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allest Man on Earth: Sometimes the Blues is Just a Passing Bird EP

2010년에 발매된 The Tallest Man on Earth 의 EP 앨범이다. 다섯곡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시기상으로는 역시 같은 해에 발매된 두번째 정규 앨범 The Wild Hunt 에 이어서 나온 EP 라 사실상 그의 the latest music 이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 앨범에 비해 조금 더 호흡이 길고, 더 블루지하고, 포크 본연의 느낌에 충실하다. 여전히 영롱한 통기타 하나로 반주의 대부분을 소화하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앨범을 들을 때마다 Kristian Matsson 이 양반도 사운드의 빈 곳을 썩 잘 이용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빈틈없이 사운드를 꽉꽉 채우는 뮤지션들이 있는가 하면 TTMOE 처럼 사운드가 들리지 않는 침묵의 공간에 울려 퍼지는 묘한 긴장과 이완의 반복을 이용해 청자로 하여금 숨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The XX 가 그렇고, 한국에서는 시와가 그렇다. 이런 분들의 음악 좋아한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번 EP 에서의 느낌이 상당히 ’90년대적’ 이라는 점이다. 샘플로 올린 “The Dreamer” 의 경우가 정말 그런데, 마치 90년대 중후반 라디오에서 나왔을 법한 그런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요즘 음악들을 들으면 점점 verse 나 chorus 의 호흡이 짧아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TTMOE 의 음악은 그런 시대적 흐름에 반하고 있다. 시간을 여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이번 EP 가 더 반가웠던 건 그의 호흡이 조금 더 길어졌기 때문이다.

Iron & Wine: Kiss Each Other Clean

Iron & Wine 의 네번째 스튜디오 정규 앨범이다. 앨범 커버부터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첫 곡 “Walking far from Home” 부터 예전 앨범들과는 다른 색깔을 확 느낄 수 있다. 본연의 순수한 포크의 색깔은 옅어지고 팝적인 분위기마저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악기 구성, 풍요로워진 사운드스케이프, 적극적인 사무엘 빔의 보컬이 어우러져 보다 활기차고 화려해진 느낌이다. “Half Moon” 처럼 전형적인 Iron & Wine 풍의 곡들도 간간이 섞여 있지만, 대부분의 곡들, 특히 “Rabbit Will Run” 같은 곡을 들으면 편곡에서 완전히 달라진 빔의 자세를 발견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심심하지 않고 단단하게 잘 만들어진 느낌이다. 조금 더 쫄깃 쫄깃해졌달까? 다만 기계를 한번 거쳐서 가공되어 나온 듯한 그의 목소리를 연속해서 듣는 건 약간 피곤하다. 하지만  “Godless Brother in Love” 의 아름다움은 버틸 재간이 없다.

다섯명의 딸을 두고 계시다는데.. 와우 +_+

재미삼아 Samuel Beam 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VCU 에서 painting 으로 학사를 받고 Floria State University 에서  MFA 를 받은 뒤 University of Miami 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flim 과 cinematography 를 가르쳤다. Iron & Wine 의 앨범을 발매하기 전까지의 그의 주 수입원은 학교에서 받는 월급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하며 메이저에서 앨범을 발매한다. 물론 미국 밖에서는 아직 4AD 에서 앨범이 나온다. 이런 엄친아들이 뮤직씬에 꽤 있는 편인데 Jose Gonzalez 의 경우에는 Biochemistry 로 PhD 과정을 밟는 중에 데뷔 앨범을 내고 공부를 때려 친 케이스다.

