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닉 캐러웨이는 중서부 출신으로 뉴욕에서 증권업에 종사한다. 그는 상류층은 잘 쳐다보지 않는 웨스트 에그에 거주하고, 그곳에서 매일 파티를 열어 사교를 즐기는 제이 개츠비와 전형적인 상류층 부부인 톰과 데이지 뷰캐넌 부부를 만난다. 닉 본인은 사교계의 flirt 조던 베이커에게 빠져 들고, 그는 바로 곁에서 개츠비가 어떻게 거짓된 삶으로 사람들을 현혹해 왔고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했으며 그렇게 형성된 재산을 이용해 과거의 사랑이었던 데이지를 되찾으려 하는지 목도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닉은 개츠비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끝까지 ‘친구’ 로서 남아 있게 된다. 개츠비와 데이지의 정사는 결국 톰에게 발각되고, 톰은 자동차 수리공 윌슨을 교사해 개츠비를 죽이고 아내를 되찾는다. 닉은 개츠비의 죽음 후 그의 장례식을 주관하고, 조던에게 버림받은 후 뉴욕을 떠나 본인의 고향인 중서부로 돌아간다.

팽귄 클래식 번역으로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었다. 수험생 시절 공부하기 싫다는 핑계로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읽었던 게 벌써 십년도 더 된 기억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만큼, 이제 작품의 화자인 닉의 나이에 가까워진 지금, 개츠비를 읽는 느낌은 많이 달라졌다.

이 작품이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하며 또 아름다운지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이 처음 발간된지 약 85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이 작품에 대해 다시 이야기한다는 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 를 지닌 고전의 미덕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끔 한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대로 작품의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허투루 읽을 부분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짧은 기간동안의 한 사건에 집중하면서 중편에 가까운 구성 양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사회의 공기를 오롯이 담아내는데에 한치의 오차도 없는 치밀함을 보여준다. 이스트 에그와 웨스트 에그로 대비되는 공간 개념부터 주인공 닉이 처한 위치,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 모두가 전후 ‘버블’ 이 극으로 치달았던 당시 미국 사회의 술에 취한 듯한 사회상을 정확하게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 닉과 개츠비는 뉴욕 출신이 아닌, 중서부 출신으로 “상류 사회가 덜 선호하던” 웨스트 에그로 상징화된다. 전통적인 뉴욕 상류층 출신인 톰과 데이지 부부는 이스트 에그로 상징화된다. 이 두 집단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당시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던 집단 허영심과 도덕적 공황상태를 충실하게 대변한다. 톰에게 이용당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마는 하류층 윌슨까지 동원되어 사회의 모습을 묘사해 낸다. 계층간 대립과 계층 내부의 부패, 그리고 그 계층 구조의 덧없음까지 문장 한땀 한땀에 진하게 베어 나온다.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잔인한 좌절의 늪으로 몰고 간 것일까? 돈과 자본주의 사회, 소유에 대한 집착과 욕망, 보여지는 것에 대한 굴복과 물질에 대한 복종. 그 모든 것이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적절한 지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우리는 개츠비와 닉이 빠졌던 늪에서 완벼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 개츠비는 데이지앞에서 참으로 낭만적이었고 철이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었으면서도, 재산 형성 과정에 있어서는 완벽에 가까운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그의 비뚤어진 욕망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데, 혹 우리는 그와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즉 왜곡된 가치를 스스로에게 주입해 그릇된 자기 정당화를 가져오지 않는가 말이다.

책에는 작품에 대한 대단히 좋은 해설인 토니 태너의 서문과 에스콰이어에 연재되었던 피츠제럴드의 수필 무너져 내리다 가 함께 수록되어 그의 문학적 배경을 짐작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이만식 옮김. 2009년 1판 3쇄. 팽귄 클래식 코리아.

