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연휴.

thanksgiving break 가 시작하자마자 그 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잠시 여행을 다녀 왔다. steamboat springs 라는 곳에서 1박, aspen 에서 2박을 하고 돌아 왔다.

스팀보트에는 단지 그 곳에 아주 좋은 hot spring 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정말 좋았다. 비포장 도로를 몇십분 올라 가야 겨우 나오는 첩첩 산중의 계곡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이것이 신선놀음이구나 싶더라. 온천은 태어나서 처음 가봤는데, 물에 들어가는 걸 싫어해서 그런지 물속에 오래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몸은 참 좋은데 장시간 물속에 있으려니 쉽게 피곤해 졌다.

아스펜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라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땐 스키장이 개장하기 직전의 비수기여서 인적이 드물었다. 덕분에 사람에 치이지 않고 잘 지내다 왔다. 아스펜 뒷산으로 등산도 하고 아스펜가는 길에 있는 glenwood springs 에서 (또) 온천도 즐겼다. 이러다 온천에 맛들이는 건 아닌지, 후후. 볼더 근처에도 idaho springs 라는 온천 관광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로 한시간 정도면 가는데, 겨울 방학에 한번 가볼 참이다. 재밌는 건 미국에 와서 구경 한번 못해본 유명한 명품샵들이 이 조그만 동네에 다 모여 있다는 거다. 정말 평균 소득이 높은 사람들만 모여 사는 건지, 관광지라서 이런 명품샵들이 모여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번 여행에서 콜로라도에도 정말 좋은 곳들이 많다는 걸 새삼스레 다시 깨달았다. Vail 이나 Winter Park 같은 아주 질좋은 스키장부터 아스펜같은 사계절 관광지, 그리고 Gargen of the god 같은 자연 그대로를 즐길 수 있는 곳까지, 가볼만한 곳들이 많은 것 같다. 천성이 게으른 나머지 엉덩이가 의자에서 잘 떨어지질 않는데 조금은 더 노력해서 여기저기 다녀볼만 하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는 콜로라도가 참 광활한 곳이라는 건데, 볼더에서 아스펜까지 차로 네시간 정도 걸리더라. 나의 1일 최대 운전 시간은 두시간,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세시간 정도로 늘렸다. 점점 운전에 대한 한계를 늘려 가는 중.

추수감사절 연휴 직전 자동차를 수리했다. 히터가 되질 않아 맡겼더니 엔진 자체를 수리해야 한다고 했다. 도함 1100불 정도가 나왔다. 한달 월급이 통째로 날라가 버린 셈이다. 덕분에 조금은 여유롭게 살았던 살림살이가 다시 쪼그라 들었다. 저축은 꿈도 못꾸고 한달을 버티는 것이 목표인 생활만 벌써 햇수로 3년째다. 이제 슬슬 이런 생활에 익숙해 질만도 한데 역시 돈이란 게 사람을 참 간사하게 만들더라. 히터가 빵빵하게 나오고 엔진도 정상으로 돌아온 건강한 차를 보면서 얼른 팔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제 차에 정이 많이 들어서 참 감정적으로 힘든 일 같은데, 경기가 어려울 때에는 고정 자산을 처분해서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는게 위기를 극복하는 근시안적 대책이라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차말고 다른 거 먼저 팔거 없나 하고 집을 둘러보니 쓰지 않는 티테이블 하나와 불지 않는 클라리넷이 있었다. 이걸 팔면 얼마나 받을까? 하는 생각부터 드는 걸 보니 이제 가난이 제법 몸속 깊숙히 파고든 모양이다.

연휴가 끝나면 2주후 학기가 끝난다. 다시 말하면 연휴기간동안 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다는 거다. 전학가는 문제부터 다음주에 있을 기말고사와 파이널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해야 하고 히스토리 텀페이퍼도 얼른 써야 한다. 마음이 바쁘니 내일 저녁에 식사 같이 하자는 초대를 두건이나 받았는데도 마음이 기쁘지가 않다. 오늘도 아침부터 하루종일 학교에 있었는데 평소에는 시끌벅적한 대학원생 오피스 복도가 참 고요했다. 교수님들과 교직원들만 한가로이 떠드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 왔다. 늘 가난한 이 마음은 겨울방학이 되면, 조금은 나아질까?

