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요

오늘 문득 우리나라의 노래를 듣다가 내 나이 또래가 아마도 민중가요가 친숙한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긴 내가 대학교에 들어 갔을 때만 해도 MT 에서 일반 대중가요와 민중가요를 반반씩 섞어 불렀던 것을 보면 나의 윗세대가 보기에는 내가 속한 세대도 엇나가기 시작한 쪽에 속할 것 같다. 그래도 그때는 농활을 가도 운동권 학생회의 주도하에 학생 운동과 농민 운동의 연대 의식같은 것을 확인하는 느슨한 고리라고 있었고, 노동절에는 대학로에 나가 거리에서 깃발을 잡고 걷는 것이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떄였다. 입학후 학교 부설 언론사에 잠시 머물렀는데, 당시 영어로 기사를 쓰는 언론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꽤 강한 운동권 색채가 남아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815 민족 대축전에 참석해서 많은 ‘수배자’ 들을 만나기도 했고, 유명무실했지만 어쨌든 남아 있었던 많은 ‘불온 서적’ 들을 직접 읽어 보기도 했다. 그 후 내가 속했던 학번때부터 서서히 그러한 기조가 무너지기 시작해 단 몇년만에 그러한 분위기는 학교 내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지금도 한총련같은 단체가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사회주의 사상, 혹은 북한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많은 90년대 학번 선배들이 당시 여전히 학교 이곳 저곳에 남아 있었고, 그들은 때로는 과격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나와 같은 신입생들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이끌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경험이었다. 그들은 생각이 부족했던 종북주의자들이었고, 때로는 설익은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당시 가지고 있던 철학중 지금까지도 유효한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지금은 어디선가 애 아빠, 엄마로 평범하게 살아 가고 있겠지만, 대학교 시절 몇년동안 빡세게 한번 그렇게 착각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렇다.

최근 등록금 투쟁을 보면 그렇다. 나는 지금 대학생들에게 뭔가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을 기대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뉴스를 꼼꼼히 읽었지만, 그 어떤 총학생회에서도 등록금 문제의 본질적인 의미를 언급하지 않았다. 만약 한나라당이 정말 반값 등록금을 실현시켜 준다면 그들은 아마도 열성적인 한나라당원이 되어 있을 준비가 충분할 것이다. 등록금 문제는 사회의 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강력한 시그널이자 그 악순환의 한 축이 무너져 내려야만 한다는 절박함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거대한 문제였다. 그리고 그 문제는 안철수같은 “멘토” 들이 대신 해결해 줄 수 없고 등록금을 뱉어 내야 하는 대학생들이 스스로 문제 제기를 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전국 여기 저기에 모여서 목소리를 내던 대학생들은 20년, 15년전 선배들에게서 깃발 만드는 법만 배운 것 같이 보였다. 그들이 물려 받은 유일한 유산은 확성기와 깃발뿐인 것 같은 공허함이 느껴졌다. 등록금은 소폭으로 하락할 것이고, 대학생들은 여전히 휴학을 반복하며 “스펙”을 쌓기 위해 날밤을 세워야 할 것이다. 사회의 종속적인 피지배 계층으로 스스로를 구속하는 것이다.

만약 그때 내 주변에 있었던 선배들중 정말 제대로 된 뜻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는 졸업 후 노동운동에 뛰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내가 아는 선배들은 모두 삼성, 혹은 그에 준하는 좋은 직장에 취직했고, 그중 그 누구도 용접 기술 자격증같은 것을 취득하지는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김문수가 더 나은 점도 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여전히 그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조금만 의지를 가지고 찾아 본다면 어렵지 않게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 민중 가요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 바로 앞에는 이랜드 본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문제가 많은 회사인데, 한참 그 앞에서 철야 농성을 했던 적이 있다. 마침 내가 한국에 있을 때였다. 늦은 오후 서른명쯤 보도 블럭에 쭈그리고 앉아 아무도 듣지 않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노래를 부르는 네명의 남녀가 있었다. 몇몇 곡들은 나에게도 익숙했다. 그들은 그 후 또 어디론가 분쟁이 있는 곳으로 가서 노동자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요즘같은 때라면 강정이나 명동, 한진 중공업같은 곳들이겠지.

내가 좋아하는 가수인 시와도 강정에 가끔 가서 노래를 부른다. 그녀는 “전형적인” 운동권 가수는 아니지만, 사회적 분쟁이 있는 곳에서 분명히 자기 의견을 밝히고 이를 노래로 표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홍대 인디씬이라고 불리우는 한국의 독립 음악씬에서 시와처럼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가수는 몇 없다. 게다가 그들중 일부는 여전히 치기어리고 어설프다. 진보신당 당원 신분을 패션처럼 소비하는 사람들이 홍대에도 존재한다. 분쟁이 있고 정치적 견해가 뒤따르는 자리에는 늘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 쪽과 그렇지 않은 부류를 분류해 내는 작업이 요구된다.

노회찬과 심상정은 그래서 안타깝고 애틋하다. 그들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기성 정치인이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데에 익숙하다. 그 미묘한 경계선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성과는 늘 시원치 않다. 이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많은 이들을 열패감에 시달리게 할 지도 모른다. 그들은 민중가요를 부르고 싶어하지만 대중들은 더이상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관심이 없다. 트위터에는 매시간 매분 강정 마을과 한진 중공업에 대한 속보들이 쏟아 진다. 그 이야기들은 결국 아는 사람들, 관심있는 사람들 안에서만 돌고 돌며 소비될 뿐이다. 노회찬과 심상정은 그 안에 스스로 갇히기를 선택했고, 그래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아마도 다음 총선에서 이들은 다시 금뱃지를 달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지난 몇년동안 겪은 놀라운 수준의 학습 효과는 이들에게 한번의 기회 정도는 더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약 그 때에도 민중 가요를 불러야 한다면, 나는 정말 더 슬퍼질 것 같다.

