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주말, 음악 일기.

이번 주말이 할로윈이다. 나는 할로윈에 딱히 특별한 걸 하는 편은 아니다. 미국에 있는 내 고등학교 동창들을 보면 참 화끈하게 잘 놀던데, 나는 nerdy phd graduate students 들과 함께 있다 보니 딱히 코스튬을 입거나 그러고 놀진 않는다. 그저 주말에 다함께 모여 거하게 저녁식사를 하는 정도.

오늘은 우크라이나 출신 친구 M 이 함께 노는 친구들을 초대했다. 그녀의 우크라이나 친구 커플과 오래전 우리 학과를 졸업한 선배 한명도 동참. 정통 러시아식의 저녁을 성대하게 얻어 먹고 러시아 보드카 (앱솔루트 보드카 따위가 아니라 진짜 러시아 보드카였다 ㅜㅜ) 를 잔뜩 마시고 힘겹게 집으로 돌아 왔다.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 드는 궁금증이 하나 있다. 가만히 보면 얘네는 술을 잘 권하지 않는다. 잔을 돌리지도 않고 다 마셨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강권하지도 않는다. 근데 나한테만 그런다! 내 술잔은 꼭 확인하고 반잔만 마시면 막 뭐라고 하고 벌컥 벌컥 마시면 그렇게 좋아한다. 한국에 와보지도 않은 애들이 어째서 그런 나쁜 한국문화는 잘 알고 있고 또 그걸 한국사람인 나한테만 강요하는 걸까? 미스테리한 일이다. 얘네들도 친한 사이들끼리는 예의고 뭐고 없는 것 같기도 한데, 유독 나한테만 심하다. ㅜㅜ

그래서, 요는 오랜만에 독한 술을 계속 받아 마시다 보니 알딸딸한 기분도 들고 머리도 띵하고 아프다는 거다. 오늘은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는데, 어서 빨리 슬럼프를 회복해서 다시 열심히 공부해야 겠다. 역시 사람은, 근면하고 성실하게 사는 게 최고다. 누구나 게으르고 싶고 누구나 방탕해 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하면 별로 남는 게 없다. 당장은 즐겁겠지만, 그런 게으르고 방탕한 삶이 내게 가져다 주는 행복은 극히 제한적이다. 지금 당장 약간은 더 피곤해도 원래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제 시간에 정확히 처리하는 것, 그게 내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것 같다.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 그래서 내일은 컬리지 풋볼을 보지 않고 아침 일찍 학교로 가야 겠다. 시험 채점도 하고 리서치도 그렇게 보내야지.

다락방님이 보내 주신 가을방학을 요새 매일 듣고 있다. 아침해쌀님도 이들의 노래를 추천해 주셨다. 요새 좋은 한국 음악 참 많이 나온다. 별의별 쓰레기같은 음악도 많이 나오지만, 그건 뭐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나 마찬가지니까. 다만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음악을 찾아서 들어줬으면 하는 바램은 있다. weiv 필진들이 거론하는 한국판 ‘어덜트 컨템프로리’ 음악 – 예컨데 이적이나 유희열로 대표되는 – 도 물론 좋지만, 2,30대들이 진짜 좋아할 만한 음악은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애피톤 프로젝트, 언니네 이발관, 계피나 한희정같은 뮤지션들이 아닐까. 이들이 계속 마이너한 입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참 안타깝다. 이들의 음악이 절대적으로 좋다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김동률이나 이적으로 대표되는 메이저 어덜트 컨템프로리 계열 뮤지션들보다는 – 상대적으로 – 훨씬 더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음악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게 현재 내 생각이다.