그제는 어머니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집안에는 늘 별일이 없고, 서울과 가까운 곳에는 사람이 포탄에 맞아 죽어가지만 모자 사이에 흐르는 대화는 늘 서로에 대한 걱정과 안부뿐이다. 김치가 떨어졌냐고, 다시 보내주겠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와 아픈 사람은 없는지 친척들 이름 하나 하나까지 끄집어 내며 물어보는 아들 사이에는 늘 같은 방식과 내용의 대화가 진행되지만 한번도 지루한 적이 없다.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겨울방학에 그냥 볼더에 머물러 있기로 결정했다. 첫째 이유는 역시 돈때문인데, 부모님께 여행 경비를 타내면서까지 동부에 반드시 가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그냥 겨울방학 내내 페이퍼를 마무리짓는 것이 더 생산적일 거라 생각했다. 둘째는 연말을 조금은 더 조용하게 보내고 싶은 욕망? 욕심? 비슷한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내가 시끌벅적한 곳에 가서 혼자 흠뻑 연말을 즐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더라. 그냥 조용히 집에서 부모님을 생각하며 한해를 정리해 보는 쪽이 더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쌓아 놓은 책들을 얼른 소화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미국에 온지 몇년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이 나라에도 지인들이 하나 둘씩 쌓여 간다. 어떤 이들은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낸 이들이고, 다른 이들은 이곳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이며, 어떤 이들은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동부쪽에 가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목록을 적어 보았더니 생각보다 꽤 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보스턴에 가면 누가 있고, 뉴욕에 가면 누구를 만나야 하고, 디씨에 가면 누구에게 꼭 연락해야지, 같은 일이 정말 내게 일어날 줄이야.

남은 연휴도 알차고 차분하게 보내기를 스스로에게 바래 본다.

최근에 찍은 사진 몇장 플릭커에 올렸음.

8 thoughts on “추수감사절 연휴.

  1. 아 온천 너무 부러워요. 종혁님 얘기 듣고 동부엔 없나 찾아봤는데 있긴 있는데 콜로라도의 온천에 비할바가 아닌듯.
    조용하고 알차게 연말 잘 보내세요 :) 벌써 12월이라니 믿어지지 않아요 정말.

    • 흐흐 한번 오세요. 가족분들 혹은 가까운 지인분들과 함께 오셔서 오전 오후엔 스키타고 저녁엔 온천으로 피곤을 풀면 환상적일 것 같아요. 전 스키를 못타서 그렇게 못하지만요 ㅋ

      계획하시는 일 모두 다 순조롭게 풀려서 행복한 연말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2. 나무들 사이에 태양있는 사진, 무척 마음에 들어요.

    조용한 연말 좋은데요. 나도 그럴거에요. 물론, 나는 식구들과 함께 있지만.
    :)

    • 다락방님은 식구분들과 근처 삼겹살집에서 소주 한잔 하시며 일년을 정리하실 것만 같은.. (..)

  3. 결국 스팀보트로 가셨군요! 거기 좋죠? 난 온천은 안하고 보드만 타고 왔는데 온천까지 갈려다가 시간상 못가고 왔구만요. 거기도 황 냄새가 나던가요? 지금 종혁님 피부는 맨들맨들 할듯. ^^

    겨울에 뉴욕에서 종혁님을 만나는 계획은 이렇게 사라졌군요. ㅋㅋㅋ. 뭐, 1월달엔 집에 갈듯하니 그때나 다심 함 보죠.

    • 오 스팀보트로 스키타러 가셨군요. 스키장도 좋아 보이던데요? (전 스키 못탐!) 제 피부는 원래 별로잖아요. 같이 간 지인의 피부가 아주 애기피부가 됐더라구요. 하하.

      1월달에 뵈어요. 그때까지 제 차가 살아 남아서 만날 수 있게 되길 빌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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