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넌 꿈이 뭐냐, 라는 질문은 넌 커서 뭐 하고 싶냐, 혹은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냐, 라는 질문과 거의 비슷하게 들렸다. 그러니까 ‘이상향’ 은 미래의 ‘직업’ 이나 ‘하고싶은 일’ 과 동일시되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질문자들도 아마 비슷한 의도를 가지고 물어 봤을 것이다. 아주 낭만적인 사람이 의도적인 배제를 통해 – 그러니까 “직업이 아닌 너의 진짜 꿈은 뭐냐” 이런 식의.. – 한번씩 떠보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맞다. 중요한 건 직업이 아니라 ‘어떤 사람’ 이 되느냐다. 내적인 성숙을 꾀하는 것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사는지의 문제보다 훨씬 중하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두개의 문제를 놓고 대부분의 – 나를 포함한 – 사람들은 후자에 목을 멘다. 마치 직업이 자신의 인격을 저절로 형성해 줄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인격의 성숙을 마치 취미 생활 정도로 가볍게 취급하는 사람도 있다. 밥을 먹고 사는 문제를 삶의 철학과 밀접하게 연결시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불행히도 요즘 세상은 그런 낭만적인 환경을 허락하지 않는다. 각 개인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조금 더 ‘직업’ 에 집중해서 이야기하면, 이정도 나이가 되니 어릴 때 가지고 있던 ‘이상향’ 은 현재의 ‘직업’ 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반에서 똑똑하다는 소리 들으며 살던 친구들이 회사에서 상사의 쿠사리를 먹으며 야근을 밥먹듯 하는 것이 어릴 적 꿈꾸던 이상적인 직업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자신이 어릴 때 가지고 있던 꿈을 포기하거나 수정하게 된다. 그럴 듯 하게 포장하자면 조금 더 현실적인 모습으로 가공을 한다고나 할까.

난 국민학교 시절까지 딱히 꿈이란게 없었다. 그냥 역사책 읽는 것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막연히 박물관 관장이 되고 싶어 했다. 집 근처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있었는데 엄마손을 잡고 박물관 구경을 가면 다리가 아파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지 못했다. 그래서 박물관 관장이 되면 며칠을 연속으로 구경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박물관내의 거대한 불상을 보면 항상 겁을 집어 먹기 마련이어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던 전시실도 몇군데 있었다. 나중에 나이먹고 다시 가봐도 엄청나게 거대한 부처님 머리만 덩그러니 있는 걸 보면 오싹한 느낌이 드는 건 여전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음악평론가가 되고 싶었다. 핫뮤직이나 서브 따위를 읽으며 나중에 꼭 성문영같은 평론가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매일 들으면서 아는 노래가 나오면 혼자 뿌듯해 했고, 5000원을 주고 산 테이프에 깨알같이 적혀 있는 해설지라던가 멤버들의 이름 따위를 교과서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으신 아버지께서 당신의 제자중 한명의 와이프가 음반회사 직원임을 알고 그 분을 직접 집으로 초대하셔서 음반업계는 너무 배도 고프고 힘도 드니 절대 발을 들여 놓지 마라, 라는 설득 작업을 하기도 하셨다. 결국 음악평론가의 꿈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사그라 들었다.

사실 고등학교때가 ‘꿈’ 을 현실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시기였는데, 불행히도 나 역시 다른 내 또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전공’ 보다는 ‘학교’ 에 목숨을 걸었다. 일단 좋은 학교에 가면 거기서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모의고사때 법대도 써봤다가, 문과대도 써봤다가, 경영도 써봤다가 하며 꿈을 정하지 못한채 방황했다. 사실 이때까지도 음반회사 직원이라는 꿈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점점 음악에만 몰두할 수 없는 입시 경쟁 시스템에 휩쓸리다 보니 스스로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서 스스로 포기하게 됐다. 그당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선택 과목으로 경제를 택했고, 문과 계열중 가기 싫었던 인문/법/경영 을 제하고 나니 남는 게 경제밖에 없어서 저절로 경제학과에 가게 됐다.

종교나 학문같은 형이상학적인 영역에 속하게 되면, 사실 표현의 방법만 다를 뿐이지 각 분야의 대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모두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최근에 본 <Man from Earth> 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사실 예수가 석가모니의 제자였다, 같은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냥 농담처럼 듣기에는 뭔가 상징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정상은 하나고, 그 정상에 오르는 길이 수십 수백가지 있을 뿐이다, 라는 말도 많이들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내가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것도 그저 내 공부의 대상이 경제학일 뿐이지 사실 추구하는 가치는 내가 사회학을 했건 사학을 했건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다.