Girls: Broken Dreams Club (EP)

2009년 가장 인상적이었던 데뷔 앨범중 하나였던 Album 이후 나온 그들의 EP다.  여섯곡이 수록되어 있고, 여전히 아름다운 팝송을 노래하고 있다. 다만 약간의 변화가 감지되는데,  곡 단위로 끊어지는 달콤 쌉사름한 팝송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모음집’ 형태가 데뷔 앨범이었다면 새로 나온 EP 는 조금 더 공통적인 정서를 향유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약간은 더 정서적으로 무거워진 느낌이고, 형태상으로도 단순한 팝의 형태가 아닌, 록의 방법론을 많이 참고한 느낌이다. 이드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가 단지 “아름다움” 뿐만이 아닌, 현실의 씁슬함에 기인한 외로움과 공허함이라는 점은 7분이 넘는 “Carolina” 에서 보다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대단히 훌륭한 선율과 훅을 가지고 있고, 매 곡이 뛰어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 했던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다.

작년에 학교옆 크지 않은 규모의 공연장에서 본 Girls 의 공연은 내가 미국에서 본 공연들중 최고로 썰렁했다. 관객은 절반도 차지 않았고, 그나마 호응도 그저 그랬다. 미국처럼 음악이 많이 사랑받는 나라에서도 이들의 입지가 아직 확실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개인적으로 무척 안타까웠다. 아직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지고 있지 못한 거겠거니 싶기도 했고, 데뷔 앨범 달랑 한장만을 내 놓은 채 전국 투어를 돈다는 사실이 약간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 당시 오프닝 밴드는 Dum Dum Girls 였는데, 이젠 그들도 어엿히 뛰어난 데뷔 앨범을 내놓고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EP 가 그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 큰 공헌을 할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현재 인디팝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확인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Avi Buffalo: Avi Buffalo

캘리포니아 롱비치 출신의 4인조 밴드로 Avigdgor Zahner-Isenberg 이 고등학교 2학년때 결성했다. 밴드 멤버 대부분이 아직 19세일 정도로 젊은데, 이런 면에서는 the xx 를 떠올리게 하나 사운드를 비워내지 않고 꽉 채우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는 상이하다. 우연한 기회에 전문 엔지니어의 눈에 띄어 그의 스튜디오를 이용해 몇곡을 녹음할 수 있었고, Sub Pop 의 눈에 띄어 2009년 첫 싱글을 발매할 수 있었다. 이어진 데뷔 앨범은 2010년 4월에 발매됐다. 여러 평단에서 상찬을 받을 정도로 나이에 비해 성숙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Wilco 가 닦아 놓은 2000년대 미국 인디씬의 정서에 Shins 와 Built to Spill 의 음악을 믹스해 놓은 느낌이다. 쟁글거리는 기타에 보컬 Zahner-Isenberg 의 팔세토 창법이 어우러져 깔끔한 인디팝 앙상블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같은 웨스트코스트 출신의 Morning Benders 가 연상되는 곡들도 있다. Shins 보다는 약간 더 따뜻한 느낌이 든다는 얘기다. 동부의 Freelance Whales 와 같은 아기자기한 사운드가 주는 재미도 있다.

Beach Fossils: Beach Fossils


Beach Fossils 는 브루클린에서 결성된 3인조 밴드로, 프론트맨 Dustin Payseur 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그의 홈메이드 솔로 프로젝트에 기반을 둔 싱글을 2009년 발표했고 이후 2010 년 Pop Frenzy 레이블을 통해 정식 데뷔 엘범이 발매됐다. 단순한 리프를 반복하는 리버브를 잔뜩 먹인 기타, 80년대를 연상시키는 드럼 비트, 공허한 듯 세상사에 관심없는 듯 힘없이 내뱉는 보컬은 2010년의 영미 인디팝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특징이자 징후이고, Beach Fossils 는 그런 트렌드의 중심에서 가장 인상깊은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The Cure 와 Jesus and Mary Chain 의 영향력이 강하게 연상되는 가운데 Surfer Blood 와 the Drums 같은 동년배들의 음악까지 거론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Best Coast 의 남성보컬 버젼이 아닐까 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앨범에 대한 리뷰에서 “worry-free music” 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썼는데 세상사에 대한 관심보다는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듯한 가사와 그에 상응하는 내재적인 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한 거의 정확한 묘사일 것이다. 요즘 꽂혀서 자주 듣는 앨범이다. 물흐르는 듯한 플로우가 아름다운 멜로디와 합쳐져 슈게이징 음악의 매력을 극대화시킨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바람의 그림자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5.

