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ave nutrition issue

이번 학기에 수강중인 과목중 하나인 Economic History of North America 를 위해 방금 읽은 논문의 주제는 미국 노예들의 삶의 질에 관한 문제다. 독립전쟁을 전후로 미국에는 몇가지 다른 형태의 노동력이 존재했다. 먼저 영국등 유럽에서 이민온 사람들, 그들중 미국까지 가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를 저당잡혀서 넘어온 indentured labor, 유럽에서 징벌적인 이유로 인해 강제로 넘어온 convict,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수입된 slave 등. 이들은 모두 다른 형태의 노동 계약을 맺었고 그에 따라 노동 환경도 상이했으며 하는 일도 달랐을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이 바로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이 과연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제공해야 했느냐의 문제다. 왜냐하면 당시 존재했던 상이한 형태의 노동 계약에 대한 이론중 상당 부분은 이러한 노동 형태가 각각의 계급이 처한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요일에 내가 발표했던 Fenoltea 의 1984년 논문이 대표적인 예다. Fenoltea 는 처벌과 감시에 의해 규제되는 강제적인 형태의 노동과 임금을 통해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자발적 노동으로 당시 노동 형태를 나누고 처벌과 감시에 의한 강제적 노동의 경우 더 높은 효율과 더 낮은 주의력(carefulness) 를 불러오는 효과가 있다고 가정했다. 즉 효율을 중시하는 산업일 경우 노예를 써서 강제적으로 일을 시키는 것이 더 높은 이익을 보장하는 반면 꼼꼼하고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산업의 경우에는 자유로운 신분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더 좋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논문의 경우 노예가 정말 강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제공해야 했느냐는 가정의 사실판단 여부가 중요하게 다루어 질 수 밖에 없다.

Steckel 의 1986년 논문은 이런 의미에서 선구적이다. 그는  1820년부터 1860년까지 존재했던 흑인 노예 5만여명의 자료를 분석해 그들의 평균 신장을 추정해 냈다. 신장이 인간의 영양 상태를 나타내는 좋은 지표라고 가정할 때, 평균 신장은 그 집단의 전체적인 영양 상태를 추정할 수 있는 좋은 표본이 될 것이다. Steckel은 이 평균 신장을 현대의 평균 신장과 비교해 얼마나 큰 차이를 나타내는 지를 살펴 본다면 당시 흑인 노예들의 평균적인 영양 상태및 노동 환경을 추측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저자는 사실상 성인이 된 후의 신장 비교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아부터 성장이 마무리되는 20세 전후까지의 기간만 조사했다. 두번째 칼럼이 당시 노예들의 평균 시장을 추측한 값, 네번째 칼럼이 1960년대 현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평균 신장 값, 다섯번째 카럼은 이 두 값 사이의 차이를 나타낸 것이다. 단위는 인치(inch) 다. 위의 표에서 중요한 건 마지막 칼럼이다. 마지막 칼럼은 당시 노예의 평균 신장이 현대의 신장 기준과 비교해 백분위로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나타낸 것이다. 예를 들어 4.5세의 평균적인 흑인 노예는 현대 기준으로 하면 백분위로 0.2% 에 속한다. 즉 가장 열악한 0.2% 에 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21.5세가 되면 23.3% 로 상승한다. 하위 23.3% 에 속한다는 뜻이다. 이 결과는 19세기 초중반의 흑인 노예들은 영아때는 극심하게 열악한 영양상태에 속하지만 성장하면서 점차 영양 상태가 개선되었다고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이들이 태어날 때 상대적으로 열악한 영양 상태였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태어날 때보다 더 나은 영양분을 섭취함으로써 신장면에서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영양 상태가 점차적으로 개선된 이유가 무엇일까? Steckel 은 두가지 이론을 제시한다. 첫째, 노예주인이 경제적 투자의 개념으로 노예들을 잘 먹였다는 것이다. 일단 자신의 노예들이 건강해야 그에 따라 돌아오는 return 도 많을테니까 어린 노예들을 잘 먹여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expected return 과 expected outlay 를 비교해 본 결과 투자에 비해 돌아오는 리턴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둘째, 노예 주인의 altruism, 즉 이타적인 마음에 기인한다는 가정이다. 한마디로 노예 주인이 착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논문에서 Steckel 은 당시 흑인 노예들의 personality 가 영양 상태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영양 상태가 좋지 못했기 때문에 성마르고 반항적이며 예의가 바르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Steckel 은 Fogel 의 제자이다. Fogel 은 사회주의자이며,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알려져 있다.  뭐 어쨌건.

