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요

오늘 문득 우리나라의 노래를 듣다가 내 나이 또래가 아마도 민중가요가 친숙한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긴 내가 대학교에 들어 갔을 때만 해도 MT 에서 일반 대중가요와 민중가요를 반반씩 섞어 불렀던 것을 보면 나의 윗세대가 보기에는 내가 속한 세대도 엇나가기 시작한 쪽에 속할 것 같다. 그래도 그때는 농활을 가도 운동권 학생회의 주도하에 학생 운동과 농민 운동의 연대 의식같은 것을 확인하는 느슨한 고리라고 있었고, 노동절에는 대학로에 나가 거리에서 깃발을 잡고 걷는 것이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떄였다. 입학후 학교 부설 언론사에 잠시 머물렀는데, 당시 영어로 기사를 쓰는 언론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꽤 강한 운동권 색채가 남아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815 민족 대축전에 참석해서 많은 ‘수배자’ 들을 만나기도 했고, 유명무실했지만 어쨌든 남아 있었던 많은 ‘불온 서적’ 들을 직접 읽어 보기도 했다. 그 후 내가 속했던 학번때부터 서서히 그러한 기조가 무너지기 시작해 단 몇년만에 그러한 분위기는 학교 내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지금도 한총련같은 단체가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사회주의 사상, 혹은 북한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많은 90년대 학번 선배들이 당시 여전히 학교 이곳 저곳에 남아 있었고, 그들은 때로는 과격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나와 같은 신입생들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이끌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경험이었다. 그들은 생각이 부족했던 종북주의자들이었고, 때로는 설익은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당시 가지고 있던 철학중 지금까지도 유효한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지금은 어디선가 애 아빠, 엄마로 평범하게 살아 가고 있겠지만, 대학교 시절 몇년동안 빡세게 한번 그렇게 착각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렇다.

최근 등록금 투쟁을 보면 그렇다. 나는 지금 대학생들에게 뭔가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을 기대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뉴스를 꼼꼼히 읽었지만, 그 어떤 총학생회에서도 등록금 문제의 본질적인 의미를 언급하지 않았다. 만약 한나라당이 정말 반값 등록금을 실현시켜 준다면 그들은 아마도 열성적인 한나라당원이 되어 있을 준비가 충분할 것이다. 등록금 문제는 사회의 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강력한 시그널이자 그 악순환의 한 축이 무너져 내려야만 한다는 절박함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거대한 문제였다. 그리고 그 문제는 안철수같은 “멘토” 들이 대신 해결해 줄 수 없고 등록금을 뱉어 내야 하는 대학생들이 스스로 문제 제기를 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전국 여기 저기에 모여서 목소리를 내던 대학생들은 20년, 15년전 선배들에게서 깃발 만드는 법만 배운 것 같이 보였다. 그들이 물려 받은 유일한 유산은 확성기와 깃발뿐인 것 같은 공허함이 느껴졌다. 등록금은 소폭으로 하락할 것이고, 대학생들은 여전히 휴학을 반복하며 “스펙”을 쌓기 위해 날밤을 세워야 할 것이다. 사회의 종속적인 피지배 계층으로 스스로를 구속하는 것이다.

만약 그때 내 주변에 있었던 선배들중 정말 제대로 된 뜻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는 졸업 후 노동운동에 뛰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내가 아는 선배들은 모두 삼성, 혹은 그에 준하는 좋은 직장에 취직했고, 그중 그 누구도 용접 기술 자격증같은 것을 취득하지는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김문수가 더 나은 점도 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여전히 그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조금만 의지를 가지고 찾아 본다면 어렵지 않게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 민중 가요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 바로 앞에는 이랜드 본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문제가 많은 회사인데, 한참 그 앞에서 철야 농성을 했던 적이 있다. 마침 내가 한국에 있을 때였다. 늦은 오후 서른명쯤 보도 블럭에 쭈그리고 앉아 아무도 듣지 않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노래를 부르는 네명의 남녀가 있었다. 몇몇 곡들은 나에게도 익숙했다. 그들은 그 후 또 어디론가 분쟁이 있는 곳으로 가서 노동자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요즘같은 때라면 강정이나 명동, 한진 중공업같은 곳들이겠지.

내가 좋아하는 가수인 시와도 강정에 가끔 가서 노래를 부른다. 그녀는 “전형적인” 운동권 가수는 아니지만, 사회적 분쟁이 있는 곳에서 분명히 자기 의견을 밝히고 이를 노래로 표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홍대 인디씬이라고 불리우는 한국의 독립 음악씬에서 시와처럼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가수는 몇 없다. 게다가 그들중 일부는 여전히 치기어리고 어설프다. 진보신당 당원 신분을 패션처럼 소비하는 사람들이 홍대에도 존재한다. 분쟁이 있고 정치적 견해가 뒤따르는 자리에는 늘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 쪽과 그렇지 않은 부류를 분류해 내는 작업이 요구된다.

노회찬과 심상정은 그래서 안타깝고 애틋하다. 그들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기성 정치인이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데에 익숙하다. 그 미묘한 경계선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성과는 늘 시원치 않다. 이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많은 이들을 열패감에 시달리게 할 지도 모른다. 그들은 민중가요를 부르고 싶어하지만 대중들은 더이상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관심이 없다. 트위터에는 매시간 매분 강정 마을과 한진 중공업에 대한 속보들이 쏟아 진다. 그 이야기들은 결국 아는 사람들, 관심있는 사람들 안에서만 돌고 돌며 소비될 뿐이다. 노회찬과 심상정은 그 안에 스스로 갇히기를 선택했고, 그래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아마도 다음 총선에서 이들은 다시 금뱃지를 달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지난 몇년동안 겪은 놀라운 수준의 학습 효과는 이들에게 한번의 기회 정도는 더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약 그 때에도 민중 가요를 불러야 한다면, 나는 정말 더 슬퍼질 것 같다.

4 thoughts on “민중가요

  1. 민중가요에 관한 추억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내시는군요. 명쾌하고 성찰이 있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글 잘 못쓰는 편인데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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