다니엘이라는 소년이 있다. 어릴적 어머니를 잃은 이 어린 소년은 서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간 ‘잊혀진 책들의 묘지’ <바람의 그림자> 라는 소설을 발견하고 이내 매혹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악마의 이름을 가진 라인 쿠베르라는 얼굴없는 이가 이 소설의 저자인 훌리안 카락스가 쓴 모든 소설을 불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소년은 수수깨끼의 인물인 훌리안 카락스의 정체를 찾아 나가기 시작한다. 소년의 십대는 카락스라는 인물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으로 압축된다. 그의 주변에 카락스를 알고 있는 점점 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게 되고, 다니엘은 스스로의 성장과 함께 카락스에게로의 접근도 점차 완성해 간다.

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짧고 간략하게 정리하기 위해 노력해본다. 먼저 이 소설은 여러모로 영화의 시나리오나 연극을 위한 희곡을 연상시키는데, 이 소설의 저자인 사폰이 영화계에 몸담았고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이 소설을 마치 영화화되기 전의 원작소설과 같은 느낌으로 쓰고 있다. 모든 장면에 대한 세세한 묘사와 스릴러적인 긴장감을 조성하는 네러티브 구조는 전통적인 소설의 형식이라기 보다는 두시간짜리 영화를 위한 짧은 호흡의 기승전결에 가깝다. 십대 소년의 성장기와 미지의 인물에 대해 한꺼풀씩 벗겨 내는 스릴러 구조의 묘한 대구는 퍽 명민한 구성방식이다. 카락스는 다니엘의 거울이고, 다니엘은 카락스의 복제판이다. 유치할 정도로 세부적인 묘사를 통해 이 두명의 과거와 현재를 대구로 연결시키면서 한 소년이 호기심 가득한 철부지 어린 아이에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역사를 반복하는 주체가 될 때까지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너무 영화적이고 또 시각적이어서 사실 소설을 읽는 맛을 크게 느끼기는 어렵다. 단어 하나 하나에 집착하지 않고 빠르게 읽어 나가도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결코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불필요한 문장들이 넘쳐 나는데, 이 문장들이 문학적인 완성을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영화적인 구성을 위해 쓰인다는 점을 알고 나면 더더욱 글자들에 집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흡인력은 아주 강한 편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갈구하는 정보들은 적당한 긴장감을 유도한 뒤 아주 솔직하게 던져 주는 편이다. 독자는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카락스와 다니엘이 결국 같은 운명을 반복할 것임을 알고 있고, (웰메이드 무비로서 기능하고자 한다면) 소설의 결말은 그 기대를 살짝 비틀면서 헤피엔딩으로 끝마치게 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읽는 내내 지루함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읽으면서 영화 <타인의 삶> 이 계속 생각났다. 이래저래 비슷한 점이 많다. 전후 세대의 공허한 정서를 타인에 대한 집착과 광기로 풀어 내고 -다시- 타인에 대한 숭고한 희생으로 극복하게 된다는 기본적인 정서가 우선 그렇고, 영화의 결말과 아주 유사한 형태의 결말이 그러하며, 결말 부분에 이르러 얻게 되는 뭉클한 감동의 유사함이 그러하다. 영화 <타인의 삶> 도 그렇고 소설 <바람의 그림자> 도 그렇고 굉장히 잘 만든 상업적인 목적을 가진 완성된 예술작품같다.

