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클라우드: Take the air (EP)


디어 클라우드에 대해선 거의 아는 바가 없다. 앨범을 몇장 발표하고 열심히 활동중인 신진급 밴드이고, 최근 가시적인 대중적 성과를 보고 있다는 정도. 이 앨범은 최근에 나온 EP 다. 총 여섯곡이 수록되어 있다. 굉장히 뛰어난 팝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보컬 라인의 멜로디 감각이 탁월하고, 사운드 스케이프가 넓고 광활하다. 축축 처지는 느낌없이 힘있게 달려 나가는 템포감도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꾹 담궜다가 펑 하고 터뜨리는 청량한 기타 사운드도 마음에 쏙 든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데뷔 앨범이 유희열이 주축이 된 토이뮤직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메이저스러운’ 냄새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이 밴드가 지향하는 방향이 그곳이라면 그것도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굳이 우울하게 방구석에 쳐박혀 있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대중적으로 히트칠만한 트랙들도 눈에 띈다.

장기하와 얼굴들: 별일없이 산다

이미 한바탕 화제를 불러 일으킨 지도 꽤 되었고, 이젠 예능에까지 출연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한 이 뮤지션의 앨범을 지금에서야 찾아 들어야 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딱 한가지였다. 이제야 비로소 장기하의 음악에 대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싸구려 커피” 가 무한도전팀에 의해 카피되었을 때도, “별일없이 산다” 의 가사가 화제가 되었을 때도, 올 여름 페스티벌에서 보여준 장기하의 퍼포먼스가 깜짝 놀랄 정도로 향상됐다라는 입소문이 돌 때에도 그닥 별로 큰 관심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붕가붕가 레코드 자체에 대한 흥미가 그닥 크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몇달전 지인이 브로콜리 너마저의 1집을 들려 주었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다는 걸 느끼고 생각이 바뀌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던 중 최근에 장기하가 출연한 예능(“놀러와”) 을 보고 한번 음악을 진지하게 들어 봐야 겠다고 결심하고 아이튠즈에서 음원을 구입했다.

장기하의 음악은 70년대 하드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송골매와 들국화, 그리고 산울림이 떠오른다. 음악적 뿌리를 복고에서 찾는다면 그가 가진 차별성, 혹은 아이덴티티는 어디 있을까. 단순히 산울림 카피밴드가 아닌 장기하만의 색깔이 있었기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를 획득한 것일 게다. 우선 톡톡 튀는 가사와 후렴구에서 확실하게 끊어 주는 멜로디가 귀에 들어온다. 7,80년대 한국음악에서 키치적인 정서를 획득함과 동시에 익숙한 멜로디로 친숙함을 확보하고, 거기에 재미있지만 왠지 씁쓸한 노랫말로 주의를 환기시킨다. 뭐 대충 요정도가 장기하가 추구하는 전략이려나. 그의 가사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의 싸이월드 홈페이지 배경음악을 그의 음악으로 바꾸게 만들 정도로 흡인력이 강하다.

그리고 알만큼 아는 이들이 하나같이 지적하는 그의 한계가 여기서 온다. 그는 현실을 이야기하지만 결코 현실을 직접적으로 환기시키지 않는다. 청자는 그의 노랫말이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느끼지만, 그 안에서 어떤 사회성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묘하게 모순적이다. 그의 히트송 “싸구려 커피” 의 가사를 보면 조금 더 확실해 진다. 장황하게 늘어 놓는 현실에 대한 묘사는 지극히 세부적이고 묘사적이지만,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건데?” 라고 되묻게 된다. 다른 곡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다 듣고 나면 뭔가 공허한 느낌이 난다. 카프카의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카프카의 그것에서 갖고 있는 걸 캐치해 내지는 못하는 느낌이다. 장기하가 청자로 하여금 그 빈구석을 스스로 채워 넣길 바라는 의미에서 일부러 만들어 놓은 트릭이라면 이해할 만 하다.

