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ing sale

동네에 있는 서점 Borders 가 문을 닫는다고 20~40% 세일을 한다는 소식을 입수, 점심을 먹고 뭐라도 건질 게 있나 싶어 살짝 들려 봤다. 갔더니 세상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손마다 책들을 한가득씩 안고 예상치 못한 할인행사를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을 보면서 이래서 incentive 가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그러한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그동안 읽고 싶었지만 다른 책들에 우선 순위가 밀려서 사지 못했던 책들을 아낌없이 집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에도 여섯권의 책이 들려 있었다. 함께 갔던 K 는 다섯권의 책과 몇개의 디비디를 골랐다. 디비디도 거의 반값에 팔기에 소장하고 싶었던 영화들을 구입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인 것 같았다. 하여, 내가 구매한 책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언제 읽을 지는 모른다. 올 해내로 전부 소화하는 게 목표다. 요즘 시험기간인데 이렇게 바쁠 때는 유독 더 전공과 상관없는 책들이 읽고 싶어진다.

Rynck, Patrick De (2004), How to read a painting: Lessons from the old masters,  New York, NY: Abrams.

MacEwan, Ian (2007), On Chesil Beach, New York, NY: Anchor Books A Division of Random House, Inc.

Huxley, Aldous (1932), Brave New World, New York, NY: Harper Perennial Modern Classics. (this edition firstly published in 2006)

Powell, John (2010), How Music Works: The Science and Psychology of Beautiful Sounds, from Beethoven to the Beatles and Beyond, New York, NY: Little, Brown and Company.

Ishiguro, Kazuo (2009), Nocturnes, New York, NY: Vintage Books A Division of Random House, Inc.

일기장

최근 예전에 몇장 쓰지 않고 버려둔 몰스킨 공책 한권을 일기장으로 쓰기 시작했다. 매일 쓰려고 노력한다. 정신이 없어서 차분히 책상에 앉아 하루를 정리할 수 없을 때에는 건너뛰지만, 최대한 인터넷하는 시간을 줄이고 음악과 함께 손으로 무언가를 끄적거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글로 글씨를 많이 써본 적이 벌써 몇년전이라 힘들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선천적으로 글재주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모방을 통해서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데, 요즘같이 바쁜 때에는 한글로 적힌 좋은 글 하나 읽을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냥 하루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기록하는 데에 의의를 두고 있다. 손을 통해 적는 글은 컴퓨터 자판을 통해 적는 글보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기가 더 어렵다. 속도의 차이가 더 심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생각을 더 잘 정리해서 적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약간 더 느리지만, 그만큼 덜 급하고, 더 차분해 진다.

일기를 일기장에 쓰기 시작하면서 이 블로그를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중에 있다. 분명 여기에서 많은 분들과 생각과 감정을 교류하며 소통을 통해 위로를 받는 가치는 적지 않다. 잃고 싶지 않다. 게다가 이분들은 음악 얘기나 영화 얘기보다는 내가 사는 이야기를 더 좋아하시니까. (..) 어떻게든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중이다. 나는 나만이 볼 수 있는 일기장에서 조금 더 솔직하고 비밀이 없지만, 이곳에서 정리하는 생각들이 그렇다고 거짓말로 가득차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웹툰에서 “블로그를 믿지 마세요. 좋은 것만 보이니까” 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치장을 잘하는 블로그들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곳들도 있다. 블로그에 대한 오해는 블로그를 하지 않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받는다고 생각하니 어처구니없을 때 나오는 웃음이 나왔다.  블로그를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도 많고, 블로그를 일종의 선전의 수단으로 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이 곳에서 내가 얻는 가치들을 잃고 싶지 않다.

Mogwai: Hardcore will never die, but you will

 

 