Korean stature changes under Japanese Colonial period

저번에 언급한 Skeckel 의 논문은 여러가지 한계점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한 집단의 평균 신장을 이용해 그 집단의 영양 상태와 living standard 를 comparative 한 방법으로 접근한 공헌은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Fogel 과 Skeckel 의 선행적 연구 이후 이러한 시도가 경제사학계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이는 즉 각 지역별로 case study 가 꽤 다양한 층위로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과연 일제 시대 한국인들이 정말 열악한 환경에 놓였는가, 라는 질문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며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의 여부는 한국에 한국 국적으로 살고 있는 한 사람의 정체성이라던가 철학 따위를 ‘커밍 아웃’ 하는 가장 좋은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앉아서 컴퓨터로 한국에서 발표된 논문을 읽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빌어먹을 한국 논문 검색 사이트들이 구글 스콜라와 연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거나 구글 스콜라가 겨우 찾아낸다고 해도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한국에서 발간되는 학술지들을 구매했을 가능성은 제로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분야에 대한 꽤 선구적인 논문들은 영어로 번역되거나 아예 영어권 학술지에 발표되기도 하는데, 궁여지책으로 그러한 자료들을 몇개 찾아 읽어 봤다.

거의 대부분의 논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는 데이터의 협소성이다. 길인성 전 교수님의 논문은 일제 시대 한국인의 신장을 측정하기 위해 두가지 자료를 사용하고 있는데, 하나는 당시 학교에 등록된 학생들의 신체검사 기록지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의료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들의 신장을 이용해 당시 신장을 역추적해 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20년에 태어난 사람은 1990년 의료보험 기록에 70세로 기록되어 있을 것이고, 만약 이 사람이 1990년 현재 80세의 사람, 즉 1910년에 태어난 사람보다 키가 작다면 1910년부터 1920년 사이에 평균 신장의 상승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갖는 문제점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첫째 selection bias. 당시 학교에 등록되어 있던 학생이나 의료보험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은 비교적 상류층에 속한다. 하위 계층이 outlier 로 통계에서 제외될 확률이 높다. 둘째 기록의 부정확성. 추측은 언제나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아무튼, 길 전 교수님의 논문의 결론은 일제 식민 지배가 본격화되는 1920년부터 1940년 사이에 significant 한 신장의 감소 현상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즉 이를 영양분 섭취의 감소로 볼 수도 있고, 당시 큰 폭으로 증가했던 한국으로부터 일본으로의 쌀 수출 현상을 설명하는 자료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중요한 건 당시 일본인들의 신장과 직접적으로 비교해 과연 얼마나 신장의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이루어졌느지를 밝혀내는 일이다. 이를 확장해 당시 대만이나 만주의 표본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아무튼, 내 생각에 당시 일본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피지배계층의 정보를 입력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당시 한국인들에 대한 자료를 지금 현재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을 가능성보다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얘기다. 이걸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당장 월요일에 사학과 건물로 뛰쳐 올라가 교수님들 바짓가랭이 붙잡고 매달려야 하나..

slave nutrition issue

이번 학기에 수강중인 과목중 하나인 Economic History of North America 를 위해 방금 읽은 논문의 주제는 미국 노예들의 삶의 질에 관한 문제다. 독립전쟁을 전후로 미국에는 몇가지 다른 형태의 노동력이 존재했다. 먼저 영국등 유럽에서 이민온 사람들, 그들중 미국까지 가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를 저당잡혀서 넘어온 indentured labor, 유럽에서 징벌적인 이유로 인해 강제로 넘어온 convict,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수입된 slave 등. 이들은 모두 다른 형태의 노동 계약을 맺었고 그에 따라 노동 환경도 상이했으며 하는 일도 달랐을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이 바로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이 과연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제공해야 했느냐의 문제다. 왜냐하면 당시 존재했던 상이한 형태의 노동 계약에 대한 이론중 상당 부분은 이러한 노동 형태가 각각의 계급이 처한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요일에 내가 발표했던 Fenoltea 의 1984년 논문이 대표적인 예다. Fenoltea 는 처벌과 감시에 의해 규제되는 강제적인 형태의 노동과 임금을 통해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자발적 노동으로 당시 노동 형태를 나누고 처벌과 감시에 의한 강제적 노동의 경우 더 높은 효율과 더 낮은 주의력(carefulness) 를 불러오는 효과가 있다고 가정했다. 즉 효율을 중시하는 산업일 경우 노예를 써서 강제적으로 일을 시키는 것이 더 높은 이익을 보장하는 반면 꼼꼼하고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산업의 경우에는 자유로운 신분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더 좋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논문의 경우 노예가 정말 강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제공해야 했느냐는 가정의 사실판단 여부가 중요하게 다루어 질 수 밖에 없다.

Steckel 의 1986년 논문은 이런 의미에서 선구적이다. 그는  1820년부터 1860년까지 존재했던 흑인 노예 5만여명의 자료를 분석해 그들의 평균 신장을 추정해 냈다. 신장이 인간의 영양 상태를 나타내는 좋은 지표라고 가정할 때, 평균 신장은 그 집단의 전체적인 영양 상태를 추정할 수 있는 좋은 표본이 될 것이다. Steckel은 이 평균 신장을 현대의 평균 신장과 비교해 얼마나 큰 차이를 나타내는 지를 살펴 본다면 당시 흑인 노예들의 평균적인 영양 상태및 노동 환경을 추측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저자는 사실상 성인이 된 후의 신장 비교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아부터 성장이 마무리되는 20세 전후까지의 기간만 조사했다. 두번째 칼럼이 당시 노예들의 평균 시장을 추측한 값, 네번째 칼럼이 1960년대 현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평균 신장 값, 다섯번째 카럼은 이 두 값 사이의 차이를 나타낸 것이다. 단위는 인치(inch) 다. 위의 표에서 중요한 건 마지막 칼럼이다. 마지막 칼럼은 당시 노예의 평균 신장이 현대의 신장 기준과 비교해 백분위로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나타낸 것이다. 예를 들어 4.5세의 평균적인 흑인 노예는 현대 기준으로 하면 백분위로 0.2% 에 속한다. 즉 가장 열악한 0.2% 에 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21.5세가 되면 23.3% 로 상승한다. 하위 23.3% 에 속한다는 뜻이다. 이 결과는 19세기 초중반의 흑인 노예들은 영아때는 극심하게 열악한 영양상태에 속하지만 성장하면서 점차 영양 상태가 개선되었다고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이들이 태어날 때 상대적으로 열악한 영양 상태였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태어날 때보다 더 나은 영양분을 섭취함으로써 신장면에서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영양 상태가 점차적으로 개선된 이유가 무엇일까? Steckel 은 두가지 이론을 제시한다. 첫째, 노예주인이 경제적 투자의 개념으로 노예들을 잘 먹였다는 것이다. 일단 자신의 노예들이 건강해야 그에 따라 돌아오는 return 도 많을테니까 어린 노예들을 잘 먹여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expected return 과 expected outlay 를 비교해 본 결과 투자에 비해 돌아오는 리턴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둘째, 노예 주인의 altruism, 즉 이타적인 마음에 기인한다는 가정이다. 한마디로 노예 주인이 착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논문에서 Steckel 은 당시 흑인 노예들의 personality 가 영양 상태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영양 상태가 좋지 못했기 때문에 성마르고 반항적이며 예의가 바르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Steckel 은 Fogel 의 제자이다. Fogel 은 사회주의자이며,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알려져 있다.  뭐 어쨌건.

