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서 투표라는 행위.

정치글을 쓰면 항상 논란이 생겨서 왠만하면 참는 편인데 그래도 트위터나 기타 인터넷들을 보다 보면 이번 서울 시장 선거에 대한 생각이, 아니 더 나아가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시선이 같은 ‘진영’ 내에서도 첨예하게 갈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고, 이에 대한 내 생각을 확실히 정리해 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투표는 주관식이 아니라 객관식이다. 그리고 이 투표는 최종 정책 결정 단계가 아닌,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대리인을 선출하는 행위이다. 이거 나 국민학교 다닐 때 배운 내용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내가 진짜 원하는 최선의 결과를 투표를 통해 도출해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을 뽑는 행위를 하고 있는데 내가 정말로 궁금한 건 이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즉 미래의 결과물에 대한 기대이기 때문이다. 많은 수의 젊은 이들이 자신이 정말 원하는 최선이 없기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논리를 통해 투표를 하지 않는 행위가 마치 자랑스럽고 떳떳한 냥 지껄인다. 객관식 문제에서 각 개인이 정말 원하는 답안지가 존재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현대 정치에서 정당 체제는 그래서 존재한다. 유권자의 철학, 혹은 자신이 원하는 정책 방향과 가까운 정당에 투표함으로써 그 대표자들이 유권자들이 원하는 정책을 실행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대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최근 한국은 두개의 거대 정당이 자신들의 정책, 혹은 정치적 노선을 매우 흐릿하게 설정함으로써 유권자들로 하여금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들었고, 이것이 “정당의 위기” 라는 비판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정당을 보고 투표할 수 없다면, 각 후보자가 내세우는 공약을 읽어 보고 투표하면 된다. 후보자들중 자신의 입장이나 철학과 “가장 가까운” 후보자를 투표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위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후보를 선택하고 그에게 투표하는 것이 자신의 입장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투표하지 않는 것보다 현명하다. 게임 이론 용어로 말하면 weakly dominant strategy 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정으로 다음 세가지 보기가 있다고 가정하자.
1. 10/10 – 10이라는 나의 기대치에 10만큼 충족하는 후보.
2. 5/10 – 10이라는 나의 기대치에 5만큼만 충족하는 후보.
3. 1/10 – 10이라는 나의 기대치에 1만큼만 충족하는 후보.

그리고 만약 투표한 후보가 당선되었을 경우 충족하는 부분만큼의 효용을 얻게 된다고 가정하다. 더 나아가 만약 투표를 하지 않거나 투표하는 후보가 낙선하였을 경우 얻게 되는 효용은 당선된 후보의 충족치/2 라고 가정하자. 마지막 가정은 투표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을 경우 차선 (혹은 차악) 을 택해 투표했을 경우보다 그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때문에 만약 그가 당선되었을 경우 얻게 되는 효용이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라는 추측에 근거한다. 더 나아가 투표하지 않음으로써 얻고자 하는 일종의 목적함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근거하기도 한다. 대체 투표를 하지 않음으로써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고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건 나중에 더 이야기하기로 하고.

시나리오 1 – 1,2,3번 후보가 모두 나온다:  의심의 여지 없이 1번 후보를 선택한다. 1번 후보가 당선하였을 경우 10만큼의 효용을 얻게 되는데, 각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모두 같다고 가정한다면 나의 효용 기대값은 10/3 + 5/6 + 1/6 = 26/6 = 13/3

시나리오 2 – 1번 후보가 나오지 않기로 결정해서 2번 후보와 3번 후보간의 양자 대결로 압축이 됐다. 이경우 서브 시나리오가 발생한다.

시나리오 2-1. 투표하지 않는다 : 내가 얻게 되는 기대 효용은  5/4 + 1/4 = 6/4 = 3/2

시나리오 2-2. 차선의 (혹은 차악의) 후보에게 투표한다. 기대값은  5/2 + 1/4 = 11/4

시나리오 3 – 3번 후보만의 단독 출마. 이 경우도 경우의 수는 두가지. 결과는 같다. 최악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투표하지 않는 것보다 더 높은 효용을 가져다 준다.