가사를 제외한 음악적인 면에서는 새로울 것이 그닥 없다. ‘옛날 음악’ 들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을 뿐이다. 아주 명민하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기 보다는, 영리하게 매끄러운 톤으로 잘 정리한 느낌이다. 뭐 요즘엔 그정도만 해도 주목받는 세상이긴 하다. 하지만 단순히 복고 리바이벌만으로는 아티스트로 인정받기 힘들 것이다. 뜬금없긴 하지만 스트록스와 아케이드 파이어의 차이가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해본다면 해답은 분명해 보인다.

음악은 참 듣기 좋다. 시원시원한 그의 보컬도 마음에 들고, 듣다가 피식 웃게 되는 노랫말도 적당히 즐겁다. 딱 그정도인 것 같다.

오소영: a Tempo



1994년 유재하 음악가요제 이후 15년, 2002년 데뷔앨범 이후 8년만에 나온 이 두번째 앨범을 발매된 지 1년만이 요즘 듣고 있다. 오소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급해야 하는 키워드들은 대충 이렇다. 조동익, 장필순, 한동진, 그리고 하나뮤직. 오소영은 조동익과 장필순으로 대표되는 한국 포크의 계보를 잇는 유일한 여성 뮤지션이다. 일종의 ‘정통성’ 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인 것이다. 조동익이 프로듀스하고 장필순이 노래한 한국 포크의 걸작 <Soony 6> 이후 얼마만에 들어 보는 참다운 포크 음악인지. 누구나 포크를 할 수 있다. 닫혀 있는 장르는 아니다. 하지만 하나뮤직과 조동익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명맥이 2000년대에 거의 끊겨 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한번쯤은 느꼈을 것이다. 오소영은 그래서 더 반가운 이름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조동익의 프로듀싱을 압도하는 오소영의 목소리다. 그녀는 충분히 이 계보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있고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요즘 들은 음악들 중 가장 아름다운 앨범이다. 계속 곱씹어 보게 만드는 가사는 덤이다. 앨범을 한번 주욱 듣고 나면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맑아지는 느낌이다.

황보령(Smack Soft): Shines in the dark

내가 황보령이라는 뮤지션을 눈여겨 보게 된 건 90년대 중반쯤 그녀가 클럽 빵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부터였는데, 내 친누나와 이름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성은 다르다) 당시 어어부 밴드의 멤버였던 장영규, 키보디스트 고경천등과 함께 전위적인 음악을 만들었고 2집을 2002년에 발매한 뒤 오랜 기간 앨범을 발매하지 않다가 2008년에 2.5집, 2009년에 3집을 내면서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황보령은 15세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화가로도 꽤 높은 명성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90년대 활동할 시에는 작품 전시와 공연을 동시에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Shines in the dark> 는 그녀가 활동을 재개하면서 결성한 Smack Soft 와 함께 한 두번째 작품이고, 그녀의 공식 3집이다. 부끄럽게도 이 앨범을 통해 그녀의 음악을 처음 접했다. 그녀의 이름을 알고 지낸지가 벌써 15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음악은 이번에 처음 듣는 거라니.. 뭔가 심하게 부끄러워 진다.

부끄러운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도, 그녀의 음악이 정말 좋기 때문이다. 진작에 앨범도 사고 공연도 보고 그래서 알고 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마치 직무유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3집이 여러 평자들에 의해 2009년 최고의 앨범으로 회자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건 그녀의 음악이 한국록의 정통성을 고스란히 물려 받고 있다는 점인데,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이력과 상충되는 면이 있어 더 놀랍다. 한국의 정서를 잘 담아낸 음악속에 다양한 음악적 실험들을 통해 적절한 진화를 이루어 냈다. 노래마다 ‘훅’ 이 살아 있고, 강렬함과 섬세함이 모두 충만하다.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가득한 앨범이다.

