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h list

사고 싶은 물건이 세가지쯤 있었다. 밑창이 달아버린 농구화를 새 것으로 바꾸고 싶었고, (왠지 이놈이 내 발목을 자꾸 괴롭히는 것 같다는 생각..) 엑스박스를 사서 2K11 을 꼭 한번 풀시즌으로 돌려 보고 싶었고, Xoom 을 사서 킨들을 대체하고 싶었다. 이번 학기들어 아껴 살면서 약간의 돈이 모였고 또 텍스 리턴으로 일종의 보너스를 만질 수 있겠다 싶어서 셋중 최소한 하나는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더랬다. 하지만 친구들의 꼬임에 넘어가 라스 베가스로 여행을 다녀 오고 (거기서 스포츠배팅으로 약 50불을 탕진..) 충격적이게도 스테잇 텍스 리턴이 오히려 뱉어내라는 결과가 나옴으로써 계획에 상당한 차질이 생기게 됐다.

결국 지금으로선 그냥 아무 것도 사지 말고 버티다가 한국 들어가자는 생각이 강해졌다.  내가 은근히 농구화등 농구 관련 물품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Dicks 나 Footlocker 같은 샵에 가면 정신을 못차리고 신발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게 된다. 또 농구 게임을 좋아해서 현 시대 최고의 스포츠 게임이라는 엑스박스용 2K11 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줌은.. 일종의 허영과 사치인데, 킨들의 기능에 대한 회의가 요즘 자꾸 들어서..

스스로를 달래고 있는 중이다. 넌 가난하잖아, 넌 공부해야 하잖아, 너 조금 있으면 한국 가서 해야 할 거 많잖아.. 등등의 말로. 결국 스스로를 우쭈쭈쭈해주기 위해ㄱ갈피를 하나 사거나 이쁜 볼펜을 하나 사야 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소비 생활이란 이정도 범위내에서 가능하겠지 후후.

motorola xoom

오늘 staples 에 들렸는데 xoom 이 있는 거다. 그래서 이리저리 만져 봤다. 안드로이드 기반 모바일 제품은 지금까지 써본 적이 없었다. 일단 첫인상은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 걱정했던 터치감도 아이패드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 같지 않고 만듦새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큰 아이팟 터치” 느낌이었던 아이패드에 비해 “가벼운 타블렛 피씨” 의 느낌이 강했다. 성능차이에서 왔다기 보다는 customization 의 flexibility 차이에서 오는 기분탓일 것이다. 그래 봤자 노트북만 하겠냐마는, 내가 원하는 (pdf 논문 읽기 + 웹서핑/이메일체크 + 간단한 문서 정리및 프레젠테이션 파일 저장 + 신문/잡지 구독) 의 역할은 거의 완벽하게 해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킨들의 기능이 제한적인데 반해 줌은 조금 더 재미있게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장점도. 킨들 팔고 줌으로 옮겨 갈까 고민중이다. 아이패드2 도 만져 봤는데 위에 적은 바와 같이 큰 아이팟 터치 이상의 감흥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폰4 가지고 놀다가 질렸..) 가격에 비해 크게 땡기지는 않는다. 폭넓은 어플은 되게 큰 장점인데 내가 어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도.

Pains of Being Pure at Heart: Belong

 