개인적으로 Mogwai 의 팬이라서 객관적으로 이들에 대해 기술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피치포크의 박한 평가처럼 어쩌면 이들은 다시는 이들의 초기 앨범과 같은 – 괴작이면서 동시에 – 역작인, 시대를 앞서가는 음악을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 냉정하게 평가하기를 좋아하는 평자들은 지루하거나 동어반복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모과이가 꾸준하게 가지고 있는 어떤 느낌이 너무 좋다. 전통적인 대중음악 기법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이들의 음악들은 전통적인 팝음악에서 느낄 수 없는 기묘한 기분을 선사해 준다. 포스트락 계열의 밴드들이 주는 ‘구름위를 걷는 듯한 기분’ 이 이 글래스고 출신 베테랑 밴드의 음악에서는 ‘도시위의 찌뿌둥한 하늘에서 빌딩숲을 내려보는 듯한’ 느낌으로 약간 변형되어 다가온다. Explosions in the sky 가 조금 더 pure 한 hype 을 추구한다면 모과이의 음악은 기본적인 포스트락의 바탕위에서 항상 변화를 추구해 왔다. 언제부턴가 노랫말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아주 단순한 형태의 전자음악이 앨범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더 욕을 많이 먹기도 하지만… -_- 암튼 난 모과이가 참 좋다. 그냥 딱 내 스타일이랄까. 언젠가 아주 어렸던 십대 시절 함께 음악을 듣던 진우에게 나중에 내가 음악을 전문적으로 한다면 드림팝, 혹은 포스트락쪽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엄청 갈굼당한 적이 있다. “니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잖아” 는 식의 타박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아마 가능성은 제로겠지만 내가 만약 음악을 만든다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과 모과이의 중간쯤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이쪽 계열 음악’만’ 파지는 않지만 왠지 마음에 콱 와닿는 그런 게 있나보다.

Yuck: Yuck

이미 작년말부터 각종 매체, 혹은 뮤직팬들로부터 2011년을 빛낸 뉴아티스트로 꼽혀 왔던 Yuck 의 데뷔앨범은 놀랍도록 retrospective 하다. 그것도 90년대를 관통하는 정서를 완벽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밴드의 리더 Daniel Blumberg 의 나이는 이제 겨우 20세. 90년대에 고작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였을 그가 어떻게 이토록 그당시의 정서를 잘 파악하고 있는 걸까. 사실 크게 궁금하지는 않다. 80년대에 태어나 80년대를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나도 뉴오더나 주다스 프리스트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으니까. 생물학적인 나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얼마나 그 시대의 공기를 제대로 맡아 보려고 노력했는지가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에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들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퍼지한 느낌이 잔뜩 베인 기타 중심의 개러지록의 전형성이다. 소닉 유스, 다이노서 주니어등이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가운데 페이브먼트, 지저스 앤 메리체인등의 이름도 앨범을 듣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클리셰라고 해도 될 정도의 전형성이 느껴지는 건 젊디 젊은 이들의 앞길에 일종의 장애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비판이다. 하지만 ‘일단’ 데뷔 앨범은 이런 비판을 넘길 정도의 단단함은 가지고 있다. 뛰어난 멜로디라인과 적재적소에서 느껴지는 훅은 ‘괜찮다’ 라는 느낌을 넘어서서 ‘정말 좋은데?’ 라고 되내이며 다시 한번 플레이시키게 만든다. 결국 originality 의 확보가 이들의 롱런을 가늠하게 해줄 것이다. 단순히 복고적 감수성을 리바이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그 이상의 어떤 확고한 창작물을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다이노서 주니어의 최근 앨범에서 엄청난 반가움을 느끼며 환호성을 질렀던 나로서는 개인적으로 대단히 만족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90년대가 일종의 마음의 고향이다. 이토록 젊은 친구들이 박물관에 박제되어 있던 90년대의 감성을 다시 끄집어 내어 부활시킨 것이 못내 고맙기까지 하다.

Cut Copy: Zonoscope


This new album of Melbourne base electro quartet reminds me a lot of 80-ish feeling, along with the enjoy of positive aspect of disco music. They tend to be more retrospective than their previous albums, explicitly showing their omage to the many good 80’s bands, such as Fleetwood Mac, New Order, and Duran Duran. Although their approach is totally back-to-80’s, their new album has a certain contribution to the creative work of the music scene. Except for two songs, all of the songs are longer than 4 minutes, including their first single “take me over”, that has no boring steps in any of single music, touching their “still” ambitious moves on the electro-disco sound. 15 minutes scale “sun gold” is nothing but their own opera traveling brand new world of the new frontier. Extremely fun, never boring, and sufficiently creative album. “blink and you’ll miss a revolution” and “need you now” are killing tracks.