얘기 나온 김에 호세 곤잘레즈의 노래중에 참 많이 들었던 “Heartbeats” 도 올린다

 

Miyazaki Hayao: Ponyo on the Cliff

오늘 동기 여자 친구 집들이가 있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결혼하고 보라보라(??) 에서 신혼여행을 마치고 갖 돌아온 젊은 새색시가 동기 한국인들과 그 가족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이로써 나를 제외한 다른 동기분들 모두 결혼을 했다는 엄청난 사실. 안그래도 오늘 밥먹고 가족대항(왜??) 으로 류미 큐브 게임을 하는데 나는 가족이 없어서 깍두기였음. 아무튼, 동기분들의 가족분들을 함께 만나면 으레 내가 하는 일은 딸려 오는 어린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다. 오늘은 동기 여자 친구 남편되시는 분이 아이들 조용히 보고 있으라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벼랑위의 포뇨> 를 틀어 줬는데, 내가 넋놓고 봐버렸다.  영어 더빙이었는데 미리 한번 본 여섯살짜리 숙녀분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나보다 영어 잘함) 세살짜리 남자분과 침 흘려가며 완전 몰입해서 봤다.

황홀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의 2008년 최신작에서 거의 어린아이의 마음과 완벽하게 동화된, 몰아일체의 경지를 보여준다. 왜 이렇게 말할 수 있냐 하면, 함께 영화를 시청한 아이들이 영화에 몰입하는 정도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뇨송” 이라고 얘네 또래에서 엄청 히트한 노래가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근데 듣다 보면 진짜 빠져든다.

문제는 이 포뇨송을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직접 따라 부르면 춤을 추고, 한국나이로 서른살이 된 나도 옆에서 동기분들이 뭔 얘기를 하건 말건 신경쓰지 않고 영화에 몰입해서 봤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를 위한 동화를 만들어 냈다. 전작들보다 훨씬 단순한 구조다. 인어공주의 변주다. 결말은 헤피엔딩. 세상은 포뇨로 인해 물바다가 되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다. 고난은 극복되기 위해 존재하고 포뇨는 소스케를 다시 만나게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야오의 영화에는 강인한 생명력을 발산하는 젊은 여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 원령 공주, 키키, 나우시카까지.  포뇨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긍정의 힘을 내뿜는 엄청난 에너지의 소녀. 문제는 지금까지 등장했던 여자 주인공들보다 훨씬, 초초초초초초 귀엽다는 거. ㅠㅠ

하야오는 일본의 전통문화를 범세계적인 코드로 확장시킬 줄 안다. 그래서 전세계 어린이들(+어른들) 모두 거부감없이 그의 영화를 받아 들인다. <포뇨> 에서도 참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주로 ‘물’ 이 주는 이미지에 몰두한다. 영화에서 물(혹은 바다) 은 마을을 집어 삼킴에도 불구하고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탐험과 모험의 대상이다. 폭풍우가 내리 치며 파도가 넘실거리는 날 어른들은 피하려고 애를 쓰지만 아이들은 – 포뇨와 소스케 – 는 사라진 엄마를 찾아 말도 안되는 보트를 타고 탐험을 시작한다. 활짝 웃으면서. 이 대책없는 낙관주의와 긍정적 사고관의 뒤에는 여러가지 신화가 깃들어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찾아 보진 않았지만… -_-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포뇨가 인간의 모습으로 소스케를 만나기 위해 동생들과 바다의 도움을 받아 육지로 다시 나오는 장면이다. 그 웅장함은 여느 대작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이 영화를 만들 당시 하야오가 바그너의 음악에 빠져 있었다고 하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아하, 니벨룽겐의 반지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면 포뇨의 원래 이름인 브룬히루데도 바그너의 오페라에 나오는 이름이다.

