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학교내에서의 인종 문제.

매 학기 50명에서 100명 정도의 클래스를 맡아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은근히 혼자만의 통계 자료 (?) 가 쌓이게 마련이다.

한국인, 아니 아시아인 teacher 에게 모든 미국 학생들이 가깝게 다가오는 건 아니다. 경제학원론을 듣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제 막 대학생이 된, 갓 고등학생 티를 벗은 십대 후반의 어린 친구들이다. 주립대학교다 보니 주로 콜로라도 출신 학생들이 많고 캘리포니아에서도 많이 온다. 미시건이나 버지니아같은 중/동부에서 오는 학생들도 꽤 된다. 이 친구들이 학창시절에 아시아인 친구와 가깝게 지낸 경험을 가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민을 와서 미국인 신분으로 살아가는 아시아인이 아닌 나처럼 유학을 목적으로 다른 문화 정체성을 가진 아시아인 친구를 어렸을 때부터 곁에 두고 자란 학생들은 내가 만나본 바에 따르면 결코 많지 않았다.

이럴 경우 첫번째도 부딪히는 문제가 언어 문제다. 나의 독특한 (..) 악센트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업을 잘 듣지 않거나 나를 전혀 찾지 않는 학생들도 꽤 된다. 특히 1년차때는 그게 심했다. 그때는 정말 내 영어가 엉망진창이었는데 아이들도 힘들었고 나도 힘들었다.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쪽에서 극복해 나가는 수 밖에 없다. 십대 후반의 아이들에게 이해해 달라고 부탁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알아듣게 말을 해야 비로소 소통이 시작된다. 여기는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이므로 그게 규칙이다. 일단 학생들과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 진다면 그 다음에 내가 할 일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내가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언어면에서 약간 disadvantage 가 있더라도 결국 수업을 듣기 위해 교실로 돌아온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이 한국식 주입식 교육이다. (..) 시험에 나올 문제들만 콕콕 짚어주는 첨삭 강의가 미국인 학생들에게도 먹힌다. 내가 미국의 고등 교육 시스템을 갉아 먹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다가도.. 우선 내가 살아야 하기에..

두번째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수업중에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다. 다행히 나는 미국의 스포츠, 음악, 영화들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편이다. 딱딱한 수업만 한시간 내내 진행하는 것보다는 예를 들더라도 아이들에게 익숙하고 흥미있을 만한 예를 들어주는 것이 좋은데, 그걸 위해서는 미국의 문화 context 를 깊게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 농담도 맥락이 있어야 먹힌다.

미국의 typical 한 백인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들이다. 물론 콜로라도의 백인 학생들이 representative 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서 생각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워낙 개성이 뚜렷하고 각 개인의 특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백인들중 유난히 나를 잘 따르는 학생들을 살펴보면 동양 문화에 대한 익숙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친구는 스타 크래프트를 너무 좋아해서 한국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따로 챙겨본다. 채팅에 쓰기 위해 한국말도 배웠다. 다른 학생은 일본문화가 너무 좋아서 한국문화까지 좋아하게 된 경우다.

한국인 학생들도 많이 본다. 한국에서 나처럼 뒤늦게 유학온 친구들도 있고,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들도 있으며, 부모중 한분만 한국인인 half korean 도 있다. 내 경험상 이들 대부분이 나에게 상대적으로 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수업중에 한국어로 질문하는 학생은 아직 없었지만, 다른 미국 학생들보다 내 영어를 조금은 더 잘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인 특유의 억양이 확실히 존재하는 것 같다. 나에게 가장 큰 흥미를 보이는 건 뒤의 두 경우이다. 그중에서도 half korean 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큰 편이다. 개인적으로 와서 한국 역사나 문화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수업이 끝난 뒤 서툴게나마 한국어를 내게 시험해 보기도 한다. 이들중 많은 이들이 연세어학당같은 서머스쿨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을 경험하고 온다.  그리고 대부분이 한국을 다녀온 후 한국을 더 좋아하게 되었노라고 이야기한다. 상당수는 아마 홍대 클럽때문이겠지만, 서울의 거대함과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 문화, 그리고 그것과 상반되지만 묘하게 조화되는 동양 문화에 매혹된 경우도 적지 않다.

놀랍게도 아직 히스페닉계 학생을 가르쳐 본 적이 없다. 아마 Boulder 만의 특수성때문일 것이다. 흑인들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되게 무뚝뚝하다가 한번 친해지면 되게 잘해준다. 중국이나 일본 학생들의 경우 한류때문에 한국과 친숙한 경우가 많다. 송혜교나 빅뱅의 이름을 대면서 다가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불행히도 아직 미국에서 원더걸스를 안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미국은 학원체육 시스템이 되게 잘 발달해 있어서 적지 않은 운동선수들이 학업을 병행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이 공부도 더 열심히 한다. 그만큼 관리가 철저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업도 빠지지 않고 숙제도 꼬박꼬박 한다.

