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eron Crowe: Pearl Jam 20

내가 친구 J 와 친해지고 싶어서 레코드샵에서 오천원짜리 테이프를 사기 시작한 때가 1995년,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1학년때부터다.  커트 코베인이 자살한 것은 내가 국민학교 6학년에 재학하던 1994년 4월이었고, 그날 배철수 아저씨는 침통한 목소리로 두시간동안 코베인 추모 특집 방송을 했다. 펄잼은 내가 스키드 로우와 너바나를 배운 뒤 핫뮤직 등의 잡지에서 “명반 50선” 따위의 쓸데없는 짓을 할 때 항상 등장하던 <Vitalogy> 앨범을 사기로 결심하면서 부터 알게 됐다. 아마도 1995년, 혹은 1996년일 것이다. 이 후 이들은 한 때 너바나보다 더 사랑하는 밴드가 되었으며, J 와 쉬는 시간마다 떠는 수다에서 “살아 남은 펄 잼이냐 죽어서 산화한 너바나냐” 라는 주제로 등장하는 단골 손님이 되기도 했다. <No Code> 앨범을 고등학교 재학중 어느 서늘한 여름날 큰 맘먹고 산 헤드폰으로 듣다가  펑펑 운 적도 있다. <Yield> 앨범까지는 실시간으로 구입했던 것 같지만, <Binaural> 과 <Riot Act> 는 산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전자는 아마도 고3 기간에 발매되었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쳤을 가능성이 높고, 후자는 군대가기 직전 한참 연애에 몰두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음악을 거의 듣지 않았으므로 또한 지나쳤을 가능성이 높다. 2006년 발매된 <Pearl Jam> 은 발매한 사실은 인지했으나 평점이 좋지 않은 관계로 패스했다. 그리고 지금 내 아이팟에 있는 이들의 유일한 앨범은 2009년 발매된 <Backspacer>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들을 1995년 처음 알게 되었고, 그 이전에 발매된 앨범들은 “역사” 로서 되짚어 갔으며, <Yield> 이후에는 단절되었고, 2009년에야 비로소 다시 이들을 듣게 되었지만, 이조차 내가 듣는 다른 음악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비교하여 한정된 예산 제약하에서 신중하게 선택한 앨범에 들어갔을 뿐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소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 펄잼과의 관계에 대한 역사 말이다. 나는 이들을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과 음반속 해설지, 그리고 가끔 음악 잡지에 나오는 기사와 사진으로만 접해 왔다. 그러다가 인터넷이 발달하고 그런지가 미디어에 의해 사형 선고를 당한 뒤 이들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이들은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들이 누리던 독보적인 지위에서 내려와 다른 수많은 밴드들 사이로 숨어 버린 것이다. 자의던 타의던 간에 그들은 더이상 “현존하는 최고의 미국 락밴드” 가 아니었고, 과거의 영광을 팔아 먹는 배나온 아저씨들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놀라운 에너지로 창조적인 음악 세계를 이어 나가는 천재 집단도 아니었다. 그들이 2000년대 발표한 앨범들은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이전과 같은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고 눈살이 찌푸러질 정도로 망가지지도 않았다. 그냥 펄 잼은 그냥 펄 잼의 음악을 했고, 기대에는 못미치지만 걱정보다는 항상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 냈다. 대체 이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모두가 알고 있는 그들의 처음 10년과,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그들의 나머지 10년. 그 두 시기를 깔끔하게 정리한 다큐멘터리 필름이 나왔다. 그것도 토드 헤인즈과 더불어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는 미국인 감독으로 알려진 카메론 크로의 손에 의해서.

다큐멘터리는 밴드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골고루 비춘다. 줄거리라고 할 수도 있을 이들의 역사를 열거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나는 95년 이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2000년, 이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말을 했으며 어떤 곡을 어떤 장소에서 불렀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당시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과 같은 시간대를 살아 왔지만 한번도 그들을 보지 못했던 나에게 이 다큐멘터리는, “나는 이렇게 살아 왔어. 너는 어떻게 살았니?” 하며 싱긋 웃으며 물어보는 아저씨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92년으로 기록된 비디오에서 보이는 근육질의 청년은 이제 후덕한 주름살을 간직한 배나온 아저씨가 되었다. 나는 여드름 팍팍 터지던 십대 중반의 덜자란 아이에서 서른을 막 통과하는 바쁘고 정신없는 청년이 되었다. 나는 그들을 열렬히 좋아하기도 했고, 무심히 지나치기도 했다. 그들을 기억하고 있던 시간에도, 기억하고 있지 않던 시간에도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았고, 이 다큐멘터리는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영웅적이지도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은, 한 때 뮤직씬을 뒤흔들었던 다섯명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늙어 가는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반가웠다.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올해 혹은 내년 초에 발매될 이들의 새 앨범이 기다려졌다.

4 thoughts on “Cameron Crowe: Pearl Jam 20

  1. 멜번에서 펄잼 콘서트 봤을때가 생각나네요. 전 펄잼과 같은 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열심히 활동하는게 보기 좋아요. 크리스 코넬이랑 에디 베더 목소리가 가장 섹시한 보이스라고 항상 생각했어요 ㅋㅋ

    • 오 그 좋은 곳에서 (저에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진 않지만요) 좋은 공연을 보셨군요. 부럽습니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