James Blake: James Blake

연말부터 큰 화제를 모았던 James Blake 의 데뷔 앨범을 ‘나도’ 사서 들었다. 그전에 발매된 EP 들에 비해 조금 더 팝적인 감각을 강화하고 ‘감상’ 을 목적으로 하는 리스너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여러 매체들에서 상찬하고 있듯이 이 데뷔 앨범은 The XX 의 그것에 비견될 만한 contribution 을 가지고 있다. 약관 20세의 James Blake 는 The XX 를 필두로 2년전부터 등장했던 많은 미니멀리스트들의 음악을 다채로운 장르들과의 통합을 통해 분해/발전/확장 시키고 있다. 덥을 베이스로 하면서 가스펠 뮤직, 팝, 힙합등 다양한 장르로부터 자양분을 받아 사운드를 채우기도 하고 비우기도 하면서 자유롭게 사운드스케이프를 유영한다. 마치 우주위를 부유하는 듯한 붕 뜬 느낌이 들다가도 땅바닥 아래로 차분히 가라앉는 듯한 최면적인 느낌까지, 1분 1초도 허투루 들을 부분이 없는 앨범이다. 많이 비워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꽉 차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아주 밀도 높은 데뷔 앨범이다. 반드시 헤드폰을 통해 들어야 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내가 겪은 학교내에서의 인종 문제.

매 학기 50명에서 100명 정도의 클래스를 맡아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은근히 혼자만의 통계 자료 (?) 가 쌓이게 마련이다.

한국인, 아니 아시아인 teacher 에게 모든 미국 학생들이 가깝게 다가오는 건 아니다. 경제학원론을 듣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제 막 대학생이 된, 갓 고등학생 티를 벗은 십대 후반의 어린 친구들이다. 주립대학교다 보니 주로 콜로라도 출신 학생들이 많고 캘리포니아에서도 많이 온다. 미시건이나 버지니아같은 중/동부에서 오는 학생들도 꽤 된다. 이 친구들이 학창시절에 아시아인 친구와 가깝게 지낸 경험을 가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민을 와서 미국인 신분으로 살아가는 아시아인이 아닌 나처럼 유학을 목적으로 다른 문화 정체성을 가진 아시아인 친구를 어렸을 때부터 곁에 두고 자란 학생들은 내가 만나본 바에 따르면 결코 많지 않았다.

이럴 경우 첫번째도 부딪히는 문제가 언어 문제다. 나의 독특한 (..) 악센트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업을 잘 듣지 않거나 나를 전혀 찾지 않는 학생들도 꽤 된다. 특히 1년차때는 그게 심했다. 그때는 정말 내 영어가 엉망진창이었는데 아이들도 힘들었고 나도 힘들었다.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쪽에서 극복해 나가는 수 밖에 없다. 십대 후반의 아이들에게 이해해 달라고 부탁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알아듣게 말을 해야 비로소 소통이 시작된다. 여기는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이므로 그게 규칙이다. 일단 학생들과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 진다면 그 다음에 내가 할 일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내가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언어면에서 약간 disadvantage 가 있더라도 결국 수업을 듣기 위해 교실로 돌아온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이 한국식 주입식 교육이다. (..) 시험에 나올 문제들만 콕콕 짚어주는 첨삭 강의가 미국인 학생들에게도 먹힌다. 내가 미국의 고등 교육 시스템을 갉아 먹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다가도.. 우선 내가 살아야 하기에..

두번째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수업중에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다. 다행히 나는 미국의 스포츠, 음악, 영화들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편이다. 딱딱한 수업만 한시간 내내 진행하는 것보다는 예를 들더라도 아이들에게 익숙하고 흥미있을 만한 예를 들어주는 것이 좋은데, 그걸 위해서는 미국의 문화 context 를 깊게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 농담도 맥락이 있어야 먹힌다.

미국의 typical 한 백인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들이다. 물론 콜로라도의 백인 학생들이 representative 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서 생각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워낙 개성이 뚜렷하고 각 개인의 특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백인들중 유난히 나를 잘 따르는 학생들을 살펴보면 동양 문화에 대한 익숙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친구는 스타 크래프트를 너무 좋아해서 한국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따로 챙겨본다. 채팅에 쓰기 위해 한국말도 배웠다. 다른 학생은 일본문화가 너무 좋아서 한국문화까지 좋아하게 된 경우다.