브로콜리 너마저: 졸업


브로콜리 너마저의 2집이다. 계피가 탈퇴한 상태에서 나온 앨범이고, 그래서 덕원의 영향력이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발견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계피가 가지고 있었던 ‘목소리의 힘’ 이 생각보다 이들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느낀다. 물론 덕원의 목소리를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호소력’ 의 측면에서 볼때 확실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음악적으로는 프로페셔널한 진화를 꿈꾸고 있지만 덕원의 가지고 있는 목소리는 아직 아마추어리즘의 그것에 더 가깝다. 이들이 EP 와 1집에서 그토록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건 기성 가요들과 차별화되는 무엇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건 크게 두가지였다. 가사와 목소리. 2집에 와서도 브로콜리 너마저의 가사는 여전히 사색적이고 신중하다. 충분히 곱씹어 볼만한 무언가가 있다. 상대적으로 말이다. 그래서 차별성을 여전히 유효한 상태에서 획득하고 있다. 하지만 덕원이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송라이팅 측면에서는.. 글쎄 아직 잘 모르겠다. EP 와 1집에서 가지고 있던 킬러 트랙이 잘 보이지 않는다. 확 꽂히는 곡이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 계피의 부재 탓일까, 덕원의 송라이팅이 아직 아마츄어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까. 그들의 음악만을 놓고 보면 이미 기존 가요들보다 더 완성도 있는 음악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환절기” 같은 곡에서 보이는 야심만만한 기타리프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다만 청자들이 그들의 음악을 사랑했던 건 아마츄어와 프로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던 그들의 묘한 정체성때문이었다.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 앨범이 더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길. 지금도 충분히 좋지만.

가을방학: 가을방학

가을방학은 언니네 이발관의 기타리스트 정바비와 브로콜리 너마저 출신 보컬리스트 계피가 만든 혼성 프로젝트 밴드다.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은 올해 발매됐다. 한국 독립음악씬에서 잔뼈가 굵은 언니네 이발관은 최근 그들의 커리어에 (현재까진) 최고점을 찍은 앨범을 내놨고, 비평적으로는 이미 델리 스파이스와 함께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밴드중 하나로 남게 됐다. 이미 줄리아 하트라는 굵직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운영중이었던 정바비가 어떻게 계피를 만나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아무튼 그는 계피의 목소리를 활용해 괜찮은 팝앨범을 내놨다. (weiv.co.kr 에 최근 실린 덕원의 인터뷰를 보면 계피와 어떻게 헤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이 잠깐 나온다)

흥미로운 건 이들의 음악 자체가 아니라 이들의 음악을 바라보는 비평가들의 시선이다. 이중 “젠더 게임” 으로 바라본 weiv 의 시각은 너무 편협하지 않나 싶다. 이 평론을 쓴 필자는 이성애에 집착하는 듯 보인다. 혹은, 반드시 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사에서 드러나는 화자의 성에 대한 모호한 입장이 일부 청자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내게는 할 수 있겠으나 그게 이 앨범의 본질을 아닐 진데, weiv 의 평은 그런 주변적인 것에서 꼬투리를 잡아 평론의 절반 이상을 집어 먹고 있다.

이 앨범에서 중요한 건 정바비가 가지고 있는 탁월한 송라이팅 능력과 계피가 지닌 보컬리스트로서의 정체성 확립이다. 가사도 물론 톡톡 튀고 좋지만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바비는 올해 가장 이쁜 팝음악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의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건 계피의 묘하게 아름다운 음색이다. 프로페셔널한 아티스트인 정바비가 아마츄어리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계피를 만나 만들어 낼 수 있는 찰나의 아름다움이다. 아마 계피가 본인을 프로페셔널한 보컬리스트로 조금 더 확고하게 인식하게 된다면 이 앨범이 거드리는 미묘한 지점은 다시 포착해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성장중에 일어난 break out point 가 아닐까.

