씬에서 가장 핫한 여성 뮤지션을 꼽으라면 역시 덤덤걸스의 리더 디디가 아닌가 한다. 최근 몇년동안 급속도로 상승한 그녀에 대한 인지도와 함께 상당한 다작을 하고 있는데, 이쯤되면 한번 쉬어갈 타이밍도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작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응집력이 생각만큼 받쳐 주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전히 꿈과 현실을 오가며 사랑과 사랑의 주변에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괴물이 되어 사랑하는 남자를 잡아 먹고 싶다가도 복종하고 싶기도 하고,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한눈 파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다가도 뭐 어쩌겠어 하고 체념하기도 한다. 쟁글거리는 노이즈와 단순한 기타 코드를 기반으로 하는 펑크-인디 록 밴드 덤덤 걸스에게 생명과도 같은 건 훅이다. 그녀는 스미스와 블랙 탬버린스, 지저스 앤 매리 체인등의 80년대 밴드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단순히 음악적인 색깔때문만은 아니다. 각 노래에서 훅이 구성되고 그것을 설득력있게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부터 유사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단순한 카피나 복제에 머물러서는 생명력을 얻기 힘들다. 앨범을 가만히 듣다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시점이 있다. 몸을 들썩거리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인 멜로디를 만들어 내다가도 어떤 곡에서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고 제풀에 지쳐 앉아 버린다. 이제 막 두번째 정규 앨범을 낸 젊은 밴드에게 “실망인데” 혹은 “여기까지인가” 같은 독한 말을 하는 건 멍청한 행동일 것이다. 한 템포 쉬어 가면서 에너지를 충전해서 지난 EP 와 같은 걸작을 다시 들고 나오길 바래 본다.

Real Estate: Days

뉴저지 출신 슈게이징-인디 록 밴드 리얼 에스테잇의 통산 두번째 앨범이다. 이들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주축 멤버인 Martin Courtney 가 헤비록 밴드 Titus Andronicus 출신이라는 것 정도. Girls 의 전국 투어 서포팅 밴드로 경험을 쌓다가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이 좋은 평판을 얻으면서 인지도를 넓혀 나갔다. 두번째 앨범은 아주 잔잔한 기타 팝이다. 슈게이즈한 곡 구성이 곳곳에서 눈에 띄지만 전체적으로 노이즈보다는 멜로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약간은 심심한 듯한 노래들로 짧은 러닝타임이 채워져 있다. 지저스 앤 메리 체인도 생각나고, 스톤 로지스도 생각난다. 8,90년대 정서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너무 노골적인 리바이벌은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이런 식의 “회상”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앨범 커버처럼 조용하고 평화롭다.

The Economist: The One-Shot Society

이코노미스트지 크리스마스 특집 기사중 한국 사회에 대한 기사가 하나 나왔다. 아마도 한국 사람이 쓴 듯 한데 (ㅋ) 내가 최근 계속 고민하고 있는 문제와 직결되는 거라 한번 전부 다 번역해 봤다. 오타는 이해하시라. 근데 문득 번역을 마치고 든 생각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코노미스트지를 읽을까, 하는 거. 교보문고에 가면 타임지나 뉴스위크지와 함께 항상 잘 보이는 곳에 비치되어 있긴 한데. 흠.. 개인적으로 영어 문장을 익히는 데에는 이코노미스트지가 제일 좋다고 추천하고 다니긴 한다.

The system that has helped South Korea prosper is beginning to break down

지난 11월 10일 한국은 고요했다. 비행기는 뜰 수 없었다. 관공서는 늦게 문을 열었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이들을 찾기 힘들었다. 경찰들은 수능을 치루는 학생들에게 발생할 지 모르는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학교 주변에 배치됐다.