영양 상태와 삶의 질을 연결시키는 건 현대 경제 사학자들에게 널리 퍼진 이론이다. 이 이론은 Fogel 과 Steckel 이후 점차 정교화되기 시작해서 최근에는 당시 생존했던 이들의 뼈나 머리카락을 분석, 이들이 섭취했던 영양소를 분류해 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무튼 이 이론을 이용해 국내의 식민사관론자들이 자신들의 이론을 확장시켰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즉, 일제 식민 시대동안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들의 영양 상태는 크게 개선되었으며, 때문에 일제의 식민 통치가 사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일제 식민 통치가 한국을 발전시켰다는 논리)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료의 정확성같은 기본적인 통계적 오류 가능성을 차치하고서라도 몇가지 반박할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첫째, 영양 상태, 특히 신장의 경우에는 유전적인 요인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꽤 크다. 즉 아빠와 엄마가 크면 아들 딸도 클 확률이 아빠 엄마가 작았을 경우보다 크다. data 의 span 을 앞뒤로 확 늘려야 이야기가 조금 더 그럴듯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둘째, 한 시기의 평균적인 신장을 영양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로 가정하고 이를 무언가와 비교해 결론을 도출해 내고자 한다면 동시대 다른 환경에 처해 있던 다른 집단과의 비교를 해야지, 완전히 다른 시대의 다른 환경에 있는 집단과 비교하면 컨트롤해야 하는 변수들이 너무 많아진다. 통계적인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건 비교 집단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저자의 정치적인 경해가 개입할 여지가 너무 많아진다는 의미도 된다. 예를 들어 식민시대 한국인들의 영양상태를 현대의 가장 못사는 지역에서 추출한 표본과 비교하면 당연히 좋아 보인다. 셋째, 인류는 항상 발전해 왔다. economic growth rate 는 장기적으로 하락한 적이 1500년 이후로 한번도 없었다. 단기적인 fluctuation 은 있을 수 있으나, 3,40년의 장기적인 기간을 대상으로 한다면 한 집단이 경제적으로 더 열악한 상태에 놓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즉 거시적인 성장률이 그 집단의 영양 상태에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요인이라면 (식민사관론자들의 핵심적인 가정이 이것이다) 그 성장률은 이유를 불문하고 항상 성장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도 경제는 항상 큰폭으로 성장해 왔다. 즉, 식민 시대에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의 신장이 상승한 건 당연하다는 거다. 만약 이들이 식민 시대 전 100년 정도 기간의 신장 상태 기록을 확인하고 정리하여 식민 시대의 신장 성장률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겠지만, 사실상 그러한 비교는 현재 나와 있는 자료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넷째, 심지어 일본 식민 통치가 당시 한반도의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고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이 거시 경제 성장으로 인한 부의 축적이 어떻게 분배되었는가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평균 신장, 혹은 평균적인 영양 상태는 그리 썩 좋은 지표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영양 상태는 그야말로 subsistence level 이 유지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삶의 질이 하루 세끼를 해결하는 것으로 완전히 충족되는가? 나의 대답은 노, 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일제 식민 통치가 제공해 주었는가를 밝혀 내기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자료가 필요하다.

References

Fenoltea, Stefano, “Slavery and Supervision in Comparative  Perspective: A model,” Journal of Economic History, 44 (1984): 635-69.

Richard Steckel, “A Peculiar Population: The Nutrition, Health, and Mortality of American Slaves from Childhood to Maturity,” Journal of Economic History, 46 (1986): 721-41.

the effect of social activity on the satisfaction of private life: is it procyclical?

어제는 친구들과 덴버까지 나가 술을 마시고 새벽녘에야 들어 왔다. 그리고 오늘은 문자 몇통 보낸 것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혼자 시간을 보냈다. 나는 개인적으로, 혼자 시간을 활용할 때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 그리고 실제로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보내고 있음을 경험한다. 내가 “효율” 혹은 “만족” 이라는 단어를 생활속에서 쓸 때 그 판단의 기준은 전적으로 공부와 관련된다. 그날 하루 얼마나 많은 양의 책/논문/글 따위를 읽었는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야할 일” 을 처리했는가에 따라 나의 anxiety 와 satisfaction 이 정해진다. 스트레스를 적게 받을 수록, 내 행동에 대한 개인적인 만족도가 높을 수록 나의 삶은 더 행복해 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건 전적으로 내가 얼마나 시간 활용을 잘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니까 짧은 중간 결론은,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때 시간 활용을 되게 못한다는 거다. 보통 하루의 계획은 그 전날이나 당일 아침에 완성이 되는데, 나는 이 계획대로 내 삶이 진행되지 못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내 삶에 깊이 개입할 수록 계획을 내 뜻대로 관철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나는 내 행동양식을 퍽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행동까지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과 시간을 오래 보낼 수록 약간씩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는 편이다. 이때문에 연애를 할 때 곤란한 때가 많았다. 내 의지에 의해 시간을 제어하지 못하고 공부를 할 수 없는 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 정도가 데이트를 통해 얻는 행복감을 초월할 때부터 표정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대학 졸업전 만났던 여자친구는 오죽했으면

“나는 사람에게 질투를 느낀 적은 한번도 없는데, 오빠를 만나면서 경제학이라는 것에 미칠 듯이 질투를 느껴.”

