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휴.

나름 차분하게 잘 보내고 있다. 특별히 무슨 사건이 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심심하고 재미없게 지나가지도 않았다. 원래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심심한 것을 잘 모르는 성격이라 가끔 밖에 나가 사람들 만나는 것만으로도 연휴기간동안의 대인관계는 다 했다 싶다. 방학이 시작되고 처음 며칠은 그냥 정신없이 퍼질러져 있었고, 그 후 며칠은 개인 신상과 관련된 일에 잠깐 집중했다가 그 다음부터 지금까지는 정말 차분하고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 이제 크리스마스 연휴는 끝났고,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을 열었으니 나도 다시 글자들을 들여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학기가 끝나면 종이나 활자, 혹은 컴퓨터같은 것들에 질려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멍하니  티비만 보고 있거나 아이폰만 만지작거리면서 시간을 허비하기 일쑤다. 겨울방학은 그래서 더 짧게 느껴진다. 다음 학기를 무사히 보내기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원기를 회복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학기에 대한 스트레스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는 것이 아깝기도 하다. 평소 읽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읽지 못한 책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다시 컨디션을 끌어 올려서 부지런하게 살아야 겠다.

약 세가지 정도 기록해 둘만한 일들이 있었다.

함께 성당에 다니는 C 선배에게 공짜 자동차가 한대 생겼다. 1996년형 볼보 XC60 인데, 폐차 직전의 차를 지인분이 물려 주셔서 가까운 동네 상점으로 장보러 갈 때 쓰려는요량으로 받아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C 선배가 차에 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라는 사실이다. 운전면허도 없을 뿐더러, 자동차에 대한 두려움까지 가지고 있다. 몸도 작고 선도 얇은 천상 여자인 이 선배에게 덩치큰 고물 자동차는 일종의 새로운 골칫거리인 셈이다. 차의 상태는 엉망진창이었다. 트렁크는 닫히지 않고, 미러 세개는 모두 덜컹거려 고정이 되지 않았다. 엔진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배기구로 하얀 연기가 쉴새없이 나오고, 금방이라도 멈출 것 처럼 덜덜거렸다. C 선배의 여린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가뜩이나 할 일이 없어 한가했던 나는 연휴 내내 선배의 뒷꽁무니를 쫓아 다니며 이것저것 도와주게 됐다. 2년전 내가 다녔던 카센터와 등록센터, emission test 받는 곳등등.. 그때 당시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를 다시 한번 곱씹으며 한 단계 한 단계 소화하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 지금까진 별 문제없이 진행됐고 오늘이나 내일쯤 등록하러 가서 임시 번호판 받을 예정. 서류때문에 몇번 빠꾸를 먹었던 경험이 있어서 다시 한번 꼼꼼히 챙겨보라고 했다. C 선배가 워낙 치밀한 성격이라 별 걱정이 되지는 않지만, 자동차를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 그것도 미국에서 등록을 비롯한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려면 은근히 스트레스 많이 받는 것도 사실이다. 자동차 등록을 무사히 마치면 이제 운전연습을 시켜야 한다. 이 미션이 가장 어려울 것 같은데 부디 무사히 시험에 통과할 수 있기를..