매년 한국은 이러한 소동을 되풀이한다. 이 수능이라는 시험일은 한국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하루이기 때문이다. 객관식 문항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단일한 구조의 시험은 그들의 미래를 결정한다. 수능 점수를 잘 받은 이들은 한국의 최고 수준 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이는 전통적으로 그들에게 재벌 기업에 입사해 평생 고용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왔다. 수능 점수를 잘 받지 못한 학생들은 그보다 못한 대학에 입학하게 되거나 아예 대학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조금 더 낮은 조건의 회사에 들어가게 되며 그곳에서 삶을 마감할 확률이 높다. 약간의 잘못된 답을 고르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등급을 영원히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어 버린다.

한국 사회에서 단 한번의 시험에 많은 것들을 의존케 하는 제도는 몇가지 장점이 있다. 먼저 효율적이다. 단 한번의 시험으로 똑똑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을 구별해 내며 그들을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구조에 일찌감치 적응시킬 수 있다. 또한 능력(성적)중심주의다. 가난하지만 똑똑한 한국인들은 공부를 정말, 정말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 이 시험의 중요성은 유아기때부터 부모들을 자극하기 시작해 아이들을 집안에 붙들어 두고 숙제를 하게 한다. 그 결과 한국의 교육적 성과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이 나라는 OECD 에서 측정한 교육 평가에서 상위를 달리고 있다. 2009년 한국은 상하이, 싱가폴, 그리고 홍콩에 이어 4위를 기록했는데 위의 세 집단은 국가 단위가 아니라 도시 단위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국인의 교육열과 근면성은 이 나라가 경제적인 기적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도왔다. 이 나라는 1960년 이후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중 하나로 부상했으며 지난 해에는 전세계적 불황에도 불구하고 6.2% 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식 경제 사회에서 교육은 일종의 운명과도 같다. 즉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분명한 이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단점 또한 가지고 있다. 먼저 한국의 고등학교는 지옥 그 자체다. 수능 두달전 만난 평범한 고등학생 김민성군은 무뚝뚝하고 내성적인 학생이었다. 그가 원한 모든 즐거움은 성적을 짜내기 위해 희생되어야 했다. 그가 속한 학교는 아침 일곱시부터 저녁 네시까지 수업이 이어졌으며 하교 직후에는 도서관에 가서 자정까지 공부해야 했다. 그는 일주일에 7일 공부했다. “원래 다 그래요.” 그가 중얼거렸다.

김민성군의 부모는 그들의 아들의 교육 여건을 걱정하며 일생을 김군에게 헌신했다. 그의 아버지는 교사인데, 아들의 스케쥴 조절을 위해 직접 가르치기도 한다. 계획을 대신 짜주고 아들이 책상앞에 하루종일 앉아 있느라 지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며 아들을 다그친다. 민성군의 어머니는 “맛있는 음식” 과 “공부 열심히 해,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라는 말로 그를 응원한다.

민성군은 대학에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는 대학에 가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을 느낀다고 답했다. 그는 스포츠 스타의 에이전트가 되는 것이 꿈이고, (역주: 민성아.. ㅠㅠ 리온 로즈가 너의 우상이니..ㅠ) 그 꿈은 대학 졸업장을 굳이 필요로 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대학 졸업장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 다는 것을 인정했다.

민성군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그의 친구들과 점심시간에 축구를 할 때이다. 종이 울리면 그가 다니는 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식당으로 달려가 늑대처럼 라면을 개걸스레 먹어 치운다. 밥을 빨리 먹을 수록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스톡브로커인 CLSA 의 조사에 따르면 100% 의 한국인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대학에 가기를 원한다. 이러한 기대감은 대단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한 조사에서 1/5의 한국의 중, 고등학생들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2009년 202명이 실제로 그러한 비극적 행동을 택했다. 젊은 한국인의 자살율을 높은 편이다. 15에서 24세 사이의 한국인 10만명당 15명이 자살한다. 미국은 10명, 중국은 7명, 영국은 5명이다. 민성군의 누나 김지은양은 몇년전 수능 시험을 치뤘고 “이민을 생각했어요. 전 이 교육 시스템이 정말 너무 싫어요.” 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더 많은 학생들이 대학교에 들어갈 수록 고등 교육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대가는 줄어든다. 모든 한국인 부모들이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기를 원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25세에서 34세 사이의 한국인중 63% 가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이는 OECD 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다. 1995년 이후 대학교에 입학해 학위를 추구하는 인구 비율은 30% 증가했고 2009년에는 71% 에 달했다.

