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베가스 감상.

대학원의 7년차 N 의 바첼러 파티 (총각 파티) 에 초대를 받아 N 을 포함한 친구들과 함께 라스 베가스에 짧게 다녀 왔다. 지난주 수요일 밤에 N 의 차를 타고 출발해서 다시 그의 차를 타고 볼더에 돌아온 건 오늘 새벽 다섯시쯤. 볼더에서 라스 베가스까지는 자동차로 열두시간쯤 걸린다. 자동차를 이용한 장거리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힘들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다들 한 운전하는지라 나까지 순번이 돌아오진 않았다. 그냥 뒷자리에서 찌그러져서 졸다가 깨다가 하며 갔다. 예전 유럽여행때 빠리에서 빈까지 완행 열차를 타고 열다섯시간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중간 중간 바깥 바람을 쐬지도 못해서 정말 폐쇄 공포증이 이런 건가, 느끼면서 갔던 나쁜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두세시간마다 한번씩 주유소에 들려 볼일도 보고 군것질도 하고 몸도 한번씩 풀면서 가서 그렇게 많이 심리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다. 허리가 아픈 거야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렇게 도착한 라스 베가스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우리는 목요일 아침에 도착했는데, 짐을 풀기도 전에 한 카지노에 들어가서 스포츠 배팅을 하며 NCAA 농구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 여행의 목표가 전무한 상태였다. 이렇게 말하면 책임회피하는 것 같지만, ‘등떠밀려’ 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우선 친구의 초대가 있었고, 가장 친한 친구 두명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었고, 더불어 K 의 추천까지 있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철저히 친구들의 뒤를 쫓아 다니며 그들이 경험하는 베가스를 공유해 보고 싶었다. 이 도시에 대한 인상은 그 이후에 저절로 생성될 것이었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행 자체에 대한 후회는 별로 없다. 카지노나 농구 경기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 혼자 움직일 수 있는 이동 수단이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피곤한 몸을 끌고 따라다닌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졸린 눈을 비비며 대형 스크린사이로 쏟아지는 수많은 영상들과 – 돈을 가리키는 – 숫자들에 혼미해 하다가 오후 두시쯤 체크인을 하고 여장을 풀 수 있었다.

그리고 사흘 내내, 떠나기 직전까지 같은 일과의 연속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배팅을 하고, 농구 시합을 보고,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고, 밥을 먹다가 술을 마시고, 그러다가 호텔로 돌아가 잠을 청한다.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 다니며 그런 일과들에 때론 동참하기도 하고 때론 관찰만 하며 보냈다. 막판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개별 행동을 하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들과 함께 보내며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지켜 보았다. 떠나기 전날 밤에는 본격적인 총각파티가 펼쳐 졌는데, 뭐 별거 없었다. 그냥 술에 진탕 취해 돌아다니는 여자들에게 함께 사진을 찍어주기를 부탁하고 길거리에서 만나는 모르는 이들과 낄낄거리며 노는 것이 전부였다.

베가스라는 도시는, 도시 전체가 술에 취한듯 비틀거린다. 사람들은 아침 아홉시부터 술을 마시고, 모든 건물내에서 흡연이 허용된다. 거의 모든 곳들이 24시간동안 영업을 하고 그 어떤 건물 내부에도 창문을 찾아볼 수 없다. 큰 싸움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길거리에서 무슨 짓을 하건 경찰의 제지를 받지 않는다. 거의 모든 곳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인들에게 ‘자유’ 란 평소 현실에서 ‘제약’ 당했던 것들에 대한 해방이다. 일과 시간에 술을 먹지 못하고, 도박을 하지 못하고, 여자를 사지 못하고, 밤 늦게까지 돌아다니기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24시간동안 흥청망청 하루를 낭비할 수 있다. 여기에 ‘머리만 잘 쓰면 돈을 잃지 않고 딸수도 있다’ 는 달콤한 유혹이 더해져 돈과 물질을 최고의 성스러운 가치로 탈바꿈시킨다. 구글이 알려준 베가스내 서점은 단 네군데였다. 볼더라는 작은 도시에 서점이 스무개이상 있는 것과 비교된다. 책을 읽으면 바보가 되는 곳이다. 유일하게 잃어야 할 활자는 창녀들의 전화번호 목록, 혹은 배팅의 밸런스를 알려주는 spread 숫자들뿐이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진짜가 없다. 모든 것이 fake 다. 가짜 에펠탑, 가짜 자유의 여신상, 가짜 빠리, 가짜 뉴욕, 그외 거의 모든 것들에 진짜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명목상의 가치만을 나타내는 ‘돈’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행동원리인데, 이 명목상의 가치도 실제로 담고 있는 의미가 거의 없다는 걸 상기한다면 꽤나 그럴 듯한 베가스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소비를 하기 위해 달려 든다. 갬블링과 배팅이라는 행위는 확률에 의해 정해진 “free money” 라는 환상속에  지속적인 소비 패턴만을 부추길 뿐이다. 몬테 카를로에는 도박장만이 있을 뿐이고, 럭셔에는 진짜 파라오 무덤이 없다. 그냥 아주 비싼 돈을 들여 흉내낸 건물들만이 아무런 질서없이 들어서 있을 따름이다. 심지어 벨라지오의 분수쇼조차 조잡해 보였다. 단 한가지 베가스가 가지는 originality 라면 전세계 곳곳에 있는 환락의 도시들이 베가스를 흉내내고 있다는 것 정도. 사막위에 아무런 개연성없이 세워진 이 신기루같은 도시는 아무런 이유도 배경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도시에 방문하는 그 누구에게도 그런 것들에 대해 묻지 않는다. 그냥 와서 즐기고, 놀고, 그러다 돌아가던가 말던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입장처럼 보인다.