라고까지 말했을까. 사실 지금 기준으로 그때 당시에는 내가 경제학을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을 때였다. 그냥 겉멋에 사로 잡혀 괜히 어려운 과목 골라 듣고 도서관에서 경제학 원서들 뒤적거리며 폼잡을 때인데, 그때 당시에도 ‘데이트보다 공부를 해야 한다’ 라는 마인드가 박혀 있었던 것인지, 혹은 그 생각이 얼굴 표정이나 행동에서 드러났던지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회적 관계에서 고립되어 있을 때 효율이 실제로 더 높다는 것이 철저히 나의 인식에서 비롯된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함정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해가 잘 뜨지 않고 비가 가끔 내리는 흐리고 쌀쌀한 날이었다. 어제 새벽까지 술을 마시느라 당연히 늦잠을 잤고, 대학 미식축구 경기까지 보느라 학교에 느지막히 올라갔다. 가서 한거라고는 퀴즈 채점하고 점수 올려서 확인하라는 이메일 보낸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다음주 수업시간에 다룰 문제 몇개 뽑아 문서 하나 만들고 다시 집으로 내려와 밥을 해먹었다. 미식축구 경기 조금 더 보다가, 월요일에 발표해야 할 페이퍼를 심즈 소셜해가며 듬성 듬성 읽었다. 아마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해야 할 것이다.  월요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숙제 하나를 마무리짓고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완성해야 하며 월요일 수업에 토론할 페이퍼 두개도 읽어야 한다. 그러니까 사실 오늘이 그리 생산적인 날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녁밥을 앉히면서 ‘아, 오늘 참 행복한 날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냥 나는 사회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일까. 그냥 다른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고 혼자 집구석에 처박혀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일 뿐인 것일까. 잘 모르겠다. 여자친구, 혹은 데이트라는 행위가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서 어울리면 참 좋긴 하지만, 그들과 만나서 약속을 잡거나 의례적으로 건네야 하는 인사말등을 해야 할 때 에너지의 낭비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일종의 비극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워낙 표본이 적다 보니 일반적으로 그렇다, 라고 이야기하기도 힘들다. 그러니까 나와 잘 맞는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었다. 극히 적기는 했지만.

Explosions in the Sky at Fillmore

http://youtu.be/dzOjX-GrapI

9월 13일에 explosions in the sky 공연을 갔었다. 덴버의 필모어 오디토리움에서 있었고, 오랜만에 K 와 함께 갔다. explosions in the sky 는 내가 최초로 외국에서 관람한 공연의 주인공이었다. 2008년 2월, 대학원 준비를 모두 마친 뒤 갔던 유럽 여행. 런던에 도착한 첫날 진욱이를 만나 그를 끌고 무작정 시내 한복판에 있는 허름한 공연장으로 갔다. (사실은 약간 다르다. 나는 영어도 못했고 길도 몰라서 진욱이가사실상 나를 끌고 다녔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공연을 함께 봤다. 당시 그곳에서 본 아주 앳되어 보이는 동양인 소년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공연장 문이 열기 전 문 바로 앞에서부터 기다리기 시작해서 공연장내 무대 바로 앞에서 한치의 두려움이나 눈치보는 것 없이 흠뻑 공연을 즐기던 그 젊은 동양인 친구의 똘망 똘망한 눈동자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당시 공연에 대한 포스팅도 블로그 어딘가에 있을텐데 찾지 못하겠다. 검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아무튼, explosions in the sky 는 텍사스 오스틴 출신의 포스트락/익스페리멘탈 그룹이고, 실제 공연은 기타 세션 한명이  더 도와주었다. 필모어 오디토리움이 전문 실내 공연장 중에서는 덴버에서 가장 크긴 한데 절반 조금 넘게 관중들로 채워졌던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이 한산했고, 공연장 열기도 그리 크게 뜨겁지는 않았다. 하긴 이들의 음악 자체가 일반 록음악 공연처럼 “락킹” 하게 몸을 흔들 수 있는 순간도 그리 많지 않고 그저 멍하니 노이즈의 홍수를 온몸으로 느끼는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공연장의 열기 자체는 그리 크게 중요하지 않기는 하다. 그래도 매진이 되지 않았다니 약간 놀랍긴 했다. 조금 더 작은 공연장, 예를 들어 Ogden 이나 Bluebird 같은 곳을 잡았다면 조금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이들의 음악적 특징을 생각해 보면 넓게 확 트인 공간이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어 뭐 그리 크게 나쁘진 않네, 라는 결론을 내렸다.

서정적인 기타 선율과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노이즈가 묘하게 겹치면서 발산하는 매력이 이들의 트레이드마크다. 보컬이 없고 기타 두대와 베이스 하나, 드럼 하나로 거의 모든 사운드스케잎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앨범보다 훨씬 긴 시간의 공연 내내 집중하는 것이 꽤나 어려웠다. 이들 공연의 특징은 노래와 노래 사이를 끊지 않고 계속 사운드를 이어 간다는 것이다. 중간 멘트도 없고 음악도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관중들은 박수를 치거나 환호를 보낼 타이밍조차 잡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공연은 약 한시간 반만에 일찍 끝났다. 한시간 반이라고 해도 이들의 곡들 기준으로 최소한 열다섯곡은 연주한 것 같은데, 이들 음악에서 각각의 곡이 갖는 에너지의 양을 생각한다면 결코 적거나 소홀한 공연 구성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 물론 앵콜도 없었다.

