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과 서민

정치권에서 툭하면 나오는 구호가 “우리는 서민을 사랑해요” “우리는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가지고 있어요” 같은 문구들이다. 이런 문구들이 한나라당에까지 보편화된 이유로는 재정학에서 흔히 등장하는 median voter theorem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현 민주주의 체제하에서의 투표 규칙을 따르다 보면 양극단을 점점 피하게 되고 중위투표자의 의사에 의해 승자가 결정된다는 이론인데, 이 이론에 따르면 극단적인 정치 구호 – 극좌나 극우 – 를 가급적 피하고 중도적인 정책에 대한 선전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투표자들은 자신이 한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중간의 어디쯤에 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산층” 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서 발표한 중산층의 정의에 따르면 연봉이 8,000 이상은 되어야 중산층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 연봉 8,000만원 이상인 사람은 전체 인구의 약 3.1% 라고 하는데, (정확하지 않다. 아마 이보다는 좀 많을 듯) 그렇다면 이건  더이상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는 계급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중산층의 정의는 마르크스 이론까지 타고 올라가야 가능하다.  고전적인 맑시즘에 따르면 中産層 은 유산계급과 무산계급 사이에 위치한 중간 계층을 지칭한다. 프롤레타리아와는 달리 사유재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자본가는 아닌 계층, 요즘말로 하면 화이트칼라쯤 될까? 맑시즘에 따르면 이들 역시 프롤레타리아에 포함되는데,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본가 계층에게 노동력을 공급해야만 잉여를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는 케인즈 이후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심화와 노동조합의 발달에서 현대적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굵직한 국책사업들이 실행되고 자본가들의 덩치가 커지면서 노동계급과 자본계급 사이에 갈등이 심화됐고, 자본계급이 노동조합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 이 두 계급 사이에 중간자적인 위치의 새로운 계급을 탄생시키고 육성시킨 것이 바로 오늘날의화이트칼라, 즉 중산층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막기 위해 극단적인 갈등을 줄여주며 완충 작용을 해주는 존재로 가치를 인정받아 온 것이 이 중산층 계급이다. 사유재산의 축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노동자 계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본자 계급으로의 신분 상승또한 쉽지 않은, 적당한 수준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면서 예술적, 문화적 영역에서의 소비 수준은 노동자 계급을 능가하는 계층이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런 원초적인 기원들을 따지고 들어가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지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월급쟁이들을 어느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약간 애매해진다.

왜냐하면 “서민” 에 대한 정의는 따로 없기 때문이다. 서민은 모든 일반 국민을 지칭하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볼때 천민층 바로 위에 위치했던 상인층이 성장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수입 수준이나 사유 재산의 축적 유무로는 오늘날 판단을 내리기 힘든 측면이 있거니와, 현대처럼 직업의 분화가 극단적으로 심화된 세상에서 노동의 종류로 분류를 해내기도 쉽지 않다. 결국 뭉뚱그려서 중산층이 서민이라는 더 큰 카테고리에 포함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서민” 에 속한다는 것을 그리 달갑게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왠지 이 단어에서 느껴지는 뉘앙스가 그리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생각할 때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조금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공장에 나가는 노동자, 혹은 고졸 출신 노동자가대졸 출신 대기업 회사원과 중매를 통해 결혼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사회학 이론중에 social distance 라는 것이 있다. 막말로 내가 부암동에 산다고 해도 바로옆 청와대에 사는 대통령과 길에서 마주치거나 커피를 한잔 할 확률은 제로에 수렴한다. 사회적 계층에 따라 접촉할 확률과 그들만의 그룹을 형성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결국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모두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 그들이 얼마나 이 계급에 대해 알고 있는지는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어쩌면 이들은 중산층 혹은 서민의 정의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않고 마구 말들을 뱉고 있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자본가 계급 출신이기 때문이다.  social distance 이론에 따르면 현직 국회의원중 실제 서민 생활을 체험해 본 사람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현 민주주의 제도하에서는 자본의 힘이 국회의원 당선 확률과도 관계가 깊다. 결국 특정 소수 계층에서 육성된 인원들이 전체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본질적인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혁명인가? ㅎㅎ