한국인 학생들도 많이 본다. 한국에서 나처럼 뒤늦게 유학온 친구들도 있고,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들도 있으며, 부모중 한분만 한국인인 half korean 도 있다. 내 경험상 이들 대부분이 나에게 상대적으로 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수업중에 한국어로 질문하는 학생은 아직 없었지만, 다른 미국 학생들보다 내 영어를 조금은 더 잘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인 특유의 억양이 확실히 존재하는 것 같다. 나에게 가장 큰 흥미를 보이는 건 뒤의 두 경우이다. 그중에서도 half korean 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큰 편이다. 개인적으로 와서 한국 역사나 문화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수업이 끝난 뒤 서툴게나마 한국어를 내게 시험해 보기도 한다. 이들중 많은 이들이 연세어학당같은 서머스쿨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을 경험하고 온다.  그리고 대부분이 한국을 다녀온 후 한국을 더 좋아하게 되었노라고 이야기한다. 상당수는 아마 홍대 클럽때문이겠지만, 서울의 거대함과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 문화, 그리고 그것과 상반되지만 묘하게 조화되는 동양 문화에 매혹된 경우도 적지 않다.

놀랍게도 아직 히스페닉계 학생을 가르쳐 본 적이 없다. 아마 Boulder 만의 특수성때문일 것이다. 흑인들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되게 무뚝뚝하다가 한번 친해지면 되게 잘해준다. 중국이나 일본 학생들의 경우 한류때문에 한국과 친숙한 경우가 많다. 송혜교나 빅뱅의 이름을 대면서 다가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불행히도 아직 미국에서 원더걸스를 안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미국은 학원체육 시스템이 되게 잘 발달해 있어서 적지 않은 운동선수들이 학업을 병행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이 공부도 더 열심히 한다. 그만큼 관리가 철저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업도 빠지지 않고 숙제도 꼬박꼬박 한다.

교실내에서 인종 차별을 느낀 적은 없다. 나와 학생들의 사회적 위치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내가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면 상당히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가끔 학생들과 페이스북 친구가 되기도 하는데, 친구의 친구들의 페이스북에 “I hate international TA!” 같은 글을 보면 역시 속마음은 이렇구나, 싶다.

오히려 인종적인 편견은 같은 대학원 친구들에게서 가끔 느낀다. 이들은 나와 상대적으로 더 가깝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쉽게 노출되는 것 같다. N 이라고 농구를 함께 하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이 친구는 오클라호마 출신에 학부는 밴더빌트를 나온, 되게 전형적인 남부출신 백인이다. 무척 똑똑하고 지적인데 입이 좀 걸다. 그래서 술을 먹고 곧잘 실수를 하곤 하는데, 내가 영어를 잘 못하던 시절 남부 사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은근히 비웃거나 조롱했다. 똑부러진 우크라이나 여자친구를 만나 나쁜 버릇들을 많이 고치긴 했는데, 아직도 가끔 무의식중에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를 담은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건 그네들 입장에서 보면 또 이해 가능한 부분이 없진 않다. 완벽한 백인 문화에서 성장한 친구가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온 다른 생김새를 가진 사람과 대화하면 어쨌거나 충돌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럴때 대처하는 방법은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물론 civilized 된 사람일 수록 더 말조심과 표정관리를 하겠지만.

최근에 친해지게 된 2년차의 Z 라는 친구는 동부 펜실베이나 출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부터 농담입니다) 무뚝뚝하고 음침한 구석이 있었는데 (농담끝) 알고보니 전여자친구가 half korean half Chinese 였다.  갑자기 “학원” 이라고 하길래 이놈 뭔가 했더니 전여친이 방학때마다 한국에 들어가 학원 영어 강사를 했단다. 또 갑자기 “죽을래” 이러길래 이놈 또 뭔가 했더니 전여친이 자기를 갈굴때마다 썼던 말이란다. 미국인 친구들과 친해질 때 주로 내가 먼저 미국 문화나 미국과 관련된 이슈를 던져서 대화를 유도한다. 하지만 이렇게 반대로 한국과 관련된 이슈를 끌어내 주면 한결 대화하기가 편해진다. 이쪽 친구들 나름대로의 배려다. 되게 얕지만 어떻게든 한국과 관련된 알고 있는 지식들을 총동원해서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한다. 가끔은 이런 배려와 매너가 몸에 벤 미국식 문화에 놀라기도 한다.

나는 다행히 미국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인종과 관련된 편견을 심하게 가지지 않은 것 같다. 딱 하나 있다면 중국인 대학원생들은 co work 하기 좋은 상대는 아니라는 편견 정도. 이건 전적으로 내 경험의 바운더리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니 함부로 일반화시키지는 않는다. 아파트에서 제일 시끄러운 것도 중국인들, 서양식 매너가 가장 덜 갖춰져 있는 것도 중국인들인데 이것도 내가 겪은 경우에 한해서만 그렇다는 거다. 그외에는 남부 출신 백인들의 영어는 정말 신경써서 들어야 한다, 동부 출신은 처음 만나서 잘 웃지 않는다, 캐나다인을 만났을 때는 퀘벡 출신인지 먼저 확인할 것 정도가 그동안 얻은 팁이자 일종의 고정관념이다.

