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아버지

1.
아버지는 내가 한자를 익히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셨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우는 수준 이상의 한자를 배우지 못하게 하셨다. 당시 신문에 나오는 한자 수준 정도만 알면 된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한자 – 와 중국어 – 를 포기하고 살았다. 외고에 진학할 무렵, 아버지는 중국어과에 진학하고 싶은 나를 다시 한번 저지하셨는데,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목소리를 높여 싸웠던 때 같다. 대학에 진학할 때에는 큰 충돌은 없었다. 다만 아버지는 사시 공부를 해 법조인이 되길 바라셨고 나는 경제학과에 진학하고 싶어 했는데, 이건 결국 내 뜻대로 되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바라는 모습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대학 생활에서 글쓰는 것에 대한 흥미를 발견하면서 언론사쪽으로 가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을 넌지시 건네셨지만 그리 심각한 수준의 대화는 아니었다. 다만 아버지는 내가 하지 말았으면 싶은 것은 분명히 있으셨던 것 같다. 한자를 배우지 못하게 막은 것이나 중국어과에 진학하는 것을 막은 것, 이 모두가 당신과 같은 길을 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대학에 진학할 무렵 아버지와 내가 동의했던 건 인문 계열은 쓰지 말자는 거였다. 아버지는 (당연히) 아들이 인문 계열로 가면 사학을 전공하려고 할 것이고, 그렇다면 필히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싶어 할테니 그걸 막고 싶어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시 구조주의에 빠져 있던 터라 국문학을 전공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었는데, 국문학을 전공한 후 직업 선택을 할 때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아예 다른 전공을 택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결정해야 할 당시 나는 이미 아버지가 사학, 혹은 중국과 관련된 것을 나와 연결시키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인생을 아버지의 뜻에 반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선택하려고 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래서 나는 서울과 하동집에 있는 수많은 서적들을 그냥 멀뚱히 바라볼 뿐 읽을 수는 없다. 마치 집안에 다이아몬드가 한가득 있는데 그것이 보석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바보 거지와 같다. 나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중국어를 할 수 있거나 최소한 한자를 읽는데에 무리가 없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일종의 문맹인 셈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나의 사학 공부를 반대했던 이유는 그저 졸업 후 먹고 살기 힘들다는, 간단한 이유였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사학을 가야 할 길로 삼고 공부를 계속했다면, 결국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공부를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분야에 속한 지금이 그나마 조금은 더 자유롭게 느껴진다.