i’m falling in love

친구들끼리 함께 하는 작은 이스터 파티에 갔다. C 가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 K 는 미혼모다. 이 파티에 K 도 함께 왔는데, Norah 라는 귀여운 아가씨가 따라 왔다. 미국에서의 파티는 작은 접시와 술잔 하나 들고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사람들과 수다 떠는 것이 전부. 오늘 모임은 친한 대학원 사람들끼리의 파티였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었지만, 늘 파티에 초대받을 때마다 대화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적지 않게 받는다. 마치 박정현이 한국 생황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인터뷰였다고 답했던 것처럼, 나도 일방적인 스피치나 격식에 맞게 정해진 대화는 괜찮지만 파티처럼 인포멀하게 루즈한 대화를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부담을 많이 가지는 편이다.

하여, 조용히 노라가 시청하고 있는 “니모” 를 함께 보기로 했다. 마침 사람들이 돌아가며 노라를 봐주고 있었던 지라 내가 자진해서 노라와 놀아주겠다고 하고선 기회를 놓쳐 보지 못한 니모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다음주 2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노라와의 대화는 순조로웠다. 내가 딱히 알아 듣지 못하는 부분도 없었고, 노라도 나의 느리고 또박또박한 발음을 놓치지 않는 듯 보였다. 이미 니모를 열번은 더 본 노라는 나에게 줄거리를 이야기해주기 위해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었을 지도 의문이지만..) 노력했고, 나 역시 노라가 흥미로워 할 부분은 직접 연기와 재롱을 겸하여 최대한 표현하려 애썼다. 그리고 노라는 아이폰 사용법을 5분만에 익히는 재능을 보여줬고, 우리는 어느새 서먹함을 뒤로 한채 가까워 지기 시작했다.

노라가 잠시 잠옷으로 갈아 입으러 간 사이 혼자 니모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밖에서 “my jong, my jong” 하는 소리가 들려서 거실로 나가보니 노라가 쪼르륵 나를 향해 달려 오며 다시 니모에 집중해 보자는 의사를 강력히 표현했다. 결국 우리는 엔딩을 보았고, 노라는 여느 미국인이 그러하듯 쿨한 모습으로, 붙잡고 우는 기색은 전혀 없이, 활짝 웃으며 작별인사를 한 후 어머니의 품에 안겨 사라졌다.

우리의 짧은 데이트는 그렇게 해서 끝이 났다.


but I miss her!

선생님

뜬금없이 국민학교 시절 (그렇다, 난 초등학교란 곳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선생님들이 생각났다.

6학년때 담임 선생님은 키도 크시고 인물도 출중하신 미중년의 지적인 분이셨는데, 어느날인가 한번은 전교 회의에 갔다가 다른 아이들이 다 떠나고 난 후 조금 늦게 가방을 챙기러 교실에 들렀다. 그곳에는 이미 퇴근하신 줄 알았던 선생님과 학부모 어머니 열댓분이 앉아 계셨다. 그분들도 내가 이미 학교를 떠난 줄 알고 약간 당황하시는 기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어 가방만 챙겨 서둘러 빠져 나왔는데, 그곳에는 나의 어머니도 계셨다. 먼 훗날 어머니께 들은 바로는 그 자리가 어머니들끼리 돈을 모아 선생님께 전달하는, 일종의 촌지 전달이 행해지던 자리였던 것이다. 선생님께서 먼저 요구하신 건 아니고 당시 박봉에 시달리던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정기적으로 보태 쓰시라고 전달하던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요새도 그런 문화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 말을 듣고 촌지에 대한 생각도 약간은 바뀌게 됐다. 촌지는 무조건 교사가 학부모에게 강요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방향이 반대가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이후 처음으로 하게 됐다. 학교를 다닐 당시 나는 당연하게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지만, 아마 우리 어머니도 국민학교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꽤 많은 시간 교무실에 들락날락거리셔야 했을 것이다. 당신의 말씀으로는 다른 어머니들에 비해 “신경을 확실히 덜 썼다” 라고 하시지만, 그것도 결국 정도의 차이일 뿐일테니..