오소영: 다정한 위로

지독한 몸살 감기에 걸려 병마와 투쟁(..)하고 있다. 초기에 잡으려고 나름 애써봤는데 잡지 못해 혹독한 대가를 치루고 있는 중이다. 외국에 부모도 임자도 없이 혼자 살면 가장 심리적으로 힘들 때가 되게 많이 아플 때다. 물한잔 떠 주는 사람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챙겨야 할 때 왈칵 서러움이 몰려온다. 물론 나도 이제 어엿한 3년차(..)라 더이상 그런 감정의 기복은 겪지 않게 됐다. 좀 많이 아프네, 공부 못하겠는걸?, 밥은 뭘 먹어야 좋을까, 등을 생각한다.

감기를 초기에 잡지 못한 이유로는 복용하는 약을 선택할 때 신중을 기하지 못했음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원래 Alka-Seltizer 를 먹으면 바로 회복했는데 감기가 시작된 그날 밤 하필이면 그것이 없어 차선책으로 타이레놀을 복용했는데 효과가 신통치 않았다. 아픈 와중에 아침 수업 꼬박 꼬박 다 하고 새벽 세시쯤에야 잠을 자는 등 컨디션 조절에도 완전히 실패한 것도 이유중 하나다.

아무튼, 일단 아프기 시작한 건 어쩔 수 없다.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중요하지. 그런 와중에 선택한 오소영의 EP 는 꽤 좋은 해열제이자 진통제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나 해서 아이튠즈에 있나 찾아 봤는데 당첨! 몇번 듣지 않았지만 좋은 것을 좋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확신과 자신감은 이미 가지게 됐다. 2009년에 발매된 정규 앨범과 시차가 그리 크지 않은데 오랜 침묵때문인지 보폭을 빠르게 가져가는 그녀의 행보가 그저 반갑게만 여겨진다. 그녀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장필순에서 끊길 줄 알았던 한국 여성 포크의 ‘정통’ 을 계승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균형감각을 갖춘 음악에 티비를 끄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보게끔 하는 가사가 어우러져 계속 보듬게 된다. 만약 씨디나 엘피로 이 앨범을 가지고 있었다면 책상 모퉁이에 올려두고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지 않았을까? 이만큼 앨범에 들어가 있는 노래들과 앨범 제목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앨범을 최근에 본적이 있나 싶다.

추신. 오늘 어머니께 이메일 한통 오랜만에 받았다. 누나가 드디어 집을 구했다는 소식이 특히 반가웠다. 요즘 서울은 전세 대란이라는데 이 와중에 용케 살 집을 찾아낸 ‘실수요자’ 우리 누나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축하는 보내고 싶다. 4월달에 이사 예정이라는데 설마 결혼하기 전에 미리 들어가 사는 건 아니겠지? 최근에는 누나와 매형될 분이 하동집으로 가서 하룻밤 자고 왔다는 소식도 있다.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며 일을 시켜달라고 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참고로 난 매형분 얼굴 아직 제대로 본 적 없음..) 누나도 아마 시댁 식구들에게 새로 정붙이느라 노력하고 있을 것이고, 매형되실 분도 그런 식으로 우리 가족들에게 살갑게 대하겠지, 싶어 결혼이 당사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내가 앞장서서 찾아가고 싶은 처가집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유.

