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준비.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사람을 만나서 어울려 놀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에너지를 얻는 사람. 그에 반해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쓰는 사람이 있다. 피하고 싶은 만남이 아닐지라도 사람을 상대하는 것 자체에서 피곤함을 느끼고 혼자 지내는 시간속에서 에너지를 다시 채우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 그나마 덜 불편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나처럼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좋다. 내 에너지가 빨아 들여지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이기도 하고, 그 사람의 에너지를 내가 갉아 먹고 있다는 느낌이 덜해서 이기도 하다.

한국에 와서 3주동안 참 많은 이들을 만났다. 이번 방문의 목표는 간단하고 단호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자. 그렇지 않은 만남을 억지로 가진다는 것은 큰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목표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을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단 1분의 시간도 소홀함이 없이 대하려고 애썼다. 이야기에 집중하고, 대화 도중에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나를 만나는 상대방도 만남이 조금 더 절실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를 만나는 상대와 나 사이에는 “다음에 보자” 라는 그 흔한 인사말이 없었다. 우리는 아마도 다음에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조금 더 최선을 다해 대화를 나눠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편이 더 단순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렇게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단기간에 집중해서 쓰다 보니 슬슬 방전이 되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자극적인 한국 음식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나의 속때문에 오늘 탈이 났고, 몸 상태가 많이 안좋아 졌으며, 그래서 약속을 취소했다. 이제 더이상의 약속은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집에서 가족들과 조용히 돌아갈 준비를 하고 싶다. 최소한 비행기를 타는 날에는 몸상태가 괜찮아야 한다.

지난 3주간의 기억은 지하철을 타고, 거리를 걷고, 무언가를 먹으며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쉴새 없이 대화를 주고 받은 것 뿐이다. 어쩌면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그게 전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도 한편밖에 보지 못했고, 음악은 아예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시와의 공연이 더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돌아갈 시간이 몸으로 느껴지는 요즈음에는 책도 눈에 잘 들어 오지 않는다. 나는 무언가를 읽거나, 듣거나, 보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어야 한다. 눈 앞에서 살아 숨쉬는 사람이 아닌,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다른 것들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로부터 자의반 타의반으로 차단당한 요즈음에는 새로운 에너지를 다시 찾아 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무언가를 써보려고 한다. 아주 긴 글이 될 것 같다. 일종의 편지일 수도 있고, 편지가 아닐 수도 있다. 이걸 누군가에게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은 일주일동안 나는 사람들을 되도록 만나지 않고 아주 긴 글 한편을 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컴퓨터를 끄고 줄이 없는 하얀색 종이위에 무언가를 써볼 참이다. 완성이 되지 않으면 그것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 직업적인 글쓰기, 전문적인 글쓰기가 아닌, 내가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 생활을 정리하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미국에는 나에게 익숙한 생활과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100% 컨트롤할 수 있는 루틴한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아침 여덟시에 일어나 아홉시까지 학교를 가고, 열두시에 샐러드를 먹고, 다섯시에 성당에 가고, 여섯시에 마켓에 들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생활. 가끔 공부가 더 하고 싶다면 새벽 한두시까지 학교에 있다가 아무도 없는 캠퍼스의 차가운 공기를 가로질러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음악과 함께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정형화된 일상속에서 머릿속은 조금 더 자유로워 지고, 글자들은 조금 더 익숙한 속도로 찾아올 것이며, 숨쉬는 것도 조금은 더 편해질 것이다. 한국에 있는 것도 좋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다. 작년까지는 한국에 있는 것이 더 좋았다. 떠날땐 무척 아쉬웠다. 내년부터는 아마도 미국에서의 생활을 더 좋아하게 될 것이다. 지금이 그 중간 지점에 있는, 아주 미묘한 지점이다. 그곳에는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도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준비는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하는 것보다는 훨씬 복잡한 감정을 가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글을 쓰면서 한번 풀어보려고 노력할 참이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시와의 공연