나도 아마 나중에 자식을 낳아 기르게 된다면 분명히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나의 어머니와 같은 선택을 하겠지.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는 시간이 나는 대로 예전 선생님들을 찾아 뵙고 싶어졌다. 특히 국민학교 5,6학년때 담임 선생님과 중학교 1,3학년 담임 선생님은 지금 어떻게 지내시나 많이 궁금하다. 지금까지도 국민학교 1학년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의 담임 선생님들의 성함과 얼굴, 그리고 중요한 기억들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참 꽤나 학교-오리엔티드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Easter vigil

오늘 부활 전야 미사에 다녀옴으로써 성삼일 전례가 모두 끝났다.  오늘 미사는 무려 세시간반이 소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인데,  여기선 가능하다. 올해 부활절에 느끼는 기분은 작년과 또 다르다. 작년은 그 전년도와 또 많이 달랐고, 내년에는 또 다른 감정과 생각들이 찾아오겠지.

종교에 대해서는 유연한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삶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 개인이 어떤 종교를 선택하고 어느 정도의 가치를 그 종교에 두는 지의 문제는 타인에 의해 강요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때문에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전교 활동에 대해서도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믿는 종교가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를 지닌다는 신념을 가지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그 종교의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 사회내에서 실현시키고자 하는 행위는 그래서 굉장히 어리석고 가치없는 짓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그저 종교일 뿐이다. 기도문을 외운다고, 십자가앞에 엎드려서 울부짓는다고 뭔가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미래의 뭔가를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 기도하는 것도 웃기고,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믿는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것도 우습다. 종교를 가지고 믿음을 가지는 것을 현실, 혹은 현실 너머의 그 어딘가에서어질 어떤 ‘대가’ 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종교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한 데에서 나온 결과이다.

종교가 현시대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그런, 이성적으로 불가해한 어떤 추상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에의 집착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렇게 겹겹이 둘러 싸여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종교가 사실은 굉장히 깊은 역사적, 문학적, 그리고 철학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인류는 그들의 역사를 시작함과 동시에 종교를 가지기 시작했고, 그것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것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근원, 뿌리에 다다르면 종교가 있고, 종교는 그 자체로 인간 역사의 모든 차원을 담아낸 유전자 지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종교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현재와 과거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종교들 가운데서 현대에 큰 위치를 인정받는 몇몇 종교들, 예를 들어 불교라던가 이슬람, 가톨릭, 개신교등을 이해한다는 건 수많은 부침들속에서 ‘살아 남은’ 인류의 몇몇 지류들이 어떻게 그들의 문화를 지켜 냈는가를 이해하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가만히 들여다 보면 볼수록 그 안에 아름다움이 있고, 인생의 가르침이 있으며, 어쩌면 인생 저 너머에 있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깊은 사유의 흔적들까지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인류의 선조가 아닌 이상, 나보다 먼저 살아온 그 누군가의 도움으로 조금은 더 앞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 수많은 도움들 중 종교가 있을 뿐이다. 가장 깊은 단계의 생각들, 그리고 그 생각들끝에 나온 중요한 교훈들. 무시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가장 쉽게 빠져들기 쉬운 착각은, 자신의 종교는 절대적으로 옳고, 그래서 이 절대적인 종교는 타인들에게도 그 절대적이어야 하며, 자신은 타인들을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인간이 만들었다. 정말 신이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고 해도 신이 현대 종교의 모든 부분에 일일이 관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십일조라던가, 종교 예식의 절차라던가 뭐 이런 것들은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일 뿐이다. 그런 것들이 종교의 본질은 아닐 것인데, 요즘 가만히 보면 마치 그런 것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종교 자체가 유지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그래서 다른 사람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 혹은 종교에 대한 견해가 어떤지에 대해 별 관심도 없고  그것에 대해 별로 대화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그사람만의 일일 따름이니까. 하지만 가끔은,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종교에 대해 약간의 지지라던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바램이 들기도 한다. 나를 이해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채널이 이쪽에 있으니 만약 그래만 준다면 참 좋고 또 고마울 것 같다. 오늘 밤 열두시가 다되어 성당을 나서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The Radio Dept.: Passive Aggresive