오늘 저녁 식사를 끝내고 술을 먹으면서 스매슁 펌킨스 얘기가 나왔다. Ace of Base 얘기가 나와서 한참을 떠들다가 N 이 테크노 음악을 틀었고 씨디가 다 돌아가자 다른 씨디 하나 골라보라고 하길래 언뜻 보니 스매슁 펌킨스 3집이 보였다. 맞다, 그 분홍색 파란색 달님이 울고 있는 두장의 씨디. 모두들 그당시, 그러니까 90년대 중후반을 관통하는 시대에 음악을 들었던 이들이라 스매슁 펌킨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Tonight, tonight” 이 뮤직비디오가 공식적으로 사망하기 전 나온 마지막 걸작 뮤직비디오라는 데에 모두가 동의했다. 그리고 다들 빌리 코건의 몰락에 애도를 표했고. ㅋ. (진까 그양반은 왜 그렇게 망가졌을까) N은 “Zero” 를, S 는 “tonight tonight” 을, 나는 “1979” 를 가장 좋아하는 그들의 곡으로 뽑았다. 하지만 “Bullet with the butterfly wings” 가 나오자 모두들 “아냐 사실 이 곡이 최고야” 라고 수정하기도 ㅋ 그렇게 추억을 가지고 재밌게 놀았다.

대학교 시절 최고의 뮤지션이 누구였냐는 질문에 S 는 Strokes 를, 나는 Radiohead 를 꼽았다. 나의 대답은 그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는 E 의 동의와 술에 취해 “라디오헤드는 너무 청승맞아!” 라고 맞받아친 약 두어명의 nerds 의 반대를 이끌어 냈다.

나는 M 의 집으로 가는 길,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애피톤 프로젝트의 “선인장” 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가사를 외우기 위해 애썼다. 자동차를 팔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자동차 안에서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그 자유를 빼앗기기 싫어서다. +_+

내 술버릇은 별 거 없다. 술이 많이 올라오면 말이 없어지고 땅을 쳐다 본다. 관찰자의 시선에 따라선 몹시 우울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닥 크게 우울해 지는 건 없고, 그저 혼자 생각에 잠길 뿐이다. 오늘은 술자리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 괜찮은 사람들이다. 만약 타이밍과 기타 여건들이 참 잘 맞았다면 저 사람과 꼭 사귀어 보고 싶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가끔 나타난다. 그 사람이 여자던 남자던 (그러니까 앞서 말한 ‘여건’ 에는 성별도 들어간다는 거다) 아 왜 이제야 나타나서 그저 안타까운 느낌만 들게 하는거니! 하고 따지고 싶기도 하고,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고. 몇년전까지 연애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을 일렬로 줄세워 놓고 심사숙고를 한 뒤에 그중 한명을 선택하는 정적인 과정이 아니다. 공간과 시간의 침투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경우 우연과 우발적인 사건들에 의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결정됐다. 지금까지 항상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람 감정이란 게 다 그런게 아니겠다 싶다. 내가 욕망하는 바대로 이루어지는 게 인생이었다면 그것처럼 시시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일기를 쓰는 와중에 술이 조금씩 깨고 있다. 보드카와 꼬냑과 맥주가 뒤섞여서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academia

1년에 한번씩 한국에 들어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거리감이 점점 더 크게 느껴졌다. 거리감은 단순히 대화에 있어서 공통 화제가 없다는 표면적인 현상들에서 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 정체성, 혹은 그외 한 개인을 형성하는 무형의 조건들에서 더이상 공통점을 찾기 힘들어 진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이 어느 조직에 속하게 되면, 왠만큼 자아 정체성이 확고하게 박힌 사람이 아니라면, 그 조직과 사회의 문화에 어느정도는 길들여 지게 된다. 그러니까 한 사회에 오랜 기간 함께 한 사이라 하더라도 각기 다른 사회로 떨어져 나가 또다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예전보다 느껴지는 동질감같은 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건 거의 모든 인간, 거의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일반론이다. 하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지난 2년간 내가 경험했던 ‘거리감의 가속화’ 는 내 인생 전체를 통털어도 상당히 빠르다고 느껴졌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내 친구들중 현재 나 하나만 아직 학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들 직장에서 돈을 벌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하지만 역시 돈을 번다), ‘자격’ 을 위해 공부를 한다.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한, 혹은 어딘가에 들어가기 위해 하는 공부와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인 공부를 구분하자) 학교와 학교가 아닌 곳. 굉장히 단순하게 이렇게 두 가지 세상으로 나눌 수 있다면, 내가 느끼는 급속한 거리감의 확대는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수준일 것이다.