개인적으로 그 어떤 등장인물로부터도 ‘감정’ 을 느낄 수 없었는데, 굉장히 평면적으로 묘사된 캐릭터에 기인하기 때문일 것이다. 등장인물의 표정이나 몸짓, 성격등은 너무 명확하고 또렷하게 각인되지만 그 인물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고통의 심연에 대한 묘사는 아주 직설적이고 투박한 어체로 표현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묘사된 행동들을 통해서 저 인물의 심리상태는 이렇겠구나, 하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명확한 줄거리와 기승전결, 확실한 긴장감과 그에 어필하는 뚜렷한 결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좋아할 만한 작품이고,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심리 묘사나 철학적인 사색, 조금 더 역사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관찰하는 쪽을 선호한다면 그럭 저럭 읽어 나갈 수 있는 소설같다.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읽은 – 한글로 번역된 – 픽션이어서 그런지 기대보다 못한 게 사실이다. 나는 속도가 약간 떨어지더라도 성실하고 깊숙히 들어가는 문장들이 얽혀 있는 책이 좋다. 이 책은 내게 너무 빠르고 급한 감이 있었다. 얼른 – 방학이 끝나기 전에 – 다른 작품을 읽어야 겠다.

씨네 21에 하도 광고가 많이 나와서 대체 뭐길래, 하는 호기심에 제목을 기억했다.

마루야마 마사오, 가토 슈이치: 번역과 일본의 근대

마루야마 마사오, 가토 슈이치 지음, 임성모 옮김, 도서출판 이산, 2009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일본의 역사에 기대고 있는 점이 많은데, 그중 가장 뼈아픈 것중 하나가 일본의 번역 문화에 대한 비판적 수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식민지화 과정을 통해 서구 문명과의 접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슬픈 역사적 사실을 뒤로 하고서라도 해방 이후 한국 사회가 과연 일본의 메이지 시대만큼이나 번역에 대해 신중하고 논리적으로 접근했는지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 한국에서 출판되는 많은 외국 서적들이 일본의 번역 문화를 그대로 한국말로 바꿔치기 하고 있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최근 일련의 반성과 비판을 통해 한국의 번역 문화도 나름의 정체성을 획득해 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일본의 번역 문화가 세부적으로 어떤 역사점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반면교사의 자세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분명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일본의 두 석학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책은, 일본근대사상대계 프로젝트의 일환인 <번역의 사상> 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기록된 담화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담화의 목적은 몸이 불편한 마루야마 마사오의 집에 가토 슈이치가 찾아가 문답을 통해 책의 일부분을 완성하는 것이었으나 단순한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두 석학이 적극적인 토론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학문적 탐색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점 몇가지를 기록하고자 한다.

첫째, 메이지 유신 이전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타국의 문화를 ‘다름’ 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1750년경, 그러니까 에도시대부터이다. 그 전까지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중국문화조차 다른 문화로 인식하지 않았다. 때문에 ‘사전’ 따위의 서적이 존재할리 만무했으며, 세상에는 오직 일본어만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아규 소라이등의 유학자들에 의해 비교 언어학/ 비교 문법학이 비로소 출발하게 되고, 다른 ‘문화’ 의 가능성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페리호 사건등을 통해 강제적인 개항이 이루어 진 뒤 일본은 철저하게 서양문화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한다. 책의 저자들은 서구 서적에 대한 번역은 이러한 따라잡기 과정의 일환으로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중국과 아주 오래전부터 교류해 왔지만 실질적인 접촉은 거의 없었던 반면, 서구 문명은 아주 짧은 시기에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그 존재를 각인시켰다. 일본은 중국을 가깝지만 존재하지 않는 타자로 인식한 반면 서구 문명은 멀지만 실재하는,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타자로 인식했다. 적극적인 번역의 움직임은 이러한 인식의 전환에서 출발한다.