 

스웨덴 출신의 슈게이징 밴드 라디오 디파트먼트의 베스트 앨범. 정규 앨범이 총 네장뿐인 밴드에게 두장짜리 베스트 앨범은 언뜻 너무 이른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들이 발표한 다수의 EP 와 또 양질의 B-side 곡들, 여기 저기에서 빛을 발한 비정규 작업들을 합하며 꽤나 근사한 모음집이 나온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초기작들부터 근작까지 정규 앨범의 주요 곡들과 EP 와 기타 작업에서 추린 소중한 곡들이 80분에 빡빡하게 담겨져 있다.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앨범.

The Economist: Who wants to be a triple trillionaire?

이코노미스트지 얘기 나온 김에 하나 더. 링크는 여기. 

이코노미스트지 답지 않게 재미있는 상상력을 동원해 쓴 꼭지다.

요는 이거다. 중국 중앙은행에 쌓여 있는 외환 보유고가 3천억불이 넘는단다. 이 돈으로 중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언뜻 감이 쉽게 오지 않는 규모인데, 친절하게 비교 표를 만들어 대중의 이해를 돕고 있다.

먼저 중국은 이 외환으로 현재 유럽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등의 sovereign debt 를 모두 사들여 유럽발 재정위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혹은, 만약 중국이 구글과의 싸움에서 기분이 상했다거나 미래를 내다보는 중국판 스티즈 잡스가 조언을 해줄 경우 구글, IBM,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을 모두 사들일 수 있다. 이들의 주식 가치를 다 합쳐 봤자 1천억불정도밖에 안된다. 그도 싫다면, 오일머니가 휩쓸고 있는 유럽 축구 시장에 진출해 보는건 어떨까? 포브스지에 따르면 탑50 축구팀의 가치를 모두 합한 가격은 고작 500억불 정도. 중국에겐 껌값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부터 레알 마드리드까지 모든 팀들의 유니폼에 한자 광고를 착용시킬 수 있다. 그도 아니면, 부동산에 투자해 보는 건 어떨까? 맨하탄은 어때, 고작 $232bil 밖에 하지 않는다. 맨하튼을 전부 구입해 땅으로 장사를 해볼 수도 있다. 여기 가장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하나 더 나오는데, 미국의 군사력을 모두 사버리는 거다. 400억 달러가 조금 넘는다. 역시 별거 아니다. 세계 정복이 멀지 않았다.

웃자고 해본 이코노미스트식 유머 기사다. 하지만 기사의 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이 부족한 중국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돈을 썩히겠지 머. 유로로 바꿔치기하는 정도가 다일거야.” 라는 뼈 있는 한마디로 끝을 맺는다.

현재 중국이 가지고 있는 외환 보유고의 상당 부분은 달러와 유로다. 그중에서도 트레져리빌로 이루어진 미국 정부 채권을 다량 소유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중국이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의 주거래 은행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값싼 노동력을 근간으로 한 수출 호조가 net capital outflow 를 촉진시켰고 이게 위안화의 저평가와 어우러지면서 급속도로 외환 보유고가 쌓여 버렸다. 결국 말도 안되는 덩치로 불어나 버려 이젠 처치도 불가능한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씁슬한건 중국의 ‘부’ 를 이끈 원동력은 결국 값싼 노동력이라는 거다. 그리고 이들은 여전히 매우 값어치가 싼 형태로 남아 있다. 인권은 유린당하고 있고, 월급은 여전히 적다. 물가는 치솟고 있다지만 그것도 대도시에 국한된 이야기겠지. 치솟는 물가에 비해 이들 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이 이루어 지고 있나, 하면 “아무도 모른다. 중국 공산당 빼고.” 가 답일 것이다. 결국 마르크스가 현재까지 살아 있었다면, 그는 여전히 자본주의는 몰락할 것이고 노동자에 의한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할 것 같다. 중국을 보면 현실은 너무 부조리하다.