2009년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뉴욕 출신의 슈게이징 밴드 Pains of Being Pure at Heart (POBPAH) 의 두번째 정규 앨범이다. 공식 발매일은 3월 38일이었는데 이상하게 아이튠즈에는 열흘 정도 먼저 풀렸다. 덕분에 미리 구입해 들을 수 있었다. 1집이 아마존이 선정한 그 해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2집에 대한 팬들의 기대도 무척 컸더랬다. 이번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의 영입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그런지팬들이라면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Flood 와 Alan Moulder 가 그들이다. 플러드는 스매슁 펌킨스의 앨범을 프로듀싱한 것으로 유명하고, 앨런 멀더는 My Bloody Valentine (MBV) 과 함께 작업했다. POBPAH 로서는 어찌 보면 절묘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왜냐하면이들의 음악을 스매슁 펌킨스와 MBV 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Ride 정도로 대충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집은 스매슁 펌킨스보다 MBV 에 가까웠다. 정통 슈게이징의 기운이 물씬 풍겨져 나오는 노이즈와 아름다운 멜로디의 향연이었다. 2집은 조금 더 전통적인 90년대 모던락의 흐름에 기대고 있다. 즉 단순히 슈게이징에 국한시킬 수 없는 스펙트럼의 확대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앨범을 시작하는 첫 곡”Belong” 부터 “My Terrible Friends”, “Too Tough” 같은 앨범이 킬링 트랙들은 하나같이 보다 명료한 기타 리프와 확실히 분절되는 드럼, 조금 더 리드미컬하게 들리는 보컬등으로 표현된다. 그러니까 2집은 스매슁 펌킨스쪽으로 한걸음 더 다가갔다고 할 수 있을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인데, 그렇다고 이들이 슈게이징의 기운을 완전히 잃어 버린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양 ‘극단’ 의 팬층이 모두 만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hook’ 과 ‘melody’, 거기에 더해 슈게이징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매력도 함께 가지고 있는 참 매력적인 앨범이다.

박정현: Op.4

박정현의 한국어 네번째 앨범. 새로운 소속사인 티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고 낸 첫번째 앨범이자, 정석원이 프로듀서로서 앨범 전체를 장악한 거의 유일한 앨범이기도 하다. 015B 의 색채가 강하게 뭍어나는 곡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래서 박정현만의 새련된 보컬을 좋아하는 골수팬들중 일부는 이 앨범에 대해  “마치 015B의 객원 보컬로 참여한 것 같다.” 라고 혹평을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보컬리스트로서의 박정현이 가진 화려한 전성기를 기억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곡들이 균등한 퀄리티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꿈에” 나 “미장원에서” 같은 명곡들이 갖는 압도적인 분위기에 다른 곡들이조금 눌리는 듯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지 함량 미달의 곡들이 수록된 건 결코 아니다.  그녀의 커리어에서 한 챕터를 마무리하는 앨범이자, 새로운 챕터를 여는 앨범이기도 하다.

정석원은 인터뷰에서 “보컬리스트로서의 박정현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앨범에는 박정현이라는 “가수” 가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의 극한을 드러내는 곡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점이 정석원과 윤종신이 박정현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차이점을 드러낸다. 윤종신은 인터뷰에서 “박정현은 고음보다 중음에서 더 강점을 드러내는 가수” 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힌 적이 있고, 또 그가 박정현에게 준 곡들을 보면 대부분 그의 이런 입장을 잘 견지하고 있다. 정석원은 프로듀서/작곡가로서의 욕심과 야망을 숨기지 않은 듯 보이고, 이 앨범에서의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음악들을 잔뜩 실험하고 있다. 결과는 충분히 성공적이다. “사랑이 올까요” 같은 전형적인 발라드부터 “꿈에”, “이별하러 가는 길” 처럼 웅장한 사운드 스케이프에 박정현이 아니면 소화할 수 없는 풍부하고 극단적인 보컬 스타일이 담긴 곡들, “여자친구 참 예쁘네”와 “떨쳐” 같은 업템포의 곡들까지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담겨져 있다. 가장 흥미로운 곡은 박정현이 직접 작사/작곡한 “Puff” 라는 곡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앨범에서 가장 “015B스러운” 곡이 되어 버렸다. 이 곡에서 향후 박정현이 직접 작곡하고 프로듀싱한 곡들의 뿌리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상당히 스케일이 크고, 보컬은 이펙트가 잔뜩 걸려 비틀어졌으며, 가사는 들릴 듯 말듯 희미하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그녀의 목소리보다 음악 자체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본인 스스로도 이 앨범 작업을 통해 정석원에게 많이 배웠다고 말해 왔는데, 이후 발표되는 5집과 6집에서 그녀가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성을 확립해 나갔다는 점에서 이 앨범이 가지는 또다른 가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라스 베가스 감상.