시와가 “작은 씨” 를 불렀을 때 나는 손가락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눈썹 역시 살짝 떨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앨범속의 그녀는 작은 숨소리 하나, 기타줄 옮기는 소리 하나까지 귀기울이도록 만들었다.  늦은밤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청솔모 움직이는 소리외에는 모두가 침묵을 지키던 그 시간 그 길에서 헤드폰을 통해 들리던 이 노래는 비어있음이 꽉차있음보다 더 배부를 수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The XX 보다 더!) 공연장에서 이 노래를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참 감격스럽다고 해야 하나, 이 이상의 격조높은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녀는 관객들과 하나 하나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불렀고, 덕분에 나는 나도 그녀와 눈을 맞췄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었다. 공연장 밖에서 들리는 소음, 의자 덜컥 거리는 소리, 그리고 그녀의 호흡을 듣기 위해 침삼키는 소리마저 수줍게 느껴졌던 관객들의 표정까지. 공연장에서 접한 “작은 씨” 는 앨범보다 약간 더 풍요로웠고, 약간 더 사랑스러웠다. 나는 이제 한국에서 더이상의 무언가를 더 바라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이정도면 딱 적당하지 않을까 싶은 그 정도의 행복감이 아직도 남아 있다.

영상은 같은 장소에서 지난 2월에 했던 공연 영상.

누구


I have no ability to make myself look better than I really am. But I can say who I really am. This is also the one and only way to show how I think who you are and what we are interested in commonly. I am not a natural born speaker or writer, but I know how to try to make the real thing exactly equal to what I produce. Most important word at this point is “try”, not “pray” or “shy”.

샤워

샤워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생각을 많이 얻는 편이다. (하지만 결코 샤워를 즐기지는 않는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미지근한 물을 맞다 보면 그 자체로도 피로가 풀리기도 하고, 새로운 자극이 되어 “아하! 그게 그거였구나” 하고 깨닫기도 한다. 그래서 샤워를 길게 하는 편이다. 그냥 가만히 서서 쏟아지는 물을 맞는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그동안 내 삶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집약적으로 만나다 보면 머릿속이 복잡해 진다.  나는 1년동안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완전히 고정된 루틴한 일상을 하루 하루 소화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쉽게 침범당하지 않는 삶을 살아 왔다. 비록 내 머릿속은 매일 매일 터질듯이 복잡했고 마음속은 편한 날이 단 하루도 없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육체적 생활은 극도로 안정되고 조용하게 보냈고, 또 그래야만 했다. 이곳, 서울에서의 생활은 많이 다르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 싸여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고, 때문에 개인적인 공간과 시간은 거의 확보할 수 없다. 보통 식사 한끼를 약속의 단위로 삼는 요즘 사람들의 특성에 맞게 나 역시 거의 대부분의 점심과 저녁을 밖에서 해결하고 있으며, 때로는 서울 밖으로 나가 일정을 소화하기도 한다. 길위에서 혹은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거의 대부분이라 조용히 나 자신과 대화할 시간적인 여유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 편이다. 가끔 타인들과의 약속이 없을 때에는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인지 요즘 샤워할 때 유독 생각이 더 많아 지는 것 같다. 논문 생각은 억지로 하지 않고 있고 미국에서 해야할 일들따위는 끄집어낼 의지조차 없는 상태이지만, 이제 며칠 남지 않은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하나 하나, 차근 차근 정리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음을 화장실에서 가장 먼저 깨닫게 된 듯 하다. 오늘은 과연 내가 어디까지 모험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어제 후배의 청첩장을 받는 자리에서 동기 녀석이 나에게 한 말이 계속 맴돌았다.

“그것 역시 그가 받아 들여야 할 부분이다. 왜 그것까지 니가 생각해야 하니?”

나는 어디까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서 행동해야 할 것인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선택일 수 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우스워질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지나치면 평생 후회할, 그런 성질이 것일 수도 있다. 머릿속이 매우 혼란스러웠고, 뛰는 가슴은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독고진이 차고 다니는 그거.. 가지고 싶더라)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지금 이 나이, 이 시점, 이 위치에서 내가 다시 한번 모험을 할 수 있을까? 한다면, 상대방의 입장은 어디까지 생각해야 하는 걸까. 더이상 어린 아이도 아닌데. 이제 나의 삶의 방향이 거의 결정되어 가고 있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인생의 갈림길을 비틀어 버린다면, 이건 멍청한 짓일까. 아니면, 조금 더 재미있어 지는 것 뿐일까.

요즘 너무 행복하고 좋은 시간을, 너무나 좋은 사람들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참 행복하고 평화로운데, 그 안에 눈썹을 지긋이 누르게 되는 고민이 있다. 그게 좀 무겁다.