메이지 시대 초기의 번역은 크게 세가지 방법으로 이루어 졌다. 이 시대의 번역은  중국의 한자 문화권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데, 초기에 가장 널리 쓰였던 방법은 기존에 사용하던 한자를 조합해 번역에 재사용하는 것이다. 둘째 방법은 이전에 사용하던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되 그 의미를 달리 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신조어를 새롭게 창조해 내어 번역에 응용하는 것이다. 메이지 10년 전후로 첫번째 방법에서 두번째, 세번째 방법으로의 전환이 급격하게 일어나는데 이를 책에서는 중국문화로부터의 실질적인 독립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본은 개항 이전까지 철저한 유교 문화권 아래 있었고, 때문에 번역 과정에서 서구문명의 완전히 새로운 개념들을 받아들이는 데에 애를 먹었다. 예를 들어 society 를 초기에는  ‘정부’ 로 번역했다가 시간이 흐른뒤에야 비로소 ‘사회’ 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이는 메이지 이전 일본에 ‘사회’ 라는 서구식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마루야마는 일본에는 없고 서구 사회에는 있었던 중요한 두가지 개념으로 ‘인민 독립의 정신’ 과 ‘과학관’ 이라고 지적한다. 때문에 ‘민권’ 이라는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 영,미,독의 법조항들을 번역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고, 이 과정을 극복하면서 급진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학에 있어서도 특히 화학쪽에 대한 번역이 활발했는데, 이는 당시 일본의 주력 수출 품목이 섬유업이었다는 점에서 바라봐도 흥미롭고, 일본이 기대고 있던 유학의 음양오행설에 전적으로 반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도 재미있다. 즉 성분과 성분을 결합해 새로운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 진 것이다. 뒤이어 수용하게 되는 다윈의 진화론이라던가 원자설같은 것도 같은 논리.

중요한 점은 당시 일본의 식자층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는 점이다. 즉 사람들은 한자를 읽지는 못해도 일본어는 읽을 수 있는 수준은 대부분 갖추고 있었고, 번역 출간이 본격화되면서 영일 사전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즉 짧은 시간에 일본인들은 서구 문명에 대한 이해를 급격하게 높일 수 있었고, 당시로선 대단히 충격적일 수 있었던 많은 이론들을 폭넓게 접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결과로 계층간 갈등도 빈번하게 발생했는데, 좋은 예로는 서구 사회에 존재하지 않던 무사 계층이 번역의 확대로 인해 실제로 소외받게 된 것이다. 메이지 체제는 번 체제를 현 체제로 전환하는 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지만 무사 계층을 없애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리고 번역 초기 아직 남아있던 ‘국체론’ 이 서서히 쇠퇴하고 개개인에게 각각의 권리가 있다는 계몽 운동이 서서히 활발해 지는 것도 일정 부분 번역의 영향권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2007년 계절학기로 한국현대사를 수강하던중 강사분께 이 책을 추천받고 그 뒤로 계속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고 있다가 최근에 와서야 겨우 읽게 됐다. 아직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통계 자료를 구할 수 없는데 만약 구할수만 있다면 흥미로운 리서치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번역 문화와 사회적 변화를 계량적으로 풀어내는 시도가 전에 있었나 싶다.

연말 연휴.

나름 차분하게 잘 보내고 있다. 특별히 무슨 사건이 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심심하고 재미없게 지나가지도 않았다. 원래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심심한 것을 잘 모르는 성격이라 가끔 밖에 나가 사람들 만나는 것만으로도 연휴기간동안의 대인관계는 다 했다 싶다. 방학이 시작되고 처음 며칠은 그냥 정신없이 퍼질러져 있었고, 그 후 며칠은 개인 신상과 관련된 일에 잠깐 집중했다가 그 다음부터 지금까지는 정말 차분하고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 이제 크리스마스 연휴는 끝났고,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을 열었으니 나도 다시 글자들을 들여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학기가 끝나면 종이나 활자, 혹은 컴퓨터같은 것들에 질려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멍하니  티비만 보고 있거나 아이폰만 만지작거리면서 시간을 허비하기 일쑤다. 겨울방학은 그래서 더 짧게 느껴진다. 다음 학기를 무사히 보내기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원기를 회복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학기에 대한 스트레스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는 것이 아깝기도 하다. 평소 읽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읽지 못한 책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다시 컨디션을 끌어 올려서 부지런하게 살아야 겠다.

약 세가지 정도 기록해 둘만한 일들이 있었다.

