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

샤워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생각을 많이 얻는 편이다. (하지만 결코 샤워를 즐기지는 않는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미지근한 물을 맞다 보면 그 자체로도 피로가 풀리기도 하고, 새로운 자극이 되어 “아하! 그게 그거였구나” 하고 깨닫기도 한다. 그래서 샤워를 길게 하는 편이다. 그냥 가만히 서서 쏟아지는 물을 맞는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그동안 내 삶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집약적으로 만나다 보면 머릿속이 복잡해 진다.  나는 1년동안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완전히 고정된 루틴한 일상을 하루 하루 소화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쉽게 침범당하지 않는 삶을 살아 왔다. 비록 내 머릿속은 매일 매일 터질듯이 복잡했고 마음속은 편한 날이 단 하루도 없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육체적 생활은 극도로 안정되고 조용하게 보냈고, 또 그래야만 했다. 이곳, 서울에서의 생활은 많이 다르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 싸여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고, 때문에 개인적인 공간과 시간은 거의 확보할 수 없다. 보통 식사 한끼를 약속의 단위로 삼는 요즘 사람들의 특성에 맞게 나 역시 거의 대부분의 점심과 저녁을 밖에서 해결하고 있으며, 때로는 서울 밖으로 나가 일정을 소화하기도 한다. 길위에서 혹은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거의 대부분이라 조용히 나 자신과 대화할 시간적인 여유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 편이다. 가끔 타인들과의 약속이 없을 때에는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인지 요즘 샤워할 때 유독 생각이 더 많아 지는 것 같다. 논문 생각은 억지로 하지 않고 있고 미국에서 해야할 일들따위는 끄집어낼 의지조차 없는 상태이지만, 이제 며칠 남지 않은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하나 하나, 차근 차근 정리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음을 화장실에서 가장 먼저 깨닫게 된 듯 하다. 오늘은 과연 내가 어디까지 모험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어제 후배의 청첩장을 받는 자리에서 동기 녀석이 나에게 한 말이 계속 맴돌았다.

“그것 역시 그가 받아 들여야 할 부분이다. 왜 그것까지 니가 생각해야 하니?”

나는 어디까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서 행동해야 할 것인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선택일 수 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우스워질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지나치면 평생 후회할, 그런 성질이 것일 수도 있다. 머릿속이 매우 혼란스러웠고, 뛰는 가슴은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독고진이 차고 다니는 그거.. 가지고 싶더라)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지금 이 나이, 이 시점, 이 위치에서 내가 다시 한번 모험을 할 수 있을까? 한다면, 상대방의 입장은 어디까지 생각해야 하는 걸까. 더이상 어린 아이도 아닌데. 이제 나의 삶의 방향이 거의 결정되어 가고 있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인생의 갈림길을 비틀어 버린다면, 이건 멍청한 짓일까. 아니면, 조금 더 재미있어 지는 것 뿐일까.

요즘 너무 행복하고 좋은 시간을, 너무나 좋은 사람들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참 행복하고 평화로운데, 그 안에 눈썹을 지긋이 누르게 되는 고민이 있다. 그게 좀 무겁다.

2 thoughts on “샤워

    • 네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루에도 마음이 열두번씩 변하는데 그걸 다잡는 게 우선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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