가사를 부차적인 문제라고 표현했지만 그 역시 좋은 건 확실하다. “젠더 게임”같은 쓸데없이 과시적인 표현은 접어 두더라도 가을방학이 건드리는 감성은 대단히 유효하다. 소재 발굴에서부터 음악과의 조화까지. 그런 면에서 에피톤 프로젝트의 가사는 너무 정형화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암튼. 가사에서 드러나는 화자의 성정체성(?) 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청자들은 이 앨범을 들으며 본인의 부모님을 떠올리거나, 어렸을 때 인기많던 한 남자 아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청자들이 스스로 들은 음악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

푸른 새벽: 보옴이 오면


푸른 새벽은 sorrow 와 한희정이 만든 혼성 듀오이다. 2003년에 1집, 2006년에 2집을 내고 해체했다. <보옴이 오면> 은 이들의 마지막 앨범이다. 1집은 카바레 사운드에서 나왔고, 2집은 파스텔 뮤직에서 나왔다. (최근 weiv.co.kr 에 실린 한희정의 인터뷰를 읽어 보면 2집을 파스텔 뮤직에서 내게 된 경위가 간략하게 나온다) 1집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한희정이라는 뮤지션에 대해 최근에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된 케이스라서 하나씩 찾아 듣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커리어가 더더밴드에서 시작했고, 푸른 새벽을 거쳐 솔로 뮤지션으로 독립하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로운데, 이 과정에서 그녀가 소위 말하는 “홍대 4대 여신” 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여 “잘 팔리게” 됐다는 점이 특히 더 흥미롭다. 이는 파스텔 뮤직이 가진 특이한 위치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파스텔 뮤직 소속 뮤지션들은 메이저 레이블들의 아이돌들처럼은 아니지만 일종의 이미지 관리를 받는 것 같다. 팬관리를 하는 셈이다. (한희정은 최근 팬미팅까지 했다)

푸른 새벽의 음악은 드림팝쪽에 가까운 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몽환적이지만 기타 사운드가 특별히 강조되지는 않는다. 한희정이 가진 하이톤의 맑은 목소리가 다양한 사운드 이팩트들과 합쳐져 제법 그럴싸한 음악을 만들어 낸다. 좋은 앨범이고, 최근 계속 듣고 있다. 한희정이라는 뮤지션 개인이 가진 아이덴티티가 최근 발매한 일련의 작품들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푸른새벽이 남긴 두장의 앨범은 그녀가 뮤지션으로서의 자의식을 숙성시켜가는 첫번째 단계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Nomak: Calm


Nomak 이라는 뮤지션에 대해서 아는 건 전무하다. 내가 알고 있는 건 단지 그가 몇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일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그가 일본인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니면 그룹 형태인지조차 모른다. 공식 홈페이지가 있긴 한데, 그(녀)의 신상에 대한 정보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홈페이지에 공식 블로그 주소도 있는데 일본어로 작성된 글들이 대부분이라 – 일본어를 전혀 못할 뿐 아니라 구글 번역기를 신뢰하지 않는 나에게는 – 뭐 얻을 만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아무튼, 나는 이 뮤지션의 정체를 네이버뮤직에서 찾았다. 네이버 뮤직은 최근에 알게 됐다. 해외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 한국노래들중 꼭 찾아서 듣고 싶은데 아이튠즈에 없을 때엔 참 난감하다. 불법 다운로드를 이용하고 싶지는 않고, 거의 모든 한국의 음악 다운로드 사이트들은 액티브엑스 천국에 그것도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돌아간다. 심지어, 영문 윈도우는 인식하지 못할 때도 종종 있다. (이런 걸 보면 한국 사이트들은 참 폐쇄적이다) 네이버뮤직도 혹시 다운이 가능할까 싶어 들어가본 거였는데, 거기서 성문영씨의 글을 발견했다. 성문영이라는 이름은 당신이 90년대를 팝키드로, 그것도 모던락 키드로 살아갔다면 결코 잊지 못할 이름일 것이다. 나는 “Sub” 를 매달 읽으면서 그(녀)의 기사를 접했다. 이미 모리씨와 영혼으로 결혼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The Smith 를 강하게 인식시켜준 사람이기도 하다. 2000년대에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잠깐 했다, 정도만 알고 있었지 소식을 전혀 접하지 못했는데, 네이버뮤직란에 글을 쓰고 있더라. “이주의 발견” 이라는 코너를 다른 필진들과 함께 쓰고 있었다. 여전히 음악을 – 당연하게도 – 계속 듣고 있었고, 좋은 음악들을 인터넷을 통해 많이 소개해 주고 있었다.

