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경조사

어제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스캇과 크리스 생일 파티를 해줬다. 생일 파티라고 해봤자 근사하지는 않고, 코스트코에서 질좋은 스테이크 고기를 사고 홀푸드에서 으깬 감자를 사서 야채와 함께 놓고 우걱 우걱 먹는 저녁식사였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사간 라즈베리 케잌 정도? 촛불도 준비하지 못해서 그냥 집에 있던 커다란 양초 한개 켜놓고 우격다짐으로 노래 불러 줬다. 아 참, 스캇과 크리스는 나이는 한살 차이가 나지만 생일은 이틀 정도 차이가 난다. 그래서 항상 한꺼번에 생일을 처리하곤 한다. 두 명 다 나처럼 생일을 기념하는 행위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따로 선물을 주고 받지는 않지만, “프리 푸드” 라면 사족을 못쓰는 친구들이기에 기쁘게 초대에 응해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오늘 다들 고향으로 떠났다. 닐과 마샤는 닐의 고향인 오클라호마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아침 일찍 출발했다. 5월에 결혼할 예정인데, 나는 누나의 결혼식과 겹쳐서 아쉽게 참석하지 못할 듯 하다. 스캇은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떠났다. 거기서 게임콕스의 풋볼 게임을 관람한 뒤 돌아올 예정이다. 한국 사람들도 제각각 미국에 있는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볼더를 떠났다. 볼더에 남은 사람이라고는 크리스와 나뿐이다.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했다. 파자마+위스키 파티를 할 생각인데 과연.. 우울하지나 않을런지. 우선 파자마부터 구해야 한다. (..)

지난 금요일에는 켄튼의 초대를 받아 켄튼 가족이 주최하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다녀왔다. 학교 친구들끼리 하는 격식없는 파티가 아닌, ‘어른’ 들이  주최하는 파티에는 처음 가봤는데,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리고 조금 많이 피곤했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정말 와인잔 하나 들고 여기 저기 돌아 다니면서 주구장창 수다만 떨더라. 켄튼 어머니께서 음식을 너무 많이 준비하셔서 처음에는 그거 주워 먹느라 정신없었는데 나중에 정신을 좀 차리고 소개 소개 받아가며 하나 둘씩 대화 상대를 늘려 가기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의 손님들이 켄튼 부모님 친구분들이어서 연배가 좀 있으셨다. 켄튼 친구들과 켄튼 동생 친구들이 젊은 편이어서 막판에는 함께 다트 게임도 하고 놀았다. 인상적이었던 건 딸내미가 평택에서 영어 교사를 한다며 말을 걸어온 중년의 백인 부부였다. 집에 가야 하는 늦은 시간까지 한참을 얘기했는데, 처음 만난 외국인과 가장 오래 대화한 게 아닌가 싶다. 내 경험상 교양을 갖춘 미국인의 대화 솜씨는 정말 예술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대방의 상황이나 입장을 철저히 고려하면서도 결코 소모적인 대화는 하지 않는다. 나중에는 북한 문제까지 나오면서 뭔가 심각해 지기까지 했다. 대화가 끝난 후 역시 한국인이라는 입장을 버릴 수 없다면 북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알싸한 감정도 약간 들었다.

그분들과 대화에서 나온 재미있는 이슈는 한국과 미국의 다른 경조사 풍경이었다. 결혼식과 장례식으로 한정지어서 이야기해도 분위기는 정말 많이 다르다. 한국의 결혼식이 빠른 시간내에 끝나고 다수의 축의금 전달이 중요한 이슈라면 미국의 결혼식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고 소수의 지인들만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우선 많이 다르다. “업 인 디 에어” 에서 결혼식을 보기 위해 멀리서 달려와 호텔을 잡고 며칠을 머무르는 모습이 등장한다. 주변의 결혼식을 보면 정말 그렇게 진행되는 것 같다. 5월에는 닐과 마샤의 결혼식이, 8월에는 켄튼과 제니의 결혼식이 열린다. 모두 초대를 받았지만 5월에 한국에 있는 관계로 켄튼의 결혼식에만 참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샤가 우크라이나 출신이기 때문에 사실 5월 부부의 결혼식에 더 가고 싶은 마음이 큰데, (대학원 친구들이 그만큼 더 중요할 것 같다. 켄튼은 게다가 콜로라도 로컬이라 여기에 친구가 득시글 거린다) 그러지 못해 아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크다.

스캇이 언젠가 술먹고 내게 그랬다. 너 결혼식하면 자기 꼭 초대해 주라고. 한국으로. 한국에서 한국의 풍습으로 결혼식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단다. 그래서 내가 “오징어를 네 얼굴에 씌우겠다” 라고 했더니 -역시나-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함을 미국인 친구에게 지우면 협상(?) 에서 조금 더 유리한 상황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럴드 동기들에게 내년 5월에 있을 누나의 결혼식에서 보자는 글을 남겼다. 나중에 주변에서 들어보니 결혼식에 당사자와 상관없는 사람을 초대한다는 건 축의금을 내라는 일종의 압력이라고 한다. 그래서 결혼하는 당사자와 상관없는 사람은 되도록 부르지 않는 것이 좋단다. 아차 싶었다. 나는 그냥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한국식 경조사에 익숙치 않기 때문에 발생한 실수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회사 생활을 하지 않고 건너오면 여러모로 서투른 점이 많다. 한국의 술자리 예절이나 경조사 문화같은 것들은 들을때마다 새롭고 신기하다. 가끔 어이없기도 하고.

아무튼 내년에 한국에 잠깐 들어갔다 올때는 정장을 한벌 챙겨서 와야 겠다. 3년차때부터는 프로그램에서도 가끔 정장을 입을 일이 있다고 한다. 논문 디팬스하거나 발표할 때 등등..

정장 입을 일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2 thoughts on “아메리칸 경조사

    • 이거 생각보다 굉장히 우울한거 아시죠? 여자가 없다거나 술에 취해서 꼬장부리면 완전 분위기 구려지구요. 함부로 참석 의사 밝히시면 안됩니다 ㅎㅎ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