피부가 무지 sensitive 해서 화장품을 선택할 때 항상 고생이 많다. 용기를 내서 바꿔 보면 피부가 뒤집어 지기 쉽상이다. 그래서 몇년전부터 쓰던 화장품을 그대로 쓰고 있다. 문제는 이제 그 화장품이 단종되었을 때 발생한다. 대체품을 빠른 시일내에 발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미국에서 와서 가장 크게 고생했던 것중 하나는 한국에서 쓰던 세안제 – 뉴트로지나 센서티브 폼 클렌져 (이거 쓰거나 말할때마다 정려원 생각나서 웃긴다) – 가 미국에서는 판매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시작한다. 스킨이나 로션은 적당히 대체품을 찾아서 문제가 없었지만, 이놈의 세안제는 도저히 비슷한 성능의 것을 미국에서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께 부탁드려서 조달받기도 하고 한국의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받아 보기도 했는데, 결국 미안함만 커져서 매번 신세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유일한 해결책은 한국에 잠깐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서울 시내에 있는 올리브영 매장을 샅샅이 훑으며 왕창 사가지고 오는 거였다. 그러던 중 세안제가 다 떨어진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몇시간동안 인터넷을 샅샅이 뒤진 끝에 한국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미국으로 배송해 주는 사이트중 딱 한군데에서 그 세안제를 판매한다는 사실을 발견, 부리나케 주문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다. 열흘이 훨씬 넘게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걸 보니 왠지 사기당한 것 같기도 하고..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 배송료가 더 나오던데.. 암튼 물건이 도착하기 전까지 나도 여기서 세수는 하고 살아야 하기에 더말로지카에서 나온 센서티브 스킨용 세안제를 하나 샀는데, 이게 폼클렌져가 아니라 클린징 젤 비슷한 거였다. -_- 비싸게 주고 산거라 매일 세수할때마다 울면서 쓰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family housing apt 로 학교에서 관리하는 일종의 기숙사 아파트다. 대학원생과 교직원들이 주로 거주한다. 여러개의 court 중 내가 살고 있는 단지는 1970년대에 건설된, 약간 낡은 곳이다. 그래도 여기 있는 아파트들중 가장 최신이긴 하다. 물론 여러번 리뉴얼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가끔 놀러가는 친구들 아파트에 비하면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한 예로 여기엔 disposal 이 없다. 그래서 한국처럼 매번 음식 쓰레기를 따로 모아 버려야 한다. 이게 은근히 귀찮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함을 상쇄하는 최고의 불편함이 있었으니, 바로 뜨거운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거다. 내 아파트만 그런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샤워를 하기 위해 물을 틀면 아주 뜨거운 온도부터 차가운 온도까지 지 멋대로  fluctuate 한다. 가장 최악의 순간은 갑자기 뜨거운 물이 전혀 나오지 않을 때다.  그것도 비누칠 다 하고 난 후에 그러면 아주 난감하다. 며칠 전에 그랬다. 성탄절을 맞아 경건하게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뜨거운 물이 전혀 나오지 않으며 엄청 찬물만 계속 나오는 거다. 비누칠을 다 한 상태라 중간에 멈출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무작정 기다려 봤다. 전에도 자주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오기가 생겨 누가 한번 이기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결국 내가 졌다. -_- 10분을 기다려도 20분을 기다려도 더운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벌거벗고 쭈그리고 앉아 더운물아 언제 나오니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처량해, 결국 팔자에도 없는 냉수 샤워를 한 다음 콜록거리며 방으로 돌아와 학교 서비스 센터에 분노의 이메일을 보냈다. 재밌는 건 아직도 수리하는 사람이 오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데 뜨거운 물은 이제 아주 잘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학교측에서 보일러를 끄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중앙 난방식이라 내가 어찌 컨트롤할 수도 없는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보일러를 조절하면 가뜩이나 생활 불규칙한 대학원생들은 이래 저래 골탕먹기 쉽상이다.

그래도 좋은 음악, 좋은 책들과 함께 하는 여유로운 연휴라 뭐 큰 불만은 없다. 요새 하는 일이라곤 일어나 요리하고 청소하고 인터넷하다가 책좀 읽다가 운동도  좀 하다가 음악도 많이 듣고, 그러고 있다. 스포츠 중계도 꼬박 꼬박 챙겨보고.

그리고 RSS 에 구독하는 블로그들을 좀 정리했다. 내 새로운 이론이 하나 있다. 이름은 ‘블로그-연애 correlation’. 연애를 시작하면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횟수가 뜸해진다. 연애를 하지 않고 지낸 시간이 길면 길수록 블로그에 더 애정을 많이 쏟는다. 블로그에 쓸 이야기들과 애인에게 늘어 놓는 수다가 일정 부분 겹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분석하고 싶다. 엄마나 친구에게 할 이야기들은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애인에게는 거의 대부분의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 굳이 블로그에 수다를 떨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이유로는 연애하느라 바빠서 컴퓨터앞에 가만히 앉아 자판을 두들길 시간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연애하는 쪽이 훨씬 더 본인에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불만도 없을 것이고. 물론 이 이론은 특정 이슈에 대해 전문가적인 견해를 늘어 놓는 소위 말하는 파워블로거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블로그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거나 유명세를 얻는 블로그들에게도 해당사항 없다.

