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le: iPad

오늘 킨들을 팔고 아이패드를 샀다. 한시간안에 이 모든 일들이..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는 하얀색 박스가.. -_- 읽어야 할 논문을 모두 프린트해 철하는 건 아직도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 킨들은 페이지 전환이 빠르지 않고 PDF 문서에 대한 지원이 완벽하지 않다는 불편함이 더해져 아이패드에 도전해 보게 됐다.

1. 큰 아이팟터치 맞다. 하지만 “큰” 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에 이 특징을 잘 활용한 앱들을 이용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큰 화면에 걸맞는 이미지 해상도가 아주 좋기 때문에 사진이나 비디오를 감상하기에는 그저 그만. 높은 이미지 퀄리티를 이용한 앱들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

2. 가독성은 생각보다 떨어진다. 킨들로 논문을 읽다가 아이패드에 옮겨서 일어 보니 확실히 눈에 잘 안들어 온다. 하지만 가독성을 포기하고 빠른 페이지 전환과 PDF 하일라잇/노트 기능을 택했는데 이쪽이 더 나은 것 같다.

3. 웹브라우징도 좋다. 전혀 불편함을 못느끼는 정도. 아이패드에서 사파리를 통해 워드프레스를 열면 황홀경이 펼쳐진다.

4. 아이패드는 생산이 아닌 소비를 위한 기기다. 철저하게 소비를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아이패드를 통해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하지만, 소비는 그렇지 않다. 침대나 편한 의자에 비스듬하게 앉아 이것 저것 하면서 가지고 놀기에는 딱이다. 하지만 중요한 문서를 만들거나 하다 못해 웹상에서 그림이나 음악을 가지고 편집을 하려면 굉장히 불편하다. 타블렛의 정의를 바꿔버린 느낌이다.

5. 결국 이 애매한 포지셔닝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게끔 만들었고, 신시장을 개척한 프론티어가 아직도 성능이 넘버원이라는 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스티브 잡스를 보면 컬럼버스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지 않은 길을 무리해서라도 가고 거기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내는 데에는 천재적인 감각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애플은 앱스토어를 창조하고 관리하는 운영적인 측면에서 더 주목을 받아야 하지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6. 애플 스토어에서는 물건을 사서 나가는 사람에게 “고맙다” 가 아니라 “축하한다” 라고 하더라. 나도 애플 제품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게 축하받을 일인가 싶었다. 소비가 미덕인 사회, 맞는 것 같다.

7. 오늘 스토어에서 나를 상대해준 여자는 마침 경제학원론을 들었던 political science 학생 -_- 덕분에 경제학과 정치학에 대한 대화를 물건이 오는 동안 나눌 수 있었다. 별로 하고 싶진 않았지만..

8. 넷북을 사려고 고민하는 사람에겐 그냥 타블렛을, 아니 아이패드를 사라고 권하고 싶다.

9. 아직 아이패드를 위한 앱들이 많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네이버 웹툰이나 페이스북같은거..

Bon Iver: Bon Iver

음악이나 학문이나 비슷한 점이 한가지 있다면, 그 것은 어떤 경지 이상을 보여주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일종의 특징같은 것이다. 즉 uniqueness 와 creativity, contribution to the body, 그리고 leading to the new frontier 같은 것들말이다. 이런 것들이 잔뜩 담겨져 있는 음악, 혹은 논문이나 책을 접하게 되면 일종의 흥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심장이 뛰고 입에서는 탄성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런 가벼운 흥분상태는 늘 즐겁고 기쁘다. Bon Iver 의 새 앨범은 매일 매일 쏟아져 나오는 음악들 가운데 보석과도 같은 ‘발견’ 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앨범이다.

