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부당거래

오늘 아침에 몸이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아침 티칭 수업만 겨우 하고 집으로 바로 컴백해서 약먹고 이불속에 파묻혀 지냈다. 금요일 밤 친구 생일파티한답시고 술 몇잔 먹고 호기롭게(?) 얇은 옷에 십몇분을 걸어 집까지 온 것이 화근이었던 듯 싶다. 몇시간 자고 일어나니 그나마 좀 괜찮아 진 것 같아 공부를 하기에는 몸이 아프다 하고 멍하니 인터넷을 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워 영화를 한편 보기로 했다. 오늘 본 영화는 <부당거래>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류승완의 팬이 결코 아니지만, 이 영화는 참 좋게 봤다. 아마 류승완의 필모그래피에서 굉장히 의미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왜 그가 한국 영화계의 기대주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엉성한 서사와 중반 이후 축 처지는 극의 흐름, 악만 고래 고래 지르며 달려드는 액션씬은 하품이 나오기에 충분했다.  그나마 재밌게 본 건 <짝패> 인데 이 영화는 서사의 구조따위에는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감독이 좋아하는 액션 하나에만 장인처럼 물고 늘어지는 진득하고 끈적한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렇게 노골적인 영화에서 그만의 매력이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부당거래> 는 <짝패> 와 대척점에 있는 영화다. 액션씬은 거의 없고 오로지 서사의 힘만으로 영화를 끌어 간다. 그 구조가 아주 단단하고 또 이야기의 힘이 묵직한 맛이 있어 지루한 느낌이 전혀 없이 두시간여가 흘러간다. 또한 이 영화는 서사의 구조를 사회성과 연계지어 생각하면 보다 더 흥미로운 질문들을 이끌어 내게 된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검사가 있고 스폰서가 있다. 경찰이 있고 또 다른 스폰서가 있다. 대통령까지 관심을 가지는 연쇄 유괴 사건이 터지고 경찰은 어떻게든 보기 좋은 ‘작품’ 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한다. 유능한 경찰은 뒤가 구리고 빽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스폰서를 이용한다. 그 과정에서 검사쪽 스폰서와 마찰이 생기고, 검사는 경찰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정교하게 디자인된 한편의 ‘사기극’ 속에서 각 인물들의 권력 관계는 수시로 변한다. 가지고 있는 패가 상대방보다 좋으면 이기는 싸움. 지면 개죽음뿐이다. 얽히고 섥힌 이 진흙탕 싸움은 철저하게 권력 구조, 서열 구조로 정리된다. 선과 악의 개념조차 없다. 모두가 악일 뿐인 이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을 속이고 남보다 한번 더 꼬아서 생각해야 한다.

두가지가 흥미로웠다. 첫째는 ‘절대악은 죽지 않는다’ 라는 명제. 아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류승완이 코언 형제의 광팬이기 때문일까. 류승완은 코맥 맥카시와 코언 형제가 그린 절대악의 불멸성을 현대 한국 사회에 투영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 악은 절대적이되 사회내에서 잉태된 유약함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최철기 경감은 가족과 후배 경찰들 사이에서 찌그러져 들어가는 소시민이다. 그는 경찰의 시스템내에서 그 일을 하게끔 선택된 사람이었지 스스로 원해서 그런 타락의 지경까지 간 건 아니었다. 두명의 스폰서들도 돈이라는 목표를 좇기 위해 방법론적으로 이 타락과 혼돈의 싸움에 뛰어들었을 뿐이다. 권력 구조의 가장 윗 단계에 위치하고 있는 주양 검사 역시 자신의 위에 수많은 더 큰 괴물들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오직 주양 검사만이 죽음이라는 결말을 맞이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많은 이들이 찜찜함을 느꼈을 것 같다. 나는 류승완 감독이 탁월한 결말을 만들었다고 느꼈다. 최철기가 후배의 죽음앞에서 길게 눈물흘리는 장면에서 이미 그는 사실상 죽음과 진배없는 상황에 맞닥들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이후 그가 죽건 말건 그건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형제같던 후배들에게 등을 돌렸으며, 하나뿐인 피붙이인 여동생에게 버림받았다. 그는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주검사가 죽지 않은 건 그가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라고 이해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소소한 악의 세력들중 가장 큰 세력이었던 그만이 생명을 부지하고 권력을 여전히 가지고 갈 수 있는 건 세상이 정말 그러하기 때문이다. 절대악은 침전되고 쌓여갈 뿐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또 만약 그가 총에 맞아 죽는다면, 그것보다 더 허무한 죽음은 없었을 것이다. 나쁜 죽음과 옳은 죽음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검사가 그렇게 죽는 것은 내 기준에서 옳지 않은 죽음이다. 그는 자신의 비리가 철저히 발가벗겨 지고 사회적인 처벌을 받아 사회적인 죽음을 당해야 하는 존재다. 감독은 그가 그 위기를 가까스로 피해가는 결말을 보여주는데, 그가 진정으로 패배하고 사망하게 되는 때는 영화에서 그려진 것과 같은 ‘악과 악 사이의 다툼’ 의 결과는 아니라는 그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러니까 예컨데 선거나 정의로운 심판, 감독은 뭐 이런 ‘진정한’ 해피 엔딩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둘째는  배우들의 연기였다. 류승범부터 황정민, 류해진, 그리고 많은 조연들이 정말 꽤 괜찮은 연기를 했다고 느꼈다. 욕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 류승범의 연기는 그가  이성적인 검사역을 맡을 때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황정민이야 매쏘드 연기의 대가이니 여전히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고, 유해진 역시 기대 이상의 연기를, 그리고 이 영화에 출연한 거의 모든 배우들이 대단히 ‘영화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 이건 아마 제작진의 철저한 사전 조사가 빛을 발한 거라고 보면 맞을 것 같다. 대사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에서 연극스러운 과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저씨> 와 비교해 봐도 재밌을 것이다. <아저씨> 는 철저히 만화적이었다. 비현실적인 경찰들과 범죄조직이 등장하고 선악 대립구조가 만화처럼 명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적인 쾌감만을 따진다면 <부당거래> 가 한수위다. <공공의 적> 처럼 지루하게 설교를 늘어 놓지 않으면서도 할말은 다 하고, <아저씨> 처럼 폼잡고 싸우지 않아도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든다. 재밌게 잘 봤다.

4 thoughts on “류승완: 부당거래

  1. 시나리오도 좋았지만 연출이 참 괜찮았어요. 부당거래는 류승완 감독이 시나리오에 관여를 하지 않은 첫번째 영화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준익 감독이 언제 나오나요? 저도 얼마 전에 봤는데 도무지 기억에 없네요.

    • 네. 시나리오도 참 좋고 연출도 참 좋고 연기도 참 좋고.. 삼박자가 두루 조화를 이뤘달까?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이준익 감독은 유해진이 가운입고 사우나/안마 받는 빌딩있죠? 거기서 비서가 “김사장님 오셨는데요” 하고 귓속말할 때 살짝 지나가는 어리버리한 까메오로 잠깐 나왔어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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