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ren Aronofsky: Black Swan

 

스포일러 있는데요, 그게 영화 감상에서 그닥 크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Black Swan 은 대단히 흥미로운 영화다. 우선 이 영화는 multi-dimensional 하다. 영화는 ‘Swan Lake’ 공연을 준비하는 뉴욕 발레단의 이야기다. 여자 주인공격인 Swan Queen 으로 뽑힌 여자 주인공이 공연 당일날까지 겪게 되는 기이한 일들을 다루었는데, 이와 같은 표면적인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그만큼 중요하지 않다. 영화는 철저히 주인공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어디까지가 실제 일어나는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주인공이 겪는 환각 현상인지 구분이 명확히 되지 않는다. ‘백조의 호수’ 음악이 영화의 배경 음악으로 쓰이는데, 이 발레의 줄거리와 각 단막에 등장하는 음악들을 기억하고 있다면 영화의 곳곳에 이 음악들이 쓰일 때 감독이 교묘하게 ‘백조의 호수’ 의 줄거리를 비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배경 음악과 영화의 각 장면을 매치시키는 것만으로 완전히 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다. 관객은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들이 모두 다 환각이라고 생각하고 감상해도 무방하고, 그 반대로 생각해도 상관없다. 관객이 어떻게 영화의 각 장면을 받아 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 구조를 가진 영화가 된다는 점은 이 영화가 가지는 독특한 매력중 하나이다.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그것도 임상 심리학이나 발달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조금 더 흥미롭게 관찰했을 것 같다. 주인공은 약 세가지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겪고 있다. 실패한 커리어를 가지고 살아가는 어머니에게 강요받는 삶의 대리 완성자로서의  스트레스, 극심한 경쟁속에서 각종 방법을 동원해야 쟁취할 수 있는 발레의 ‘퀸’ 자리에 대한 강박증 (그리고 그 와중에 등장하는 라이벌에 대한 미묘한 견제 심리), 발레 감독에게 받는 성적인 유혹까지. 결국 이 영화는 연속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어떻게 미쳐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볼 수도 있고, ‘백조의 호수’ 가 애로노프스키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어 현대적으로 되살아 나는지 보여주는 안티-백조의호수 라고도 볼 수 있고, 엄마와 딸 사이, 라이벌 사이, 갑과 을 사이라는 권력 구조속에 함몰되어 가는 개인에 대한 우화라고도 볼 수 있다. 각자 보고 싶은 대로 보면 된다.

감독이 애로노프스키는 딱 두가지에서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첫째 극중 인물의 시각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데 탁월하다. <레퀴엠> 에서 마약 투여 장면이 화제가 된 것은 실제 마약 중독자들이 경험하는 그 장면을 그대로 화면에 되살렸기 때문이다. 같은 영화에서 주인공의 어머니가 겪는 티비와 냉장고가 살아 움직이는 환각 장면도 마찬가지. 실제 약물 중도에 시달렸던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구성된 것이다. 둘째로 그는 새로운 감각의 비주얼을 창조해 내는 데에 천재적이다. <레퀴엠>에서 여자 주인공이 라스트신 전 즈음 마약을 얻기 위해  복도를 걸어가는 장면에서 쓰인 헨드헬드 효과는 정말 탁월하다. 단지 시각 효과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극중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최적의 카메라워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애러노프스키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작품들을 내놓았다. 그러다가 <워리어> 로 부활했고, 그래서 나도 그 다음 작품이 기대됐다. <블랙 스완> 은 그의 재능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영화다. 그는 여전히 화려한 시각 효과를 즐긴다. 클럽씬은 정말 좋았다. 라스트씬에 해당하는 발레 공연 장면도 만약 영화에 완전히 몰입한 사람이라면 일종의 hype 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환상적으로 보인다. 특히 여주인공 등에 있는 가려움증의 정체가 밝혀지는 단계에서는 감독이나 배우나 모두 미쳤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느 선 이상을 나아간다. 하지만,

중반까지 걸작 냄새를 풍기던 이 작품은, 후반 라스트씬까지 가는 과정에서 너무 무리한다 싶을 정도로 막나간다.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어느 정도 파악된 시점에서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통해 그녀의 심리가 급작스럽게 무너져가고 있음을 보려주려 한 탓인지, 이게 <여고괴담>인지 <장화홍련>인지 분간되지 않는 아주 관습적이고 나태한 장면을 연속적으로 선보인다. 공들여 만든 스릴러가 싸구려 할로윈 호러 무비가 되는 순간이다.  그 몇십분의 유치한 장면들만 없었다면, 그대로 발레 공연씬으로 넘어 갔다면 괜찮았을까?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라스트씬에 다다르는 과정도 관습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파이트 클럽> 을 연상시키는 반전은 애러노프스키 감독이 내러티브에서 아직도 많은 고생을 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평단이나 관객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애로노프스키 감독은 예의 장기였던 화려한 화면 구성에 심리 스릴러적인 요소를 거의 완벽하게 이식시켰다. 클라이막스로 가는 과정은 여전히 투박하고 100% 창조적이라고 칭찬받지는 못할 정도의 수준이고, 자극적인 것들에 심하게 중독된 듯한 감독의 상태가 못내 안타깝긴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히 평가받아야 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참,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는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는 것이 정당하게 느껴질 정도로 환상적이다. 다만 이건 감독이 배우를 그만큼 빨아 먹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배우들의 재능을 바닥까지 긁어 먹는 감독들이 있다. 나홍진이라던가, 김지운이라던가, 라스 폰 트리에같은 사람들. 애로노프스키도 이쪽 계열이다. 나탈리 포트만은 혼신의 연기를 펼쳤고, 평가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과대평가는 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이건 감독이 쥐어 짜는 만큼 나온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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