대학원의 7년차 N 의 바첼러 파티 (총각 파티) 에 초대를 받아 N 을 포함한 친구들과 함께 라스 베가스에 짧게 다녀 왔다. 지난주 수요일 밤에 N 의 차를 타고 출발해서 다시 그의 차를 타고 볼더에 돌아온 건 오늘 새벽 다섯시쯤. 볼더에서 라스 베가스까지는 자동차로 열두시간쯤 걸린다. 자동차를 이용한 장거리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힘들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다들 한 운전하는지라 나까지 순번이 돌아오진 않았다. 그냥 뒷자리에서 찌그러져서 졸다가 깨다가 하며 갔다. 예전 유럽여행때 빠리에서 빈까지 완행 열차를 타고 열다섯시간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중간 중간 바깥 바람을 쐬지도 못해서 정말 폐쇄 공포증이 이런 건가, 느끼면서 갔던 나쁜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두세시간마다 한번씩 주유소에 들려 볼일도 보고 군것질도 하고 몸도 한번씩 풀면서 가서 그렇게 많이 심리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다. 허리가 아픈 거야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렇게 도착한 라스 베가스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우리는 목요일 아침에 도착했는데, 짐을 풀기도 전에 한 카지노에 들어가서 스포츠 배팅을 하며 NCAA 농구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 여행의 목표가 전무한 상태였다. 이렇게 말하면 책임회피하는 것 같지만, ‘등떠밀려’ 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우선 친구의 초대가 있었고, 가장 친한 친구 두명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었고, 더불어 K 의 추천까지 있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철저히 친구들의 뒤를 쫓아 다니며 그들이 경험하는 베가스를 공유해 보고 싶었다. 이 도시에 대한 인상은 그 이후에 저절로 생성될 것이었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행 자체에 대한 후회는 별로 없다. 카지노나 농구 경기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 혼자 움직일 수 있는 이동 수단이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피곤한 몸을 끌고 따라다닌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졸린 눈을 비비며 대형 스크린사이로 쏟아지는 수많은 영상들과 – 돈을 가리키는 – 숫자들에 혼미해 하다가 오후 두시쯤 체크인을 하고 여장을 풀 수 있었다.

그리고 사흘 내내, 떠나기 직전까지 같은 일과의 연속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배팅을 하고, 농구 시합을 보고,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고, 밥을 먹다가 술을 마시고, 그러다가 호텔로 돌아가 잠을 청한다.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 다니며 그런 일과들에 때론 동참하기도 하고 때론 관찰만 하며 보냈다. 막판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개별 행동을 하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들과 함께 보내며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지켜 보았다. 떠나기 전날 밤에는 본격적인 총각파티가 펼쳐 졌는데, 뭐 별거 없었다. 그냥 술에 진탕 취해 돌아다니는 여자들에게 함께 사진을 찍어주기를 부탁하고 길거리에서 만나는 모르는 이들과 낄낄거리며 노는 것이 전부였다.

