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밖

대학원 생활은 단조롭다. 이번 학기 생활은 대충 이렇다. 잔뜩 긴장한 채로 잠들기 위해 이불 속에서 뒤척이기를 한시간쯤 한 뒤 겨우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 늘 허겁지겁 아침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채 학교로 향하면 전날 어지럽게 늘어 놓은 책이며 논문 뭉치며 낙서인지 메모인지 모르는 종이 조각들이 가득한 책상과 다시 인사를 나누게 된다. 월요일과 수요일은 티칭과 세미나 수업, 오피스 아워가 몰려 있어서 점심을 제대로 때우기 힘들 정도로 정신이 없다. 오후 다섯시가 되면 겨우 일과가 끝나는데 몸이 녹초가 되어 저녁에 무언가를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대신 화요일과 목요일은 아무런 스케쥴이 잡혀 있지 않아 오롯이 학과 공부 혹은 논문 작성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데, 가끔은 월요일과 수요일에 쌓인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아 다음날 아침까지 늘어지는 경우도 있고, 이른 아침부터 햇빛 한줌 안들어 오는 오피스에 고개를 처박고 있어야 하는 내가 스스로 너무 처량해 갖은 핑계를 대며 집에서 버티고 앉아 있기도 한다. 어쨌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논문을 쓰든 논문을 읽든, 혹은 공부를 하든 우야돈동 오피스에서 버티고 앉아 있고, 토요일에는 집에서 풋볼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하며 잠시 여유를 부리다가 일요일부터 다시 다음주 티칭수업과 세미나 준비를 하기 위해 학교 주변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지난 여름부터 아침과 저녁 식사는 늘 집에서 챙겨 먹으려고 노력중인데 쉽지 않다. 아침은 늘 시간이 없어서, 저녁은 늘 반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부실하게 먹게 되는데 이 점이 못내 아쉽다. 저녁을 먹고 나면 다시 학교로 올라갈지 여부를 결정하고, 집에 남아 있기로 결심한다면 집에서 해야 할 일들, 예컨데 빨래며 청소, 혹은 설거지나 기타 우편물 처리라던가 장을 본다던가 하는 일들을 해치우기도 한다.

생활이 이렇다 보니 만나는 사람도 한정적이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대부분 예측 가능하거나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 오피스를 함께 쓰는 미국인 친구 두명은 1년차때부터 가장 가깝게 지낸 친구들이고, 학교에서는 주로 이들과 대화를 많이 나눈다. 대화라고 해봤자 심각한 이야기보다는 이번주 풋볼 누가 이길까, 판타지 풋볼 트레이드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 들어온 1년차 애들은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걸까, 등등의 가벼운 수다들이다. 그렇게 해서 풀리는 스트레스가 있으니 이런 가벼운 대화들도 반갑고 고맙다. 위로 한학년 아래로 한학년 정도는 대부분 알고 지내고 또 세미나 수업도 같이 듣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좁은 학과 건물에서 만나면 인사를 나누거나 가끔 수다를 떨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 중에서는 함께 성당을 다니는 J,K 선배와 가끔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이고, 이번에 새로 들어온 두명의 1년차분들을 가끔 챙기기도 한다. 어쩌다 가끔 한달에 한두번, 주말에 술을 먹기도 한다. 술을 먹는 친구들도 위에서 말한 그렇고 그런 사이들이다. 오피스 메이트 절친 두명과 술을 먹을 때 가장 편하고, 또 이들과 있을 때만 마음 놓고 망가질 수 있다. 가끔 판이 커지면 3년차 친구들이나 2년차 친구들이 붙기도 하는데, 그렇게 대략 열명 정도 함께 술을 마시거나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학과내에 있는 것 같다.