꽤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높은 비율 모두가 그들의 학위로부터 이득을 얻을 것이라는 가정은 비현실적이다. 특히 직업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말이다. 지난 8월 한 서베이에서 40% 의 대학 졸업자는 졸업후 4개월이 지난 후에도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업은 대학졸업을 의해 금전적으로 희생한 가족에게는 형편없는 수익율을 의미한다. 대학은 그 자체로도 비싸지만 들어가는 것도 무척 많은 비용을 수반한다. 부모는 자녀의 수능 시험을 위해 그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다. 대부분은 자녀들을 사설 학원에 보낸다. 서울에 사는 평균적인 가정은 벌어들이는 수입의 16% 를 자녀 교육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Seoul children

한국의 엄격한 사회 구조는 이 나라의 극단적인 인구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의 여성들은 미래 이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의 인구에 도달하지 못할 정도로 낮은 임신율을 기록하고 있다.

많은 수의 한국인 여성들이 직장을 갖기 시작하면서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기회 비용은 급속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직장은 임신과 육아로 인해 직장생활을 잠시 멈추는 것을 거의 허용하지 않고 있다. 만약 여성이 몇년동안 그러한 이유로 잠시 직장을 관둔다면, 한국의 기업들은 서구 사회와는 다르게 다시는 그녀를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한 기업이 워킹맘을 다시 받아 들인다면 그녀는 냉혹한 선택지를 받아 들여야 한다. 빠른 승진을 포기하던가 유연하지 않은 근로시간을 받아 들이며 오랜 시간 근무하던가.

유연한 근로시간과 자택근무는 종종 무시당한다. 이러한 현상은 일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을 힘들게 만든다. 이는 어머니에게 자녀 양육에 대한 거의 모든 책임이 전가되는 사회구조 탓이기도 하다.

수능까지 이어지는 모든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자녀 양육 비용은 엄청나다. 자녀 한명을 학원에 보내기 위해서는 한달에 100만원이 우습게 들어간다. 만약 세명을 한꺼번에 키운다는 건 죽음에 가깝다. 부모는 교육적인 무기들을 장착하기 위해 경쟁한다. 만약 자녀가 한명뿐이라면 더 높은 학원비를 감당할 수 있고, 이는 더 좋은 학원에 자녀를 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이는 부모들로 하여금 더 적은 자녀를 갖게 만든다.

1960년 이후 한국의 출산율은 지구상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 큰 폭으로 하락해 왔다. 여성 1인당 여섯명에서 2009년에는 1.15명으로 떨어졌다. 이건 인구 구조의 붕괴현상이라고 할만 하다. 만약 한국 여성이 1인당 한명의 아이만을 가진다면, 각 세대는 이전 세대에 비해 절반으로 규모가 축소될 것이다. 한국은 늙어갈 것이고 세계적인 영향력도 감소할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은 정부가 이 일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 사회” 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는 교육의 질에 대한 자세를 바꿔야 함을 의미한다. 그는 고용 시장에서 출신 학교를 보지 말고 그 사람의 능력만으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9월 대통령은 정부가 고졸 취업자수를 늘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학력 외의 가치가 더 존중받아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The forces for change

대통령은 또한 한국의 기업들이 인재 채용시 경험을 더 중시하기를 원하고 있다. 지난 9월, 대우 조선은 고졸 출신을 채용한다고 발표했고 그들을 위한 교육 기관을 개설했다. 하지만 대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임원직들은 학벌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평가받는 세대에 속해 있고, 그들은 변화를 두려워 할 것이다.