영양 상태와 삶의 질을 연결시키는 건 현대 경제 사학자들에게 널리 퍼진 이론이다. 이 이론은 Fogel 과 Steckel 이후 점차 정교화되기 시작해서 최근에는 당시 생존했던 이들의 뼈나 머리카락을 분석, 이들이 섭취했던 영양소를 분류해 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무튼 이 이론을 이용해 국내의 식민사관론자들이 자신들의 이론을 확장시켰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즉, 일제 식민 시대동안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들의 영양 상태는 크게 개선되었으며, 때문에 일제의 식민 통치가 사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일제 식민 통치가 한국을 발전시켰다는 논리)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료의 정확성같은 기본적인 통계적 오류 가능성을 차치하고서라도 몇가지 반박할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첫째, 영양 상태, 특히 신장의 경우에는 유전적인 요인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꽤 크다. 즉 아빠와 엄마가 크면 아들 딸도 클 확률이 아빠 엄마가 작았을 경우보다 크다. data 의 span 을 앞뒤로 확 늘려야 이야기가 조금 더 그럴듯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둘째, 한 시기의 평균적인 신장을 영양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로 가정하고 이를 무언가와 비교해 결론을 도출해 내고자 한다면 동시대 다른 환경에 처해 있던 다른 집단과의 비교를 해야지, 완전히 다른 시대의 다른 환경에 있는 집단과 비교하면 컨트롤해야 하는 변수들이 너무 많아진다. 통계적인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건 비교 집단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저자의 정치적인 경해가 개입할 여지가 너무 많아진다는 의미도 된다. 예를 들어 식민시대 한국인들의 영양상태를 현대의 가장 못사는 지역에서 추출한 표본과 비교하면 당연히 좋아 보인다. 셋째, 인류는 항상 발전해 왔다. economic growth rate 는 장기적으로 하락한 적이 1500년 이후로 한번도 없었다. 단기적인 fluctuation 은 있을 수 있으나, 3,40년의 장기적인 기간을 대상으로 한다면 한 집단이 경제적으로 더 열악한 상태에 놓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즉 거시적인 성장률이 그 집단의 영양 상태에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요인이라면 (식민사관론자들의 핵심적인 가정이 이것이다) 그 성장률은 이유를 불문하고 항상 성장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도 경제는 항상 큰폭으로 성장해 왔다. 즉, 식민 시대에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의 신장이 상승한 건 당연하다는 거다. 만약 이들이 식민 시대 전 100년 정도 기간의 신장 상태 기록을 확인하고 정리하여 식민 시대의 신장 성장률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겠지만, 사실상 그러한 비교는 현재 나와 있는 자료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넷째, 심지어 일본 식민 통치가 당시 한반도의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고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이 거시 경제 성장으로 인한 부의 축적이 어떻게 분배되었는가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평균 신장, 혹은 평균적인 영양 상태는 그리 썩 좋은 지표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영양 상태는 그야말로 subsistence level 이 유지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삶의 질이 하루 세끼를 해결하는 것으로 완전히 충족되는가? 나의 대답은 노, 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일제 식민 통치가 제공해 주었는가를 밝혀 내기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자료가 필요하다.

References

Fenoltea, Stefano, “Slavery and Supervision in Comparative  Perspective: A model,” Journal of Economic History, 44 (1984): 635-69.

Richard Steckel, “A Peculiar Population: The Nutrition, Health, and Mortality of American Slaves from Childhood to Maturity,” Journal of Economic History, 46 (1986): 721-41.