물리적 공간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전혀 다른 언어/문화/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는 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애쓰다 보면 예전에 익숙했던 사회를 그만큼 빠르게 잊을 수 있다. 근데 이게 그렇게 유의미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에 가서 사흘만 있으면 시차가 적응됨과 동시에 무엇을 해도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아주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버리니까. 단순히 몸에 새겨진 습관의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보다는 지금 내가 속한 사회의 특수성에서 이유를 찾고 싶다. 지난 2년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거라곤 어떻게 하면 이번 학기를 무사히 넘길까, 이다. 논문을 읽고, 교과서를 펼쳐 보고, 교수님께 달려가 애원도 해보고, 글을 쓰고, 글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또 교수님께 여쭤 보고, 그러다 또 논문을 보고. 그러다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한달이 가고 한학기가 지난다. 그렇게 두학기를 지나면 어느새 다시 한국에 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이 손에 쥐어져 있다. 학교밖을 벗어난 삶은 꿈도 꾸지 못한다. 차를 타고 두세시간만 나가면 멋진 곳들이 펼쳐 진다. 아니, 비행기를 타고 몇시간만 가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들이 손을 뻗친다. 돈이 엄청 궁해 라면만 먹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학교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마음이 가난한 것이다. 읽어야 할 책, 읽어야 할 논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한 마음의 여유란 사치에 불과하다. 집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건 괜찮지만 영화를 보러 가거나 덴버에 나가 hang out 하는 건 안된다. 조심스러운 것이다. 내가 정해 놓은 공간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무이다.

공부하는 곳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특성은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다. 아무튼,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보러 가거나 운동을 하거나 스포츠 중계를 보는 것 따위는 그저 취미 생활일 뿐이다. 그런 주변적인 것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그것들이 내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드는 지에 대해서는 더이상 이야기할 필요도 없지만, 그것들이 내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들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만약 공부를 업으로 삼고 싶거나, 혹은 석사 수준 이상의 공부를 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진지하게 나의 경험을 들려 주고 싶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외로워 지는 것 같다고.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떠나지 않고 지적인 자극을 주는 환경이 곳곳에 펼쳐져 있어 단 한순간도 심심한 적이 없다. 하지만 안으로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수준은 내가 생각했던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다.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를 하면 “끝” 이란 게 있는 지 모르겠다. 일의 끝은 없어도 퇴근이라는 하루의 종결점은 존재할 것 같다. 공부에는 그런 게 없다. 파고 파면 더 해야 할 것들이 보인다. 스스로 끝을 정해야 한다. 그 끝은 자기 능력의 “한계” 이다. 난 이정도밖에 안돼, 라고 스스로 한계를 정한다면 그 정도 수준에서 공부의 끝을 정할 수 있다. 그러니까 공부라는 건 상당히 자기 파괴적이고 자기 비하적인 활동 영역이다.

지금도 돈버는 것을 포기하고 공부하기로 결심한 그때의 선택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일정 수준 이상의 명성과 인프라를 갖춘 학교에서 뒤쳐지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신에게 하루에도 몇번씩 감사한다. 특출난 재능은 없지만 공부가 왜 재미있는지 그 “맛” 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머리를 허락받은 것을 둘도 없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재미의 차원을 벗어나 분명히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처음에 쓴, 멀어지는 한국의 친구들같은 문제들.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난 이미 이쪽 세상에 몸과 마음을 바쳤으니, 다시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도 없다.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고 한국에 가서 회사에 취직하는 상황이 발생해도, 이 곳에서 – 그러니까 ‘학교’ 에서 – 체득한 가치들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밑바탕위에서 살아갈 것 같다.