지금 내가 매일 들락날락거리며 체크하고 또 새롭게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하는 SNS 들은 크게 이 블로그, 텀블러, 트위터, 페이스북 정도? 인스타그램이나 라스트에프엠은 들어갈 때도 있고 안들어갈 때도 있고.. 둘다 ‘글’ 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 별로 땡기지 않아 잘 안들어 간다. 페이스북은 싸이월드 관두고 미국에 와서 미국 친구들과 놀기 위해 시작했다. 농담이나 가벼운 수다들을 한두줄 정도로 주고 받는 정도다. 텀블러는 트위터와 블로그의 중간 지점같은데, 아주 심플한 인터페이스에 팔로잉/라이크 개념이 들어가서 ‘되게 간단한 블로그’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주로 긴말이 필요없는 그림이나 음악, 인용구들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 워드프레스 블로그는 내가 일기장처럼 끄적거리는 곳이다. 겨울방학때 반스엔 노블 가서 몰스킨 노트들 구경하는데 음악다이어리, 요리다이어리같은 것들이 있어서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다. 이 워드프레스 블로그는 그러니까 일기장+독후감+음악노트+영화노트들을 온라인의 한 구성탱이에 모아 놓은 셈이다. 트위터는 어찌 하다가 보니 시작했다. 재밌을까 없을까 궁금해서. 팔로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명인이 아니라 블로그에서 알게된 분들이거나 내가 활동하는 카페에서 알게 된 분들이다. 페이스북이 오프라인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온라인으로 끌어온 경우라면 트위터는 온라인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오프라인처럼 간단하고 재빠르게 만드는 셈이다.

온라인에서의 활동이나 관계를 굳이 오프라인까지 끌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마찬가지로 오프라인 지인들을 나의 온라인 생활에 적극적으로 초대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는 온라인상에서도 실명을 사용하고, 거의 대부분의 대략적인 정보를 숨기지 않기 때문에 나의 블로그나 트위터를 모른다고 해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당장 구글에서 내 이름 검색하면 첫 화면에 튀어 나온다. 애초에 오프라인에서 숨을 곳이 필요해 온라인으로 기어 들어온 게 아니라는 얘기다. 숨길 것도 없고 거짓말하고 싶은 것도 없다. 과장하고 싶은 것도 없다. 여기서 날 이쁘게 꾸미면 돌아오는 게 대체 뭐냐. 오프라인에서 있었던 일을 구구절절하게 끌고 와 뒷담화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는 그런거 되게 싫어한다.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 사람 이야기하는 거. 칭찬은 해도 괜찮겠지만 나쁜 말은 하는 거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내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다른 사람 이야기하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 일기장에 나에 대한 이야기만 적기도 바쁘다.

그럼 왜 일기를 일기장에 적지 않고  공개적인 온라인상에 밝히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냥 나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 약간 기분이 좋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주변에 두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면에서 감정적으로 많이 외로웠다. 늘 혼자 놀았다. 영화도 혼자 보러 다녔고 음악도 진우(나에게 음악을 가르쳐 주고 또 평생 음악을 같이 듣는 되게 친한 최고 친구) 와 다른 학교로 진학하면서 음악도 혼자 듣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때 소쉬르나 데리다 따위를 좋아했는데 이런 책들에 대해 대화를 나눌 상대도 없었다. 끽해야 수업 시간에 교수님들이 언급하면 혼자 실실 웃는 정도. 에드워드양 영화가 진짜 좋다고 그래서 그가 죽은게 너무 안타깝다고 누군가에게 떠들고 싶은데 이걸 받아줄 만한 사람이 내 좁은 인간관계속에 몇이나 될까. 그러니까 인터넷 공간, 그리고 블로그는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찾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관계 맺기를 무한정으로 확장시켜 주는 되게 고마운 공간이다. 일기는 그런 나의 취향 – 다른말로 하면 ‘주변’ – 들보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나를 보여주는 수단이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 그리고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중 대부분은 나를 모른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 왔으며 어떻게 생겨 먹은 사람인지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나의 글만을 읽고 간다. 이게 그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게끔 한다. 조금 더 순수하게, 혹은 고정관념없이 나를 바라보게 된달까.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오프라인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온라인에서만 가능한 독특한 관계 맺음말이다. 내가 어떤 특수한 지명이나 이름을 언급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내가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야기를 여기에 쓰고 많은 이들이 그것에 대해 위로를 한다고 해서 그들이 내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바는 전혀 없다. 그들이 나의 이름을 구글에서 뒤지고 헤어진 내 여자친구가 누구인지 집요하게 찾아내어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안주로 사용할 것인가? 그런 식으로 나의 사생활이 공개되고 퍼져 나가는 것인가? 아니 전혀. 그럴 가능성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잃는 것은 없고, 다만 얻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하루종일 힘겹게 살다가 집에 들어오면 (물론 시차가 있지만) 나에게 좋은말 많이 해주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위로를 받는게 그렇게 변태적인가? 패배주의적이지도 않고 비생산적이지도 않다. 내가 공기인형 끌어안고 자위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서로의 블로그에 정기적으로 방문해 댓글을 다는 것이 전부다. 텀블러같은 경우에는 댓글달기도 귀찮아 그냥 하트 표시만 꾹 누르고 나올 때도 많다. 근데 되게 신기하다. 그 하트 무늬 하나에 어떤 감정이 실린다.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걸 블로그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싸이월드나 페이스북만 하는 사람들은 SNS 이 오프라인의 확장이라고만 생각한다. 혹은 싸이월드나 각종 채팅사이트에 만연한 온라인 ‘짝짖기’ 사이트의 변형 정도로만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내가 2006년부터 경험한 이 블로그의 세계는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상이다. 세상에는 한글로만 작성되는 수만 수천개의 블로그들이 있다. 내가 인터넷이 연결되는 랩탑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중 나와 비슷한 취향의, 혹은 비슷한 성격의, 혹은 최소한 나와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을 찾아낼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 그들로부터 답신을 받아내는 건 나의 몫이다. 그들과 친해지고 그들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내며 그들과 감정적인 소통을 나누는 건 철저히 나의 몫이고 나의 바운더리에 있다. 잘 안되는 경우도 많고, 잘 되서 친해지는 경우도 있다. 근데 여기서 “친해진다” 라는 개념이 오프라인에서의 그 단어와는 약간 성질이 다른 것 같다.