Bon Iver, 혹은 Justin Vernon 에게 장소, location, 의 의미는 각별하다. 그는 위스컨신의 작은 도시 Eau Claire 라는 곳에서 거의 평생을 보냈다. 대학도 그 곳에 있는 위스컨신 대학교 캠퍼스를 나왔는데, 그가 유일하게 그곳을 벗어나 있던 때는 대학 졸업 후 자신이 만든 음악을 가지고 노스 캐롤라이나의 Raleigh 로 떠났을 때이다. 그 곳에서 그는 도박과 술에 찌든 생활을 보냈고, 결과적으로 실패한 그의 첫번째 음악 여정은 아버지가 살던 작은 오두막집에서 두번째 여정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 곳에서 그는 아버지를 도와 나무를 베어 나르는 일따위를 하며 소일했고, 그곳에서 탄생한 음악들이 그의 첫번째 앨범 <For Emma, Forever Ago> 에 실리게 된다. 첫번째 앨범은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았고, 그는 여전히 Eau Claire 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번 그의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의 짧은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바로 Kanye West 의 초대를 받아 하와이로 날라간 것이다. West 는 그의 새앨범 작업에 Vernon 을 초대했고, 자신의 고향과 완전히 다른 화려한 세계가 가득한 그곳에서 Vernon 은 다시 한번 큰 변화를 겪었던 것 같다. 이렇게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West 와의 공동작업 이후 위스컨신으로 돌아와 완성한 두번째 앨범, <Bon Iver, Bon Iver> 에서 느껴지는 변화의 폭이 범상치 않기 때문이다.

2009년 즈음 Bon Iver 의 공연을 학교 앞의 작은 공연장에서 본 적이 있다. 당시 멤버는 Vernon 을 포함해 단 세명이었고, 2m 가까운 거구였던 Vernon 은 통기타와 일렉기타를 번갈아 잡으며 단촐한 구성의 조용한 무대를 선보였다. 그의 음악은 아주 드라이하지만, 결코 차갑지 않은 야릇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고, 그 공기가 공연장 전체로 퍼짐을 느낄 수 있었다. 2011년 다시 만난 Bon Iver 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는 이제 족히 열명은 됨직한 밴드 멤버들을 이끌고 공연을 한다. 포크 음악의 단순한 악기 구성에서 벗어나 드럼만 무려 두개, 각종 관악기와 현악기까지 동원한 화려한 구성을 선보인다. 단순히 이런 형식적인 변화가 전부는 아니다. Bon Iver 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이 앨범이  “needing love” 가 아닌 “finding love” 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마치 친한 친구의 여자친구와 섹스를 하는 그런 이야기” 라고 덧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이 앨범에 실린 열곡의 가사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그의 목소리는 알아 듣기 힘들 정도로 뭉뚱그려져 있다. West 에게 배운 것 같은 오토튠과 보코더같은 이펙트가 잔뜩 걸린 그의 목소리는 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은 어려운 고어들을 전달한다. 가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는 애초에 없었던 것 같다. 다만 곡의 제목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충분히 헤아려 봄직하다. “Perth”, “Minnesota, Wi”, “Calgary”, “Hinnom, Tx” 등 지명에서 유래한 제목들에서 여전히 Vernon 에게 장소가 주는 의미의 각별함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위스컨신에는 Minnesota 라는 지명이 없고 (그의 누이가 미네소타로 이사갔을 뿐이다) 텍사스에도 Hinnom 이라는 지명이 없다는 것이다. (Hinnom 은 버지니아에 있다) 일평생을 한 곳에서만 살아온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지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번 앨범이다.

일렉 기타의 적극적인 사용, 리드미컬한 편곡, 이펙트가 걸린 보컬, 관악기의 참여등은 Bon Iver 가 확장하고자 하는 세로운 사운드스케잎을 실현시켜 주는 도구들이다. 아마 여기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을 것 같다. 기존의 팬들이 느끼는 배신감이랄까, 그런 것도 반드시 있을 것이고. 나는 좋게 보는 쪽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정말 죽여주기 때문이다. 첫곡 “Perth” 에서 부터 휘몰아 치는 드럼과 기타, 관악기의 앙상블은 심장을 뛰게 하기에 충분하고, 매 곡마다 조금씩 흩트린 사랑에 대한 파편들은 마지막곡 “Beth/rest” 에서 하나로 합쳐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첫곡부터 마지막곡까지 숨쉬는 소리조차 아까울 정도로 집중하게 만드는 괴력을 가지고 있는 앨범이다. 이 앨범으로 아마 Bon Iver 는 그 누구의 레퍼런스도 필요치 않은 존재로 거듭난 것 같다. 이건 그냥 “Bon Iver 의 음악” 일 뿐이지, 다른 누군가의 영향으로 탄생한, 등등의 중얼거림은 더이상 소용이 없어진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열었고, 그래서 이 앨범은 “정말 좋은 follow up” 이라는 평가조차 인색하게 느껴진다.