베가스라는 도시는, 도시 전체가 술에 취한듯 비틀거린다. 사람들은 아침 아홉시부터 술을 마시고, 모든 건물내에서 흡연이 허용된다. 거의 모든 곳들이 24시간동안 영업을 하고 그 어떤 건물 내부에도 창문을 찾아볼 수 없다. 큰 싸움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길거리에서 무슨 짓을 하건 경찰의 제지를 받지 않는다. 거의 모든 곳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인들에게 ‘자유’ 란 평소 현실에서 ‘제약’ 당했던 것들에 대한 해방이다. 일과 시간에 술을 먹지 못하고, 도박을 하지 못하고, 여자를 사지 못하고, 밤 늦게까지 돌아다니기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24시간동안 흥청망청 하루를 낭비할 수 있다. 여기에 ‘머리만 잘 쓰면 돈을 잃지 않고 딸수도 있다’ 는 달콤한 유혹이 더해져 돈과 물질을 최고의 성스러운 가치로 탈바꿈시킨다. 구글이 알려준 베가스내 서점은 단 네군데였다. 볼더라는 작은 도시에 서점이 스무개이상 있는 것과 비교된다. 책을 읽으면 바보가 되는 곳이다. 유일하게 잃어야 할 활자는 창녀들의 전화번호 목록, 혹은 배팅의 밸런스를 알려주는 spread 숫자들뿐이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진짜가 없다. 모든 것이 fake 다. 가짜 에펠탑, 가짜 자유의 여신상, 가짜 빠리, 가짜 뉴욕, 그외 거의 모든 것들에 진짜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명목상의 가치만을 나타내는 ‘돈’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행동원리인데, 이 명목상의 가치도 실제로 담고 있는 의미가 거의 없다는 걸 상기한다면 꽤나 그럴 듯한 베가스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소비를 하기 위해 달려 든다. 갬블링과 배팅이라는 행위는 확률에 의해 정해진 “free money” 라는 환상속에  지속적인 소비 패턴만을 부추길 뿐이다. 몬테 카를로에는 도박장만이 있을 뿐이고, 럭셔에는 진짜 파라오 무덤이 없다. 그냥 아주 비싼 돈을 들여 흉내낸 건물들만이 아무런 질서없이 들어서 있을 따름이다. 심지어 벨라지오의 분수쇼조차 조잡해 보였다. 단 한가지 베가스가 가지는 originality 라면 전세계 곳곳에 있는 환락의 도시들이 베가스를 흉내내고 있다는 것 정도. 사막위에 아무런 개연성없이 세워진 이 신기루같은 도시는 아무런 이유도 배경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도시에 방문하는 그 누구에게도 그런 것들에 대해 묻지 않는다. 그냥 와서 즐기고, 놀고, 그러다 돌아가던가 말던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입장처럼 보인다.

이 도시에게 받은 인상들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여성의 성 상품화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카지노에는 속옷만 겨우 입은 여성들이 쉬지 않고 춤을 추고, 돈만 있다면 10미터 이내에서 아무런 제약없이 여자를 살 수 있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한국의 강남역에서처럼 작은 카드를 나누어 주는데, 한국의 “삐끼” 들이 웨이터들의 사진과 이름을 나누어준다면 베가스에서는 창녀들의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를 얻을 수 있다. 나에게는 이렇게 적극적이고 또 아무런 제약없이 이루어지는 여성의 상품화에 대해 별다른 항의없이 받아들이는 여자 방문객들의 태도가 더 충격적이었다. 마치 “여기서 팔리는 여자들과 나는 같은 부류가 아니야” 라는 듯한 입장이었달까. 그러니까 베가스에는 남자, 여자 그리고 “상품으로 전락한 여자” 라는 세가지 종류의 姓 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자유와 평등을 중요시하는 미국에서 이런 일종의 치외법권같은 분위기를 가진 도시가 존재하고 있고, 또 대단히 효율적인 조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되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결론적으로 나는, 베가스에서 몹시 지루했다. 내가 좋아하는 농구 경기를 마음껏 볼 수 있는 건 좋았는데, 나는 그것조차 탐탁치 않게 느껴졌다. March Madness 라고 불리는 미 대학농구 토너먼트는 대학생들의 경기다. 아마츄어리즘의 진수다. 그런데 거기에 사람들은 몇백달러씩 돈을 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단지 승패만이 중요한 실제 경기와는 달리 배팅은 ‘몇점차 승리/패배’, ‘처음 15점 먼저 득점’ 같은 승패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들까지 포함한다. 스포츠의 본질이 사라진, 단지 돈놓고 돈먹기만이 중요한 배팅은 무언가를 굉장히 크게 변질시켰다. 그리고 그게 베가스의 핵심이다. 본질이 없고, 진짜가 없고, 모든 것은 돈의 가치로 환산된다. 나는 그곳에서 몹시 지루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그곳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아마 다음에 누군가가 베가스에 놀러 가자고 하면 정중히 거절할 것 같다. 여행 경비를 전부 지원한다고 해도, 별로 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미국인들은 베가스에 “시간을 낭비하러” 간다. 그 누구도 베가스에서 가치있는 것을 찾기 위해 그곳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 낭비의 과정은 나에게 너무 costly 했다.