이 간단한 모형이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최악의 후보만 남은 극단적인 경우라도 민주주의에서 허용하는 일반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 행위가 정치권에 대한 무관심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박원순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한나라당 후보는 싫은데 박원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흔히 말하는 양비론이 판친다. 한나라당대 반한나라당 구도가 몰상식대 상식이라는 주장에 토를 다는 사람까지 있다. 여기서 잠깐, 한나라당의 행태나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그들 안에서 “상식” 이라면, 이건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정신적인 아노미상태에 빠져 있다고 봐도 된다.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것은 좋지만 최소한의 기준까지 무너뜨리면서까지 배려해 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게 따지면 법도 없어야 하고 도덕이나 윤리도 사라져야 한다. 각자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니까, 각자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면 다 맞는 거니까. “그들의 상식과 우리의 상식” 이라는 교묘한 레토릭은 그래서 매우 위험하다. 옳고 그름에 대한 최소한의 판단 기준마져도 상실해 버리고 때문에 “그들” 에게 이 모든 싸움이 대단히 기술적이며 주변적으로 흘러가도록 만들 여지를 제공해 버리기 때문이다.

암튼, 나는 정당의 크기 여하를 막론하고 현재 한국에서 각 개인의 “입장” 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꽤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 민주당, 그리고 민노당과 진보신당, 참여당과 사회당 등이 있다. 이정도면 진보 세력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화할 수 있는 충분한 가짓수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그러니까 그냥 각자 자신들이 원하는 정당을 지지하면 된다. 그리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행동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을 경우, 그 때마다 다시 판단을 하면 된다. 간단한 일이다. 최악의 경우 마음에 드는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자신이 직접 나서서 정당을 만들거나, “차선” 의 정당을 선택하면 된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 같다. 차선이냐 차악이냐의 판단 여부.  마음에 드는 정당이 없다고 “무관심” 이라는 행위를 선택한다면, 다시 말해 “내가 좋아하는 정당이 생길 때까지 나는 투표하지 않을거야” 라고 주장한다면, 이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가정들이 필요하다.

1. 그 마음에 쏙 드는 정당이 빠른 시일내에 출현해야 한다.
2. 투표외에 다른 방법을 통해 그 정당의 출현을 도와야 한다.
3. 만약 그 정당이 빠른 시일 내에 출현하지 않을 경우 정당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그토록 쉽게 무관심이라는 방법을 택하는 사람들이 2 나 3의 방법을 택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흔히 경제학에서 말하는 habit consistency 를 위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입만 벌리고 먹이는 왜 안 넣어 주냐며 막연히 1만을 기다리고 있는 행위가 그리 똑똑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마음에 쏙 드는 정당이나 후보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차선, 혹은 그들이 말하는 차악을 택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여기서 “방향” 을 잘 봐야 한다. 민주주의는 경제처럼 한번에 확, 하고 발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국민 개개인의 의식이 서서히 성장하고 이것이 하나의 응집된 세력으로 표출되어서 법에 영향을 주는 형태로 발현이 되어야만 비로소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법을 만드는 사람들을 선출할 수 있는 꽤 큰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걸 그냥 포기한다는 것이 매우 우습지만 일단 이건 차치하고) 민주주의는 서서히 발전한다. 아마도 내가 죽기 전에 한국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나의 한표를 통해 그 제대로 된 민주주의로 가는 방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방향만 제대로 잡히면 시간의 흐름속에 서서히 그쪽으로 가게 될 것이고, 그러면 나의 다음 세대, 혹은 다음 다음 세대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정치 체계속에서 살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건 그 정도 까지이다.