getting better

짧은 시간동안에 정말 많이 좋아지고 있다. 역시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약인가 보다. 음악이 큰 힘이 됐다. 특히 지금 듣고 있는 Bon Iver 의 새앨범이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나는 잘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L 님과 주고 받은 문자 내용에서 나의 생각이 크게 틀리진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좋아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 사람을 좋아하는 나의 상태와 내 마음가짐이 훨씬 더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을 ‘찾는’ 것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더 멋지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내 자신의 마음과 행동이 더 맞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더 노력해야 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계속 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에 대한 기대는 점점 적어진다. 예전에는 뭐도 있어야 하고 뭐도 좋아해야 하고 이런 것들이 되게 많았다. 몸도 말라야 하고 관절도 가늘어야 하고 코도 둥그래야 하고 이마도 이뻐야 하고 다르덴 형제나 허우샤오시엔의 영화도 좋아해야 하고 음악을 들을 줄 알아야 하고 스포츠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이해해야 하고 운동도 좋아해야 하고 어른들에게 잘해야 하고 한국말을 할줄 알아야 하고 등등등등등… 그런게 점점 없어진다. 지금은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말들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만 하면 되는 것 같다. 사실 이게 제일 힘든데, 이것만큼은 포기하지 못하겠다.

그것을 제대로 해주지 않은 그 사람에 대한 원망은 전혀 없다. 그건 그냥 그거였을 뿐이다. it is what it is. we didn’t have enough time to get along with, and we just agreed with the fact that we were not going to get together for the deeper investigation on each other to find out the right direction of our minds unless I decided not to leave Korea. she was really right in the determination on what the real fact was at the point and what she could do for our relationship. she had her own direction of moving forward, and she did really good job to accomplish her purpose. I could not guarantee the two years left for the shortest come back to the nation, in terms of our minds settled down on each other, and also of what we could do for the secured relationship. As Neon Bunny said in her song, “Long-D”, the physical distance is just what I can get by a day, but it is more than that. She was not confident in a management of our future relationship as well as in an effort to overcome the lack of memory that we did make together while I was near to her. I don’t regret, I am not angry with anyone, anything and anywhere, I don’t wanna forget or remove anything in my memory, but now I wanna just thank for the time that I spent with her, even though it was really short. Actually it was pretty long time, about seven years as friends, but as a different relationship we have passed three years. The only positive alternative on my card deck is to come back to the real friendship, removing any of “inappropriate” mind set, and smile at her after coming back to the country where I was born. I CAN do it, without any more serious pain that has caused some headache for a long time, if I can do find some good music and books. She may be ready for the change of the relationship and waiting for it. I was pretty much happy when she said “you are more than the usual friends I have, but I couldn’t find any serious emotion toward you that make us a relationship.” It meant that I could be an important personnel to her, and be remembered as a person like that. So I was happy. And that happiness is the maximum one that I can have. This reality will not depress me anymore, hopefully. I will try to rebound, and come back, and get PH.D. Good conclusion.