윤태호: 당신은 거기 있었다


웹툰 <이끼> 이후 출판물의 형태로 나온 윤태호의 신작이다. 작년 여름쯤 초판이 나온 것 같다. 윤태호가 <야후> 이후 천착해 온 개인과 사회의 역학 관계에 대한 사유가 계속되는 듯 하다. <이끼> 에서는 작은 세계를 설계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하는 임상 심리학적 관점을 가졌다면, <당신은 거기 있었다> 에서는 통제가 불가능한 사회안에서의 개인의 파괴행위가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를 살피는 인류학적/사회학적 관점이 느껴진다. 작가의 시선은 여전히 날카롭고차갑지만 그 이면에는 세상을 향한 따뜻한 연민과 걱정이 함께 한다. 책 뒷편에 짤막하게 소개된 작가의 말에서 그는 인터넷이 보편화된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 대한 근심어린 시선을 숨기지 않는다. 이들이 과연 올바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이들이 과거에 없던 형태의 괴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책의 한장 한장에 가득 서려 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서울 강남의 좋아보이는 아파트에서 한 가장이 자살한 채로 발견된다. 경찰은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자살을 가장한 타살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유족 한명 한명을 심리하면서 그동안 밝혀 지지 않았던 치부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부인은 열다섯명의 남자와 외도를 하고, 자살한 남편은 그녀를 지속적으로 학대했다. 첫딸은 외과 의사인 지도교수와 불륜을 저지르고, 둘째딸은 사촌 오빠와 모텔에서 나오는 장면이 발각된다. 막내 아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노라 고백한다. 건실한 대기업의 성실한 임원으로 보여졌던 아버지는 정부가 있었고, 꽃뱀에 물려 회사 재산을 빼돌린다.  문제는 이러한 한 가족의 치부가 언론을 통해 낱낱이 공개되면서 가족이 파멸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인데, 이 모든 과정을 뒤에서 조종하는 ‘디자이너’ 의 존재가 작품의 후반부에 밝혀진다.

작가는 이 ‘콩가루’ 가족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지극히 가부장적인 위악스러운 가장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단편적인 해석이 될 거다. 앞서 기술한 대로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가족이 아니라 이 가족을 파멸로 이끄는 ‘디자이너’ 다. 그는 작가가 상정한, 뒤틀린 자아를 갖게 된 젊은이가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 뒤틀린 자아는 절대적으로 그가 속한 사회가 잉태한 것이다. 마치 <이끼> 에서 괴물같은 마을을 창조한 이장의 탄생과정과 흡사하다. 이를 막으려는 보통의 존재 – <이끼> 의 주인공 아버지, <당신은 거기 있었다> 의 수사반장 – 의 존재는 극히 미약하다. 이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에서 절대악을 막지 못하는 늙어 버린 형사의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다만 윤태호는 코맥 맥카시보다는 조금은 더 희망적인데, 결국 작품안에서 그 절대악의 끝을, 종말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 “끝” 은 악을 상징하는 인물의 표면적인 죽음이 아니다. 사회가 품고 낳아 버린 이 악의 근원을 사회 내부에서 스스로 정화시킬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 들리지 않는 희미한 숨소리같은 그 작은 바램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미술학원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매한> 을 읽다가 문득 옛날 우리집 생각이 났다. 나의 단 하나뿐힌 형제인 누나도 미대를 나왔기 때문에 만화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크게 낯설지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 당시 누나는 예고가 아닌 외고를 선택했는데, 외고 낙방 후 뒤늦게 미대로의 진학을 희망하면서 일반고에서 미대 입시를 준비하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과 기타 예술에서 재능이 뛰어났던 지라 가족 모두 내심 처음부터 미대로 진학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지만, 또 미대만을 바라 보기에는 공부를 너무 잘했던 지라 본인도 나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아무튼 일반고에서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건 참 어렵고 고단하다. 일반고의 수업 과정을 다 따라가면서 저녁에는 그림 공부를 따로 해야 했다. 공부는 공부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준비할 것이 많은데 그 둘을 동시에 하려니 스트레스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IMF 가 터지기 전까진 그 비싼 학원비와 재료값을 그나마 감당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98년에 IMF 가 터졌고, 나는 과외를 그만 두게 되었다. 누나의 미대 입시로 내가 받은 유일한 타격은 그게 다였다. 부모님은 최대한 우리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애쓰셨으며, 그 결과 누나는 무사히 미대에 합격했고 우리집은 일산의 한 아파트에 전세를 얻어 서울에서 나와야 했다. 누나의 학원비로 인해 잠시 중단됐던 나의 수학 과외는 누나가 대학에 입학한 후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서 다시 재개할 수 있었지만, 결국 나는 수능에서 수리1을 망쳐 버렸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다. 아무튼, 누나의 미대 입시 준비와 나의 사립고등학교 재학에 따른 경제적 부담은 IMF 를 온몸으로 통과하시던 부모님에게 적지 않은 짐이 되었을 것이다.