런던에서의 그날 밤을 잊을 수 없기에 이들의 공연은 조금은 더 개인적인 이유로 기다려 왔던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와 함께 공연을 즐긴다는 것도 물론 좋고 행복한 일이지만, 그저 멍하니 이들의 공연을 바라보며 그때 런던의 차가웠던 밤공기와 공연뒤 먹었던 이상한(?) 정크 푸드의 맛을 떠올리는 일 역시 내 개인적으로는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조만간 다시 덴버를 찾겠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이들은 홀연히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티셔츠를 하나 샀다. 이들의 최신 앨범 <Take care, take care, take care> 의 문구가 새겨진 와인색 티셔츠인데 지금 생각해도 잘 산것 같다. 뿌듯하다.

위에 건 링크는 이들의 3집 앨범의 마지막 수록곡 “Your hand in mine” 의 그날 연주 실황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이들의 노래는 가사가 없기 때문에 노래 제목이 감상의 이정표 역할을 충실히 해준다. 너의 손을 잡은 내손. 혹은 나의 손을 잡은 너의 손. 그 생각만을 하며 이 곡을 들었다.

추석 인사.

방금 서울집에 전화로 추석 인사를 드렸다. 언제나처럼 어머니와의 대화로 시작해 어머니와의 대화로 끝나는데, 누나와 자형이 와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는, 추석답게 한껏 부산스러운 분위기가 귓가를 통해 전해져 왔다. 한참 음식 준비하시느라 바쁘실 것 같아서 짧게 인사만 하고 끊었다. 음식 잘 받았고, 김치 맛있게 먹고 있고, 아픈데 없고, 공부 잘하고 있다는, 으레 하는 상투적인 말 몇마디를 다시 한번 목에 힘주어 최대한 씩씩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 그것을 효도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민망한 – 무엇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동에 집을 한채 더 가지고 계신다. 그렇다고 돈많은 교수들이 하는  값비싼 땅따먹기 놀이는 아니고, 마당을 가꾸고 흙을 만지는 것을 워낙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삶의 방식에 비추어 볼때 서울의 아파트는 일종의 감옥과도 같았기에, 최후의 탈출구와 비슷한 개념으로다가 장만하신 작은 한옥집이다. 다 스러져가는 껍데기만 남은 한옥을 발견하시고 말로만 듣던 ‘목수’ 님을 모셔 정식으로 기와를 올렸다. 그리고 잔디 한포기, 나무 한그루까지 직접 본인의 손으로 가꾸셔서 순식간에 집다운 집을 만드셨다. 아버지는 그곳을 너무 사랑하셔서 수업이 있는 날에만 서울로 올라오시는데, 다섯시간이 넘게 걸리는 고속도로 운전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차를 몰고 내려가신다.

우리는 그곳이 머지 않아 우리의 ‘큰집’ 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머지 않은 미래에 누나와 나는 아마도 서울에 살게 될 것이고, 명절이 되어 휴가를 얻으면 차를 끌거나 버스를 타고 하동으로 내려가 그 한옥집 툇마루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수다를 떨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빠르면 빠른대로, 늦으면 늦은대로 아이들도 하나 둘씩 만들어 마당에서 뛰놀게 하면 참 좋을 거라고 즐거운 상상까지 펼쳤다.

지금까지 한번도 우리 가족이 중심이 되어 명절을 지내 본 적이 없다. 우리를 포함한 친척들은 늘 대구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를 중심으로 모였고 우리 가족은 고령의 성직자분들을 모시느라 늘 바쁘게 지냈던 것 같다. 작년에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실질적인 집안의 중심이 되고, 누나가 결혼을 하면서 우리 가족에게도 약간의 변화가 생긴 듯 하다. 어머니도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다르셨고 누나는 조만간 아이를 가질 것이다. 한 세대가 마무리를 준비할 시점에 새로운 세대가 그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여름 누나의 결혼과 새로운 식구의 ‘탄생’ 을 ‘목격’하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될 준비를 마치신 듯 하고, 늘 소파에서 나와 뒹굴거리며 낄낄거리던 누나는 순식간에 어른이 된 것처럼 보였다. 우리 가족은 늘 격식없이 어울려 노는 줄로만 알았는데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면서 그것이 하나의 룰, 혹은 전통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전통이 되물림되고 있다. 누나 내외가 새집에서 가장 먼저 장만한 건 우리 가족이 애용하던 조그만 소반이었다. 어머니는 미국으로 직접 그 소반을 하나 새로 사서 부쳐 주셨다. 나는 지금도 집에서 밥을 먹을 때 카페트가 깔려져 있는 거실 바닥에 철푸덕 앉아 소반에 음식을 놓고 먹는 것이 편하다. 아버지가 늘 하시던 그 방식대로 말이다.

지금쯤 서울집에서는 점심 식사를 끝낸 네명의 내 ‘가족’ 이 과일을 먹던지, 윷놀이를 하던지 하며 한가로운 휴일 오후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하동집보다 서울집에서 모이는 것이 편한가 보다. 아버지만 약간 고생하시면 되니까. 내가 없는 그곳에서, 우리 가족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서울로 돌아갈 그날을 위해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언젠가는 그곳으로 돌아 가겠지. 가족의 존재는 내가 서울로의 복귀를 포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다. 언젠가 그 사람이 내게 그랬다. 그 때는 그냥 친한 친구사이였을 때인데,

“가족이라는 존재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게 더 큰 의미더라고. 그래서 결국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지 싶어.”

라고. 이 말을 들은지 몇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귓가에 맴돌고 있고, 그렇게 해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친구가 마침 지금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언니와 그 언니가 갓 낳은 애기를 보러 어머니와 함께 휴가를 내어 왔단다. 같은 시간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엇, 더 쓰면 정말 청승맞아 질 것 같아서 이만.

노래를 하나 넣고 싶은데, 꼭 추석이라서는 아니고 방금 아이튠즈를 휘휘 넘겨 보다가 딱 눈에 띄어서 그냥 “들읍시다!” 하는 의미로다가.

헤르타 뮐러: 저지대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문학동네, 2010년, 1판 2쇄.

1982년 발표된 루마니아 출신 작가 헤르타 뮐러의 단편 소설집인 이 작품은 그녀의 데뷔작이다. 발표 당시 검열 당국에 의해 강제적인 편집과 삭제가 이루어졌고, 이후 독일에서 다시 출판되었을 때에도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2009년 뮐러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뒤 이 책에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고, 문학동네를 통해 한국에 소개된 이 책은 세개의 단편을 되살린 복원판을 토대로 번역되었다.