그래서 요는, 공부를 하고 싶다면,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는 얘기.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나는 너무 쉽게 결정해 버렸다. 후회는 없지만, 아마도 후회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The National in the Fillmore, Denver

어제 덴버에 있는 필모어 오디토리움에서 더 내셔널의 공연이 있었다. 전날에 이어 어제도 스캇과 함께 했다. 덴버에 있는 공연에 갈 때 일종의 징크스같은 것이 있는데 스캇과 나 단 둘이서만 가는 날은 항상 날씨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내 생애 최악의 폭우를 만났는데 와이퍼가 고장나 폭우속을 와이퍼없이 간 적도 있었고, 눈이 몹시 많이 내리는데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 빙판길이 된 고속도로를 달려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재밌는 사실은 신기하게도 우리 둘 외에 다른 친구와 함께 가는 날은 항상 말끔하게 맑은 날씨였다는 점이다. 남자 둘이서 외롭게 공연보러 다니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싶다.

이틀 연속 공연 관람은 우선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다. 세시간 넘게 기댈 곳도 없이 그냥 서 있어야 한다. 공연이 끝나면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 기본적으로 허리쪽이 부실하기 때문에 더더욱 힘들기도 하다. 게다가 어제는 월요일, 일주일중 가장 바쁜 날이었다. 가뜩이나 일요일 저녁에 공연보러 간다고 화요일에 있을 수업준비가 부실했는데 월요일 저녁까지 공연으로 뺏겨 버리니 아침 시간과 점심시간같은 짜투리 시간들을 활용할 수 밖에 없었다. 엄청 바쁜 일과 시간을 보내고 잠시 짬을 내 공연장으로 출발 전까지 침대에 누웠는데 어찌나 일어나기 싫던지.. 게다가 TV 에선 레인저스와 양키스의 경기를 해주고 있었다. 심각하게 고민을 했으나, 결국 비싼 표값이 아까워서라도 가기로 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차를 몰고 덴버로 향했다.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아 30분만에 도착했는데, 근처 도로변에 차를 주차하고 공연장으로 들어가니 세팅을 한참 하고 있었다. 우리는 오프닝 밴드가 한팀일지 두팀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로 내셔널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아마 우리가 조금 늦게 (한 아홉시쯤) 도착했는데 그 전에 이미 오프닝 밴드 공연이 다 끝났던지 오프닝 공연없이 바로 본 공연으로 들어갔던지 했을 것 같다. 언뜻 오웬 팔렛의 트위터에서 그가 덴버로 가지 않고 캘리포니아에 남는다는 트윗을 본 기억이 났다. 오웬 팔렛도 거의 메인 밴드에 버금가는 명성을 가지고 있어서 꽤나 기대했는데 그의 공연을 보지 못해 약간 아쉬었다.

그러니까 중간 요약하자면 육체적으로 매우 피곤한 상황에서 중요한 스포츠중계가 있었고 오프닝 밴드까지 놓친 상황이었다는 거다.

그리고 시작된 공연은… FANTASTIC!

스캇이 알려준 블로그 링크 하나를 건다.

말그대로 눈물이 줄줄 나오는 상황 ㅠㅠ 첫곡을 “start of war” 로 시작한 것부터 영광스러웠고 <the boxer> 앨범과 이번 신보에 있는 거의 모든 곡을 다 연주했다. 난 그들이 그냥 아주 좋은 스튜디오 앨범 밴드인 줄로만 알았다.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나 가끔 나오는 오피셜 라이브 영상에서 실망을 꽤나 했기 때문인데, 직접 본 라이브 무대는 아주 환상적이었다. 필모어 오디토리움은 꽤 큰 공연장이다. 한 오천명 정도? 는 능히 수용할 수 있는 규모. 공연장이 크면 좋은 점이 우선 사람들의 ‘에너지’ 가 더 많이 모인다는 거다. 만약 뮤지션의 공연이 성공적으로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경우 그들이 모아 내지르는 에너지를 느끼는 재미는 공연장의 묘미중 하나다. 어제 내셔널의 공연이 바로 그랬다.

중간 중간에 던지는 아주 “재미있어 보이는” 농담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게 아쉬었지만, 공연 하나만큼은 정말 끝내줬고, 최근 본 공연중에서 감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연의 마지막은 이런 식으로. 꽤 괜찮은 끝맺음이었다.