교실내에서 인종 차별을 느낀 적은 없다. 나와 학생들의 사회적 위치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내가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면 상당히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가끔 학생들과 페이스북 친구가 되기도 하는데, 친구의 친구들의 페이스북에 “I hate international TA!” 같은 글을 보면 역시 속마음은 이렇구나, 싶다.

오히려 인종적인 편견은 같은 대학원 친구들에게서 가끔 느낀다. 이들은 나와 상대적으로 더 가깝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쉽게 노출되는 것 같다. N 이라고 농구를 함께 하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이 친구는 오클라호마 출신에 학부는 밴더빌트를 나온, 되게 전형적인 남부출신 백인이다. 무척 똑똑하고 지적인데 입이 좀 걸다. 그래서 술을 먹고 곧잘 실수를 하곤 하는데, 내가 영어를 잘 못하던 시절 남부 사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은근히 비웃거나 조롱했다. 똑부러진 우크라이나 여자친구를 만나 나쁜 버릇들을 많이 고치긴 했는데, 아직도 가끔 무의식중에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를 담은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건 그네들 입장에서 보면 또 이해 가능한 부분이 없진 않다. 완벽한 백인 문화에서 성장한 친구가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온 다른 생김새를 가진 사람과 대화하면 어쨌거나 충돌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럴때 대처하는 방법은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물론 civilized 된 사람일 수록 더 말조심과 표정관리를 하겠지만.

최근에 친해지게 된 2년차의 Z 라는 친구는 동부 펜실베이나 출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부터 농담입니다) 무뚝뚝하고 음침한 구석이 있었는데 (농담끝) 알고보니 전여자친구가 half korean half Chinese 였다.  갑자기 “학원” 이라고 하길래 이놈 뭔가 했더니 전여친이 방학때마다 한국에 들어가 학원 영어 강사를 했단다. 또 갑자기 “죽을래” 이러길래 이놈 또 뭔가 했더니 전여친이 자기를 갈굴때마다 썼던 말이란다. 미국인 친구들과 친해질 때 주로 내가 먼저 미국 문화나 미국과 관련된 이슈를 던져서 대화를 유도한다. 하지만 이렇게 반대로 한국과 관련된 이슈를 끌어내 주면 한결 대화하기가 편해진다. 이쪽 친구들 나름대로의 배려다. 되게 얕지만 어떻게든 한국과 관련된 알고 있는 지식들을 총동원해서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한다. 가끔은 이런 배려와 매너가 몸에 벤 미국식 문화에 놀라기도 한다.

나는 다행히 미국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인종과 관련된 편견을 심하게 가지지 않은 것 같다. 딱 하나 있다면 중국인 대학원생들은 co work 하기 좋은 상대는 아니라는 편견 정도. 이건 전적으로 내 경험의 바운더리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니 함부로 일반화시키지는 않는다. 아파트에서 제일 시끄러운 것도 중국인들, 서양식 매너가 가장 덜 갖춰져 있는 것도 중국인들인데 이것도 내가 겪은 경우에 한해서만 그렇다는 거다. 그외에는 남부 출신 백인들의 영어는 정말 신경써서 들어야 한다, 동부 출신은 처음 만나서 잘 웃지 않는다, 캐나다인을 만났을 때는 퀘벡 출신인지 먼저 확인할 것 정도가 그동안 얻은 팁이자 일종의 고정관념이다.

2 thoughts on “내가 겪은 학교내에서의 인종 문제.

  1. 하하 생각해보니 정통 미국인 ta는 별로 겪어본적이 없는것 같네요. 한번은 수업도중에 한국인 유학생이었던 ta가 너무 답답하니까 한국말로 “ㅈㄱ 왜이렇게 못알아들어”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것에 빵터진 생각이 나요. 그때는 빵터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도 측은하고 그 열성이 존경스럽기도 하다는….어쨌거나 전 문화적인것까지 세심하게 신경써서 학생들을 위하는 종혁님한테 박수! ^^

    • 미국인 TA 와 외국인 TA 의 수준 차이가 심하긴 하죠. 지식에서의 차이보다는 언어에서 오는 벽이 너무 커서.. 그걸 극복하려면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가끔 한국말합니다. 전 애들 지루해하는 타이밍마다 한국어 하나씩 가르쳐 줘요. 저번주에는 “야!” 가르쳐 줬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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