Kazuo Ishiguro: Nocturnes

다섯개의 이야기가 수록된 중,단편집이다. <Never Let Me Go> 에 이어 두번째로 읽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정갈한 문체위에 각기 다른 다섯 – 혹은 다섯 이상의 – 뮤지션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황혼의 이혼을 앞둔 한 늙은 뮤지션이 최선을 다해 이제 곧 작별할 아내를 위해 불러줄 세레나데을 도와주는 이름없는 악사, 친구 커플의 다툼을 화해시키려는 한 친구, 볼품없이 변해가는 뮤지션 지망생에게 어느날 느닷없이 찾아온 늙은 여행객 뮤지션 부부, 성형수술을 해서라도 뜨고 싶은 연주가, 그리고 젊은 첼리스트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 주는 멘토. 다섯개의 짤막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음악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정상에서 내려오거나 정상을 아직 밟아 보지 않은, 우리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을 약간은 쓸쓸한 사람들이라는 것 정도다. 한가지 억지로 더 꼽아 보자면 유럽에서의 삶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것 정도? 각각의 이야기는 완전히 독립적이기도 하고, 특정 인물에 의해 희미하게나마 연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처럼 앞뒤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지는 지적 긴장감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느슨하고 가쁘지 않은 호흡으로 잔잔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극적인 장치는 별로 없다. 그저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이 음악과 조우해 어떻게 좌절하고 또 어떤 식으로 희망을 되찾아 가는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Never Let Me Go> 와 같은 사회를 꿰뚫어 보는 통찰보다는, 은근 슬쩍 드러나는 흐뭇한 미소 수준의 유머와 그 뒤에 찾아오는 씁쓸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나의 현재를 되돌아 보게 하는 거울처럼 다가온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읽기 시작해 한국에 도착한 후 틈틈이 마저 읽어 내려갔다. 한국에서는 지하철도 너무 빠르고 사람들과의 약속도 촘촘히 박혀 있어서 진득이 앉아 페이지를 넘길 여유가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 책장이 잘 넘어 가지 않으면 은근히 초조함을 느끼는 편인데, 이 책의 마지막 챕터가 그랬다. 비록 두번째 소설이긴 하지만, 이시구로의 책은 다 읽고 난 후 마음이 풍성해 지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의 간결하지만 완벽에 가까운 문장들이 좋다. 덧붙여, 이 책은 한국에서의 처음 열흘동안 내 마음이 무척 어지러울때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는데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지금도 그리 편치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아 지고 있는 중이다.

오오모리 미카: 수영장

어제 점심과 저녁 약속 사이에 시간이 남았다. 서울역 부근에서 점심 약속이 있었고 코엑스에서 저녁 약속이 있으니 대충 네시간 정도의 자유 시간이 허락된 셈이다. 일단 무작정 스폰지 하우스로 가보기로 했다. 최근 개봉하는 영화들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고, 남는 시간동안 영화를 보기로 마음 먹었으니 최대한 믿음직스러운 극장을 택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스폰지 하우스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몇몇 극장들중 당시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포스터에서 읽을 수 있는 정보들, 예컨데 일본 영화구나, <카모메 식당> 과 관련이 있구나, 카세 료가 나오는구나, 정도만 알고 표를 끊었다.  사실 무척 졸립고 피곤한 상태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를 기다리면서 카페에서 책을 펴놓고 꾸벅꾸벅 졸았을 정도로 몸이 무척 피곤했다. 영화는 또 어찌나 침착하고 천천히 흘러가는지. 그 흔한 배경음악조차 한번 나오지 않은채 묵묵히 제 갈길을 걸어갔다. 그래서 영화 초반에 약간 졸았는데, 다행히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흔히 말하는 줄거리가 없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일본에서 타이로 여행을 온 사요라는 젊은 여자의 타이 여행담이다. 그곳에는 몇년전 할머니와 자신을 남겨둔채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홀연히 떠나간 엄마가 살고 있다. 사요의 엄마 쿄코는 그런 사람이다. 홀로 남을 딸을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본인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그녀는 타이에서 기쿠코라는 다른 일본 여성과 함께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는 어머니를 잃어 버린 타이 고아 비이와 허드렛일을 도와주며 함께 생활하는 이치오라는 일본 청년이 있다. 사요는 이 일종의 ‘대안 가족’ 과 며칠을 함께 생활한다. 그리고 타이를 떠난다.