누나가 홍대에 있는 미술 학원을 다니던 무렵 나도 어깨너머로 그쪽 세상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가끔 누나를 마중나가는 어머니를 따라 한밤중 홍대 학원 거리를 구경갔던 적이 있는데, 밤 열시 홍대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학원 버스들이 양쪽 차선을 가득 메우고 건물에서는 학생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다들 어깨와 팔에는 그림과 관련된 도구들이 한가득, 피곤에 쩔은 표정과 하루 일과를 마쳤다는 개운함이 교차하는 얼굴들. 뭐 그 후 1년 뒤 나는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경쟁속에 내던저져 3년을 보내야 했지만, 한국 입시 문화의 한 절정을 바로 근처에서 처음 엿볼 때의 충격은 누가 뭐래도 홍대에서였다.

누나는 수능에서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났는데, 결국 본인이 가고 싶어 했던 홍대 미대는 가지 못했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실기 시험에서 ‘자리 운’ 이 많이 나빴다고 한다. 석고상을 그리는 시험이었는데 거의 측면만을 볼 수 있는 자리에 걸렸다고. 한번도 학원에서 연습해 보지 않은 각도였다고 한다. 어쨌든 누나는 명문대라고 불리는 곳에 들어 갔고, 몇년을 방황하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겨우 졸업과 취업에 성공, 한번의 이직을 거쳐 지금은 미래의 신랑을 만난 곳에서 일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의 미술 점수는 거의 100점에 가까웠다. 학교에서 끝마치지 못한 작품을 집으로 가지고 오면 누나가 완벽한 작품으로 탈바꿈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찰흙으로 만든 두상을 만들어 가는 시험이 있었는데 내가 만진 귓부분과 누나가 만진 다른 부분에서 너무 현격한 질적인 차이를 보여 선생님이 의심한 적도 있었다.

그냥 만화책을 보다가 잠시 10년도 더 된 추억에 잠겨 봤다.

최규석: 울기엔 좀 애매한

작년 8월즈음해서 나온 최규석의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이번 신작은 A4 지 정도되는 큼직한 판본으로 나와 그의 수채화 솜씨를 조금 더 자세히 구경할 수 있다. 지방 작은 도시의 한 미술 입시학원을 배경으로 돈없는 집에서 그림그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제로 입시학원 강사 경력이 꽤 되는 작가는 작중 태섭이라는 학원 강사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최규석의 만화가 늘상 그러하듯, 이번 작품에서도 삶의 고단함과 사회의 불합리함속에서 피곤함을 호소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사려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100도씨> 에서 조금은 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다시 작가 주위에 오밀 조밀 모여 있는 사랑스러운 이웃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듯 보인다. 그의 작품들을 놓치지 않고 보아 오면서 한번도 실망한 적이 없었고, 단 한번도 갸우뚱거렸던 기억조차 없다. 무엇을 하든, 어떤 직종에 종사하든,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의 반듯한 마음가짐이라는 간단한 교훈을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재확인한다.