정부는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2008년 이후 지방 정부들은 학원의 운영 시간과 학원비에 대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학파라치로 알려진 염탐꾼들은 몰래카메라를 들고 학원을 방문해 그들이 법령을 위반하지는 않는지 감시한다. 적발될 경우 학파라치는 벌금의 일정 부분을 받게 된다. 하지만 아직 학원은 번성하고 있다. 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약 10만개의 학원이 존재하고 있다.

변화를 위한 다른 움직임은 한국의 젊은이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그들중 상당수는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거라고 믿어 왔던 낡은 전통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음악가인 강정임씨는 “저는 한국에서 원하는 삶을 살기란 매우 힘들다고 생각해요. 고등학교는 최악이죠.” 그녀가 회상했다. “우리는 암기하는 기계였어요. 거의 매일 책상앞에 고꾸라져 잠들기 일쑤였죠. 선생님은 저에게 고함을 치거나 분필을 던졌어요.”

”강씨는 한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중 하나인 연세대학교에 입학함으로써 그녀의 부모를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그녀는 입학 후 운동권과 어울리며 푸코와 마르크스에 심취했다. 그녀는 시위에 참석했으며 플래카들르 제작했고 최루탄을 마시며 체포되기도 했다. “저는 그걸 즐겼어요.” 그녀가 말했다. “전 제가 정말 중요한 것을 하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그녀는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국 여성 록 뮤지션에 대한 논문을 “필드 스터디” 를 진행하며 썼다. 즉 그녀는 3호선 버터플라이의 콘서트에 참석하고 그들을 인터뷰했다.

그녀는 남자 친구 한명과 밴드를 조직했다. 그들은 작은 공연장에서 공연을 시작했지만 밴드 멤버는 곧 정규직 직장을 얻어 밴드를 탈퇴했다. 그리하여 강씨는 솔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됐고 “Flowigh” 라는 스테이지 네임을 갖게 됐다. 그녀는 현재 앨범 제작중이며 클럽에서 종종 공연을 한다. 그녀의 부모는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그들은 그녀가 존경할만한 위치에 있는 직장을 갖기를 원하며 결혼을 하길 바란다. 그들의 친척과 친구들은 “딸이 뭐해?” “아니 딸애를 왜 그렇게 살게 내버려 둬?” 라고 종종 물어본다.

강씨는 뮤지션으로서의 수입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가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녀처럼 사는 사람이 꽤 된다. 한국의 젊은이들중 아르바이트에 종사하는 이들의 비율은 2000년 8% 에서 2010년 23%로 수직상승했다. 25세 이하 젊은이들중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인구 비율은 0% 에서 28% 로 증가했다. 이 현상은 한국의 기업들이 평생 직장 개념의 전통에서 탈피한 탓도 있지만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한 책상에 앉아 30년의 세월을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장 조사 기관인 TNS 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다른 국가에 비해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회사에 생활이 더 종속되어 있었다. 그들중 오직 절반이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이 좋다고 추천했는데, 이는 TNS 의 전세계 샘플의 3/4 에 비해 낮은 수치이다. 48% 가 자신에게 맞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의 68% 에 비해서도 낮은 수치이다. 오직 일본의 직장인들만이 한국인들보다 더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불평 불만에도 불구하고 79% 의 한국 직장인들은 지금 고용주 밑에서 일하기 원한다. TNS 는 이러한 자세는 이직의 어려움이 진실된 직장에의 충성도보다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 기관은 한국의 직장인들이 “억류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통계 수치는 언제나 예외를 포함한다. 한국의 샐러리맨들중 일부는 진정으로 회사에 충성스러우며 새로운 시장을 정복하기 위해 복종할 것을 맹세한다. 하지만 이러한 예외는 소수일 뿐이다. 재벌 기업들은 전체 피고용인의 오직 10% 만을 고용하고 있다. 그리고 인재를 찾기 위한 재벌의 보수적인 접근 방식은 – 이들은 학벌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 한국의 뛰어난 여성 인재를 찾기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매우 똑똑하지만 단지 수능 시험을 망쳤을 뿐인 인재를 썩히게 만든다. 그들은 또한 나이 많은 인재를 채용하기를 두려워 한다.