함께 성당에 다니는 C 선배에게 공짜 자동차가 한대 생겼다. 1996년형 볼보 XC60 인데, 폐차 직전의 차를 지인분이 물려 주셔서 가까운 동네 상점으로 장보러 갈 때 쓰려는요량으로 받아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C 선배가 차에 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라는 사실이다. 운전면허도 없을 뿐더러, 자동차에 대한 두려움까지 가지고 있다. 몸도 작고 선도 얇은 천상 여자인 이 선배에게 덩치큰 고물 자동차는 일종의 새로운 골칫거리인 셈이다. 차의 상태는 엉망진창이었다. 트렁크는 닫히지 않고, 미러 세개는 모두 덜컹거려 고정이 되지 않았다. 엔진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배기구로 하얀 연기가 쉴새없이 나오고, 금방이라도 멈출 것 처럼 덜덜거렸다. C 선배의 여린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가뜩이나 할 일이 없어 한가했던 나는 연휴 내내 선배의 뒷꽁무니를 쫓아 다니며 이것저것 도와주게 됐다. 2년전 내가 다녔던 카센터와 등록센터, emission test 받는 곳등등.. 그때 당시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를 다시 한번 곱씹으며 한 단계 한 단계 소화하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 지금까진 별 문제없이 진행됐고 오늘이나 내일쯤 등록하러 가서 임시 번호판 받을 예정. 서류때문에 몇번 빠꾸를 먹었던 경험이 있어서 다시 한번 꼼꼼히 챙겨보라고 했다. C 선배가 워낙 치밀한 성격이라 별 걱정이 되지는 않지만, 자동차를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 그것도 미국에서 등록을 비롯한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려면 은근히 스트레스 많이 받는 것도 사실이다. 자동차 등록을 무사히 마치면 이제 운전연습을 시켜야 한다. 이 미션이 가장 어려울 것 같은데 부디 무사히 시험에 통과할 수 있기를..

피부가 무지 sensitive 해서 화장품을 선택할 때 항상 고생이 많다. 용기를 내서 바꿔 보면 피부가 뒤집어 지기 쉽상이다. 그래서 몇년전부터 쓰던 화장품을 그대로 쓰고 있다. 문제는 이제 그 화장품이 단종되었을 때 발생한다. 대체품을 빠른 시일내에 발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미국에서 와서 가장 크게 고생했던 것중 하나는 한국에서 쓰던 세안제 – 뉴트로지나 센서티브 폼 클렌져 (이거 쓰거나 말할때마다 정려원 생각나서 웃긴다) – 가 미국에서는 판매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시작한다. 스킨이나 로션은 적당히 대체품을 찾아서 문제가 없었지만, 이놈의 세안제는 도저히 비슷한 성능의 것을 미국에서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께 부탁드려서 조달받기도 하고 한국의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받아 보기도 했는데, 결국 미안함만 커져서 매번 신세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유일한 해결책은 한국에 잠깐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서울 시내에 있는 올리브영 매장을 샅샅이 훑으며 왕창 사가지고 오는 거였다. 그러던 중 세안제가 다 떨어진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몇시간동안 인터넷을 샅샅이 뒤진 끝에 한국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미국으로 배송해 주는 사이트중 딱 한군데에서 그 세안제를 판매한다는 사실을 발견, 부리나케 주문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다. 열흘이 훨씬 넘게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걸 보니 왠지 사기당한 것 같기도 하고..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 배송료가 더 나오던데.. 암튼 물건이 도착하기 전까지 나도 여기서 세수는 하고 살아야 하기에 더말로지카에서 나온 센서티브 스킨용 세안제를 하나 샀는데, 이게 폼클렌져가 아니라 클린징 젤 비슷한 거였다. -_- 비싸게 주고 산거라 매일 세수할때마다 울면서 쓰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family housing apt 로 학교에서 관리하는 일종의 기숙사 아파트다. 대학원생과 교직원들이 주로 거주한다. 여러개의 court 중 내가 살고 있는 단지는 1970년대에 건설된, 약간 낡은 곳이다. 그래도 여기 있는 아파트들중 가장 최신이긴 하다. 물론 여러번 리뉴얼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가끔 놀러가는 친구들 아파트에 비하면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한 예로 여기엔 disposal 이 없다. 그래서 한국처럼 매번 음식 쓰레기를 따로 모아 버려야 한다. 이게 은근히 귀찮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함을 상쇄하는 최고의 불편함이 있었으니, 바로 뜨거운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거다. 내 아파트만 그런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샤워를 하기 위해 물을 틀면 아주 뜨거운 온도부터 차가운 온도까지 지 멋대로  fluctuate 한다. 가장 최악의 순간은 갑자기 뜨거운 물이 전혀 나오지 않을 때다.  그것도 비누칠 다 하고 난 후에 그러면 아주 난감하다. 며칠 전에 그랬다. 성탄절을 맞아 경건하게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뜨거운 물이 전혀 나오지 않으며 엄청 찬물만 계속 나오는 거다. 비누칠을 다 한 상태라 중간에 멈출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무작정 기다려 봤다. 전에도 자주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오기가 생겨 누가 한번 이기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결국 내가 졌다. -_- 10분을 기다려도 20분을 기다려도 더운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벌거벗고 쭈그리고 앉아 더운물아 언제 나오니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처량해, 결국 팔자에도 없는 냉수 샤워를 한 다음 콜록거리며 방으로 돌아와 학교 서비스 센터에 분노의 이메일을 보냈다. 재밌는 건 아직도 수리하는 사람이 오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데 뜨거운 물은 이제 아주 잘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학교측에서 보일러를 끄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중앙 난방식이라 내가 어찌 컨트롤할 수도 없는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보일러를 조절하면 가뜩이나 생활 불규칙한 대학원생들은 이래 저래 골탕먹기 쉽상이다.