우리네 일상은 녹록치 않다. 돈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며, 권력에 치인다. 고개를 들어 보면 내 위에는 누군가가 항상 나를 지배하고 있고, 단 하루도 돈의 속박에서 자유로웠던 날이 없다. 잠깐 쉬어 가고 싶어도 등뒤를 떠미는 누군가가 있는 것 같으며, 마치 지금 한걸음을 마저 떼지 않으면 뒤쳐지는 느낌까지 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린 친구들처럼 우리가 시덥잖은 유머를 날리며 오늘도 웃을 수 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잃지 않고 가지고 있는 꿈이 될 수도 있다. “불가촉 루저” 인 원빈이 강사의 크로키를 보고 “학원 오기 잘했다” 생각하며 씩 웃을 때의 그 작지만 소중한 가치를 캐치해 내는 작가의 시선을 사랑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큰 고비 하나를 넘지 못해 지금까지 애써 지켜왔던 꿈을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다다른 원빈이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릴 때 그를 쳐다보는 학원 강사의 눈빛을 담담히 담아 내는 작가의 손끝이 믿음직스럽다.

Debra Granik: Winter’s Bone

Daniel Woodrell 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감독 Debra Granik 과 Anne Rosellini 가 각색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단순하다. Ree 라는 17살 소녀는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어머니와 아직 너무나 어린 동생 두명을 부양해야 한다. 학교다닐 생각은 엄두도 못내고, 돈을 위해 군입대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 어느날 경찰이 찾아와 수감중 실종된 아버지를 일주일내에 찾아 내지 못하면 아버지가 가족 몰래 저당잡힌 집과 재산 일체를 경매에서 빼앗길 것이라고 경고한다. Ree 는 스스로 아버지를 찾아내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아버지의 유일한 형제이자 Ree 의 삼촌인 Teardrop 마저 그를 증오하며 도움을 거부한다. 경매 일자는 점점 다가오고, Ree 는 점점 더 위험한 진실, 마을 사람 그 누구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진실을 알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영화는 스릴러 구조를 따른다. 아버지에 대한 진실은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점점 더 위험해 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Ree 는 가족을 자신의 손으로 지켜 내기 위해 그 어떤 위험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녀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애쓸수록 그녀에게 죽음에 가까운 위협을 가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대항하는 그녀가 가진 무기는 어설픈 총 두자루와 거대한 마음이 전부다. 경찰조차 권력의 변방으로 밀려나는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단합된 마을의 어른들은 거의 독재에 가까운 권력이다. 가부장제의 권위로 가득찬 미국 남부의 작은 시골에서 한 여린 소녀가 진실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폭력에 노출된 동생들에게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터득한 조그만 팁들을 전수해 주는 것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국 작고 보잘것 없지만 위대한 승리를 쟁취해 낸다. 그 쟁취의 과정은 스포일러가 될까봐 밝힐 순 없지만, 최소한 아주 어두운 비극적인 결말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영화를 보는 건 경험상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그만큼 보는 이를 짓누르는 영화의 무게감이 상당하다. 지극히 차갑고 찢어질듯한 긴장감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지 않고 영화를 보게 되는 건 주인공 소녀 Ree 의 곧은 심지를 나타내는 눈빛때문이었던 것 같다.

주인공역을 맡은 Jennifer Lawrence 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1990 년생의 이 어린 배우는 캔터키주 루이빌에서 태어나 14살에 배우의 꿈을 안고 뉴욕으로 상경, 어린 나이에 재능을 세상에 드러냈다. <블랙 스완> 에서 나탈리 포트만이 보여준 연기가 배우의 광기 그 자체였다면, <Winter’s Bone> 에서 Lawrence 가 보여준 연기는 영화에서 배우의 연기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범답안이다. 난 여우 주연상 후보로 이 어린 배우를 지지하기로 했다.

David Fincher: The Social Network

영화 Social Network 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극장에서 본 짤막한 예고편때문이었다. 감각적인 음악에 감각적인 영상이 묘하게 편집된 짧은 비디오 클립은 ‘꼭 봐야 할 것 같은’ 냄새를 강하게 풍겼다. 나중에 이 영화의 감독이 데이빗 핀쳐이고 페이스북 창업과 관련된 사람들이 영화 제작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내비치며 도움을 전혀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관심은 더 커져 갔다. 하지만 학기말이 휘몰아치는 스케쥴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결국 극장에서 이 영화가 내려가는 것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는데, 최근에서야 DVD 로 발매된 것을 확인하고 냉큼 구입, 감상할 수 있었다.