(재벌은 연공서열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나이 많은 피고용인들이 이득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꼭대기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쟁을 벌여야 하며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고위 임원이 되거나 명예 퇴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Subversive (체제 전복적인) ideas from abroad

충분히 똑똑한 한국인 한명이 다른 방식을 취함으로써 전통적인 방식을 통해 최고위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은 원래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점점 더 희박해 지고 있다. 이 견고한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는 한가지 가능성은 외국에서 공부한 한국인들이다. OECD 에 따르면 13% 의 한국 학생들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거나 공부한 경험이 있다. 이는 OECE 이 다른 어떤 국가보다 높은 비율이다. 최근 몇년동안 많은 수의 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 왔는데 이는 미국 정부가 멍청하게도 2001년 9월 11일 이후 외국 학생이 졸업 후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듀크 대학교의 Vivek Wadhwa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 공부하는 많은 수의 외국인 학생들이 취업비자를 얻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비자를 취득하기 위한 과정이 길뿐 아니라 상당히 불친절하기 때문에 상당수는 그 비자를 얻기 위한 시도 자체를 아예 포기하기도 한다. 미국의 손해는 한국의 (그리고 인도와 중국의) 이득이다.

귀국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똑똑하고 한국에서 공부한 동년배들보다 전통에 덜 얽메인다. 예를 들어 리처드 최의 경우에는 그의 아버지가 재벌의 해외 파견 근무자인데 덕분에 영국과 홍콩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생체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필요했던 적응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는 사업 모델을 하나 구상했다. 고객이 친구나 지인에게 상품을 추천하면 추가적인 크레딧을 얻는 방식이었다. “이 파이가 진짜 맛있다고 당신에게 말하는 거죠.” 최씨가 방금 사온 초콜릿 과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 친구에게 [Spoqua 라는 최씨 회사가 개발한 스마트폰 앱을 통해] 그것에 대해 말하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들은 카페에 가서 돈을 쓰죠. 그러면 당신은 크레딧을 얻게 되요.”

만약 이 모델이 성공한다면 아마도 서울에서 성공할 것 같다고 최씨는 전망했다. 한국의 수도는 인구 과밀 지역이고 서로 지나치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만약 어떤 이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정말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을 거라고 최씨가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서둘러야 한다. 그는 자신이 30세가 넘어가면 그 어떤 재벌 기업에서도 그를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소수의 사람들도 한국의 시스템에 도전하고 있다. 인터넷 벤처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찰스 표는 14세때 그의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크레딧 카드로부터 돈을 빌려 웹사이트를 만들고 비지니스를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공부를 하기 원했다. 하지만 곧 그들은 당신들의 아들이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항복했다. 표씨는 지난 3년간 20만불을 벌어 들였다.

그는 그 후 연세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다른 이들처럼 수능 시험을 치뤘지만 그를 돋보이게 했던 건 인터뷰였다. 그는 자신의 특출난 재능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의 대학교들은 전통적으로 인터뷰를 무시해 왔지만 정부는 현재 그들에게 인터뷰를 통해 더 많은 학생을 선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대학교에서 표씨는 과거 해커였던 김현철씨와 의기투합했다. (십대 시절 김씨는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수만대의 컴퓨터를 바이러스에 감염시켰고 곧 체포됐다. 하지만 그는 감옥에 가기엔 너무 어렸다.) 현재 김씨는 표씨의 다른 회사일을 돕고 있다. Wizard Works 라는 “위젯” – 웹사이트 기능 향상을 돕는 작은 소프트웨어 – 을 만드는 이 회사는 “클라우드 컴퓨팅” 이라는 앱을 곧 스마트폰에 공급할 예정이다. 아직 25세에 불과한 표씨는 이제 막 또다른 회사인 Rubicon Games 를 창업했는데, 이 회사는 온라인 소셜 게임의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표씨는 샐러리맨으로 사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회사에 좋은 직원을 채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만약 당신이 재벌 기업에서 일하지 않으면 그건 당신이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표씨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그들은 ‘제가 왜 당신을 위해 일해야 하죠? 당신은 삼성이 아니잖아요.’ 라고 제게 이야기해요.”