박정현: On & On


박정현의 통산 다섯번째 한국어 앨범. “꿈에” 의 대성공뒤에 나온 앨범이라 그런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느낌이 드는 앨범이다. 보컬리스트로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무렵 녹음되었기 때문에 테크닉에 있어서의 완벽함을 느낄 수 있다. 전 앨범 (4집) 에서 한곡의 자작곡을 수록하며 아티스트로서의 잠재성을 스스로 확인한 그녀는 이번 앨범에 네곡의 자작곡을 수록하고 있는데 (인트로 성격의 “Ode” 와 연주곡 “Very Thought”  포함), 그녀가 좋아하는 작곡가로부터 곡을 받아 부르는 보컬리스트로서의 정체성과 스스로 만든 곡을 소화해 내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정체성 사이에 간극이 꽤나 크게 느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즉 윤종신, 정석원, 황성제같은 작곡가들은 그녀로부터 무엇을 뽑아 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한국인의  정서와 그녀의 이국적인 보컬 스타일이 묘하게 결합된 스탠더드한 팝을 그녀의 ‘색깔’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직접 작사, 작곡을 하고 편곡에도 참여한 곡들은 의외로 대단히 어두우며 또 무척 몽환적이다. 오히려 보컬은 도드라지지 않고 사운드 스케이프에 중점을 둔 대곡 지향적인 편곡이 눈에 띈다. 이러한 성격의 두 곡 “미래” 와 “Ghost” 가 이 앨범에서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이 곡들은 그녀가 이 당시 추구했던 음악의 방향성이 여타 작곡가들이 바랬던 그것과 많이 상충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은 편인데, 긍정적인 분위기의 달콤한 팝넘버는 “Miracle” 과 “알아볼게요” 뿐이다. 대부분의 곡들의 편곡에 스트링이 들어갈 정도로 스케일을 큼직하게 가져가고 있다. 정석원이 작곡/사한 세곡 “Long Goodbye”, “그러지 마세요”, “싱글 링” 은 단연 이 앨범의 베스트 트랙들인데,  역시 그가 이당시 박정현이 가지고 있던 보컬리스트로서의 매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의외로 정석원 스타일의 작곡법이 박정현의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앨범 이후 박정현은 정석원과 결별하고 평범한(?) 팝넘버 위주의 황성제와 주로 작업하게 되는데, 물론 앨범 전체를 장악하는 그녀의 프로듀싱이 더 주목받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석원과 조금 더 작업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Akira Kosemura: Grassland


일본의 피아니스트이자 앰비언트(?) 뮤지션인 아키라 코세무라의 2010년 앨범. 전작들에 비해 전자음악적인 기운이 조금 더 확대됐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 트랙들도 선보이고 있다. <Polaroid Piano>가 피아노에 방점을 찍고 일렉트로닉을 양념처럼 첨가한 앨범이라면 <Grassland> 는 코세무라의 정체성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조금은 더 적극적인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 전자음악들을 조화롭게 배치했다는 점에서는 엠비언트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장르 따지기가 무의미한 아티스트에 더 가깝다. 류이치 사카모토처럼. 헤드폰을 끼고 들어도 너무 좋고, 이른 아침 스피커를 통해 들어도 청량한 느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아름다운 앨범.

