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e, gathering, and some thoughts.



요즘 블로그에 글을 쓸 의욕이 잘 안생긴다. 잘 써지지도 않고. 누군가 이 블로그를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괜히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보여주기 싫어서 자판이 잘 눌러지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만약 그 훔쳐보는 사람이 뒷담화잘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라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래도 뭐 어떡할건가. 이미 워드프레스에 돈까지 내고 스페이스까지 늘렸는데 ㅠ 꼼짝없이 1년은 더 여기 있어야 겠지. 이 블로그로 이사오면서 결심한 건 절대 오프라인 지인들에게 알려주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남들이 말하는 ‘이중생활’ 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뭐 어짜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설명해봤자 제대로 이해할지도 의문이지만, 나는 그저 내가 마련한 나만의 소중한 공간을 침해당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이 공간에서 내가 누구와 무슨 짓을 하든 제발 신경을 쓰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난잡한 짓거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하루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머리속에 실타래처럼 얽힌 생각들을 풀어내기도 하는 그런 일기장같은 곳일 뿐이다. 그렇게 특출날 것도 없고, 그렇게 도드라지게 내세울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인터넷 공간들중 하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비밀스러운 곳이 아니라면 굳이 숨길 필요도 없잖아.”

맞다. 하지만 굳이 모두에게 떠벌리고 다닐 필요도 없잖아. 그냥 자기 방문 닫고 들어가는 딸내미처럼 그냥 내버려 두면 안되는 걸까.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공간 자체가 중요한 거다. 그걸 오지랍넓은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튼.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을 내가 차단할 수 없으니 알아서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오늘은 K 가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저녁을 먹었다. 2주에 한번씩 주말에 다함께 모여 거나하게 저녁을 먹고 노는 친구 무리들이 있는데, 나는 그 무리들중 유이한 한국인중 하나라는 이유로 한국 음식을 소개한다는 임무를 부여받고 미리 도착해 간단한 일들을 도왔다. 애피타이저로 굴전과 생선전, 그리고 부침개를 내놨는데 역시 굴전과 생선전의 인기가 상당히 좋았다. 메인 메뉴는 비빔밥과 닭볶음탕이었다. 비빔밥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미지근했다. 이유를 분석해 보니 역시 ‘비빈다’ 라는 개념이 약간 희박해서가 아닐까. 젓가락 사용에 대한 장벽도 있었을테고. 브뤼또도 비비는 개념이긴 한데 그건 판매자가 알아서 비벼주니까. 암튼 맛있게 저녁을 먹고 (저녁식사가 주였는지 와인과 소주가 주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술도 맛있게 마시면서 다함께 ALCS 를 시청했다. 텍사스 출신 친구가 하나 있어서 모두 레인저스를 응원했는데 어이없게 8회에 우르르 무너지면서 지고 말았다. 양키즈에게는 또 하나의 포스트시즌 전설을, 레인저스의 젊은 친구들에게는 잊지 못할 악몽으로 기억될 밤이었다.

식사중 M 이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보여주며 N 과의 약혼 소식을 알렸다. 아리따운 우크라이나 아가씨를 잡은 N 은 정말 땡잡았구나 생각했다. C 는 여자친구와 어떤 문제가 있어 보였고, 그의 룸메이트 E 가 부연 설명을 해줬다. 난 처음에 C 와 E  사이가 수상해 보였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아이가 있는 C 의 여자친구를 위해 C 와 여자친구가 데이트할 때 아기를 대신 봐주는 정도의 관계?

애들을 돌려보내고 술에 취해 잠든 K 대신 한시간에 걸쳐 설거지를 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였다. 가끔 아버지께서 친구들과 집에서 술을 드실 때가 있었다. 일년에 몇번 없는 일이었는데 암튼 밤늦게까지 술을 드시다가 친구분들이 떠나시는 걸 배웅나갔다가 들어오면 확- 하고 느껴지는 술 + 담배 냄새가 참 인상적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외부인의 냄새와 합쳐져 익숙한 ‘우리집’ 풍경 안에서 기묘한 이질감같은 걸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난 그 냄새를 ‘어른들의 것’ 이라고 정의내렸다. 그 당시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냄새였으므로. 그리고 십몇년이 지났다. 오늘은 오후부터 술이 땡겼다. 이런 날이 내 인생에 몇번 없는데, 요즘 하도 격무(?) 에 시달리느라 달콤쌉싸름한 와인이 그렇게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K 집에 가면서 한병도 아닌 두병을 사서 갔다. 내가 좋아하는 Rhone 지방 레드와인과 리쿠어샵에서 추천하는 보르도산 화이트와인. 다들 하나씩 가져온 와인을 차례로 뜯으며 홀짝 홀짝 넘기는데 우크라이나 출신 친구 M이 담배를 밖에서 피우고 들어올 때마다 어렸을 때 느꼈던 그 냄새가 확- 하고 났다. 아, 어른이 됐구나. 열몇살짜리 아이들이 나를 보면 어른이라고 생각하겠구나. 이렇게 이룬 것도 없이 쉽게 되는 게 어른은 아닐텐데. 와인맛이 약간은 더 쓰게 느껴졌다.