최씨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나이드신 분들은 제 명함을 보고 말씀하시죠. ‘이게 뭐야?’ 젊은 친구들은 제가 아무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러워 해요. 하지만 저와 삼성중 일하고 싶은 곳을 택하라고 하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큰 기업쪽을 선호하죠.”

표씨는 만약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갖고 그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애쓴다면 한국은 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너무 많은 신경을 써요.” 그가 한숨을 쉬었다. “그들은 친구들에게 뒤쳐지는 것을 원치 않아요. 그들은 실패한 것으로 비춰지는 것을 두려워 하죠.”

The Land of Miracles must loosen up

한국의 경제 부흥은 근면 성실함과 완만한 인구 성장 (1970년부터 90년대까지 경제 성장을 주도했던 베이비붐 세대), 그리고 선진국들을 따라 잡을 수 있었던 많은 기회들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그리고 한국은, 변화했다.

한국은 부유하다. 그래서 다른 국가들을 따라 하면서 빠르게 발전하는 것은 더이상 불가능하다. 고령화되고 축소되는 노동 인구때문에 더이상 다이내믹한 모습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 보다는 기계적인 방법에 집중하기를 강조하는 현재의 학교 시스템이 유지된다면 더이상 이 나라는 창의적일 수 없다. 그리고 이 나라의 국민들은 단 한방에 인생 전체가 결정나는 이러한 시스템에서 자신들의 진정한 가능성과 재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되물림될 것이다. “기적의 땅” 이라고 누군가 칭했던 한국은 이제 조금 더 여유로워져야 한다. 그리고 성공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인정해야 한다.

The War On Drugs: Slave Ambient

The War on Drugs 는 밥 딜런과 소닉 유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을 사랑하던 두 청년  Adam Granduciel 과 Kurt Vile 이 2003년 술먹다가 의기 투합해 만든 밴드다. 이후 필라델피아와 뉴욕 등지에서 활동을 지속하다가 2008년 Vile 이 밴드를 탈퇴했고, 밴드는 Granduciel 과 베이시스트 Dave Hartley 를 중심으로 유지되어 왔다. 2010년 미니앨범 <Future Weather>  로 데뷔했으니 2011년 발매한 <Slave Ambient> 가 실질적인 풀렝쓰 데뷔작인 셈이다.

이들이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Granduciel 의 보컬은 노래라기 보다는 spoken words 에 가까운데, 밥 딜런과 루 리드, 소닉 유스의 써스튼 무어를 1/3 씩 섞어 놓은 것 같다. 밴드의 음악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과 소닉 유스의 혈통을 계승하는 듯 한데, 부유하는 드립팝에 약간의 임팩트를 더한 기타팝 정도로 간편하게 정의될 수 있다. 밴드는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기조를 유지해 나가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다. 어찌 보면 심심하고, 다르게 보면 확실한 색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상이 깊게 박힐 수 있는 음악이다. 앨범의 자켓처럼 빛바랜 사진들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기도 하고,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이 띄엄 띄엄 있는 작은 마을의 뿌연 도로 위를 천천히 달리는 느낌이기도 하다.  “Best Night” 과 “It’s your destiny” 에서는 커트 바일이 일렉트릭 기타로 직접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포크 색채가 뚜렷한 꽤 괜찮은 데뷔작을 내놓은 커트 바일이 슈게이징에 뿌리를 두고 음악을 해왔다는 사실도 이채롭고, 그의 색깔이 한껏 뭍어 나는 이 두곡의 감성과 분위기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