PJ Harvey: Let England Shake

PJ Harvey 는 90년대 초, 중반 얼터너티브 붐이 확 일었을 때부터 활동했던 관록의 뮤지션이다. 92년에 발매한 데뷔 앨범 <Dry> 나 93년작 <Rid Of Me>, 95년에 발표한 <To Bring You My Love> 는 앨범 커버까지 또렷하게 각인이 될 정도로 당시 센세이셔널한 앨범이었다. “90년대 명반 50선” 이나 “이시대를 빛낸 100장의 앨범” 따위의 컬렉션에 항상 들어 갔던, 현대 음악사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 앨범들이었다. 그 이후에도 그녀는 – 여러 평단들에 따르면 – 꾸준하게 양질의 앨범들을 발표해 왔는데, 부끄럽게도 그녀의 커리어를 제대로 따라 가지 못했고 한동안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있었다. 그래서 이번 앨범 혹은 그녀의 음악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메모할 깜냥이 되지 않는다. 다만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찾아본 바로는 2007년 앨범 <White Chalk> 의 사운드를 계승하는 한편 영국 포크쪽으로도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중요한 건 이 앨범의 컨셉인데, 사운드에서 전작들과 도드라진 차이를 크게 보이지 않는 반면 Harvey 는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테마, 즉 1차 세계 대전을 중심으로 한 전쟁과 이를 둘러싼 여러 문화적 컨텍스트들에 대한 재해석을 선보이고 있다. 전쟁의 폭력성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 그리고 전쟁 이후 그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다다이즘, 초현실주의같은 문화적인 반동까지 아우르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 불안한 듯 떨고 있고 사운드 역시 그러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듯 한치의 여유로움도 허용하지 않으며 텐션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운드에서의 특징이 Harvey 가 이 앨범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주제 의식과 맞닿아 더 큰 울림을 자아낸다. 여러 매체들로부터 올해의 앨범이자 Harvey 의 지난 10년을 통털어 최고의 앨범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Smith Westerns: Dye It Blonde


시카고 출신 인디 밴드 Smith Westerns 의 2009년 발매된 샐프 타이틀 데위 앨범에 이은 두번째 앨범. 2009년 첫번째 앨범을 낼 당시 멤버중 그 누구도 맥주를 마실 나이 (21세) 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시카고의 Northside College 학생이던 Max Kakacek 과 Cullen Omori 는 60년대 개러지록을 좋아하는 공통의 취향을 발견,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뭐 딱히 재주가 있었던 건 아니고 밴드를 결성하고 나서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둘다 기타를 치고 싶어하니까 베이스를 구해야 해서 Cullen 의 동생 Cameron 을 꼬셔서 베이스를 배우게 한다. 드럼은 세 멤버가 번갈아 가면서 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아마츄어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이 만들어 내는 음악들은 꽤나 주목을 받게 되어서 시카고 로컬씬에서 명성을 획득하기 시작, 로컬 인디 레이블인 Hozac 에서 데뷔 앨범을 발표하게 되고 꿈에 그리던 드러머까지 영입하게 된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는 평범한 인디 밴드의 성공담. Nobunny 와 Magic Kids 의 오프닝으로 투어를 돌기 시작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획득하게 된다.

2011년 1월에 발표된 새앨범은 70년대 글램록의 기운으로 가득차 있다. 티렉스가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이 풍부한, 그리고 긍정적인 사운드의 향연은 골방에서 스스로 만족할 정도의 음악을 만들던 이들이 조금 더 메인스트림에 가까운 접근법을 선보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펙트가 잔뜩 들어간 기타 사운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리드미컬한 사이키델리아의 곡들이 이어지는데, “Smile” 이나 “Dye the World” , “All Die Young” 같은 곡들에서는 대단히 크고 담대한 스케일을 느낄 수 있다.  사운드를 확장시켜 나가며 뻥 터뜨리는 실력이 일품인데, 그러니까 소위 말해 드림팝에서 느낄 수 있는 훅이 있다는 얘기다. 20살이 갖넘은 젊은이들이 복고적인 사운드를 현대적으로 되살린다는 점에서 Yuck  과 비교될 수 있지만, Yuck 이 identity problem 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반면 Smith Westerns 는 이미 본인들의 확고한 색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인상깊다고 할 수 있다. 예예예스의 드러머 Brian Chase 가 세션으로 참여했다.

