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꿈과 얼마나 멀리 멀어지고 있는 걸까.

학교에서 물어 볼때 으레 대답하는 “대통령”,”과학자” 같은 모범적인 미래 직업이 아닌, 구체적인 활동 방향과 그 직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도출한 현실적인 내 첫번째 “꿈” 은 음악 평론가였다.  오천원짜리 테이프의 비닐을 벗겨 내면 깨알같이 적혀 있던 “속지” 의 음반 소개글을 쓰며 사는 것이 내 꿈이었다. 그러다가 불규칙적인 수입에 대한 불안감에 핫 뮤직이나 서브같은 잡지에 글을 쓰며 월급을 받는 음악 전문지 기자가 되는 것이 조금 더 낫겠다 싶었고, 그렇게 기반을 다지다가 프리랜서 평론가가 되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게 중학교 1,2학년때 꿈꾸던 나의 이상향이었고, 이 계획은 아버지가 당신의 제자중 한명이 음반기획사 직원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사실상 물거품이 된다.  아버지께서 그 분을 집으로 초빙(?) 해 그 바닥의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며 박봉에 후생복지도 얼마나 열악한지를 내게 주입시켜 자의반 타의반으로 꿈을 포기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내 첫번째 “꿈의 직업” 을 포기한 후 고등학교 3년 내내 꿈이란 게 없는 시간을 보냈고, 구체적인 삶의 목표를 상실하자 음악 듣는 것도 점점 뜸해 지게 됐다.  아무런 생각없이 경제학과에 진학했고,  군대가기 전까지 2년동안은 연애에만 미쳐 있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해선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더랬다.  그러다 제대하고 이차저차한 끝에 지금 이렇게 대학원을 ‘직업’ 으로서 택하게 됐는데, 지금까지 큰 후회는 없다.

다만 재미있는 점은, 중학교때 처음으로 택한 나의 미래의 희망 직업은 목적만이 중요했지 수단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즉,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생각만 굴뚝같았지, 음악적, 예술적인 재능이 없던 내가 그바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오로지 “글쓰는 일” 뿐이라는 사실은 잘 자각하지 못했던 듯 하다.  지금도 똑같은 상황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학을 공부한다는 목적보다는, 글쓰는 행위를 통해 창조물을 만들어 낸다는 수단에의 가치에 조금 더 천착하고 있다는 점이 약간 다르다. 내가 속한 학문 분야가 경제학이 됐건, 사회학이 됐건, 혹은 언어학이 됐건, 그것을 통해 ‘세상’ 을 보려고 하는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내가 바라본 그 세상의 모습을 다시 피드백처럼 되돌려 주는 건 글쓰기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나에게는 글 외에 다른 적절한 표현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약간 삼천포로 빠지자면, 내 전전 여자친구는 지금 소위 말하는 예술을 하고 있는데, 이 친구는 주변의 모든 시각적, 공간적, 청각적, 그리고 후각적인 오브제까지 총동원해 하나의 심상을 구현하는 일을 한다.  막말로 “잘 팔리는” 예술은 아닌 셈이다. 정통 회화나 영화처럼.  아무튼 그녀에겐 자신의 생각이나 감성을 이미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이처럼 나보다 훨씬 풍부하고 무궁무진하다.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재능이라고 하는 영역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 나이가 들면서 점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재능보다 애정이나 열정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 는 주장이 아직 철없어 보이지 않는 건 내가 나이를 아직 덜 먹었다는 뜻일 테고.

요즘 박정현의 음악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부모에게 물려 받고 사회를 통해 길러진 재능의 힘은 맨 처음 직업을 선택하는 순간, 그리고 맨 마지막 직업에서 무언가를 얻어 내는 순간에 발현된다.  박정현은 “talented” 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목소리를 가지고 태어났고, 그 목소리를 이용해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그녀의 커리어가 부침을 겪었던 건, 목소리만을 이용한 “singer” 에서 다른 영역의 재능까지 요구하는 “artist/musician” 으로의 변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재능의 차이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재능의 높낮이의 문제다.  어떤 재능은 세상을 평정할 정도이지만,  또다른 재능은 그보다 못할 수 있다.  그걸 누가 재단하느냐, 라는 질문에 대답할 깜냥은 나도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걸 어떻게 발견하느냐, 결정하느냐라는 질문에도, 나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라는 답을 할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사회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머릿속도 함께 복잡해 질 수록,  택해야 하는, 택하게 되는 직업이 예전 어렸을 적 가지고 있던 순수성을 담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세분화된 직업 속에 나의 “철학” 과 “가치관” 을 담아 내기가 점점 어려워 지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아직 꽤 행운아축에 드는 것 같기도 하고.. 글을 쓰고 있으니.  비록 지도 교수님께 판판이 깨질 지라도. 우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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