데이빗 핀쳐는 <패닉 룸> 때부터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서지 않았나 싶다. 그는 천재적인 촬영 감독이기도 하고, 시나리오를 보는 눈썰미로 따지면 세계 최강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는 현존하는 할리우드 감독들중 흥행에 성공하며 작가 대접을 받는 몇 안되는 젊은 거장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코언 형제나 폴 토머스 앤더슨과 같은 부류로 묶일 이유는 없다. 그는 제임스 카메론밑에서 영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단 한번도 박스 오피스를 무시했던 적이 없으며, 늘 흥행 배우와 함께 했다. 그러니까 그가 미국 국적을 가진 변방의 아웃사이더는 아니라는 소리다. 그는 할리우드 시스템속에서도 늘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리고 그건 정말 사실이다. 그는 탁월한 스토리텔러이며 영화의 구조속에서 본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철학을 놓치지 않는다. 내가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촬영 기법때문인데, 늘 혁신적인 카메라 구도를 영화속에 최소한 한장면 이상은 삽입하지만, 그 누구도 그 장면이 어떤 장면이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 이만큼 잘났어” 라고 자랑하는 장면 구성이 아니라 최대의 효과를 가져오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건 전적으로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철학에 빚진 것처럼 보인다.

시나리오 작가인  Aaron Sorkin 에 대해서도 반드시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어 퓨 굿 맨> 의 작가인 이 양반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은근히 작품 수가 적다. 오히려 연극쪽에서 더 유명한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시나리오의 위대함을 실감했다. 그가 창조한 대사들은 이 영화가 정말 실제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 수많은 비유와 컨텍스트들이 넘실거린다. 영어 자막이 없었다면 절반도 채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짧은 예를 하나 들자면, 하버드생들이 BU 를 은근히 무시한다는 건 얘기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대사속에 몇번이나 등장하는 걸 보면 정말 그렇구나 싶다.

배우들도 연기 참 잘하더라. 요즘 앤드루 가필드가 출연한 영화를 두편 연속으로 봤는데 음.. 멋있다 +_+

불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굉장히 잘 만든 영화이고 참 깔끔하지만, 그게 다다. 아주 촘촘히 잘 짜여져 있는 명품 스웨터를 입는 느낌인데, 프린팅이 너무 유행을 타서 내년에는 입지 못할 것 같은 느낌?  몇년전에 UCC 가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에 뽑힌 적이 있다. 마크 저커버그의 화려한 성공 신화는 IT 가 휩쓸고 있는 요즘 너무나 인기있는 이야기 소재다. 그가 하버드 nerd 이고 남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루머가 있고 초창기 창업자들과의 불화를 겪었다는 등의 뒷이야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큰 호기심을 불러올 수 있다. 물론 핀쳐와 소킨은 뒷담화 이상의 이야기를 풀어 냈다. 페이스북이라는 거대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든 ‘창조자’ 의 인터넷 너머의 삶을 조망함으로써 가상 공간에서의 삶과 실제 삶이 어떻게 연결되고 또 서로를 파괴하는 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허구라고 생각하고 봐도 별 상관없다는 말이다. 저커버그는 오프라 윈프리쇼에 나와 본인이 입는 옷까지 정확하게 묘사한 영화를 칭찬하면서도 사건의 선후 관계에 있어서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음을 지적했다. 맞다. 영화의 몇몇 부분은 실화를 ‘영화답게’ 각색하기 위해 과장과 거짓말을 조금 보탠 것이 역력해 보인다. 핀쳐가 할리우드안에 있으니까 생기는 문제들이다.