4 thoughts on “slave nutrition issue

  1. 좋은 글 읽고 갑니다…대학원생이시지요..? 역시 세상은 넓고 능력자 또한 많다는 것을 느끼고 갑니다…

    p . s: 몇 시간전에 어떤 블로그에 저의 생각을 쓰는 글을 썼습니다..크게 타인과의 대화라는 주제였는데, 제가 쓴 글이 상당히 논란의 소지를 주더군요..제 댓글을 본 분들이 제 의도와는 너무 상이하게 이해하셨더라고요…휴..글 쓰는 재주가 없어 남을 설득하기는 커녕 제 의견도 제대로 전하지 못 해서 지금 자괴하는 중인데, 이 글을 보면서 더 한심하다고 느끼는 중입니다..제 자신이요..ㅜㅜ

    몇 가지 경험에서 느낀 특정 단어의 정의가 문제가 되더라고요..저도 더 쓰면서 ‘나의 원래 의도는 이거다’ 라고 쓰고 싶었지만, 워낙 첫 단추가 안 좋아져서 별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 할 상황인 것 같습니다..informal하게 말하면 ‘발렸다’라고 표현이 가능하겠지요..혹은 ‘내 발등 내가 찍은..’

    상대방들은 제 글에서 약간의 ‘태클성 글’이라고 느낀 것 같습니다..저는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음에도 약간은 공격적으로 느껴졌나 봅니다..이 댓글에서 처럼 -습니다체 로 썼는데도 그러네요..

    관념적인 주제고 개개인 마다 입장차가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은지요..?
    제가 이런 것에 조그마한 글들을 달거나 올리면 매번 엄청난 폭격이 날라와서………………….휴…………..재능이 없는가 봅니다…

    • 감사합니다. 네 대학원생이예요.

      다른 사람과의 논쟁이나 토론을 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제 생각은 이래요. 최대한 사실에 근거해 사실만을 ‘기술’ 하는 문장들은 감정적인 대응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적어요. 하지만 굉장히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더라도 어떤 주장, 그러니까 가치 판단의 문제로 들어가버리면 상대방의 감정적인 반응을 유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관념적이고 입장차이가 존재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할 만한’ 부분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겠죠. 아주 포괄적인 사실들부터 출발한다면 느리더라도 결국 원하는 어떤 방향으로의 진입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 아…그렇게 접근한다면 보다 더 폭 넓은 대화가 오갈 수 있겠군요..
      지금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면, 제가 지나친 가치 판단의 문제로 나아간 것 같습니다. 현실적 예시가 있었다면, 사람들이 좀 더 공감해 주지 않았나..합니다.

      솔직히, 그 내용이 제가 주장한 것이라기 보다는 여러 ‘사회학자’들의 글들을 보면서 쓴 것인데, 보다 구체적으로 제가 어디어디에서 인용했다..라고 제가 명확하게 명시했어도 상대방의 감정적 대응은 사전에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네요..

      …하지만, 만약 상대방이 제 ‘글’을 제대로 읽지 않은 상태, 즉 독해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글을 더 쓸 수 없을 것 같습니다..그 논쟁에서 댓글을 다신 분들이 몇개의 단어 그것도 수식어구를 빼고 단 하나의 단어들만 가지고 마구 꼬투리잡고 반응을 하게 되면, 도저히 얘기가 아예 통하지 않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상대방을 깎아내리려고 마음만 먹으면 안 깎아내릴 수 있겠습니까..? ㅎㅎ…

      그러면 도대체 학자들끼리는 얼마나 많은 논쟁이 오고 갈까요…? 그들은 매번 새로운 이론과 논리를 가지고 토론을 하는데, 특히 사회학이나 철학같이 (물론 실증적 사회확도 있지만요…) 학문에서 어떠한 주제를 논할 떄, 혹은 그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명제를 주장할때, 학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제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네요…

    • 음, 상대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 판단하실 때만 상대하세요.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에너지 낭비일 경우가 많잖아요..

      학자들 사이에서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학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해 결국 대중들에게 말과 글을 팔아 먹고 사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종종 그런 경우를 목도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진중권이지요.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