어머니와 아버지

1.
아버지는 내가 한자를 익히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셨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우는 수준 이상의 한자를 배우지 못하게 하셨다. 당시 신문에 나오는 한자 수준 정도만 알면 된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한자 – 와 중국어 – 를 포기하고 살았다. 외고에 진학할 무렵, 아버지는 중국어과에 진학하고 싶은 나를 다시 한번 저지하셨는데,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목소리를 높여 싸웠던 때 같다. 대학에 진학할 때에는 큰 충돌은 없었다. 다만 아버지는 사시 공부를 해 법조인이 되길 바라셨고 나는 경제학과에 진학하고 싶어 했는데, 이건 결국 내 뜻대로 되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바라는 모습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대학 생활에서 글쓰는 것에 대한 흥미를 발견하면서 언론사쪽으로 가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을 넌지시 건네셨지만 그리 심각한 수준의 대화는 아니었다. 다만 아버지는 내가 하지 말았으면 싶은 것은 분명히 있으셨던 것 같다. 한자를 배우지 못하게 막은 것이나 중국어과에 진학하는 것을 막은 것, 이 모두가 당신과 같은 길을 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대학에 진학할 무렵 아버지와 내가 동의했던 건 인문 계열은 쓰지 말자는 거였다. 아버지는 (당연히) 아들이 인문 계열로 가면 사학을 전공하려고 할 것이고, 그렇다면 필히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싶어 할테니 그걸 막고 싶어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시 구조주의에 빠져 있던 터라 국문학을 전공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었는데, 국문학을 전공한 후 직업 선택을 할 때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아예 다른 전공을 택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결정해야 할 당시 나는 이미 아버지가 사학, 혹은 중국과 관련된 것을 나와 연결시키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인생을 아버지의 뜻에 반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선택하려고 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래서 나는 서울과 하동집에 있는 수많은 서적들을 그냥 멀뚱히 바라볼 뿐 읽을 수는 없다. 마치 집안에 다이아몬드가 한가득 있는데 그것이 보석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바보 거지와 같다. 나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중국어를 할 수 있거나 최소한 한자를 읽는데에 무리가 없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일종의 문맹인 셈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나의 사학 공부를 반대했던 이유는 그저 졸업 후 먹고 살기 힘들다는, 간단한 이유였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사학을 가야 할 길로 삼고 공부를 계속했다면, 결국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공부를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분야에 속한 지금이 그나마 조금은 더 자유롭게 느껴진다.

2.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한평생을 사셨다. 어머니는 공부하는 남편 뒷바라지하는 것을 가장 큰 의무요 행복으로 알고 사셨다. 이번 서울 방문에서 어머니가 하신 말씀들중 가장 인상깊었던 건 당신은 자식들보다 남편에게 훨씬 더 많은 애정을 쏟았고 신경을 두었노라는 고백이었다. 자식들에게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막는 최소한의 보호와 교육만을 했다면 남편에 대해서는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함께 모든 것을 주었고 항상 남편만을 생각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어머니의 그러한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의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된 입장에서 그러한 부모의 태도를 통해서 배우는 것은 분명히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와 내 누나에게 “이렇게 해라” 라는 직접적인 가르침은 거의 주지 않으셨다. 그분들은 당신들 나름대로의 삶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만 몰두하고 집중하셨는데, 누나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한 부모님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큰 가정교육이 된 셈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책상에 앉아 있는 뒷모습과 마당에서 밭일을 하시는 뒷모습, 딱 두가지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공부하실 때는 집안을 조용히 만들며 당신도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셨고, 아버지가 밭일을 하실 때면 밭일을 거들거나 음식을 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공부를 하실 때면 옆에 앉아 책 읽는 흉내를 냈고, 밭일을 하실 때면 마당에 나가 개구리나 풀잎따위를 가지고 놀았다. 앞에서도 적었지만 부모님은 나에게 직접 말을 거신 적이 별로 없으셨다. “하지 말라” 라는 최소한의 금지 사항만 알려 주셨을 뿐, 무엇을 하라는 적극적인 지시는 거의 없었다. 그런 내게 말을 건 것은 (혹은 내가 말을 것 대상은) 책이었고, 책을 읽는 흉내를 내다가 어느 순간부터 정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중학교 3년동안 많은 책을 읽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이건 전적으로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따라하는 습관을 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3.
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든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공부를 할 수 있고, 또 잘 할 수 있다.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경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공부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출발할 당시의 배경은 거의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곤 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부모의 직업과 부모와 함께 살았던 환경이 나로 하여금 공부를 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부모에게 물려 받은 재능을 이용해 글 쓰는 법과 글 읽는 법을 익혔고, 결국 그 두가지가 지금까지 내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특기’ 가 되었다. 유학을 온 뒤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지면서 과거 내 몸에 배인 읽고 쓰는 습관이 거의 무용지물이 되면서 한동안 힘들었지만, 결국 또 적응해 나갈 것이다. 속도의 문제이긴 하지만. 나도 사춘기 시절 부모님을 미워한 적이 있다. 성인이 되어서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마도 스물 한살 무렵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부터 나는 부모님과 점점 닮아 가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수 없고, 또 부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의 부모님은 참 매력적인 구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닮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지만, 멀어지고 지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장 무난하게 생각하는 길을 가게 됐다. 한때 아버지는 내게 글쓰는 재주를 살려 언론사쪽에 가볼 생각이 없냐고 넌지시 물어 보셨는데 그리 심각한 대화는 아니었다. 나는 한국의 언론들을 혐오하는 쪽에 속했고 일종의 권력기관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아버지도 그에 동의하며 대화는 일단락됐다. 그 후 내가 택한 건 “유학이 아니라 공부” 였다. 유학은 일종의 방법론의 문제였다. 그제서야 경제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돈이 꽤 드는 것이라는 걸 실감하고 약간 후회하긴 했다. 놀랍게도 부모님은 유학을 떠날 당시부터 단 한번도 돈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전적으로 지원해 주고 계신다. 만약 내가 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더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4.
재밌는 건 지금 내가 다음 학기에 쓰려고 생각하는 두번째 논문의 주제가 역사와 약간 관련이 있다는 거다. Classical Gold Standard era 에서 주요 국가 중앙은행들의 cooperation 에 대한 자료를 수집중인데 요즘 드는 생각은 아무리 피하려고 노력해도 돌고 돌아 결국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되는구나 하는, 일종의 운명론에 가까운 어떤 것이다. 역사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머릿속에 떠오르는 주제들은 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금융 정책, 춘추전국시대 각국의 무역과 전쟁의 상관 관계같은.. 음.