영화가 너무 ‘트랜디’ 하다는 거, 아카데미에서 또 한번 물을 먹을 이유가 될까? <벤자민 버튼>은 핀쳐가 작정하고 아카데미 상 한번 만져 보자고 만든 영화였다. 그리고 실패했다. 너무 구닥다리여서? 아니, 난 그 영화 또한 너무 트렌디하고 너무 시대적으로 깔끔하게 만들어져서 결국 수상에 실패했다고 본다. 지금 현재 모두가 열광하는 소재에 모두가 열광할 만한 완벽에 가까운 플롯과 대사, 촬영기법으로 무장한 Social Network 는 어쩌면 <벤자민 버튼> 과  생김새만 좀 다른 배다른 형제같은 느낌이 든다. 씨네21은 이 영화를 위해 <시민 케인> 까지 언급하고 있다. 맙소사. 인터넷 세상을 너무 무겁게 보는 어른들은 이 영화가 시대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세상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어린 세대는 이 영화를 자신들을 위한 놀이터를 설계한 창조주의 작은 우화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핀쳐와 소킨의 세계는 그 어디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포스터에 잘 나타나 있는 것 같다.

인터넷 적당히 하자. 그게 이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었을까.

지도

취미 생활중 하나는 지도를 가지고 노는 것이다. 별다른 이유나 목적은 없다. 그냥 지도를 뚫어져라 바라 보고 있어도 좋고, 구글 맵을 이용해 이곳 저곳을 찍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요즘은 구글맵을 이용해 실제 거리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유추해 보는 놀이에 빠져 있다. 그러니까 차를 타고 가면 몇분이나 걸리는 거리인지, 그 안에 건물들이 얼마나 조밀하게 모여 있는지 따위를 지도를 보면서 알아 맞혀 보는 것이다. 답은 인터넷에 다 나와 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도를 가지고 노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딱히 계기라고 할 것은 없고 그냥 아버지의 영향때문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집 책장 한구석에 각종 사회과부도 및 지도와 관련된 책들이 있어서 심심할 때 꺼내 읽곤 했다. 글자들로만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책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읽기 쉽다고 생각했나 보다. 지리에 딱히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리보다는 역사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지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러니까 현대에 정립된 국경이 아닌 과거 특정 연도에 형성된 국가들을 종이에 다시 그리는 연습을 많이 했다. 프랑크 제국이나 신성 로마 제국, 혹은 오스만 투르크같은 나라들의 국경을 그려 보고선 현재와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 보곤 했다. 다른 나라보다 한국의 지도를 그리는 데에 몰두한 적이 있는데, 얼마나 더 실제와 근접하게 그리는 지에 집착했던 것 같다.

지금도 인터넷에 구글맵을 켜놓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면 옆에 있는 지인들이 한심하게 생각한다.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구글맵은 나에게 재미 이상의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전달해 준다. 예를 들어 Kingston 이라는 지명은 캐나다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는데, 공교롭게도 뉴욕주의 Kingston 과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Kingston 의 거리차이는 크게 많이 나지 않는다. 뉴욕주의 킹스턴은 뉴욕주의 원래 주도였고, 온타리오의 킹스턴은 그 주에서 가장 먼저 유럽 모험가들에 의해 발견되고 발전된 곳이다.  두 도시 모두 나름 전통을 가지고 있으니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Louisville 이라는 지명은 상당히 많은 주에서 가지고 있는데 도시의 유래에 따라 /루이스빌/ 로 발음해야 할지 /루이빌/ 로 발음해야 할지 조심해야 한다. 캔터키주의 Louisville 은 프랑스인 Louis 가 건립한 도시이기 때문에 /루이빌/ 로 발음해야 맞지만, 콜로라도주의 Louisville 은 미국인 Louis 가 세웠기 때문에 /루이스빌/ 로 발음해야 맞다.

이렇게 지리와 역사가 결합된 공부는 구글맵과 위키피디아만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나만 재밌나? 시간가는 줄 모를 때가 많다.

두가지.

사실은 세가지.