아무튼 손님 접대는 힘든 일이다. (헤럴드 동기들이 이 글을 본다면 이 부분에서 한번쯤 웃지 않을까) 한시간에 걸쳐 설거지와 간단한 뒷정리를 끝내고 K 가 도저히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냥 냅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찬물로 설거지를 장시간하니 약간은 술이 깨는 느낌이었다. 집에 와서 전화기를 보니 C 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C: Jong you seemed sad and not bc of the rangers

J: bc i was worrying about dishwashing.. i just finished it.

C: ah I c

C: Thanks for washing!

J: haha it’s joking (it’s not joking i just finished it) i’m happy with it. i was just uncomportable with K seemed still think of me as her boyfriend

C: Yeah I can see that.. I wondered a couple times tonight if y’all were together again :(

C: Is it harder bc we all hang out together?

J: nooooo it does not matter. it is just because i did wrong action, giving her wrong signal. i will correct it soon. dont worry too much. thanks!!

C: Okkkk :)

내가 착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거다. 다만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모두 이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나도 다시 잘됐으면 좋겠지. 이제 나이도 있으니까 나도 M 과 N 처럼 사이좋게 지내다가 (이들도 한번 헤어졌다) 약혼도 하고 결혼도 하고 그렇게 알콩달콩 대학원 생활 잘 마무리하고 싶지. 누가 그러고 싶지 않겠어.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보다 나은 상대는 찾기 어렵다. 감지덕지하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아닌 건 아닌거다 라고 외치고 있다. 나에게 허락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간하는 능력이 살면서 참 중요한데, 가끔 착각할 때가 있다. 지금 내가 그걸 착각하고 있는건가? 잘 모르겠다. 내일 풋볼이나 봐야겠다. 오하이오스테잇 내일 제발 져라. 위스컨신 화이팅.

16 thoughts on “wine, gathering, and some thoughts.

  1. 저도 요즘 블로그에 글을 쓸 의욕이 없어요. 전 요즘 생활이 지극히 바쁘고 단순해져서 그런듯. 저도 제 블로그 주소를 아는 친구들은 몇 명 안되죠.

    • 아델라님 블로그에서 러닝 기록보다는(아 물론 이것도 좋지만요..) 독후감이나 일상다반사들을 좋아하는데, 요즘 좀 뜸하신 것 같아 약간 아쉽긴 해요. 그래도 어떡하겠어요, 강요할 수 없잖아요 ㅎ

  2. 글 중에 유독 “굴전”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저도 먹고 싶어요, 굴이 들어간 건 몽땅.

    나름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부모님이 제 블로그를 알고 계시더군요. 그 때의 충격이란.

    • 전 그럴까봐 누나가 제발 가르쳐달라고 해도 절대 알려주지 않고 있어요. 뭔가 검열당한다는 느낌이 들까봐 두렵네요.

      굴전 맛있더라구요. 진짜. 근데 미국 마트에서 파는 굴은 너무 크네요.

  3. 저도 제 오프라인 지인들이 제 홈피를 알기를 원하지 않아요. 제 가족들도 마찬가지고. 어떤 글들은 그들이 몰랐으면 좋겠다 생각할 정도로 은밀하니까요. 물론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렇지만.

    종혁씨의 글은 꽤 차분해요. 좀처럼 흥분하질 않죠. 어떻게 이렇게 내내 차분한 글을 쓸 수 있는지 가끔은 신기해요. 심지어 위스컨신 화이팅, 조차 차분하게 느껴져요. 아마도 그건 이 글의 전체 분위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요?