그래도 좋은 음악, 좋은 책들과 함께 하는 여유로운 연휴라 뭐 큰 불만은 없다. 요새 하는 일이라곤 일어나 요리하고 청소하고 인터넷하다가 책좀 읽다가 운동도  좀 하다가 음악도 많이 듣고, 그러고 있다. 스포츠 중계도 꼬박 꼬박 챙겨보고.

그리고 RSS 에 구독하는 블로그들을 좀 정리했다. 내 새로운 이론이 하나 있다. 이름은 ‘블로그-연애 correlation’. 연애를 시작하면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횟수가 뜸해진다. 연애를 하지 않고 지낸 시간이 길면 길수록 블로그에 더 애정을 많이 쏟는다. 블로그에 쓸 이야기들과 애인에게 늘어 놓는 수다가 일정 부분 겹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분석하고 싶다. 엄마나 친구에게 할 이야기들은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애인에게는 거의 대부분의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 굳이 블로그에 수다를 떨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이유로는 연애하느라 바빠서 컴퓨터앞에 가만히 앉아 자판을 두들길 시간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연애하는 쪽이 훨씬 더 본인에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불만도 없을 것이고. 물론 이 이론은 특정 이슈에 대해 전문가적인 견해를 늘어 놓는 소위 말하는 파워블로거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블로그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거나 유명세를 얻는 블로그들에게도 해당사항 없다.

아무튼, 요즘 내가 구독하는 블로그의 주인분들이 너무 뜸하시길래 별로 읽는 재미가 없었다. 다들 연애하니까 바쁘려니 한다. 연말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뭔가 묘하게 삐진듯 하다..) 그래서 새롭게 재미있어 보이는 블로그들을 몇개 뚫었다. 아직은 가벼운 호기심 정도로 구경하는 중.

아이유: 옛사랑


이 영상에서 심수봉의 재림을 봤다면 약간 오바인가?

하지만 대단히 놀라운 건 분명한 사실이다. 단순히 가창력의 문제가 아니라, 노래의 감성을 담아내는 능력이나 그 분위기가 이미 아이돌의 그것을 뛰어 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싱어’ 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곡을 받아 부르더라도 자기만의 색깔로 표현해 내는 ‘아티스트’ 나 ‘뮤지션’ 으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한 것이다.  김광석이 부른 대부분의 노래가 자작곡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반드시 싱어송라이터가 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닐 것이다. 이 노래에 한정지어 이야기한다면, 이미 이문세라는 걸출한 아티스트가 이곡이 자기 노래라는 것을 대중에게 완전히 각인시킨 상태에서 별다른 편곡도 없이 목소리만으로 이정도로 느낌을 달리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훈련 혹은 천부적인 감각이라고밖에는 추측할 수 없을 듯.