중편 정도에 해당하는 표제작 “저지대” 가 책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고 짤막한 단편들이 앞뒤에 배치되어 있는 형식이다. 이 데뷔작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강렬하고, 더 직관적이며, 더 시적이고 극단적이다. “저지대” 에는 흔히 말하는 서사 구조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문단과 문단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상관관계를 찾아볼 수 없다. 더 심하게 말한다면 문장과 문장 사이에도 그리 큰 호응이 이루어지지 않는 듯 보인다. 그녀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대단히 초현실적이며, 그러한 단어들을 통해 당시 루마니아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묘사’ 하고 있다. 다른 작품들 역시 분위기와 흐름은 비슷하다. 각 문장은 굉장히 함축적으로 씌어 있어서 한번 읽어서는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는지 언뜻 알아 차리기 어려울 정도다. 당시 극심했던 검열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짐작할 수도 있지만, 책의 뒷편에 함께 자리한 노벨 문학상 수락 연설을 읽어 보면 그녀가 사용한 단어들과 문장들이 결코 그러한 현실적인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그녀의 다른 작품 <숨그네> 의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녀는 새로운 낱말들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작품속에서 창의적으로 사용하는 데에 익숙하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을 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고 다시 이를 이용해 상이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문장들을 병렬시켜 독특한 세계관을 창조한다. 예들 들자면 집안일에 찌든 어머니의 성긴 표정과 하늘 위를 떠다니는 어린 소녀의 심리 상태를 마치 동시에 한 장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양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이 작품에서 천착하고 있는 것은 의외로 당시 사회상에 대한 강한 비판이 아니라, 그로 인해 잔뜩 짓눌렸던 일반 대중들의 삶과 그 삶속에 깊이 자리잡은 어떤 공동 무의식같은 것을 발견하고 묘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단편들에서 간접적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묘사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단편들은 당시 루마니아 사람들의 건조한 일상을 그녀만의 언어를 통해 묘사하는 데에 치중한다. 그들의 삶은 단순히 절망적이고 신경질적이며 고단하다는 정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느껴진다. 단순히 억압당하는 피지배자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지치고 힘든 내면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타인에 대해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서로간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결핍된 모습에서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한 사회내에 존재하는 인간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뮐러의 작품이 강렬한 이유는 작중 화자의 시선이 종종 초현실적인 모습을 띄며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황홀하게 비추기도 한다는 점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문장들이 오히려 이러한 상황에서는 말이 되기도 한다. 상식적으로 받아 들이기 힘든 묘사들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는다. 이 기묘한 체험은 희망이 전혀 없는 한 동네에 문학적 묘사를 통해 희망의 힘을 불어 넣는 기능을 한다. 일종의 기적과 같은 체험이다. 비록 현실은 여전히 고단했고 뮐러는 결국 루마니아에서 독일로 망명했지만, 최소한 그녀가 쓴 글안에서 그녀는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동부 여행 계획

이번엔 진짜 간다!

미국에서 3년 살면서 한번도 동부쪽으로는 구경조차 못해본 완전 촌놈, 이번 겨울 방학이 유래없이 4주나 되기 때문에 정말 단단히 결심하고 계획을 대충 구상하는 중이다. 평소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여행만큼은 치밀하게 동선을 하나하나 짜기 보다는 대략적인 밑그림만을 그려 놓고 마음내키는대로 가는 편을 선호하기 때문에 어디에 며칠 머무를지 정도만 고민하는 중.

언제, 누구를 만날까: 여행의 기준이 되는 건 그 지역에 머무르고 있는 지인들의 존재 여부다. 미국 전역에 멀거나 가까운 지인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 신기하게 느껴진다. 나처럼 좁은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조차 결국 어딘가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아무튼, 퀸즈에 외가쪽 식구들이 다수 거주하고 계신다. 그래서 뉴욕을 기반으로 여기 저기 둘러볼 참이다. 크리스마스까지는 볼더에서 보내고 이후 약 2주 정도 동부에 머무르면 어떨까 싶은데, 1주 정도는 뉴욕 친척집에서 머무르며 한국음식 왕창 얻어 먹고 뉴욕 주변 이곳 저곳을 구경한 뒤 나머지 1주는 절반은 보스턴에, 나머지 절반은 디씨에서 보내면 어떨까 하고 생각중이다. 보스턴에는 고등학교 동창 한명과 대학교 선배 한명이 있는데 잠자리를 신세질 정도로 친하진 않고, 디씨-볼티모어 지역에는 고등학교 친구 한명과 대학교 선배 한명, 그리고 우리 사라님과 아델라님이 계신데 이분들 역시 신세질 정도는 아니니 가서 얼굴만 뵙는 정도? (각오하고 계시죠..?) 뉴욕에는 짜가 누님이 계시고 대학원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친구 한명,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 두서너명 정도가 있 – 을 것 – 다. 아니스님도 계셨는데 지금은 안 계시니까.. ㅠ 또 누구 빠트린 사람 없나.

이동수단: 뉴욕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라가서 동부안에서는 기차를 한번 타봤으면 좋겠는데, 이게 또 생각만큼 가격이 싸지도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지라 고민이 조금 된다.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차이나타운 버스도 말로만 들었는데 한번 타보고 싶고 (이거 아직도 운행하나요?) 뉴욕에서 디씨는 그냥 차를 렌트해서 갈까 생각해 보기도. 동부 고속도로는 또 많이 다를 것 같아서 +_+

뭘 할까: 원채 티피컬한 관광을 별로 안좋아 해서, 뉴욕은 미술관과 대학교 위주로 – NYU, Columbia, New School.. – 하루 이틀쯤 둘러 보고 괜찮다는 카페 찾아가서 책이나 읽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근데 이건 보스턴이나 디씨도 마찬가지.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Yelp! 로 괜찮은 카페 검색해서 찾아가너나 조지타운, 매릴랜드, 하버드, 엠아이티같은 대학교 구경할 생각뿐. 하지만.. 뉴욕은 뭐다? 공연! 뮤지컬! 결국 나이트라이프를 나름대로 즐기는 쪽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근데 보스턴이나 디씨도 공연은 정말 많으니까.. 2주 내내 공연만 보다 올지도 모르겠다. 혹여나 NBA 가 개막하면 매디슨 스퀘어 가든과 뱅크노스 아레나, 버라이존 센터를 직접 구경할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겠다. 다른 유니폼을 입은 천시의 모습을 직접 보는 아련함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아마도 랩탑을 들고 다니며 시간 날 때마다 논문을 쓰는 불상사를 겪게 될지도.. 아, 동부에서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이 H-Mart 견학. 동부는 그렇게 한국 마트들이 잘 되어 있다면서요. 진짜 얼마나 좋은지 꼭 한번 구경해 보고 싶음. 기회가 닿으면 초코파이도 한상자 사고.