1. 개강했다. 두과목. TA는 30년 경력의 베테랑 교수님의 500명짜리 원론 수업. 지난 학기 내 레시테이션이 좋아 나를 따라온 학생도 꽤 된다. 이 교수님이 원론 수업이 처음인 데다가 1학년 대상 수업도 처음이라 지금까지 서빙했던 교수님들과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학교 지침에 맞게 꾀부리지 않고 성실하게만 임하면 별 문제없다는 거 다년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 이번 학기도 그렇게 무사히 넘어가길 바라고 있다. 유학생들은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리서치보다는 티칭에서 원어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편이다. 나는 리서치에서도 많이 받고 티칭에서도 많이 받지만 그래도 티칭쪽이 조금은 더 수월하다. 공부하는 사람은 언제나 교육-티칭-을 일종의 서비스, 혹은 사회에 대한 봉사/환원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어려운 순간마다 많은 도움이 된다. 말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면 문제가 조금은 줄어든다는 것을 알았다.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게 티칭이 아니란 말이다.

2. 방금 등록금 납부했다. 피같은 부모님 돈이 또 미국의 한 대학교의 수중으로 빨려 들어 갔다. 돈에 대한 생각이 점점 더 깊어지면서 이를 악물고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서른이 다 되어 가도록 부모님께 용돈 한번 못 드린 걸 떠나서, 부모님께서 아예 당신의 아들에게 돈벌어 오라는 소리를 하는 걸 포기하도록만든 작금의 상황이 개인적으로는 못내 안타깝다.  다행히 이번 학기는 두과목만 드어서 내야 할 돈이 그리 크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마이너스는 마이너스다. 잘해야지. 무사히 학기 마쳐야지. 지난 다섯번의 학기보다 이번 학기가 유난히 많이 긴장된다. 코스웤을 듣는 마지막 학기라 그런가. 이번 학기의 결과에 따라 다시 한번 살아 남느냐 아니냐가 결정되어서 그런가. 잘 모르겠다.

3. 마지막 – 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 어플라이를 다시 한번 했다. 돈낭비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정말 더이상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딱 이틀 투자해서 속전 속결로 온라인 어플라이/결제/성적표배송 과정을 마무리했다.  지난번 지원에서 뼈저린 오판을 좀 한 것 같아서 이번에는 다양한 범위의 학교들에 안정적으로 지원했다. 영국과 캐나다의 석/박사 과정도 기웃거려 보고, 미국내 비주류 경제학하는 학교들도 두어군데 지원했다. 캘리포니아의 날씨 좋은 학교부터 전통적으로 거시경제학이 강한 날씨 안좋은 동부의 학교까지 슬쩍 넣어 봤다. 콜로라도, 볼더에서 딱히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것도 아니고, 서양의 대도시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큰 것도 아니다. 지금 있는 학교에서 더이상의 리서치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냥 절반은 desperate 한 심정으로, 나머지 절반은 돌아오는 여름 내 미래를 결정할 때 플랜 B 를 풍부하게 확보해 두고 싶어서 지원했다. 그러고 보면 매년 여름 거취를 결정하는 것 같다. 1년 주기로 살았다 죽었다를 반복하는 기계같은 삶을 3년째 살아 오고 있다. 올 여름이 끝나면 조금 더 확실해 질 것이다. 지난 두번의 여름도 그런 식이었다. 첫번째 여름보다는 두번째 여름이, 두번째 여름보다는 세번째 여름에 더 확실하고 명확한 미래가 보일 것이다. 그렇게 기대해 본다.

오늘 아파트 파킹 퍼밋 갱신하러 갔다가 그만 자동차 플레이트 갱신을 지난해 안했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아 버렸다 -_- 또 벌금 왕창 나오겠구만.. 사는 게 이런 식이다. 이런거 까먹지 않으려고 수첩에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중인데 수첩을 가지고 다니는 걸 자꾸 까먹는다 ㅋ 생활의 달인이 되는 날은 언제쯤일까. 살림살이에 힘이 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