The Economist: Go east, young moneyman

이번주 이코노미스트지에 재미있는 짧은 기사 한토막이 실렸는데,
finance 를 전공으로 택한 영미권의 젊은이들의 첫번째 직장이 뉴욕/런던에서 싱가폴/뭄바이/홍콩으로 점점 옮겨가고 있다는 것.

이유는 크게 세가지 정도. 첫째로 우선 이들 emerging markets 으로의 무게 중심 이동. 예전에는 뉴욕/런던에서 네트워킹을 형성하고 몇년 후 이들 아시아 시장으로 가서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해 본다는 의미가 강했는데, 이젠 아예 본사들조차 이쪽 시장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안전’ 하게 뉴욕/런던에 머물러 있다가 도태되느니 처음부터 조금 낯선 환경에서 잘해서 인정도 받고 성장도 쑥쑥하고 싶다는 이유. 둘째로 제도적인 이유. 영국이 이번에 실시하는 시중 은행들에 대한 감시와 규제는 우려했던 정도로 심각하진 않지만, 여전히 꽤 높은 capital requirement 를 가지고 있고 또 basel 같은 데서 합의되는 내용들도 그리 은행들에게 좋은 환경은 아닐텐데, 아시아의 이머징 국가들의 규제는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라, 세금도 덜 내고 규제도 덜 받는 국가들로 아예 회사의 본사들이 옮겨 가고 싶어하는 형국이라고. 셋째는 역시 환경. 런던에서 출퇴근할 때 쓰는 택시비 한달치면 뭄바이에서 내니나 운전사를 부릴 수 있다고.. 결국 같은 수준의 일을 하고 페이는 훨씬 높은 거니 뭐 해볼만 하다는 거다.

난 홍콩이나 싱가폴은 다른 건 다 모르겠고 왠지 습할 것 같아서 (;) 두렵다. 습한 환경에 질색하는 편이라.. 그래도 취직만 시켜주면 갈 용의가 있음.

아, 이거 파이낸스 가이들 얘기였지. (..) 1학년때 같이 코스웤 듣던 Anil 이라는 인도인 친구는 파이낸스 PHD 받고 나면 연봉이 Econ PHD 의 두배라고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아닐, 우리 친하게 지내자! 이제 5학년으로 잡마켓에 나가 있는 미국인 E 는 하도 취직이 안되서 고생하던 중 중국 북경에 있는 한 대학에서 오퍼가 왔다고 한다. 대학 졸업후 남미에서도 몇년 생활해 본 경험이 있는 친구라 거친(..) 환경에서의 생활이 걱정되지는 않지만, 네이티브 미국인조차 미국에서의 취직이 어렵다는 현실이 참 쓰다. 도대체 나는 왜 이놈의 무한 경쟁속으로 들어와서 이 고생인고. 이제 2년 남았다. 그동안 준비 잘 해서 내가 원하는 직장에 꼭 취직했으면 좋겠다.

참고로 저의 dream job 은 FED Kansas City Denver Branch. ㅎㅎ  머 Paris 에 있는 OECD 도 좋구여. (..)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결어되어 있던 능력들중 하나가 바로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저지른 잘못을 들키고 노출되어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 했다. 더 나아가 어떤 책임자 (선생님이나 어머니) 에게 그 잘못에 대한 꾸지람을 듣는 것을 병적으로 못견뎌 했다. 마치 꿩이 숨기 위해 머리만을 짚더미속에 숨기듯이, 들킬 것이 뻔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나 혼자 침묵을 지키며 제 무덤을 파기 일쑤였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던 것과 연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더이상 완벽하지도 않고 남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던 어떤 순간 이후로, 모든 것이 아주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과는 하등 상관없는 일임에도, 아니 오히려 자존심을 지키는 아주 좋은 방법임에도 마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버리면 자존심ㅇ 큰 상처를 입는 것인마냥 생각했었다. 사과를 하는 것이 마치 구걸을 하는 것처럼 비춰져야 한다는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탓이기도 하다. 땅에 엎드려 내 죄를 용서해 주십쇼, 하는 것이 사과의 전부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하게 지적하고 나아가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어른이 된 후 배운 사과의 다른 방식이다. 이것을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침착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용기다. 용서를 구하는 것은 감정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상대방에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시키는 것을 생각할 따름이다. 굉장히 힘들고 지난한 여정이지만, 나는 아주 점진적으로 이 사과의 방식을 배워 왔다. 목구멍까지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수십번, 마지 못해 형식적으로 중얼거렸던 것이 수백번, 점점 아주 조금씩이지만 상대방에게 내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굉장히 최근의 일이다.