화요일 혹은 목요일에 출발과 도착 날짜를 찍으면 대체로 비행기티켓이 약간 더 저렴하다. 그리고 매주 화요일에 각 항공사별로 새로 풀리는 티켓이 생기므로 화요일에 티켓을 예매하면 추가적으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다음주 화요일에 티켓 구입 디데이.

남녀 관계에 대한 세가지 이론, and more..

공부하기 싫어서 내 가까운 친구들이 제시한 연애, 혹은 결혼에 대한 세가지 이론을 소개한다. 이들 이론들의 특징은 모두 계급주의적인 시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각자 계급을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이라는 특수한 지역주의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마지막으로 이 이론들은 동성애자와 같은 특별한 경우를 배제하고 있다.

1. 키와 매력, 학력의 상관관계 – 여자친구 S 의 주장

대학교 1학년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0년전 (꺄악) 에 제시된 이론이다. S 는 한국에서 남자는 키가 클수록 매력이 증가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매력이라는 함수의 종속 변수를 결정짓는 또다른 독립 변수로 학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즉 학력이 높을 수록 남자는 능력이 높은 것처럼 보이며, 이것이 여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력과 키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그녀는 키가 10cm 클수록 학력 하나를 상쇄한다고 가정했다. 즉 170cm 의 대졸 남성과 180cm 의 고졸 남성은 – ceteris paribus – 동등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어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키를 늘이고 가방끈도 길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키가 작다면 학교를 더 다녀야 한다. S 는 대학교 1학년때부터 사귄 동갑내기 남성과 재작년 결혼했다. 남편되는 분은 키도 크고 학벌도 괜찮고 벌이도 괜찮다.

2. distorted market and miss-match theory – 남자친구 J 의 주장

J는 약 5년전 남자와 여자의 등급을 A, B, C 세가지로 나누어 각각의 등급이 상대 성의 어떤 등급에  매치되는지를 연구했고 이를 친구들에게 발표했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은 자신보다 한단계 높은 등급의 남자와 매치되기를 바란다. 즉 B 등급의 여자는 A 등급의 남자와 매치되기를 희망한다. 반면 남자는 자신과 반드시 동등한 등급의 여자를 만나야 한다는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J 가 설정한 등급 기준은 학력과 수입, 외모와 배경등이다. J 의 이론에 따르면 B 등급의 여자는 A 등급의 남자와, C 등급의 여자는 B 등급의 남자와 매치된다. 그렇다면 시장에 남는 등급은 A 등급의 여자와 C 등급의 남자다. J 는 자신의 이론이 현재 한국에서 양산되고 있는 소위 골드 미스라고 불리워 지는 능력은 뛰어난 노처녀들과 능력없는 노총각들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J 는 현재 – 그의 등급 기준에 따르면 – A 등급의 여자와 연애중이다.

적어 놓고 보니까 인간도 “1등급 한우” 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3.  왜 시장에는 괜찮은 남자가 없는가 – 남자친구 H 의 주장

지난 여름 H 는 30대 전후의, 결혼을 염두에 두고 이성을 만나게 되는 연애 시장에서 “괜찮은 남자” 가 “괜찮은 여자” 에 비해 그 개체수가 현격하게 낮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친구들에게 알렸다. H 는 당시 이 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demander 이자 supplier 였는데, H 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가치에 비해 너무나 많은 인기를 독차지하게 된 데에서부터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실증 분석에 따르면 “꽤 괜찮은 남자는 다 짝이 있더라” 라는 말은 엄연한 사실이었고, 이태원과 홍대의 클럽 등지에서 “꽤 괜찮은 남자” 는 “정말 괜찮은 여자들” 에게 둘러 싸여 인기를 독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비슷한 나이대의 – 매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연령대의 – 여자들은 자신들의 선호 기준을 충족하는 남자를 만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러한 기준을 충족하는 남자들은 “이미” 다 임자를 만나 시장에서 퇴출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괜찮은 남자는 다 유부남이더라” 라는 말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결과적으로 시장에 남아 있는 여성의 “퀄리티” 가 남성의 그것에 비해 훨씬 높은 비대칭적 상황이 빚어지게 되고, 여자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계속 시장에 남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H 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일찍 사회에 진출하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지적한다. 즉 여자는 남자에 비해 이 시장을 먼저 경험하고 여성 특유의 직감과 생존 능력으로 괜찮은 남자를 먼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더 빠르게 습득한다는 것이다. H 는 현재 시장의 진입과 퇴출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이 시장의 특수성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J 와 H 의 이론에서 공통적으로 추론해 낼 수 있는 사실은 한국에서 결혼 적령기라고 불리우는 나이가 점점 상승하고 있으며, 이 현상은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겪고 있는 고령화 사회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40세 이후로 임신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가능성은 제로로 수렴한다고 가정할 때 결혼 연령대가 높아질 수록 임신 가능성은 감소한다. 즉 젊은 인구는 적게 공급되고 과학의 발달로 인해 증가하는 인간의 평균 수명은 경제활동 인구가 부양해야 할 은퇴한 비경제 활동 인구 비중을 높게 만든다. 고령화 사회의 주된 이유로 증가하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뽑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먼저 한 가정이 맞벌이를 해야지만 먹고 살 수 있는 빈약한 사회 구조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여기서 해묵은 논쟁이 벌어질 소지가 있다. 여성이 가정을 지키면서 더 많은 출산을 통해 미래의 노동력을 공급해야 한다는 의견과 여성 그 자체가 하나의 잠재적인 노동력이므로 이를 사회에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 사이의 대립. 전자는 성차별적인 생각이 아니다. 오직 여성만이 임심할 수 있고 10개월 + /alpha 의 기간을 출산과 출산후 회복에 쏟을 수 밖에 없는 생물학적 특수성에 기반한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장려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약간의 수정만 가하면 이 두가지 의견은 대립이 아닌 하나의 통합적 결론으로 수렴할 수 있는데, 바로 국가가 공공서비스를 통해 이 두가지 주장을 모두 보조해 주는 것이다. 만약 사회 구조적인 시스템을 잘 디자인한다면, 여성의 노동력을 시장에 계속 공급함과 동시에 임신율과 출산율을 적정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면 여성의 임신/출산 휴가를 충분히 보장해 주고 이후 복직 보장과 근무간에 있어 불이익을 최대한 방지해 주는 것, 그리고 출산 후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무상 보육을 실시하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일부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교육열이 평등한 수준의 보육 시스템을 침해할 소지는 다분하나, 먹고 사는 것이 당장 급한 대부분의 부모들은 공짜로 자신들의 자녀들을 돌봐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최소한 친정과 시댁 부모들이 아기 하나때문에 절쩔 매며 노후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인데, 무상 보육 문제가 흔히 말하는 실버 산업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얘기를 덧붙이고 싶다. 지금 비경제 활동 인구로 잡히는 은퇴한 노인들은 손자 손녀들을 돌보며 사실상 무상으로 그들의 노동력을 공급하고 있다. 이건 GDP 에도 잡히지 않는 일종의 지하경제다. 국가가 만약 공공 보육 시스템을 크게 활성화해서 이렇게 음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적정한 수준의 급여를 지급한다면? 내 새끼는 꼭 내 핏줄에게 맡겨야 안심할 수 있다는 생각만 갖고 있지 않다면 충분히 거시 경제적으로 이득을 챙길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정부에서 제공하는 부상 보육 시스템의 질적인 측면 역시 중요할 거라는 얘기다.