영화의 주인공은 사요나 쿄코가 아닌, 게스트 하우스의 뒤뜰에 있는 수영장이다. 한치의 흔들림도, 더러움도 없이 가만히 침묵을 지키는 이 자그마한 수영장은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아무도 이 수영장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며 놀지 않는다. 그 흔한 찰랑거림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평평하고 투명한 커다란 유리판을 보는 듯 한 정갈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게스트 하우스안의 모두가 수영장에서 안식을 찾고, 평화를 갈구하며, 희망을 날려 보낸다. 사요가 엄마를 이해했을까? 그녀는 쿄코와 단둘이 남은 식사 자리에서 그동안 쌓여왔던 울분을 토해 내지만, 그것에 대한 어떠한 답을 듣지 못한다. 아니, 답을 기다리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병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는 기쿠코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신비로운 여자이며 그 누구보다 평화롭고 안정적이다. 이치오와 비이는 늘 기다리는 비이의 친모가 오지 않아도 건강하고 행복하다. 수영장의 물처럼 고요하고 안정적인 게스트 하우스안에서 그 누구도 불행하지 않다. 사요도 일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안에서 그런 마음을 많이 얻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 3년의 공백.

내가 서울을 떠난지 3년이 됐다. 그곳에서 1년중 약 11개월을 머물고 여름 방학이 시작하면 한달 정도 서울로 돌아와 시간을 보냈다. 1년에 한달이라는 시간은 빠듯한 1,2주의 방문보다는 조금 여유있지만 그렇다고 이곳에서 ‘생활’ 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지인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하기에는 적절한 수준의 기간이다. 하지만, ‘생활’ 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그 한달동안 이곳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거나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아 만나도 일회성에 그칠 수 밖에 없고, 오랜만에 만난 오래된 지인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도 없다. 그저 과거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서 추억하고 그러 소비할 뿐이다. 생산은 안되고 소비만 가능한 one sided economy 같은, 되게 weired 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금방 지친다. 피로해 진다. 한달동안 어머니밥을 많이 먹고 새로운 기운도 많이 받지만, 그저 소비되는 시간만을 보낸다는 생각에 정신적으로 채워지는 느낌은 전혀 없다.

한국에 와서 처음 며칠은 가족들에 둘러싸여 지냈다. 차라리 이편이 낫다. 가족은 포기할 수 없는 존재일 뿐더러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중 하나로 남아 있을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떤 조건에서든지 나를 반겨 주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 누나의 결혼이라는 큰 경사를 함께 하면서 내가 얻은 것은 결국 내 뒤에 끝까지 남아 있을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사실이다.

월요일부터 비로소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우선은 쉬고 싶었고,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며 씨네21을 보고 싶었다. 이 소원은 지금까지 꾸준하게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난 후 빈둥거리다 보면 어머니께서 아침을 차려 주신다. 각종 나물과 무침, 굴비와 곰국따위가 나오는 푸짐한 아침상. 점심이나 저녁을 주로 바깥에서 지인들을 만나며 해결할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아침을 더 신경써서 차려 주시는 것 같다. 그래서 벌써 2kg 이나 쪘다. 체중 조절은 당분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저절로 알아서 원래 체중으로 돌아갈 것임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월요일에는 A 를 만났다. 그의 얼굴에서나 나의 얼굴에서 문득 세월의 흔적들이 스쳐 지나감을 느꼈다. 너무 동안이고 또 절대 늙지 않을 것 같았던 그의 얼굴에 고단함이 느껴졌다. 주름살같은 육체적인 변화는 거의 발견할 수 없었지만, 그의 표정과 눈빛, 말투에서 그런 것들을 느꼈다. 이건 내가 요즘 거울을 보면서도 느끼는 것들이다.

화요일에는 Y 를 만났다. 그는 여전히 내게 관심이 없다.

수요일에는 부모님을 도와 누나의 짐을 정리하고 옮기는 일을 했고,

목요일인 오늘 점심에는 A 를 다시 만나 그의 회사 주변에서 식사를 함께 했고, 저녁에는 후배 S 와 H 를  코엑스에서 만났다. 늘 명랑하고 발랄했던 S 는 어느새 회사 생활 3년차에 접어 들었고, 나의 표현에 따르면 “세속적” 이 됐다. 회사 생활하는 젊은 여성들이 가지는 아주 전형적인 사고 방식이 그녀에게도 발견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아쉽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H 는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항상 독립적이고 당당하다. 생각에 있어 잡념이 거의 없으며, 그래서 행동이 항상 굵고 명확하다. 그러한 그의 성품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일은 D 를 만나고,

모레는 HJ 의 웨딩 사진 촬영에 참석한 후 저녁에는 군대 친구들 모임을 위해 수원에 다녀와야 한다.