5.
어제 미국에 돌아온 후 처음으로 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 마무리지을 시점이 되자 어머니는 내게,

“그래, 이제 한두시간 책좀 더 보다가 너무 늦지 않게 자라.”

라고 말씀하셨다. 전화를 끊은 시간은 밤 열한시쯤. 우리 가족에게 밤 열한시는 “책을 한두시간 더 읽어야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시간쯤으로 인식되었나 보다. 아들과 전화를 마치며 무심코 인사말로 하신 말씀이 그런 식이다. 어머니는 그런 환경에서 반평생을 사셨다. 어제 전화를 끊고 문득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끼치는 나쁜 영향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본질적인 건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 소득 감소에 기반하고 있다. 즉 경제 주체는 물가 상승률보다 더 높은 수익률이 기대되는 상품에 투자를 하게끔 강요받고, 더 높은 수익률은 더 높은 리스크를 동반한다. 즉 경제 전반에 걸쳐 불안정성이 확대되는 것이다. 낮은 인플레이션하에서 안정적인 예금이나 채권에 투자하던 사람들은 이제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실질 소득이 감소하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펀드나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 만약 한 국가 수준에서 통제 불가능한 외부 충격에 의해 물가가 상승했다면 (예를 들어 미국의 양적 완화로 인한 전세계적인 유동성 과잉 현상같은) 최소한 국가 단위에서는 이러한 외부 충격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내 놓아야 한다.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이것은 대출을 받는 입장에서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의 이중고에 시달릴 수 있으므로 최적화된 정책은 아니다. 그리고 최소한 공공 서비스 요금을 기습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나쁜 정책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있다. 물가 상승을 부추기며 가격이 인상되는 공공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며 그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중하위 계층에 대한 차별적인 정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역진세 개념이다.  또 하나, 퇴근 시간을 앞당겨 소비 가능 시간을 늘리자는 정책은 참으로 비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억지로 소비를 하게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일종의 애완동물이나 기계 정도 수준으로 취급한다는 저급한 철학에 근거하고 있다.

산책

 

요즘 저녁을 먹고 우체통에도 들릴겸 가볍게 아파트 단지를 산책한다. 이 곳에서 산지 10개월이 넘었음에도 아직 이 아파트 단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설렁 설렁 걸어 다니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아이를 가진 유학생 부부부터 – 아마도 부모 몰래 – 동거하는 젊은 동양인 학생들, 학교의 운동선수들.. 나같이 혼자 사는 사람들도 많고.

아직 한국에서 가져온 사람들의 온기가 채 식지 않았기 때문에 외롭다거나 쓸쓸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37세의 독고진은 “버리는 게 있어야 지킬 수도 있” 다고 말했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그조차 무언가를 얻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이 존재함을 알고 있는 것이다. 독고진보다 조금 덜 유명한 나는 아마도 조금 더 많은 지식과 미래의 조금 더 나은 직장을 위해 오늘 저녁 함께 아파트 주변을 거닐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상대를 포기한 것 같다.