박정현: Come to where I am

 

박정현의 통산 여섯번째 정규 한국어 음반이다. 4집에서 정석원을 만나 음악적으로 큰 영향을 받은 그녀가 그 이후 정석원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황성제와 본격적으로 작업한 첫번째 앨범이자, 본인이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등 앨범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한 첫번째 앨범이기 때문에 그녀의 커리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헤어짐은 못됐어요” 와 앨범 타이틀격인 “순간” 을 제외한 10곡을 직접 작곡했고 한글 가사가 들어간 세곡을 포함해 총 다섯곡을 직접 작사했다. 앨범 마지막에 위치한 “Everyday Prayer” 는 본인이 직접 편곡까지 했다. 아티스트로서의 자각과 그동안 그녀가 대중가요계에서 가지고 있던 ‘위치’ 사이에서 갈등한 흔적들이 앨범 곳곳에서 엿보이는데, 결과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그녀가 자신의 음악적인 역량을 마음껏 선보이고 또 자신의 음악 세계, 철학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를 가지는 앨범이고, 주의깊게 들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근작들을 최근 들으면서 가장 크게 놀란 점은 첫째, 대단히 다양한 장르에 대한 욕심이 있고, 둘째 녹음 과정에 있어서의 믹싱이라던가 엔지니어링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다는 점이다. 이건 그녀가 음악을 단지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중 하나’ 로 인식하지 않고 일종의 직업이자 프로페션으로서 접근하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는데, 그녀가 가사뿐 아니라 음악의 외형적 표피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순간” 에서 느껴지는 몽환적인 느낌, 혹은 “Smile” 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어두운 단조의 분위기는 그녀의 기존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상당히 의외의 면인데, 앨범에 이런 곡이 꽤 되는 편이다. 아주 스탠다드한 팝 넘버인 “달아요” 나 애절한 한국식 발라드인 “우두커니” 같은 곡들과 완벽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앞서 말했던 고민의 흔적들이 느껴지는 이유다. 갈팡질팡하고 있다기 보다는 모든걸 아우르고 싶다는 욕구가 앨범의 무게를 약간 무겁게 만드는 느낌이다. 스케일이 커지는 순간은 겉잡을 수가 없을 정도로 팽창한다. 그녀가 7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힘을 좀 빼고 작고 가벼운 음악들을 하고 싶었다.” 라고 말하는 이유도 본인이 6집 앨범 작업을 하면서 느꼈을 일종의 소화불량에 대한 반성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대단히 뛰어난 보컬리스트에서 앨범을 자기 손으로 메만지는 아티스트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과연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 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궁금해 지는 것이 사실이다. 여러 인터뷰에서 그녀는 영어 가사에 자신의 생각을 담기 쉬었다고 고백한다. 흔히 말하는 “달콤한” 팝넘버로 대표되는 그녀이지만 최근 인터뷰들을 읽어보면 – 남의 가사를 받다 보니 – 노래를 하면서 연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래서 한국어 가사를 쓰는 연습도 열심히 했다고 말한다.  대학때 연극영화를 전공했으니 작품을 해석하는 능력이나 표현해 내는 능력도 수준급이지만, 역시 한국 대중가요계에서 먹힐 만한 1차원적인 한국어 가사를 통해 그녀의 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앨범에는 총 다섯곡을 작사했는데, 이 곡들에서 그녀를 이해하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The Other Side” 에서는 피곤한 일상을 살아가는 마리아라는 가상의 여인을 통해 허전한 마음과 소박한 일상의 사랑스러움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Hey Yeah” 는 영어가사곡인데 연인간의 다툼과 마음이 멀어지는 과정을 그렸다. “순간” 은 일종의 “꿈에” 의 후일담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연인과 헤어진 후 추억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영어곡인 “Smile” 가장 의외의 곡이다. 대단히 어두운 내용의 가사는 사귀는 동안에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옛연인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그래서 지금 이게 마지막으로 보는 거니까 한번 웃어나 보라는 (웃음의 의미가 섬뜩하다) 내용을 담고 있다. “Everyday Prayer” 는 연인을 위한 송가로도 해석할 수 있고, 가스펠적인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녀 스스로 인정했듯이, 그녀를 매니악한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이소라나 이상은 – 그리고 우습게도 김윤아 – 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자아 존재감을 – 한국어로 – 표현하는 능력이 서툴다는 데에 있었다. 노래는 정말 잘 부르지만, 이소라처럼 가슴을 후벼파게 하는 아련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고정관념같은 것이 내 머릿속에 있었다. 한국어 가사 전달 능력에서의 에로사항이 무언가를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했다. 6집에서는 그러한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해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음악에 담아 전달할 때의 표현력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