일요일 점심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누나 내외와 함께 하기로 했고, 그 이후 시간은 아마도 J 가 소개시켜준 한 여성분을 만나러 압구정에 가야할 것이다.

월요일은..

화요일은..

그렇게 하루 하루가 간다. 나는 이곳에 3년동안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내가 지금 만난, 그리고 앞으로 만날 사람들은 과거의 나를 기억할 뿐 현재 그들의 삶에 나를 포함시키지는 않는다. 앞으로 나는 짧으면 2년, 길면 몇년이 더 될지 모르는 시간동안 역시 서울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이들과 나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 아쉽거나 후회스럽지는 않다. 다만, 그렇게 나와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중 결코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게 참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약해질 법도 하지만, 지금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걸어왔던 길의 방향을 갑자기 틀어 버릴 수는 없다. 오늘 S 와 H 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만약 지금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한다 해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제안은 아주 극단적인 것들 뿐이다. 몇년동안 나를 기다리던가, 아니면 나를 따라 함께 미국으로 떠나던가. 미래가 불투명한 대학원생의 이런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일 여자는, 아마 없을 거다.

내가 지금 집중하고 있는 건 딱 세가지다. 사람을 만날 때는 그 사람에 대해서만 생각할 것. 사람을 만나지 않을 때에는 읽는 책에 집중할 것.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시간에는 오로지 ‘그’ 만을 생각할 것.

누나의 결혼식

지난주 토요일, 누나가 결혼을 했다. 나는 그 주 목요일 오후 늦게 서울에 도착했고, 금요일 저녁 매형이 함을 지고 올때 처음으로 그와 인사할 수 있었다. 매형은 선한 인상의 아나운서틱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어색할 법도 한 처가 식구들 틈에서 싹싹하게 굴며 이것저것 신경쓰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 정신없고 바쁜 와중에서도 짜증을 내거나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늘 여유있게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매형은 나와 술을 꼭 한잔 하고 싶어 했는데, 서로 여유가 없다 보니 신혼여행 후에 시간을 따로 잡아 보기로 했다.

결혼식이 있었던 토요일 오후는 다행히 날씨가 매우 좋았다. 서강대 성당은 내가 좋아하는 곳중 하나인데, 예상대로 하객들은 혼배미사에 많이 참석하진 않았다. 하긴 그냥 결혼식도 요새는 잘 안들어 간다고 하니까,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 하는 한시간짜리 미사는 아마 더 꺼려졌을 것이다. 누나는 이뻤다. 의외로 뱃살을 많이 뺀 모습이어서 놀랐고, 신부화장으로 인한 변신 (?)보다는 누나 본연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한번 더 놀랐다. 이뻤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을 봐도 크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결혼에 대한 개념이 아직 많이 추상적이어서 그런 건지, 내가 생각하는 ‘나의’ 결혼은 한국에서의 평범한 그것과 약간 달라서였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많은 친척분들과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인분들을 뵈었다. 나의 친구들도 몇 와서 일을 도와주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지금까지도 집안 곳곳에는 누나가 쓰던 물건들이 남아 있다. 어제는 누나를 제외한 세 가족이 힘을 합쳐 누나가 쓰던 방을 정리하고 그 곳에 있던 물건들을 차에 실어 신혼집으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옷과 가방등 가져가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아마도 그녀를 떠나 보낸 우리 셋보다는, 자신이 몇년동안 스스럼없이 드나들던 이 집에 ‘방문’ 을 해야 하는 누나 본인의 기분이 더 묘할 것 같다. 우리는 예전과 다름없이 이곳에서 수다를 떨고 커피를 마시고 밥을 지어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신혼여행에서 돌아올 누나는 완전히 새로운 집과 환경에서 남편과 단둘이서 새로운 한 가정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워낙 추진력이 좋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 별 걱정은 되지 않는다.

신혼여행은 푸켓으로 갔다고 들었다. 돈을 아끼느라 여러곳을 경유해서 가는 비행기편을 고른 모양인데, 새벽녘에 서울을 출발한 후 열시간만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미련한 양반같으니라구..