생활하는 것도 학과 안,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학과 사람들이다. 학과 밖에서 따로 왕래하는 사람은 아버지의 제자 출신으로 사학과 교수로 부임하신 K 교수님 내외분 정도. 그 외에는 전혀 다른 인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완전히 닫혀진 세계에서 살다 보면 가끔 답답하기도 하고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나에게 가장 알맞은 삶은, 루틴한 삶의 반복 속에서 비정기적으로 아주 미세한 파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예측 가능한 삶을 선호하고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편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 삶의 큰 방향이나 축이 강하게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가뜩이나 부족한 에너지를 오로지 공부에만 쏟기 위해서는 그 외 나머지 일들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했고, 일상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최소화시키는 방법은 그것들을 몸속에 체화시키고 습관화시키는 것이 가장 그럴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완벽하게 짜여진 틀 속에서 살다 보면 재미도 없고 생산성도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큰 그림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 사고들은 재량껏, 긍정적으로 삶 속에 내재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혹은, 반복되는 일상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잠시 쉬게 하는 과정마저 루틴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매일 오후 다섯시, 평일 미사에 가는 것이다. 다행히 오피스에서 멀지 않은 곳 (걸어서 십분 정도) 에 학교 부속 성당이 있고, 그곳에서는 매일 오후 열두시와 다섯시에 평일 미사가 있다. 오후 다섯시면 하루 일과를 대충 끝내거나 최소한 정신없는 한 때를 마치고 한숨을 돌릴 정도의 타이밍이므로 미사를 보기에 과히 나쁜 시간대는 아니다. 나는 거의 매일 평일 미사를 보지만 스스로를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흔히 말하는 ‘믿음’ 이 강한 편도 아니고, 현재 로마 가톨릭 교황청에서 공시하는 교리를 곧이 곧대로 받아 들이고 그것을 신념화시켜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더더욱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낙태는 반대하지만 동성애는 찬성하고, 고백성사나 주일미사 참여같은 신자로서의 의무는 굉장히 싫어하지만 미사에 늦는 것은 또 굉장히 싫어하는.. 그냥 한마디로 제멋대로다. 신을 믿는다기 보다는 신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편이랄까. 일단 평일 미사에 가면 그냥 가만히 앉아서 머리를 식히고 비우는 작업부터 한다. 그러다가 새로운 리서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완전히 새로운 마음으로 오늘 대체 내가 왜 그랬지, 하고 뼈저린 반성을 하기도 한다. 3,40분 남짓한 평일 미사 시간에 주로 내가 하는 생각은 그날 하루 내가 했던 일과 생각들에 대한 되새김질이다. 대체 무엇이 잘못 되었고, 또 그것을 수정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생각한다. 한국에 있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시간이다.

그렇게 매일 평일 미사를 간지 2년이 조금 넘은 것 같은데, 최근에 길거리에서 나를 알아보는 성당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변화다. 오늘은 혹시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 아니냐고, 그쪽에서 나를 본 것 같다면서 한 백인 친구가 말을 걸어 왔다. 아쉽지만 아니라고 했지만 어찌어찌하여 통성명도 하고 십분 정도 수다를 떨었다. 며칠 전에는 대학원 후배 과외를 해주러 그쪽 아파트에 들어 갔는데 어떤 백인 친구가 불쑥 나타나더니 너 방금 미사보고 나왔지, 나 너 봤다, 하며 말을 걸었다. 공통적으로 그 친구들이 나에게 한 말은 “난 너 매일 봤어” 였다. 아무래도 그 성당에 오는 거의 유일한 아시아인이라서 그럴까, 눈에 띄였던 것 같다. 성당 크기도 작고 신자들도 대부분 학생들, 혹은 학교 주변에 거주하고 있는 학교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주민들이다. 1년 전에는 내가 가르치던 학생이 세례를 받겠다고 열심히 성당에 나오길래 격려를 해준 적도 있고, 내가 속한 농구팀이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를 치룰 때 심판을 보던 친구가 성당 사람이어서 인사를 한 적도 있다. 그 친구가 한 말도 “너 성당에서 자주 봤다” 였다.

학과 밖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그 것도 한국과 상관이 없는, 그야 말로 생면 부지의 사람들과 관계를 시작한다는 것이 아직은 많이 낯설고 두렵다. 나는 집과 학교만을 반복하며 오직 학과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오며 지난 3년을 살아 왔다. 나의 대화 상대는 늘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었고 함께 공부를 하는 사이, 라는 확실한 관계의 이름이 존재했다. 지금까지 나 자신이 그 관계 의외의 것을 생각해 본적도 없다는 사실이 퍽 놀라웠다. 아직 미국에서 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성당이라는 또다른 집단에 속할 마음의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반갑게 다가오는 그들이 싫은 것도 아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내가 마음만 먹으면 성서 모임이든 운동 모임이든 대학원생 친목 모임이든 참여할 수 있다. 그 첫발을 떼기가 참 두려운데 (그들이 나쁜 사람들도 아니고) 아마도 이 두려움의 근원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아마도 그곳에 가면 나 혼자 백인이 아닐 것이라는 점에 대한 걱정일 것이다.

울타리 밖으로 나가 세상을 구경하는 것이 이리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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