박원순에게 투표하는 것이 더 나은 방향일까, 아니면 나경원에게 투표하는 것이 더 나은 방향일까. 박원순은 정답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투표를 하지 않거나 양비론의 탈을 뒤집어 쓰는 것이 박원순에게 투표하는 것보다 더 나은 행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나경원에게 투표하는 것이 이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녀에게 그냥 투표하면 된다. 물론 당선 후 나경원이 구속되지 않는다는 기대가 있어야 겠지만.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정당의 대표들이나 유력 인사들이 하나같이 모여 단 한사람을 지지하고 있다면, 대체 내가 지지하는 정당은 왜 저 사람을 지지하는 것일까, 라고 한번쯤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유시민과 손학규, 이정희와 노회찬이 모여서 박원순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이건 우리가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공통적인 것을 원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게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이든, 서울시 전시 행정을 막아 보자는 의지의 표현이든 그건 각자 알아서 판단할 일이고.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왜 박원순같은 사람 지지하냐고) 생각하고 투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도 함께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트위터에도 썼지만, 지난 대선 기간에 참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을 조롱하고 이명박을 찬양했다. 내가 속해 있었던 대학가부터 아파트 단지, 그리고 인터넷의 게시판들까지 거의 모든 곳에서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해댔다. 노무현 나쁜놈, 이명박이 경제를 살려 줄거야. 그 정도면, 그리고 드러난 대선과 총선의 결과를 놓고 보면 정말 많은 이들이 그때 진짜 이명박을 좋아 했던 것 같다. 지금 그들중 누가 반성을 하고 있는가? 아무런 반성도 없이 지금 또 똑같은 어조로 이명박을 조롱하고 비난하고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의 인격을 철저히 무시하고 경멸하고 싶다. 만약 당신이 그 당시 이명박에게 투표했지만 지금 그 행위가 잘못됐다고 느낀다면 그냥 반성하면 된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그 당시 의도적으로 투표를 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그냥 반성하면 된다. 왜 반성하지 않는가. 반성은 부끄럽거나 창피한 일이 아니라 떳떳하고 칭찬받아야 하는 행위이다.

2 thoughts on “민주주의에서 투표라는 행위.

  1. 제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솔직히 우리나라 정치가 깨끗하다거나 잘 돌아간다고 생각하는사람은 거의 없을거야. 그리고 야당이든 여당이든 어떤 후보가 나와도 솔직히 우리 성에 차지 않겠지..그렇다고 투표를 안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일단 욕을 해도 나의 한 표를 투표함에 넣은 뒤에 욕을 하자는 거지..자기는 투표권을 행사하지도 않았으면서, 나라 운운 정치인 운운 청렴 운운 하지는 말자..” (웃어른들께는 경어체를 사용하겠지요..?^^)

    “그리고 한나라당이라고 정책하는 것을 무조건 비판하지 말자..나는 이번에 4색신호등 하도 진보언론이나 사람들이 소위 ‘까’길래 얼마나 안 좋으면 그럴까라고 자료를 찾아봤어..그런데 꽤 좋은 정책인거야..잘만 이루어지면 우리가 새로운 신호등질서를 구축해 나갈 수 있고, 초행길인 사람들이 좌회전 우회전이 가능한 사거리를 헛갈리지도 않고 말이야..다만, 너무 조속히 처리하려고 했고, 신호등 건설업체선정 문제, 시민들에게 충분한 홍보부족 등이 문제였지만…그러니까, 까도 고민한 뒤에 그리고 나의 생각을 정립한 뒤에 까자..솔직히 이명박서울시장때 버스정책. 그것도 처음에 무지 반대 심했잖아. 그런데 봐봐. 잘 됬잖아..내가 봐도 그 정책은 좋았었어..하지만 이명박이 현재 대통령으로 나라운영하는 것은 맘에 안 들어. 그리고 4대강? 나는 반대야. 왜? 아무리 자료로 보나 생각을 계속 해 보나 이건 절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 했거든. (그리고 사람도 죽었어. 공사하다가. 그런데 어떠한 보수언론에도 크게 보도하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이때 보수언론을 욕한다고!)
    다시 말할께. ‘까’도 알고 ‘까’고. 보수니 진보니 해서 선을 긋고 무조건 반대, 찬성이라는 것으로 정치적 이익만을 생각하지 말자고..”

    저는 어떠한 정책이나 어떠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제가 잘 모르면 저는 절대 입을 열지 않습니다..제가 충분히 여러사람들의 여러주장과 근거를 면밀히 봐라본 후에 나름 제 생각을 정리하며, 혹 이것이 내가 읽은 책중 아니면 혹 외국에 비슷한 사례가 있나 찾아본 뒤에야 제 생각을 말합니다..

    종혁께서도 저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는 맘에 긴 글 남기고 갑니다.

    -낙엽에눈길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향을 가지고 있어요. 입장을 정해 놓고 사안을 바라 보기 전에 사안을 먼저 충분히 바라본 후 입장을 정하자, 라는 생각이지요. 다시 한번 곰곰이 잘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감사드려요.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