어제 아케이드 파이어의 공연을 보러 갔는데, 아주 작은 트러블이 하나 있었다. 운좋게 스캇과 나는 거의 맨 앞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스탠딩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곳은 아주 빽빽했고, 분위기는 거칠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맥주 두잔을 사가지고 오니 이미 내 자리는 없어졌고, 스캇이 있는 곳까지 가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면서 가는데 뒤에서 갑자기 누가 나를 확 밀치면서 맥주가 조금 흘러 옆에 있던 여자의 손에 닿았다.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내 손을 쳤고 맥주 한잔이 다시 흔들려 앞에 있던 다른 남자의 등에 흘렀다. 여자는 짜증을 내며 나에게 뭐라 뭐라 했고 나는 미안하다, 하지만 뒤에서 누가 밀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라고 답했다. 여자는 시끄럽다, 니가 잘못한 거다, 라고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날 밤 꾼 꿈에서 나는 고등학교 한문 수업시간에  있었고, 부당한 이유로 나를 체벌한 선생님께 조목조목 반박하며 사과를 요구하는 학생이었다. 어제 공연장에서 내가 조금 더 침착했더라면, 나는 그 여자에게 다시 말을 걸어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떤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대화를 청했을 것이다. 감정적으로 격해진 엥글로 섹슨은 무척 상대하기 힘들다. 굉장히 비논리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인종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통해 작은 이슈를 논리적인 범위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연인간에는 이런 문제가 더 빈번하고 더 심각하게 발생한다. 우리는 서로 다투기만 했고 다툼을 슬기롭게 봉합해 나가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친구간에도 마찬가지. 이제 나는 조금 알 것도 같은데, 상대방이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면 약간 조급해 진다.  스스로에게 냉정하고 상대방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라, 라는 말도 있지만 그 가르침이 이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상대방이 잘 못하고 있다면 그것을 기분나쁘지 않게 지적할 수 있는 것도 지혜요 용기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신의 언행이 상대방에게 어떤 식으로 비추어 지고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지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성인이라고 믿는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어린아이에 머물 뿐이다. 최근 몇몇 대화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용기가 부족함을 느꼈다. 상대방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기분나쁘지 않게 지적해 주는 용기, 그리고 지혜. 앞으로 더 키워야 할 부분이다.

J선배의 가르침 1

며칠 전 J 선배와 함께 성당에 가는 길에 내가 한숨을 쉬며 신세 한탄을 하자, J 선배는 담담한 어투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오래도록 간절히 바라면 최소한  그것과 비슷한 건 이루어 지는 것 같지 않니? 원하던 바로 그걸 정확히 이루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비슷하게는 가는 것 같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진짜 그렇다. 100을 바라면 7,80 정도는 이루어 졌던 것 같다. 원하던 그것을 완벽하게 가진 적은 거의 없었지만, 최소한 “방향” 에 있어서는 크게 어긋남이 없는 인생이었다.  최소한 공부와 일에 있어서는 그랬다. 전교 1등을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2등까진 해봤다. 특목고를 가고 싶었는데 가고 싶었던 영어과는 가지 못했지만 어쨌든 가긴 갔다. 연대를 가고 싶었는데 연대는 못가고 같은 신촌에 있는 꽤 괜찮은 학교에 갔다. Summa Cum Laude 를 받고 싶었는데 그건 못 받았지만 Magna Cum Laude 는 받았다. 군대에서도, 좀 특별한 보직을 맡고 싶었는데 정말 조교를 하며 보람차게 보냈다. 어떻게든 유학을 가고 싶었는데 정말 유학을 오게 됐다. 진짜 가고 싶었던 드림 스쿨은 아니었지만 꽤 좋은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고 싶었는데 완벽하진 않지만 금전적인 지원을 끊기지 않고 받고 있다. 넉넉치 않은 집안에 나의 공부가 큰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랬는데 학부때부터 다행히 등록금쪽으로는 부담을 드리지 않고 있다. 제발 중간에 짤려서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않았으면 했는데 다행히 아직 살아 남아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분야의 공부를 하게 되기를 바랬는데 우리 학교에 딱 한분이 그 분야를 하고 계셨다.