지금 나는 누나가 쓰던 방 (그리고 지금은 손님 응접실로 바뀐 방) 을 쓰고 있다. 이제 몇주 후 나도 미국으로 돌아가고 없으면, 부모님은 조금은 더 허전해 하실까.

050911

아침 일곱시에 일어났다. 시험 기간에 밤중 차를 몰고 가다가 난생 처음으로 경찰에게 잡힌 적이 있었다. 내가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었다. 차의 오른쪽 헤드라이트가 갑자기 나가서 수리를 요한다는 경고를 주려고 세운 것이었다. 떨리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경찰이 요구하는 운전면허증과 자동차 등록증, 그리고 보험 카드를 꺼내서 보여주려는데 어라, 보험 카드를 깜빡하고 차에 넣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 친절한 경찰은 내게 재판에 참석하라는 티켓을 끊어 주었고, 나는 한국에서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약식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편지가 한통 왔는데, 티켓 발부 당시 커버가 되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음을 증명하면 본 사건을 기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행중 다행. 아침에 일어난 이유는 이것때문이었다.

아홉시쯤 볼더 재판소에 들어갔고, 아홉시 10분쯤 나왔다. 보험 카드를 복사해 철하는 것으로 모든 절차가 끝났다.  DMV 에서 자동차 등록하는 것보다 몇십배는 쉽고 간단했다. 가슴을 쓸어 내렸다. 보험 카드를 차안에 넣고 다녀야 한다는 생각은 정말 매번 했는데, 설마 내가 그것을 까먹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대단한 실수였고, 그에 대한 따끔한 질책을 받은 셈이었다. 다음부터는 절대 실수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학교로 가서 두가지 일을 처리했다. 하나는 국제학생 담당 오피스에서 I-20 에 싸인을 받는 것.  이 싸인이 있어야 다시 미국으로 들어올 수 있다. I-20 에는 싸인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세줄이 있는데, 나도 이번에 싸인을 받음으로써 세줄을 다 채웠다. 아마 다음에 한국에 나갈 일이 있을 때에는 (이제 졸업전까지 없을 것 같지만..) 새로운 I-20 를 발급받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누나와 매형에게 줄 선물을 사는 것이었다. 장고끝에 악수둔다고, 나는 결국 학교 티셔츠를 커플룩으로 선물해 주기로 했다. 우리 학교의 대표색은 실버 & 골드지만 대부분의 학교 셔츠에 개나리색 노랑이 들어간다. 나는 – 당연히 – 노란색 티셔츠를 골랐다. 신혼여행에서 입고 인증샷을 찍어 올리라고 말할 계획이다.