매번 되내이는 것이지만, 나는 아직도 공부를 하는 것이 내 천직이라거나, 공부보다 더 나은 선택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대학 시절에 회사원에 대한 환상이 굉장히 컸다. 정장을 입고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책도 읽고 퇴근하는 길에 맥주 한잔도 하는 그런 생활이 너무 하고 싶었다. 회사의 조직생활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고,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인정받고 잘 생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있었다. 결국 – 물론 회사에 따라 매우 다르겠지만 – 회식문화에 대한 거부감때문에 한발짝 뒤로 물러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나 월간지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여기서 마지막이라는 건 유학을 떠나기 직전을 가리킨다.

유학을 오게 되면서 ‘미래의 직업’ 을 선택할 시간을 몇년 더 유예시켰지만, 지금도 뭘 하면 가장 행복할까를 고민한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나는 지금 상태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밥은 벌어 먹고 살 수 있는 그럴듯한 경력을 얻게 된다. 직업의 장소가 외국이 될지 한국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익힌 ‘전문 기술’ 로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고 그 대가로 궁핍하지 않을 정도의 돈을 얻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전문 기술’ 이 글을 쓰는 일이라는 사실이 참 감사하게 느껴진다. 물론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야 겠고 마지막에 웃을 수 있어야 겠지만, 내가 택한 나의 specialty 가 전부터 꿈꾸었던 것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지금 현재의 생활이 큰 불만없이 다가온다.

달리기 시합을 한다. 내가 출발선에 섰을 때 나는 사실 원래의 출발선에 있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태어나고 앞서간 누군가의 노력에 의해서 나의 출발선은 조금 더 앞당겨져 있었다. 그걸 ‘인류의 유산’ 이라는 조금 거창한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나의 역할도 명확히 정해져 있는 것이다. 내 다음에 오게 될 누군가의 출발선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걸 이쪽 바닥에서는 ‘contribution’ 이라고 부른다. 요즘 매일 매일 고민하는 건 ‘지금 내 리서치 아이디어가 과연 이 literature 에 contribution 이 있을까’ 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 다음 세대의 삶을 먼지의 때만큼이라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모두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고 스스로 생각할지라도, 사실은 본능적으로 누군가 다른 이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나는 인간이 그렇게 디자인되어 있다고 아직까지 믿고 있다. 차가운 이성 밑바닥에 깔려 있는 따뜻한 마음이 우리 사회를 사회답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제 내가 누군가 어린 친구에게 너는 꿈이 뭐니, 라고 물을 나이가 되어 간다. 그때 그 친구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난 무슨 생각을 할까.

4 thoughts on “

  1. 이상향과 현실의 차이 ㅋ. 완전 공감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건 그 이상향과 현실의 차이를 이해하고, 그중에 내가 절대 포기할수 있는것과 없는것을 추려나가고, 일상속에서 만족을 찾는게 아닌가 싶어요. 항상 긍정적인 글 참 잘 읽고가요 ^^

    • 헉 제가 긍정적이라는 말을 듣다니,역시 오래 살고 볼일인가 봐요. 저 매사에 부정적이라는 소리 많이 듣거든요 ㅋ 괜히 일기장이라서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오바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

  2. 저도 어렸을때부터 딱히 하고 싶은게 없었어요. 아니, 너무 많았던게 문제인가. 암튼 워낙 한우물 파는 스타일은 아니다보니 그런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왜, 나는 커서 의사가 될꺼야 하고는 진짜 커서 의사가 되는 사람들. 다른건 옵션에 넣지도 않고 하나만 보고 달려온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꿈을 이뤄내서 만족하는 사람들. 하지만 꿈은 계속 바뀌는거고 꼭 큰것만 중요한 꿈은 아닌것 같애요. 작고 다른 사람들에겐 보잘것 없어도 하나 하나씩 이루어 가다보면 그게 종혁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는 길이 아닐까요…

    • 저도 그런 사람들이 부러웠죠. 지금은 제가 그래야 할 입장에 놓여 있지만.. 요즘은 그냥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에 감사하고 있어요. 항상 최악은 피할 수 있었던 환경도 감사하고, 하고 싶었던 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기회를 받은 것에도 감사하고 있어요. 이제 제가 최선을 다하는 일만 남았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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