아무튼 지금 한국의 “노총각 노처녀 양산” 과정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경제학자로는 “dismal economics” 의 창시자인 Malthus 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저서 <인구론> 의 내용은 간단하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생산력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니 인류는 결국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를 통제하기 위한 “check” 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질병과 기아, 전쟁등에 의해 death rate 을 통제하는 “positive check” 과 결혼 연령대와 결혼 가능성을 통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birth rate 을 통제하는 “preventive check” 이 그것이다.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난 맬서스는 사람이 최대한 많이 죽고 적게 태어나야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생명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는 결과적으로 틀렸다. 과학 기술이 인구 증가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질문은 멜서스가 주장했던 preventive check 이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다. 또한 이에 덧붙여 만약 그것이 일어나고 있다면 대체 왜, 라는 질문도 가져야 한다. 나의 개인적인 답은 예스, 그리고 먹고 살기 힘들어서. 결국 국가에서 나서서 이 check 을 제거해 줘야 한다. 왜냐하면 시장에서는 이걸 효과적으로 컨트롤하고 있지 못하므로. 흔히 말하는 시장 실패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아기를 갖지 않으면 한나라에 이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 굳이 Solow 의 경제 성장 이론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인구 증가율이 한나라의 경제 성장율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직관적으로 헤아릴 수 있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가적 임신율 억제 과정을 제거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을 것이다.

1. 거시정책: 굳이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을 만든다. 즉 최저 임금 상승 및 보장, 물가 안정, 이자율 안정 등. (여기서 국가 경쟁력을 해친다느니 하는 불멘 소리를 기업쪽에서 한다면.. 엿먹어라)

2. 미시정책: 맞벌이를 하면서도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 즉 무상 보육 시스템 강화,  고용 안정 보장등.  (출산을 경험한 여성의 노동 생산성이 감소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무상 급식 대결을 보면서 사실 이게 제일 급한 문제는 아닐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아기들에게 맞히는 주사값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엄하게 명품 수입 유모차에 매기는 관세를 낮추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건 정신나간 엄마들이나 하는 짓이고. 아기들을 최소한 사회에 성공적이고 안정적으로 안착시키는 과정에서 국가가 기본적인 서비스를 시장에 공급해 주라는 것이다. 애기들 주사 공짜로 맞힐 수 있게 해주고, 기저귀값이나 분유값 보조해 주고, 보육원이나 유치원을 정부에서 운영하는 뭐 그런 것들. 초등학교에만 무사히 들여 보내면 그 다음부터는 또 다른 문제다. 그 전까지의 과정에서 엄마 아빠들이 힘 쏙 빼고 등골 휘지 않게 공공서비스의 공급을 확대하면 되는 것이다.

어제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유학생 형님 한분의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그 양반은 자신의 첫째 딸내미를 대학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데, 이 유치원의 설립 목적이 일종의 학문적 연구에 있다는 것이다. 즉 굳이 뒤르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발달 심리학이나 뉴로 사이언스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유아의 성장 과정은 굉장히 중요한 관찰 대상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이 유치원이 미국의 여타 유치원들과 다른 점은, 아이들이 울면 안아 준다는 것. 나도 어제 처음 알았는데 미국의 유치원은 아이가 울어도 안아 주지 않는단다. 아무튼, 정부에서 각 대학의 관련 학과에게 적정 수준의 연구 지원을 하고 대학들은 부설 유치원을 개설해 아이들을 돌봐 주면서 동시에 연구도 진행할 수 있다면, 대학은 지역 사회에 공헌하면서 연구도 할 수 있으니 일석 이조, 정부는 간접적으로 질적 수준이 높은 보육 시설을 개설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으니 공공 서비스의 질적 저하 문제를 해결, 엄마 아빠들은 저렴한 가격에 질이 높은 보육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니 이쪽도 좋고. 모두가 좋아질 수 있는 하나의 예일 뿐이지만 방법은 찾아보면 훨씬 다양할 것이다. 재원 마련? 사대강 안하면 된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