이 도시에게 받은 인상들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여성의 성 상품화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카지노에는 속옷만 겨우 입은 여성들이 쉬지 않고 춤을 추고, 돈만 있다면 10미터 이내에서 아무런 제약없이 여자를 살 수 있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한국의 강남역에서처럼 작은 카드를 나누어 주는데, 한국의 “삐끼” 들이 웨이터들의 사진과 이름을 나누어준다면 베가스에서는 창녀들의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를 얻을 수 있다. 나에게는 이렇게 적극적이고 또 아무런 제약없이 이루어지는 여성의 상품화에 대해 별다른 항의없이 받아들이는 여자 방문객들의 태도가 더 충격적이었다. 마치 “여기서 팔리는 여자들과 나는 같은 부류가 아니야” 라는 듯한 입장이었달까. 그러니까 베가스에는 남자, 여자 그리고 “상품으로 전락한 여자” 라는 세가지 종류의 姓 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자유와 평등을 중요시하는 미국에서 이런 일종의 치외법권같은 분위기를 가진 도시가 존재하고 있고, 또 대단히 효율적인 조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되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결론적으로 나는, 베가스에서 몹시 지루했다. 내가 좋아하는 농구 경기를 마음껏 볼 수 있는 건 좋았는데, 나는 그것조차 탐탁치 않게 느껴졌다. March Madness 라고 불리는 미 대학농구 토너먼트는 대학생들의 경기다. 아마츄어리즘의 진수다. 그런데 거기에 사람들은 몇백달러씩 돈을 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단지 승패만이 중요한 실제 경기와는 달리 배팅은 ‘몇점차 승리/패배’, ‘처음 15점 먼저 득점’ 같은 승패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들까지 포함한다. 스포츠의 본질이 사라진, 단지 돈놓고 돈먹기만이 중요한 배팅은 무언가를 굉장히 크게 변질시켰다. 그리고 그게 베가스의 핵심이다. 본질이 없고, 진짜가 없고, 모든 것은 돈의 가치로 환산된다. 나는 그곳에서 몹시 지루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그곳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아마 다음에 누군가가 베가스에 놀러 가자고 하면 정중히 거절할 것 같다. 여행 경비를 전부 지원한다고 해도, 별로 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미국인들은 베가스에 “시간을 낭비하러” 간다. 그 누구도 베가스에서 가치있는 것을 찾기 위해 그곳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 낭비의 과정은 나에게 너무 costly 했다.

6 thoughts on “라스 베가스 감상.

  1.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들이 많고 맛있는 음식을 비교적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해서 흥미가 있었는데, 글을 읽고 나니가 흥미가 많이 반감되네요^^;;

    • 아, 좋은 공연 많이 하더라구요. 근데 되게 과시적이고 소비적으로 보이는 거 있죠. 그리고 무지 비싸요. 저도 좀 찾아 봤는데 비싸더라구요. 돈만 있으면 공연을 봐도 좋았겠죠. 음식은 뷔페 패키지가 싸게 나온 데가 몇군데 있었는데, 음식맛은 그저 그랬어요. 인앤아웃을 먹어보지 못한게 천추의 한이죠 ㅠㅠ

  2. 저는 라스베가스의 공연도 재미없었음…ㅎㅎ
    아마 여기 갈 일이 또 있다면 그 땐 그랜드 캐년을 보러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

    • 음 전 ncsi 쪽이라.. ^^; 쇼핑쪽이라면 라스베가스는 분명 매력적인데요, 제가 쇼핑을 전혀 하지 않아서 그쪽은 잘 모르겠어요. 그냥 도시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이미지가 피곤하달까.. 제겐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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