2.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한평생을 사셨다. 어머니는 공부하는 남편 뒷바라지하는 것을 가장 큰 의무요 행복으로 알고 사셨다. 이번 서울 방문에서 어머니가 하신 말씀들중 가장 인상깊었던 건 당신은 자식들보다 남편에게 훨씬 더 많은 애정을 쏟았고 신경을 두었노라는 고백이었다. 자식들에게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막는 최소한의 보호와 교육만을 했다면 남편에 대해서는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함께 모든 것을 주었고 항상 남편만을 생각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어머니의 그러한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의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된 입장에서 그러한 부모의 태도를 통해서 배우는 것은 분명히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와 내 누나에게 “이렇게 해라” 라는 직접적인 가르침은 거의 주지 않으셨다. 그분들은 당신들 나름대로의 삶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만 몰두하고 집중하셨는데, 누나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한 부모님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큰 가정교육이 된 셈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책상에 앉아 있는 뒷모습과 마당에서 밭일을 하시는 뒷모습, 딱 두가지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공부하실 때는 집안을 조용히 만들며 당신도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셨고, 아버지가 밭일을 하실 때면 밭일을 거들거나 음식을 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공부를 하실 때면 옆에 앉아 책 읽는 흉내를 냈고, 밭일을 하실 때면 마당에 나가 개구리나 풀잎따위를 가지고 놀았다. 앞에서도 적었지만 부모님은 나에게 직접 말을 거신 적이 별로 없으셨다. “하지 말라” 라는 최소한의 금지 사항만 알려 주셨을 뿐, 무엇을 하라는 적극적인 지시는 거의 없었다. 그런 내게 말을 건 것은 (혹은 내가 말을 것 대상은) 책이었고, 책을 읽는 흉내를 내다가 어느 순간부터 정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중학교 3년동안 많은 책을 읽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이건 전적으로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따라하는 습관을 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3.
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든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공부를 할 수 있고, 또 잘 할 수 있다.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경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공부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출발할 당시의 배경은 거의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곤 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부모의 직업과 부모와 함께 살았던 환경이 나로 하여금 공부를 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부모에게 물려 받은 재능을 이용해 글 쓰는 법과 글 읽는 법을 익혔고, 결국 그 두가지가 지금까지 내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특기’ 가 되었다. 유학을 온 뒤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지면서 과거 내 몸에 배인 읽고 쓰는 습관이 거의 무용지물이 되면서 한동안 힘들었지만, 결국 또 적응해 나갈 것이다. 속도의 문제이긴 하지만. 나도 사춘기 시절 부모님을 미워한 적이 있다. 성인이 되어서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마도 스물 한살 무렵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부터 나는 부모님과 점점 닮아 가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수 없고, 또 부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의 부모님은 참 매력적인 구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닮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지만, 멀어지고 지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장 무난하게 생각하는 길을 가게 됐다. 한때 아버지는 내게 글쓰는 재주를 살려 언론사쪽에 가볼 생각이 없냐고 넌지시 물어 보셨는데 그리 심각한 대화는 아니었다. 나는 한국의 언론들을 혐오하는 쪽에 속했고 일종의 권력기관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아버지도 그에 동의하며 대화는 일단락됐다. 그 후 내가 택한 건 “유학이 아니라 공부” 였다. 유학은 일종의 방법론의 문제였다. 그제서야 경제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돈이 꽤 드는 것이라는 걸 실감하고 약간 후회하긴 했다. 놀랍게도 부모님은 유학을 떠날 당시부터 단 한번도 돈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전적으로 지원해 주고 계신다. 만약 내가 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더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4.
재밌는 건 지금 내가 다음 학기에 쓰려고 생각하는 두번째 논문의 주제가 역사와 약간 관련이 있다는 거다. Classical Gold Standard era 에서 주요 국가 중앙은행들의 cooperation 에 대한 자료를 수집중인데 요즘 드는 생각은 아무리 피하려고 노력해도 돌고 돌아 결국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되는구나 하는, 일종의 운명론에 가까운 어떤 것이다. 역사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머릿속에 떠오르는 주제들은 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금융 정책, 춘추전국시대 각국의 무역과 전쟁의 상관 관계같은.. 음.

5.
어제 미국에 돌아온 후 처음으로 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 마무리지을 시점이 되자 어머니는 내게,

“그래, 이제 한두시간 책좀 더 보다가 너무 늦지 않게 자라.”

라고 말씀하셨다. 전화를 끊은 시간은 밤 열한시쯤. 우리 가족에게 밤 열한시는 “책을 한두시간 더 읽어야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시간쯤으로 인식되었나 보다. 아들과 전화를 마치며 무심코 인사말로 하신 말씀이 그런 식이다. 어머니는 그런 환경에서 반평생을 사셨다. 어제 전화를 끊고 문득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5 thoughts on “어머니와 아버지

  1. 저는 반대인 경우네요.
    대학입학하고 겨울방학동안 엄마가 소학이랑 중용 떼라고 해서
    무슨 서당 선생님 비스무레 한분한테 배웠어요.
    지금 기억은 하나도 안나지만.
    대학 입학했으면 좀 놀리시지..
    그래서 한자에 학을 떼었어요 ㅎㅎ

  2. jongheuk님 블로그는 처음 와보는데 재미난 글들이 많군요. 진작 알려주시지.
    사실 이 포스팅의 전체적인 흐름과는 상관 없는 얘긴지 모르겠지만, 역사와 관련 없는 공부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jongheuk님이 경제학을 하면서 오히려 역사에 관심이 더 커지게 되었다면, 그건 결국 모든 것이 맞물려 나온 필연적인(?) 결과라 여겨지네요. :)

    • (지금 보니 본의 아니게 한 문장에 쉼표가 쓸 데 없이 많아진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 한국어가 가면 갈 수록 어버버 수준으로 낮아지고 있어요. 영어는 더 심한데 큰 일.)

    • 반갑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한국어 실력이 갈수록 감퇴하고 있어요. 역시 언어는 많이 써야 발달하는 것 같습니다. 전 오래전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구요, 결국 그쪽으로 돌아갈 것 같다는 느낌을 요즘들어 더 강하게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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