    굴전이 반응이 좋다니, 윽, 저는 굴 질색인데. 며칠전에 해물파전 먹다 굴 씹어서 백세주를 벌컥벌컥 마셨던 기억이 새록 돋네요. 그 느낌이 너무 싫어서. 흑 ㅜㅜ

    • 저를 직접 만나 보셨으니까 잘 아실 것이라 믿어요. 원래 사람이 차분하잖아요. 차분하다 못해 차갑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죠. 그리고 다른 이유로는.. 아마 늦은 밤에 주로 글을 쓰기 때문일 거예요. 전 아침이나 낮에는 밖에 나가 있느라 조용히 집중해서 이 블로그에 들어오질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늦은 밤 집에 돌아오고 나서 차분하게 음악들으면서 주로 씁니다.

      굴을 싫어하신다니, 그럼 부추전은 어때요?

    • 저도 부추전 좋아해요. 근데 여기에선 부추를 팔지 않아 해먹을 수가 없네요. 부추전에 막걸리 한잔이 생각나네요.

  4. 놔버려요.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늘어놓는 말 같은거.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해주는 비판적인 말을 주워담기도 벅찬데,
    비호의적인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까지 담으려면 종혁씨 마음은 바다만큼 넓어야해요.ㅎ
    그런 것까지 생각하기엔 매시간이 아까워요.

    와인에 대해선 거의 모르지만,
    두달 전에 오랫만에 만나는 친구를 위해 화이트 와인을 하나 샀어요.
    Mascaron Bordeaux 2008(화이트)인데, 아..굉장히 맛있더라구요.
    여자친구와 (생기거든) 늦여름 집에 초대해 간단한 요리를 해서 함께 마시면 좋을거 같아요.
    물론 그냥 마셔도 좋지만요.^^

    좋은 사람은 언제고 선물처럼 짠~ 하고 나타날테니,
    그 사람과 어울리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알차게 살아요.
    (저도 그러고 있는데……………..솔직히 너무 지루하긴 해요..-_-)

    • 제가 사가지고 간 보르도산 화이트와인도 2008년산이예요. 신기해 하는중.. 추천받아서 산건데 맛있다고 하시니 추천해준 주인집 아저씨가 괜히 믿음직하게 느껴지네요 ㅋ 그 화이트와인은 그 파티에서 마시지 않았어요. 나중에 좋은 기회가 닿으면 꼭 마셔 볼게요.

      ‘좋은 사람’ 에 대해선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ㅋ 말씀하신 것처럼 저부터 먼저 좋은 사람, 멋진 사람이 되어야 겠지요.

  5. 저도 근래에 주소 바꾸면서 말 안했어요.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친구에게도 미안하다고 하고 말 안해주고요. 오프라인 지인이 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가뜩이나 솔직하기 어려운데, 더 솔직해지지 못하겠더라구요. 내 공간인데 말이예요. 섭섭해 하는 친구도 있었고, 알고보니 자기도 그러고 있었던 친구도 있었는데 모두 이해해 주는 것 같았어요. 정말 다행이지 뭐예요.

    음. 자주 와서 보고 있어요. 이런 저런 생각도 많이 하고요.
    종혁님이 가끔 달아주시는 댓글들은 정말 적절할 때에 적당한 문구여서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잘 안되네요. ㅎㅎ 아무튼 덕분에 매번 힘을 얻는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감사해요. :)

    •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주제넘은 소리 몇마디 했죠 ㅋ 전 좀처럼 다른 사람 인생에 개입하지 않는데요, 아주 가끔 적극적으로 조언을 해주고 싶을 때가 있네요. 이게 다 애정이 있어서 그러는 겁니다 ㅋ

  6. 아, 궁금해 궁금해. 나 왜 저번에 만났을때 K에 대해서 얘기를 안해주셨을까? 내가 이렇게 궁금해할거 알면서? 아, 궁금해 궁금해. ^^

    • 왜냐하면 K 는 지금까지 제게 굉장히 소중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말해서 어떤 ‘대상’ 으로 만들어 버리는 게 싫었어요. 뭐 이 포스팅의 글이 그런 결과를 초래했다면 할 말이 없지만… 전 지금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고를 떠나서 한번 마음에 품었던 사람은 절대 함부로 대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그 때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았던 것 같구요. 이해해 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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