Nomak 은 그가 소개해준 음악들중 하나이다. Instrumental Hip Hop 쪽으로 분류되는데, 정통 힙합보다는 힙합 비트를 차용한 엠비언트쪽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홈페이지를 통해 접한 이미지도 정통 힙합 컬쳐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음악들은 좋다. 일본 음악답게 깔끔하고 담백하다. 감상용 힙합이라기 보다는 아주 잘만든 클럽용 음악처럼 들리기도 한다.

추수감사절 연휴.

thanksgiving break 가 시작하자마자 그 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잠시 여행을 다녀 왔다. steamboat springs 라는 곳에서 1박, aspen 에서 2박을 하고 돌아 왔다.

스팀보트에는 단지 그 곳에 아주 좋은 hot spring 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정말 좋았다. 비포장 도로를 몇십분 올라 가야 겨우 나오는 첩첩 산중의 계곡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이것이 신선놀음이구나 싶더라. 온천은 태어나서 처음 가봤는데, 물에 들어가는 걸 싫어해서 그런지 물속에 오래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몸은 참 좋은데 장시간 물속에 있으려니 쉽게 피곤해 졌다.

아스펜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라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땐 스키장이 개장하기 직전의 비수기여서 인적이 드물었다. 덕분에 사람에 치이지 않고 잘 지내다 왔다. 아스펜 뒷산으로 등산도 하고 아스펜가는 길에 있는 glenwood springs 에서 (또) 온천도 즐겼다. 이러다 온천에 맛들이는 건 아닌지, 후후. 볼더 근처에도 idaho springs 라는 온천 관광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로 한시간 정도면 가는데, 겨울 방학에 한번 가볼 참이다. 재밌는 건 미국에 와서 구경 한번 못해본 유명한 명품샵들이 이 조그만 동네에 다 모여 있다는 거다. 정말 평균 소득이 높은 사람들만 모여 사는 건지, 관광지라서 이런 명품샵들이 모여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번 여행에서 콜로라도에도 정말 좋은 곳들이 많다는 걸 새삼스레 다시 깨달았다. Vail 이나 Winter Park 같은 아주 질좋은 스키장부터 아스펜같은 사계절 관광지, 그리고 Gargen of the god 같은 자연 그대로를 즐길 수 있는 곳까지, 가볼만한 곳들이 많은 것 같다. 천성이 게으른 나머지 엉덩이가 의자에서 잘 떨어지질 않는데 조금은 더 노력해서 여기저기 다녀볼만 하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는 콜로라도가 참 광활한 곳이라는 건데, 볼더에서 아스펜까지 차로 네시간 정도 걸리더라. 나의 1일 최대 운전 시간은 두시간,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세시간 정도로 늘렸다. 점점 운전에 대한 한계를 늘려 가는 중.

추수감사절 연휴 직전 자동차를 수리했다. 히터가 되질 않아 맡겼더니 엔진 자체를 수리해야 한다고 했다. 도함 1100불 정도가 나왔다. 한달 월급이 통째로 날라가 버린 셈이다. 덕분에 조금은 여유롭게 살았던 살림살이가 다시 쪼그라 들었다. 저축은 꿈도 못꾸고 한달을 버티는 것이 목표인 생활만 벌써 햇수로 3년째다. 이제 슬슬 이런 생활에 익숙해 질만도 한데 역시 돈이란 게 사람을 참 간사하게 만들더라. 히터가 빵빵하게 나오고 엔진도 정상으로 돌아온 건강한 차를 보면서 얼른 팔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제 차에 정이 많이 들어서 참 감정적으로 힘든 일 같은데, 경기가 어려울 때에는 고정 자산을 처분해서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는게 위기를 극복하는 근시안적 대책이라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차말고 다른 거 먼저 팔거 없나 하고 집을 둘러보니 쓰지 않는 티테이블 하나와 불지 않는 클라리넷이 있었다. 이걸 팔면 얼마나 받을까? 하는 생각부터 드는 걸 보니 이제 가난이 제법 몸속 깊숙히 파고든 모양이다.