물론 블로그를 통해 친해진 사람들중 실제로 만나는 사람도 있다. 난 그걸 즐기지는 않지만 또 거부하지도 않는 편이다. 짜가님처럼 정기적으로 콜로라도를 방문하는 분은 만나서 밥먹고 차마시고 하며 즐겁게 수다를 떤다. 내가 동부쪽을 한번도 안가봤는데 동부에 놀러가면 뵙고 싶은 분들이 몇분 계신다. 한국에 가면 뵙고 싶은 분들도 많다. 만나자고 하면 큰 이유가 있지 않는 한 거절하지 않는 편인데, 그 결과가 항상 좋지는 않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의 괴리감을 잘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건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서서히 조절해 나가는 것 같다.  온라인 관계에서 주의할 점은 혼자 멋대로 상상하지 않는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온라인에서는 얼마든지 본인을 이쁘고 멋있게 꾸밀 수 있다. 난 그런 것들에 혹해서 혼자 망상을 할 수 있고. 나이가 먹고 온라인에서의 경험도 늘어가면서 점점 그런 부분들이 줄어들긴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보이는 몇몇 모습들이 마치 그 사람의 전부인양 착각해서 내 멋대로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 버리는 건 늘 주의해야 하는 일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섞여 들어갈 수도 있다. 감정적인 부분에서 말이다. 예를 들어 아델라님같은 경우에는 되게 오래전부터 알게 된 분인데 우리가 알고 지내는 동안 한번도 만난 적은 없다. 그동안 그분은 학교를 졸업하셨고 직장인이 되셨으며 이사를 여러번 다니셨고 차도 물에 한번 빠지고 남자친구도 생기셨다. 나는 한국을 떠나 미국에 왔으며 박사과정의 절반을 끝냈다. 관계가 이정도로 오래 되면 단순히 일회적인 반응 – 댓글과 덧댓글 – 을 넘어서서 변하지 않고 주욱 흘러가는 감정이 생긴다. 굳이 경계를 만들지 않아도, 혹은 굳이 경계를 무너뜨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런 게 생기게 된다.

온라인 생활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제발 온라인에서의 생활 -블로깅이나 트위터따위- 을 폄하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오프라인도 중요하지만 온라인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게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와 노닥거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상대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조심해야 하듯이 오프라인에서도 똑같이 조심해야 한다. 물론 온라인은 오프라인보다 일 저지르고 숨기는 더 편하겠지만 난 최소한 그렇게 폭력적으로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다. 가끔 안부도 묻고 또 그 사람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기울이려 노력한다. 오프라인과 다를바 하나 없다. 다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다. 뭐가 더 편하고 좋은지의 문제이지 뭐가 더 중요한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천리안 시절부터 이 온라인 생활에 깊게 빠져 있어서 특히나 더 옹호적인 건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밤새워서 하느라 전화비 엄청 깨져서 되게 많이 혼났는데.. (이야기 01420?) 내 오프라인 생활 (공부와 논문) 에 지장이 갈 정도만 아니면 나쁠거 하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나의 이 공개적인 일기장에 동의없이 등장하는 오프라인 지인들이 불쾌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중요하다. 그래서 나도 점점 입을 닫게 된다. 내 이야기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하는데 가끔 꼭 해야 직성이 풀릴 때가 있다. 최근에 그래서 문제가 한번 된 적이 있는데, 아마 그 것 외에도 내 블로그를 보면서 나의 마음이 이렇다는 걸 알아차리고 혼자 끙끙 앓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의 입장은 어느 정도 명확해 진 것 같다. 그렇다고 말을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이야기는 죽음과 맞닿아 있다고 주장하는 고등학교 국어책에 (당당히) 실린 어느 학자의 장광설까지 가지 않더라도  나에게 글쓰는 행위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은 삶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나도 여기서 모든 이야기를 다 하지는 않는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부분이나 언급되는 사람이 불쾌하게 생각할 만한 부분은 안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내가 차차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공책을 하나 사서 거기다 갈겨 쓰든지 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굳이 그런 것들이 아니어도 할 이야기는 많다.