이곳은 저녁공기, 밤공기가 참 좋다. 몸이 끈적거리지도 않는다. 누군가와 꼭 붙어 있어도 꽤 좋을 거라는 말이다.

근황.

1. 시차는 대충 적응되어 가는 것 처럼 느껴진다. 어제는 열시에 자서 새벽 세시에 한번 깨고 다시 잠들어서 새벽 다섯시에 완전히 일어 났다. 계속 이정도 리듬만 가져가 줘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의도적이지 않게 아침형 인간으로 일주일째 생활하고 있는데, 하루가 무척 길어진 느낌이 들어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늘도 아침에 간단한 청소, 냉장고 정리, 도시락 싸기, 홍차 내리기, 아침 식사까지 마무리하고 집을 나섰는데도 시간은 일곱시를 겨우 넘어서고 있었다.

 

2. 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한 선배의 환송회가 있었다. 대학교 선배이기도 한 그 사람은 4년만에 졸업하고 한국에 있는 연구소에 직장을 얻었다. 쁘띠거니의 수족이 된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본인이 정한 길이니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부양 가족이 많아서 더이상 오래 공부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여러가지 좋은 말들을 많이 들었다. 결론은 한가롭게 보낼 시간따위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 마침 간 곳이 한국 식당이었는데 고기를 굽더라. 나는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3. 이어폰을 새로 샀다. 커널형을 예전부터 한번 써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200불이 약간 되지 않는, 중간쯤 되는 레벨의 모델을 하나 골랐다. 어제는 계속 밖에 있었는데, 아마존 어플로 추적한 결과 저녁 여섯시쯤 집에 도착 완료. 하지만 나는 2. 에서 말한 회식때문에 밤 열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네시간여동안 얼마나 몸이 달았는지.. 아마존은 트래킹하면서 기다리는 맛이 쏠쏠하다. 이어폰은 오늘 아침에서야 처음으로 사용해 보고 있다. 생각보다 작고 귀여운 녀석이다. 귀에 쏙 들어가는 느낌은 좋은데 귀에 물이 들어갔을 때처럼 무언가를 먹을 때나 이빨을 부딪힐 때의 느낌이 썩 좋지는 않다. 커널형이 다 그런건가 보다 하고 있다. 3년동안 나와 함께 했던 뱅엔 올룹슨 이어폰은 서랍 깊숙한 곳에 고이 모셔 두었다. 그동안 나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 주어서 너무 너무 고맙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더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 고마움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 이어폰만큼 내 맘에 쏙 드는 것도 없었다. 소리도 아주 좋았고, 귀에 걸치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이어폰은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받은 것이고, 그 이어폰을 계속 쓴다는 행위가 나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척 컸기 때문에, 이제 더이상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

4. 그렇다고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열심히 하루 하루 넘기는 달력을 사용하고 있고, 쿠션도 잘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의 흔적을 지운다고 해서 쉽게 잊을 수 있거나 정리되는 건 아니다. 또한 억지로 잊고 싶지도 않고, 지우고 싶지도 않으며, 미워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나와 상관없이 원래 좋은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일 것이다. 그걸 억지로 부정하거나 외면하려는 시도는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5. 이제 편지 한장만 받으면, 대충 마음속에 있었던 부채는 정리될 수도 있을 것 같다.

6. 시차에 적응함과 동시에 생활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 왔다. 아침에 학교로 가서 저녁에 돌아오는 일상을 다시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아직 딴짓을 더 많이 한다. 소설책도 읽고 친구와 수다도 떤다. 논문은 아직 읽지 않고 있고, 그래서 당연히 내 논문도 아직 열어 보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여러가지 책을 읽고 있다. 글자부터 눈에 익숙해 져야 뭐라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다. 그래서 책상앞에 더 오래 달라 붙어 있어야 한다.