모든 것이 행운이었다. 아슬아슬한 확률을 계속해서 통과해 왔다. 지난 몇년을 돌이켜 보면 가슴을 쓸어 내릴 정도로 다행스러운 순간이 많았다. 이렇게 좌충우돌하는 시간을 보내며 여기까지 왔는데, 놀랍게도 아주 오래전 내가 꿈꾸던 생활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를 않다. 앞으로 살아갈 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무사히 졸업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 시간상의 딜레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 졸업을 하게 될 것이고, 미국에서 번듯하고 좋은 직장을 구하기를 원하지만 그건 불가능할지 몰라도 어디에선가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이쪽 바닥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걸출한 논문을 쓰고 싶지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논문 몇편은 이름없는 저널에라도 퍼블리쉬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다가 보면, 그렇게 살다 보면, 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 나를 감싸줄 어떤 사람을 원하고 있지만, 앞으로 몇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꼭 좋은 사람도 만나게 될 것도 같다. 그냥 막연하게 그런 기분이 든다.

J 선배, 고마워요! 덕분에 그때부터 마음이 편해졌어요.

CD life

며칠전 CD 를 구입해서 음악을 듣기로 결심했다. 계기는 단순했다. 알라딘 유에스에서 주문한 가요 씨디 몇장이 도착했는데, 한국에 왔다는 반가움에 더해 씨디를 감싸고 있는 비닐을 뜯고 난후 자켓을 열 때 느껴지는 까끌한 플라스틱 감촉에 오르가즘 비슷한 걸 느꼈다면 오바일까 -_- 그 이후 앨범 속지를 펼 때 나는 공업용 종이 냄새에서 아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컴퓨터 파일이 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오감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감정이 있다. 그걸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렇게 아마존에서 주문한 CD 세장이 오늘 도착했다. 도도스의 새 앨범, 라디오 디파트먼트의 두장짜리 베스트 앨범, 소문이 자자한 니콜라스 자의 데뷔 앨범. 아마존에서 찾아 보니 CD 를 사도 음원을 구입하는 것과 가격에서 별반 차이가 없더라. 나의 무지를 다시 한번 질타했다. 그런데 막상 CD 를 들으려고 하니 플레이시킬 플랫폼이 없는 거다. 그래서 밖으로 뛰쳐 나가 베스트바이로 달려 갔다. (사실 나를 태운 차가 달려줬다) 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은 재고가 없는 상태. 고속도로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또다른 베스트바이가 있다는 생각에 무엇에 홀린 듯이 붕하고 볼더를 빠져 나가 고속도로를 탔다. 참 이상하지. 농구화도 되게 사고 싶었고 엑스 박스도 정말 사고 싶었으며 줌은 꿈에서까지 나올 정도로 사고 싶었는데 다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깟 CD 플레이어 하나를 사고 싶어 저 멀리까지 나가다니. 아무튼 중간에 길을 잃어 버리는 (나란 남자 방향감각따위는 무시하는 시크한 남자) 해프닝끝에 도착한 베스트바이에는 역시 물건이 없었다.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잠깐 그로서리에 들려 반창고를 산 다음 집으로 돌아 왔다. 손가락은 또 왜이렇게 잘 다치는지.. 아 신이 나보고 당분간 돈은 쓰지 말라고 하시는가보다, 싶어 그냥 컴퓨터에 넣고 헤드폰으로 듣기로 했다. 하지만 꼭 마음에 들었던 미니 컴포넌츠는 위시리스트에 고이 보관해 놓았다. 언젠가 돈이 생기면 1순위로 살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