나는 내 블로그에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면서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블로그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내가 좋아서 오는 사람들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블로그 관리화면 통계수치에 찍히는 숫자들이 의미하는 건 ‘거의 없다’. 리퍼러같은 걸 보면서 가끔 재밌는 걸 발견하긴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재미이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딱 들어와서 신경써서 내 글을 읽고 나갔으면 좋겠다. 음악 앨범 리뷰 올리는 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뭐 그리 크지 않다. 방문자수 늘리려면 뭔 짓을 못하겠나. 순식간에 하루 방문자수 천명 이천명 만드는 거 어렵지 않다. 근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거다. 나는 그냥 내가 지금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열명 남짓한 분들하고만 (더되나?) 소통하고 싶다. 더이상은 감당이 안될 것 같다.

오프라인 지인들이 찾아와 주는 건 일종의 덤이다. 내가 지인들에게 살갑게 대하는 편이 아니다. 연락도 뜸하고, 몇달동안 연락없다가 갑자기 한번 연락하고 그런 식이다. 심지어 이제 결혼하는 내 친누나와는 유학와서 2년 반동안 몇번 통화하지도 않았다.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닌데 그냥 그렇게 살아왔다. (;)  오서방이나 전주녀, 혹은 다른 지인들이 가끔씩 들어와 글을 읽으면 대충 내가 어떻게 사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양반들이 서운해 할수도 있다. 왜 자기들한테는 연락 자주 안하냐며. 심지어 오서방은 언젠가 내 예전 블로그에 들어오는 어떤 분을 콕 집어서 별로 맘에 안든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런건 그냥 잔재미들이다.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The Go! Team: Rolling Blackouts

2004년에 발매된 잉글랜드 Brighton 출신의 정체불명 6인조 그룹의 데뷔 앨범을 들었을 때 받았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거기엔 생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느끼는 신선함이 있었다. 새로운 패더라임까지는 아니더라도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는 순간을 목격할 때의 황홀함같은 것이었다. 마치 Beck 의 데뷔를 목도했을 때의 충격과 같은 그런. 힙합 비트위에 노이즈 가득한 길거리 음악, 고등학교 응원가를 cut and paste 해서 만들어 내는 새로운 사운드에 반해서 그 앨범을 한참동안 끼고 살았던 기억이 있다. 2집은 1집보다 조금 더 무거웠고, 조금 더 아티스트적인 기질을 보였지만 여전히 같은 음악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새로움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오랜 휴식기를 거치고 올해 발매된 이들의 3집에는 많은 동료 뮤지션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으로 Deerhoof 의 Satomi Matsuzaki 와 Best Coast 의 Bethany Cosentino 등이 그들이다. 새 앨범에서는 많은 변화가 감지된다. 조금 더 팝송으로서의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것이 첫번째. 이전 두 앨범이 기존의 팝송의 구성 방식을 완전히 무시한 채 파격적인 진행을 선보였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기승전결이 확실한 노래를 한곡 한곡 완성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변화는 그동안 변화해온 영국 인디씬의 영향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The xx 를 위시로 한 ‘비워내는 사운드’ 와 드림팝/슈게이징, 포스트펑크의 기운이 여러 군데서 감지된다. 여전히 시끄러운 노이즈들을 이용해 살을 붙여 나가고 있지만 예전보다 훨씬 정돈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때문인 것 같다. 1집과 비슷한 느낌과 구성을 보이는 건 “Back like 8 Track” 정도. 베타니 코젠티노와 함께 한 “Buy Nothing Day” 는 올해의 싱글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말끔하게 잘 빠진 싱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