7. 며칠전 농구를 하다가 다리에 쥐가 났는데, 운이 없게도 양쪽 다리에 동시에 쥐가 나 버렸다. 덕분에 코트위에서 한동안 누워서 일어나지 못했다. 몸이 늙어서 그런지 이제 좀처럼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걸을 때마다 통증이 와서 운동은 며칠동안 쉬고 있다. 빨리 뛰고 싶다. 농구공을 만지고 싶다. 로잉도 하고 싶고. 운동을 할 때가 그나마 조금 더 행복한 것 같다.

8. 오마하 여행은 결국 포기. 시카고까지 가는 비행기값이 엄청 비싸서 -_- 역시 비행기는 몇달 전에 미리 알아 봐야 하나 보다. 그래서 개강 바로 전 약간의 여유가 허락될 때 알아 보니까 시카고행 비행기가 $200 도 안하더라. 고민중이다. 사려면 지금 사야 하는데. 동부는 겨울에 반드시 갈테다.

9. 일주일째 채식을 시도하고 있는데 느낌은 과히 나쁘지 않다. 아직 지식이 전무한 상태라 인터넷으로 이것 저것 알아보며 서툴게나마 배워 나가고 있다. 초심자를 위한 책이 한권쯤 있었으면 좋겠는데, 오늘이나 내일쯤 책식 전문 매장에 가서 물어볼 참이다.

10. 그래서 그런지 살도 쑥쑥 빠지고 있다. 세끼를 다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고 요리도 왠만하면 직접 해서 먹는 중인데 운동때문인지 채식때문인지 부족한 수면 탓인지 몸이 무거운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11. 머리를 다시 길러볼 생각이다. 이유는 그냥.. 삭발도 좋고 단정한 짧은 머리도 좋은데 난 사람들에게 핀잔 (=욕) 들어가며 머리 길렀던 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12. 크롬이 내 허락도 없이 멋대로 한글 버전으로 스스로를 바꿔 버렸다. 그리고 자꾸 튕긴다. 잘 열리지도 않고. 그래서 파이어폭스로 돌아 왔다. 새로운 버전을 깔았는데 깔끔해 진 것 같긴 하다. 여전히 크롬보다 느리지만.

13. 세상엔 좋은 음악이 너무 많다.

14. 좋은 영화도 많다.

15. 좋은 사람도 많은데, 그 사람들을 다 만나고 싶진 않다.

16. 농구하고 싶다.

17. 참, 윔블던이 시작한다.

18. 난 좋은 공연 티켓 몇장을 구입했다.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 도도스, 브라이트 아이즈. 후자는 사실 별로 안땡기는데 스캇이 가자고 해서.. 기분 전환 겸.

19. 참, 한달 뒤에 플릿 폭시스 공연이 있다.

20. 이곳에서의 관계들도 대충 정리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 가 꼭 ‘마무리’ 를 뜻하지는 않는다. 조금 더 명확한 관계를 서로에게 인식시키자는 그정도 의도.

The Antlers: Burst Apart

데뷔 앨범 <Hospice> 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뉴욕 브루클린 출신 트리오 The Antlers 가  Frenchkiss 에서 발매한 첫번째 스튜디오 정규 앨범이다. 아마도 플릿 폭시스의 소포모어 앨범과 더불어 근래 가장 많은 기대와 주목을 받은 신보가 아닌가 싶다. The Antlers 는 이번 앨범에서 모든 작곡과 프로듀싱을 공동으로 해내고 있지만 실질적인 밴드의 브레인은가사를 전담하는 Peter Silberman 이다. 그는 이미 나머지 두 멤버를 만나기 전 <Hospice>를 완성시켰다. 이번 앨범은 전작처럼 하나의 통일된 주제를 가지는 건 아니다. 조금 더 다양한 주제를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표현해 내고 있는데, 이건 밴드의 역량과 스펙트럼을 조금 더 확장시켜 보겠다는 시도로 읽힌다. 눈에 띄는 변화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적극적인 도입이다. 마치 <OK Computer> 이후 발매된 <Kid A> 를 연상시키는데, Mo’wax 레이블 사운드를 떠올리게 한다는 피치포크의 지적도 흥미롭게 들린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들의 전자음악에 대한 새로운 시도는 약간 핀트가 어긋나 보이기도 한다. 곡들간의 편차가 심한 편인데, 느낌이 좋지 않은 곡들은 대부분 새로운 변화속에 나온 것들이다. “Parentheses” 와 “Every Night My Teeth Are Falling Out” 은 전작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사운드스케잎을 과감하게 시도하지만 뭔가 어색하고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오히려 전작의 구슬프고 아련한 느낌을 잘 살린 “I Don’t Want Love” 나 “Hounds” 를 개인적인  베스트 트랙으로 뽑고 싶다. 그래도 이들의 시도가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Corsicana” 같은 경우에는 Silberman 특유의 감성적인 보컬과 앰비언트적인 사운드메이킹이 잘 맞아 떨어진 좋은 곡이다. 확실히 이들은 비트감을 살리기 보다는 이렇게 정적인 일렉트로닉을 하는 편이 더 나은 것도 같고.. 아무튼 앤틀러스는 여전히 좋은 음악을 하고 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울림” 을 전문적인 용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들은 청자로 하여금 감정적인 hype 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the moment” 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것을 잘 만들어 낼 줄도 안다. Silberman 은 여전히 슬퍼 보인다. 가사는 처연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라인도 무언가 눈물을 머금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소포모어 앨범을 통해 앤틀러스는 “눈물 계열” 음악들 중 자신들이 단연 앞서나간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Omaha trip