아직은 원석에 가까운 것 같은데,  미래에 어떤 프로듀서와 작곡가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이 어린 스타의 커리어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는데 이 영상을 보면서 어제 갑자기 머리를 강하게 때려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나도 이제 “아이유 위주로 갑시다!” 라고 외쳐야 하는건가? (..)

Titus Andronicus: The Monitor

 

Titus Andronicus 는 브루스 스프링스턴과 홀드 스테디의 계보를 잇는, Blue Colored American Rock 의 후계자다. 펑크와 하드록에 기반한 straightforward 한 사운드에 컨트리와 블루스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홀드 스테디의 후계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운드의 비슷함뿐만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에 기반한  가사와 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씁슬한 현실” 에 대한 정서가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The Monitor’ 는 이들의 두번째 full-length album 이다. 미국 남북전쟁을 테마로 삼고 있는 컨셉트 앨범인데, 역사적인 사건을 단순히 기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당시 상황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고 노력한다. 사회적 사건에서 받은 영감을 개인적 감정과 연결시켜 다시 현대 사회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는 식이다. 예를 들어 그 당시 링컨이 “I am now the most miserable man living” 이라고 말했다면, 이건 Titus Andronicus 의 노래에서는 그당시 상황에 대한 묘사로 끝나는 게 아니라 2010년 미국의 장기 경기 침체와 그로 인해 직장을 잃은 일용직 노동자들의 삶과 연결된다. 지금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한 일종의 메타포로 활용하는 셈이다. 선배 뮤지션들과의 호흡도 긴밀한 편인데,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이름은 앨범의 첫곡과 마지막 곡의 노랫말에 댓구처럼 등장하고, 홀드 스테디는 앨범 제작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앨범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14분짜리 대곡 “The Battle of Hampton Roads” 를 듣다 보면 이들이 참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 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앨범 전체적으로 역사적인 레퍼런스가 많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특유의 스토리텔링에 기반한 가사때문에 이해가 크게 힘들지는 않다. 칸예 웨스트의 새앨범에 대한  미국 인디록의 화답이라고 할 정도로 꽉찬 65분짜리 컨셉트 앨범이다.

Titus Andronicus 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중 하나로 알고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중 잔인하기로 유명해서 인기는 별로 없었다고. ‘The Monitor’ 는 남북전쟁 당시 활약했던 미국의 함선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Wild Nothing: Gemini

 

Wild Nothing 의 데뷔 앨범에 대한 호평은 예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앨범 재킷에서 느껴지는 묘한 섬뜩함때문에 구입하기를 망설이기를 몇번, 최근에야 겨우 맘먹고 샀다. 그리고 최근 가장 인상깊게 듣고 있는 음반중 하나가 됐다. 버지니아 로컬쪽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Jack Tatum 을 중심으로 2009년 결성된 이 밴드는 2009년까지의 작업들을 정리해 ‘Summer Holiday’ 라는 싱글 형태로 발매했고, 올해 ‘Gemini’ 라는 타이틀로 데뷔앨범을 발매했다. -“Summer Holiday”는 데뷔 앨범에도 수록되어 있다-마치 80년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듯한 이들의 음악은 ‘아름답다’ 라는 말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슈게이징과 신스팝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는데 스톤 로지스를 비롯한 매드체스터 사운드도 연상이 된다. The Pains of being pure at heart 가 조금 더 세련된 감성으로 슈게이징에 집중하고 있다면 Wild Nothing 은 조금 더 복고적인 지향점을 가지는 듯 하다. 언급되는 선배 밴드로는 블랙 템버린, 파스텔즈, 벨엔 세바스챤등이 있고, 동년배들중에 비교되는 밴드로는 앞서 언급한 페인스 오브 빙 퓨어 엣 허트와 레디오 뎊트, 아틀라스 사운드등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콕토 트윈스와 토터즈등의 드림팝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처럼 느껴진다.

Gemini 는 별자리중에 쌍둥이 자리라고 한다.  처음 알았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