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학원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매한> 을 읽다가 문득 옛날 우리집 생각이 났다. 나의 단 하나뿐힌 형제인 누나도 미대를 나왔기 때문에 만화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크게 낯설지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 당시 누나는 예고가 아닌 외고를 선택했는데, 외고 낙방 후 뒤늦게 미대로의 진학을 희망하면서 일반고에서 미대 입시를 준비하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과 기타 예술에서 재능이 뛰어났던 지라 가족 모두 내심 처음부터 미대로 진학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지만, 또 미대만을 바라 보기에는 공부를 너무 잘했던 지라 본인도 나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아무튼 일반고에서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건 참 어렵고 고단하다. 일반고의 수업 과정을 다 따라가면서 저녁에는 그림 공부를 따로 해야 했다. 공부는 공부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준비할 것이 많은데 그 둘을 동시에 하려니 스트레스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IMF 가 터지기 전까진 그 비싼 학원비와 재료값을 그나마 감당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98년에 IMF 가 터졌고, 나는 과외를 그만 두게 되었다. 누나의 미대 입시로 내가 받은 유일한 타격은 그게 다였다. 부모님은 최대한 우리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애쓰셨으며, 그 결과 누나는 무사히 미대에 합격했고 우리집은 일산의 한 아파트에 전세를 얻어 서울에서 나와야 했다. 누나의 학원비로 인해 잠시 중단됐던 나의 수학 과외는 누나가 대학에 입학한 후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서 다시 재개할 수 있었지만, 결국 나는 수능에서 수리1을 망쳐 버렸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다. 아무튼, 누나의 미대 입시 준비와 나의 사립고등학교 재학에 따른 경제적 부담은 IMF 를 온몸으로 통과하시던 부모님에게 적지 않은 짐이 되었을 것이다.

누나가 홍대에 있는 미술 학원을 다니던 무렵 나도 어깨너머로 그쪽 세상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가끔 누나를 마중나가는 어머니를 따라 한밤중 홍대 학원 거리를 구경갔던 적이 있는데, 밤 열시 홍대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학원 버스들이 양쪽 차선을 가득 메우고 건물에서는 학생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다들 어깨와 팔에는 그림과 관련된 도구들이 한가득, 피곤에 쩔은 표정과 하루 일과를 마쳤다는 개운함이 교차하는 얼굴들. 뭐 그 후 1년 뒤 나는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경쟁속에 내던저져 3년을 보내야 했지만, 한국 입시 문화의 한 절정을 바로 근처에서 처음 엿볼 때의 충격은 누가 뭐래도 홍대에서였다.

누나는 수능에서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났는데, 결국 본인이 가고 싶어 했던 홍대 미대는 가지 못했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실기 시험에서 ‘자리 운’ 이 많이 나빴다고 한다. 석고상을 그리는 시험이었는데 거의 측면만을 볼 수 있는 자리에 걸렸다고. 한번도 학원에서 연습해 보지 않은 각도였다고 한다. 어쨌든 누나는 명문대라고 불리는 곳에 들어 갔고, 몇년을 방황하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겨우 졸업과 취업에 성공, 한번의 이직을 거쳐 지금은 미래의 신랑을 만난 곳에서 일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의 미술 점수는 거의 100점에 가까웠다. 학교에서 끝마치지 못한 작품을 집으로 가지고 오면 누나가 완벽한 작품으로 탈바꿈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찰흙으로 만든 두상을 만들어 가는 시험이 있었는데 내가 만진 귓부분과 누나가 만진 다른 부분에서 너무 현격한 질적인 차이를 보여 선생님이 의심한 적도 있었다.

그냥 만화책을 보다가 잠시 10년도 더 된 추억에 잠겨 봤다.

6 thoughts on “미술학원

  1. [울기엔 좀 애매한]을 아직 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미술학원에 대해서는 나도 좀 할말이 있어요. 내가 다닌건 아니고 학급에 미술학원을 다니던 아이들이 몇 있었는데요. 그때당시 미술선생님의 아내가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 학원을 다니면 점수를 잘 주는 거에요. 그런데 다른 학원을 다니면 아무리 잘해도 점수를 박하게 주고. 그래서 많이 불리했었죠. 다른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게다가 겨울에는 난방비로 여름에는 냉방비로 학원비를 더 걷었대요. 정말 엿같은 경우 아니에요? 미대를 가기 위해서 지불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단순히 재료비와 노력 말고도 말이죠. 재료비와 노력은 학생도 부모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 외의 것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잖아요.

    세상이 더러워요.

    • 흠… 그 학원, 그 선생님 참 이상했네요. 뭐 지금 생각해 보면 초중고등학교에서 이상한 선생님들 참 많았죠 ㅋ 그런 교육 환경을 뚫고 여기까지 성장한 제 자신이 참 대견하네요 +_+

  2. 초등학교땐 만화가가 되고 싶어서
    남은 노트들을 엮어서 조그만 스케치북 같은걸 만들어 그리곤 했는데
    엄마께서 안돼! 하셔서, 꿈을 접고 (사실, 얼굴은 잘 그리는데 팔다리가0_- 잘 안그려져서)..
    중학교때 인테리어 디자인 (안돼!)–> 치과의사 (안돼!)–>지금의 직종에 이르렀습니다.
    엄마 꿈을 제가 대신 이뤄드린 뭐, 그런 경우이지욧..ㅋ

    • 전 손가락을 그렇게 못그렸어요. 다섯 손가락을 다 그리고 나면 항상 외계인의 형상을 하고 있더라구요.

      지금 하고 계신 일이 뭔지 열심히 찾아 보고 있슴다.
      그래도 어머니 꿈 대신 이뤄드렸으니 효녀(?) 십니다.

  3. 제동생도 미술을 했었는데..본인은 정말 내핏줄같지 않게 (-_-) 미적인 감각이 있었는데 남자가 미술해서 뭐하냐는 부모님의 반대로 대학가서 방황을 많이 했던 생각이 나네요. 결국은 그래서 적성에 안맞는 경제전공으로 바꿔서 졸업하고 아직도 방황중. 언젠가는 자리를 찾아가겠죠. 님 글을 읽으면서 동생방에 가득했던 스케치북, 목탄, 그리고 물감으로 얼룩진 앞치마가 생각나면서 그때가 그리워지네요.

    • 동생분이 마음고생 많이 하셨겠어요. 사실은 제 누나도 부모님의 반대를 뚫고 시작한 거라 나름 마음고생이 있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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