친구들이 이번 주말에 Omaha 에 놀러 가자고 제의를 해 왔다. 뜬금없이 왜 오마하냐 했더니 지난 주말부터 College World Series 가 열리고 있는데 자기네 학교들이 진출했단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그 두학교가 맞붙는다고. 오마하가 나쁜 도시도 아니고 운전하면 여덟시간밖에 안걸리니까 겸사 겸사 가자는 거다. 그래서 생각중인데, 그럼 아예 동쪽으로 운전해서 가는 김에 오마하에서 여덟시간 더 운전해서 시카고까지 찍고 올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이 무척 험난하겠지만, 정 안될 것 같으면 친구 차로 오마하까지 간다음 그 다음에는 비행기로 이동하는 것도 방법이다. 방학 내내 집-오피스 만 반복할 생각하니까 약간 답답해지는데, 본격적으로 바쁘기 전에 한바탕 휙 돌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고민중이다.

tUnE-yArDs: Who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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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싱어송라이터이자 퍼커셔니스트, 우크렐레 플레이어인 Merrill Garbus 의 솔로 프로젝트인 Tune-yards 의 두번째 앨범이다. Garbus 는 2006년부터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고 하는데, 전형적인 로 파이 뮤지션답게 자신이 만든 웹사이트를 통해 음원을 공개하는 식으로 인지도를 쌓아 나갔고 그 결과 며칠만에 $1000 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결국 Dirty Projectors 의 오프닝 밴드로 함께 투어를 돌기 시작했고 4AD 와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데뷔를 하기에 이른다. Tune-yards 의 음악은 굉장한 그루브가 가장 먼저 느껴진다. 각종 퍼커션 악기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그녀는 꿈틀거리는 펑키리듬과 아프로 리듬위에 아주 독특한 음색의 목소리로 청자를 잡아 먹을 듯이 달려 온다.  그 매력을 거부하기 힘들 정도다. 무엇보다 음악이 재미있고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 이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이번 앨범은 베이시스트인 Nate Brenner 가 참여한 첫번째 앨범인데, 피치포크는 Brenner 의 참여가 데뷔 앨범과 두번째 앨범의 질적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피치포크에 따르면 Brenner 의 작곡 스타일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재지하고 멜로딕하며 팝적인 접근이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그의 영향력이 Garbus 의 작곡/편곡 과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나는 데뷔앨범을 들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통통 튀는 멜로디라인이 매력적인 것을 사실이다. 이 앨범에서 그녀는 ‘violence’ 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폭력과 억압, 섹슈얼리티와 같은 주제를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그 표현에 있어서의 방법이 대담하고 적극적이다. 예를 들어 “Riotriot” 같은 곡에서 그녀는 자신의 남자 형제를 체포한 경찰에게서 느끼는 섹슈얼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빈민층의 입장에서 느끼는 제도적 장치의 억압성을 잔뜩 비틀어 드러내는 방식이 흥미롭다. 벌써부터 올해의 앨범 운운하며 여러 매체에서 극찬을 받고 있는데, 최소한 피치포크의 연말 결산 랭킹에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