연휴가 끝나면 2주후 학기가 끝난다. 다시 말하면 연휴기간동안 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다는 거다. 전학가는 문제부터 다음주에 있을 기말고사와 파이널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해야 하고 히스토리 텀페이퍼도 얼른 써야 한다. 마음이 바쁘니 내일 저녁에 식사 같이 하자는 초대를 두건이나 받았는데도 마음이 기쁘지가 않다. 오늘도 아침부터 하루종일 학교에 있었는데 평소에는 시끌벅적한 대학원생 오피스 복도가 참 고요했다. 교수님들과 교직원들만 한가로이 떠드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 왔다. 늘 가난한 이 마음은 겨울방학이 되면, 조금은 나아질까?

그제는 어머니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집안에는 늘 별일이 없고, 서울과 가까운 곳에는 사람이 포탄에 맞아 죽어가지만 모자 사이에 흐르는 대화는 늘 서로에 대한 걱정과 안부뿐이다. 김치가 떨어졌냐고, 다시 보내주겠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와 아픈 사람은 없는지 친척들 이름 하나 하나까지 끄집어 내며 물어보는 아들 사이에는 늘 같은 방식과 내용의 대화가 진행되지만 한번도 지루한 적이 없다.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겨울방학에 그냥 볼더에 머물러 있기로 결정했다. 첫째 이유는 역시 돈때문인데, 부모님께 여행 경비를 타내면서까지 동부에 반드시 가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그냥 겨울방학 내내 페이퍼를 마무리짓는 것이 더 생산적일 거라 생각했다. 둘째는 연말을 조금은 더 조용하게 보내고 싶은 욕망? 욕심? 비슷한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내가 시끌벅적한 곳에 가서 혼자 흠뻑 연말을 즐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더라. 그냥 조용히 집에서 부모님을 생각하며 한해를 정리해 보는 쪽이 더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쌓아 놓은 책들을 얼른 소화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미국에 온지 몇년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이 나라에도 지인들이 하나 둘씩 쌓여 간다. 어떤 이들은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낸 이들이고, 다른 이들은 이곳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이며, 어떤 이들은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동부쪽에 가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목록을 적어 보았더니 생각보다 꽤 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보스턴에 가면 누가 있고, 뉴욕에 가면 누구를 만나야 하고, 디씨에 가면 누구에게 꼭 연락해야지, 같은 일이 정말 내게 일어날 줄이야.

남은 연휴도 알차고 차분하게 보내기를 스스로에게 바래 본다.

최근에 찍은 사진 몇장 플릭커에 올렸음.

야한거 아니었어.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개인적 시간과 공간은 소중하다. 나는 거의 강박적일 정도로 혼자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여행이나 캠프처럼 며칠동안 꼬박 남들과 붙어 있어야 하는 시간이 끝나면 거의 탈진할 정도로 피곤해 한다. 정신적으로 남들과 장시간 함께 있는 것을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최소한 방문을 닫는 형식으로라도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매시간 매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단지 하루에 단 한시간이라도, 아니 30분이라도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완전히 relaxed 된 상태에서 지내야 에너지를 보충하고 스트레스가 풀린다.