아무튼, 요즘 내가 구독하는 블로그의 주인분들이 너무 뜸하시길래 별로 읽는 재미가 없었다. 다들 연애하니까 바쁘려니 한다. 연말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뭔가 묘하게 삐진듯 하다..) 그래서 새롭게 재미있어 보이는 블로그들을 몇개 뚫었다. 아직은 가벼운 호기심 정도로 구경하는 중.

11 thoughts on “연말 연휴.

  1. ㅋㅋㅋ 웃을일은 절대 아니지만 학교에서 찬물 샤워 스토리가 참..애절하기도 하면서 웃겨요. 흑. 이런게 오래된 건물의 비애이고 학생의 운명이겠죠? 빨리 따뜻해졌으면 좋겠어요!

    • 저는 정말 춥고 슬프고 외로웠어요. 학생때 이러니까 그나마 견딜만 하지, 나중에 정식으로 직장을 구하고도 이런 신세면 그 때는 정말 서글플 것 같네요.

    • 헉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시는 이라고 적으려고 했는데 이 몹쓸 자동수정기능 같으니–;

    • ㅠㅠ 저희 집은 아마 이혼을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전 아이폰의 자동완성 기능을 꺼 놓는답니다. 너무 이상한 쪽으로 완성을 시켜 주더라구요.

  2. 저는 연애 안 해도 블로그가 뜸해요. ㅎㅎㅎ
    책상 앞에 앉아 하릴없이 있을 시간이 생기면 아무래도 블로그를 만지작거리게 돼요.
    회사 갔다와서 녹초가 되어버린 몸으로 노트북을 연다는건 상상도 못할 일,

    화장품은 트러블이 났던 제품들의 성분표를 살펴봐요.
    분명 중복되는 어떤 성분 때문에 그럴거예요.
    저도 피부가 심하게 민감한 편이라 물갈이는 물론 맞지 않는 화장품은 바르고난 뒤
    3시간정도 지나면 팥알만한 뾰루지가 생겨서 화장품 선택이 어렵죠.
    생산라인이 거의 동일한 어떤 알 수 없는 회장품 회사 간의 카테고리가 있어서
    (이를테면 랑콤, 로레알 등의 회사들은 성분이 거의 비슷하대요.)
    그 분류만 잘 해낸다면 화장품 고르기가 한결 수월해질듯해요.
    체내에 흡수되거나 피부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건 자신이 공부하고 신경쓰지 않으면
    아무도 못 해주는거.^^(굉장히 세심한 애인이 있으면 모를까…-_-;;;)
    저는 SK II 계열의 화장품은 좀 과장해서 화장대에 놓기만 해도 트러블이 나는 정도.
    여튼, 공부가 필요해요.

    예전에 한번 트러블이 심하게 나서
    아벤느의 민감성용 클렌져를 써본 적이 있는데 괜찮았어요.
    한번 시도해봐요.
    온천수를 주재료로한 회사라 그렇게 큰 트러블은 일으키지 않을듯.

    • 오오 +_+
      수첩에 메모해 두었어요. 기억했다가 꼭 다음에 화장품 가게에 갈 때 점원에게 물어 볼게요. 내 친구가 이런 제품을 추천해 줬는데 한번 볼 수 있느냐, 하구요.

      화장품은 공부가 필요한 거군요! 제품간의 카테고리가 있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정말 화장품의 세계는 끝도 없이 광활하네요.

    • 헤헤. 베네피트, 키엘이나 오가닉 화장품들 (홀푸드에 있는)을 이용해보셔요.. 참고로 저는 베네피트 디어 존 로션 하나로 1년을 산답니다 ;)

      그나저나, 해피뉴이어!

    • sue 님도 결혼과 함께 하는 복된 새해 맞으시길..!

      베네핏과 키엘, 기억해 둘게요. 키엘은 좋다 좋다 이야기만 많이 들었고 베네핏은 파우더좋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로션도 한번 도전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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