시간이 많이 걸릴 줄 알았던 일들이 의외로 간단히 끝나 모든 일을 마쳤을 때에는 채 열한시도 되지 않았다. 덴버를 다녀오기로 했다. 덴버에 있는 Twist & Shout 라는 레코드샵에 가서 씨디를 몇장 집어 오기로 했다. 날씨가 너무 좋았고, 걱정했던 일들도 다 잘 마무리되어 기분이 한껏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아케이드 파이어의 노래를 들으며 순식간에 덴버에 도착했다. 덴버에 처음 나갈 때에는 마치 서울에서 대전가는 거리만큼 느껴졌는데, 요즘에는 그냥 휙하면 도착하는 정도의 거리로 느껴진다. 더 빨리 달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주차할 곳을 못찾아 레코드샵 주위를 몇바퀴 돈 뒤에야 겨우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운전자로서의 내가 가진 시그네쳐 무브라고 할 수 있는데 -_-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부터 또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차를 세운 곳은 레코드샵 옆의 로컬 서점. 보더스나 반스 엔 노블이 아닌 대형 로컬 서점은 처음이었는데 분위기가 그럴싸했다. 책들도 오히려 브랜드 서점들보다 더 많은 것 같고, 정리도 더 가지런하게 잘 되어 있었다. 책을 구경하기 위해 덴버까지 나올 일은 없겠지만, 씨디를 사기 위해 이 레코드샵에 들렀을 때 한번쯤 들려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레코드샵에서 앨범들 구경하는 건 항상 재밌다. 시간가는 줄 모른다. 게다가 이 가게는 이쁜 티셔츠도 많이 판다. 조이 디비전 티셔츠를 살까 말까 많이 고민했는데, 결국 또 한번 참기로 했다. 고심끝에 세장의 씨디를 집어 들어 계산했다. 총 38불. 오프라인에서 사는 것 치곤 그리 나쁘지 않다. 다만 여기도 수입반은 가격이 많이 비싼편이다. 놀랍게도 매닉 스트릿 프리쳐스의 앨범은 20불정도다. 돌아오는 길에 양초를 하나 더 샀다. 선물용으로. 계산대앞에서 기다리다가 힐끗 옆을 보니 꽤 이쁜 팔찌가 50% 세일중이었다. 그것도 냉큼 집어 들었다. 그가 팔찌차는 것을 좋아하는지를 기억해 내기 위해 노력한 건 그 다음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라면을 끓여 후루룩 먹고는 금새 낮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후 일을 마치고 돌아와 아무런 부담없이 잘 수 있는 하루가 나에게 일년에 며칠이나 주어질까. 오늘은 그중 하루였다. 날씨는 금빛같았고, 창문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가운데 나는 아주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일어 났을 때는 목이 칼칼했다 -_- 다시 한번 잠을 잘 때에는 문을 닫고 자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평일 미사에 갔다가 저녁식사 초대를 해주신 김교수님댁에 가는 버스에 타니 J 선배가 타고 있었다. 선배는 내일 아침 출발한다. 나보다 하루 일찍 한국에 간다. 선배는 3년만의 한국행이다. 하나뿐인 여동생이 수녀원에 들어가셨고, 부모님은 조금 더 늙으셨을 것이다. 선배가 등뒤에 지고 있는 짐은 나보다 훨씬 무겁다. 그는 이제 잡마켓에 나갈 것이고, 한국에서 부모님을 모시며 사는 것을 원하고 있다. 부디 모든 일이 잘 풀릴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전에 이번 한국 여행이 부디 그녀에게 좋은 기억만을 남기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김교수님댁이 어디에 있는지 잊어 버려 버스를 잘못 내렸고, 덕분에 한참을 걸어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왜냐하면 내일 해야할 공부가 없으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할 일도 없으니까! 다시 한번 이런 하루가 내게 일년에 며칠이나 주어지는지 생각해 봤다. 많지 않았다. 그만큼 소중한 하루였다. 기억되어야만 하는 하루였다.

식사는 교수님댁 내외분과 아들 승재, 그리고 동기 S 와 그녀의 남편까지 총 여섯명이 함께 했다. 교수님댁 아들 승재는 또 많이 컸다. 이젠 옷을 선물해 주려고 해도 얼마나 자랐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고 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 는 최근 임신을 했고, 그래서인지 대화는 아이를 키우는 학자 부부의 피곤함에 대한 충고와 예비 교육쪽으로 흘러갔다. S의 남편분은 영국에서 성장하셨는데 그래서 영국 유머에 대한 프라이드가 대단하셨다. 언제 한번 접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대체 얼마나 웃기길래.. S 는 학업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의 출산과 테뉴어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의 육아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컸다. 그리고 김교수님 내외분은 그녀의 걱정이 얼마나 현실적인지에 대한 조언을 해주셨다. 나에게도 멀지 않은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심히 들었다. 지난번 노라와의 커뮤니케이션 이후 아기와의 관계맺음에 있어 훨씬 안정적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승재역시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특히 놀라웠던 건 노라와 승재 모두 아이폰에 대한 흥미가 굉장히 높고 적응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점이다. 노라는 가르쳐주자마자 바로 아이폰의 터치와 슬라이드 기능을 이해했고, 승재 역시 아직 손가락 조절 기능이 미숙해 직접 하지는 못했지만 손가락으로 화면을 움직여 사진을 넘긴다는 기본 개념을 바로 이해했다. 스티브 잡스를 다시 한번 찬양하며..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결혼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더라. 열한시가 넘어서야 잠시 잠들었던 승재가 깨어나 울면서 비로소 김교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썬더와 그리즐리스의 3차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의 결과를 알 수 있었고, 5월 초에도 히터를 틀어주는 학교 아파트측의 친절함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감기약을 하나 삼키고 내일 싸야할 짐들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내일은 짐을 싸고, 키를 넘겨준 후, 잠시 쉬었다가 새벽에 일어나 공항으로 향한다. 꿈에 그리던 한국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