나는 이런 나의 성향이 일반적인 사회 생활에서 충분히 존중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남들에게 그렇게 어려운 부탁이 아닐 것이다. 하루에 몇시간만 그냥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면 된다. 미국 문화와 나의 이런 성향은 꽤 잘 어울리는 구석이 있어서, 한국보다 살기 편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가끔 일부 한국 유학생들의 오지랍에 짜증이 나긴 하지만, 그들은 내 삶에서 티끌만도 못한 부분이니까 크게 개의치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시간/공간적 거리가 급속도로 가까운 사이지만 가족만큼 천성적인 유대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관계, 예를 들어 연인 사이의 경우에는 이게 문제가 될 수 있다. 연인간에는 서로에 대한 ‘기대감’ 이 일반적인 관계보다 상대적으로 유난히 크다. 사람에 따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왜 감춰? 나한테 비밀이 어딨어? 이런 식으로 나오면 할말이 없다. 비밀이 아니라 그냥 개인의 사생활일 뿐이다. 사생활을 연인이라고 해서 모두 다 까발려야 하는 건 아니다. 바람을 피운다거나,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냥 나는 나만의 소소한 생활이 있고 그걸 혼자 즐기고 싶을 뿐인데, 연인이라고 해서 나의 모든 걸 함께 해야 한다거나 굳이 말하지 않을 이유가 있냐고 따지면 나는 정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가치관의 충돌이고, 맞지 않는 거다. 헤어져야 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 교수님과 미팅을 했다. 내가 쓰는 논문에 관한 거라 어제 새벽 늦게까지 준비해서 간 자리였고, 그래서 꽤 오랜 시간동안 집중해서 이야기하고 나니 몸이 급 피곤해져 왔다. 그런데 날씨가 무척 좋지 않아 비를 맞고 싶지 않아 학교에 저녁 늦게까지 남아 있게 됐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집에 와서 늦은 저녁으로 라면을 먹으니 몸이 노곤해져 왔다.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농구경기를 틀어 놓은 뒤 정말 wasting time 을 하기 위해 인터넷 여기 저기를 들락날락거렸다. 교수님과 대화가 잘 풀리지 않았고 (그러니까 내 논문 진행과정에서 심대한 문제점을 발견했다는 말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 있어서 딱히 저녁 시간에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을 돌아 다니다 보니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만화가 다운로드 사이트에 올라와 있었다. 일본 만화였는데 아주 유치하고 약간은 야한, 시간을 때우기엔 딱 좋은 그런 만화여서 바로 다운로드 버튼을 눌렀다. 그때 현관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K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그냥 놀러 왔다. 살짝 당황했지만 연락 하지 않고 왔다고 해서 문전박대할 사이도 아니고 오늘 하루 종일 인사도 제대로 못한 터라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어 줬다. K는 눈치가 좋아서 사람 표정을 잘 읽는 편인데, 당황한 내 행동거지를 읽었는지 컴퓨터쪽으로 슬쩍 자리를 옮겼다.

“뭐 다운받는데?”

라고 물었을 때 너무 당황한 나머지 몸을 틀어 모니터를 가렸는데, 그게 K 의 눈에는 더더욱 의심스럽게 보였나 보다.

“야한거 받는구나? 크크크”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그래 만약 실제로 야한 동영상 따위를 다운받는다고 치자. 하지만 그걸 발견한 후 대놓고 놀리면..

그 이후 K 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티비만 계속 봤다. 결국 K 는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한시간동안 말없이 휴대폰만 가지고 놀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 갔다. 뭐가 잘못됐는지 물어보지도 않은 채. 만약 물어봤다고 해도 수치스러운 나머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나간 후 편지를 쓸까 생각도 했는데 내 입으로 이런 얘기를 직접적으로 하는 것 자체가 나를 두번 죽이는 일같아서 관두기로 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이 글을 보고 있을테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지켜야 할 예의 범절이 있다고 생각하며 지내왔다. 심지어 자식과 부모간에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함께 자라온 형제간에도 지켜야 할 규범들이 있다. 그리고 가까운 사이일 수록 더 조심스러워 해야 할 부분이 존재하기도 한다.

K는 습관적으로 내 안으로 파고드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의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는 내 사생활을 가끔 파괴한다. 나는 타인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가까운 지인들이 혼자 무엇을 하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 내 자신만큼 흥미로운 존재는 없으니까!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늘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와 내가 다른 점을. 그는 “말해도 상관없는 거면 왜 말하지 않는거지?” 라고 생각하고, 나는 “그것과는 상관없이 혼자서만 간직하고 싶은 것이 존재하고 그걸 말하는 순간 사생활은 무너진다” 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른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