사진과 동영상은 모두 링크된 블로그에서 가져 왔다.

the Walkmen w/ Japandroids in Fox Theatre, Boulder

바쁜 일요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미사를 보고 (오랜만에 혼자 봤다) K 를 만나 브런치를 먹고, 머리를 깍았다. 한번쯤 혼자 집에서 삭발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기회에 실천해 봤다. 한국에선 남녀노소 머리스타일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눈치보느라 차마 도전하지 못했는데, 저번에 사둔 기계를 이용해 욕조에서 혼자 쓱쓱 밀었다. 나는 시원해서 꽤 괜찮은 것 같은데, 보는 사람들마다 상당히 슬퍼했다. 왜? 뭐가 어때서? 동정하지 마.

잠시 다운타운에 있는 카페에 가서 논문을 좀 읽다가 학교에 가서 농구 시합을 했다. 준결승전이었다. 우리팀은 한번도 결승에 가본 적이 없다. 항상 준결승전이 최고 성적이었다. 결과는, 아쉽게도 이번에도 여기서 스탑. 상대팀이 너무 잘했다. 우리도 못한 것 없이 선전했는데 기본적인 실력에서 밀렸다. 나도 3점슛 몇개를 미스해 패배에 일조했다.

우울한 마음을 안고 S,C 와 밥을 먹으러 갔다. 사실 밥보다 술이 먹고 싶었다. 어제 사우스 캐롤라이나가 졌고, 오늘 낮엔 카우보이스가 졌다. 그리고 저녁엔 우리 농구팀도 졌다. 좀 안풀리는 주말인 셈이다. 바에 앉아 해피 아워 음식들을 집어 먹으며 추수감사절 기간동안 샌안토니오에 놀러갈 계획을 짰다. 월요일에 가서 금요일에 돌아오는 비행기편이 200달러 남짓. 나는 가겠다고 했다. 여행이 너무 고팠다. 추수감사절기간에 할일이 태산이지만, 일단 배를 째기로 했다.

술에 거나하게 취해 학교 건물로 들어와 빈 교실의 프로젝터를 통해 MNF 을 봤다. 우리가 응원하는 레드스킨스마져 패했다. 그 전에 우리가 응원하던 샌프란시스코도 NLCS 에서 패했다. 오늘 진짜 내가 응원하는 팀은 다 졌네.

첫번째 오프닝 밴드는 건너뛰기로 하고 술을 좀 더 마신 후, 아홉시 반쯤 느릿느릿 공연장으로 향했다. 마침 첫번째 오프닝밴드가 막 끝나고 두번째 오프닝 밴드인 Japandroids 가 나오는 시점이었다. 재팬드로이즈는 캐나다 밴쿠버 출신의 2인조 펑크 밴드이다. 베이스가 없고, 드럼과 기타만으로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No Age 와 비슷한 카테고리에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꽤나 ‘흉폭’한 사운드를 들려준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2009년 최고의 앨범중 하나였던 <Post-Nothing> 에 있는 거의 모든 곡을 연주했다. 공연을 보면서 든 생각은 얘네가 정말 그린데이 이후, 혹은 모과이 이후를 대변하는 ‘다음’ 세대가 아닐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꽤나 인상적이었다. 아직 많이 덜 다듬어 졌지만 원석 자체만으로 훌륭했다.

그리고 꽤나 오랜 기다림이 있었다. 아마 공연장비쪽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공연이 시작되고도 보컬 사운드쪽에 문제가 계속 생겼다.

Indie 씬에서 생각만큼 엄청난 걸작은 사실 몇작품 나오지 않고 있는 2010년에서 내가 생각하는 ‘올해의 앨범’ 중 하나인 <Lisbon> 을 발매한 워크맨의 공연이 시작됐다. 워크맨은 항상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속상한 뮤지션” 들중 순위권에 꼽히는 밴드다. 지금까지 총 네장의 (메이저)앨범을 발매했고(두장의 마이너 시절 앨범이 있다), 앨범을 거칠 수록 조금씩 더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생각보다 큰 대중적인 관심은 받지 못하는 것 같다. 1집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의 실패없이 본연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에서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기도 하다.

공연은 앨범으로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좋았다. 좋았다, 라고 말하기 전에 뭔가 달랐다, 라는 말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플레이어를 통해 들었던 이들의 사운드는, 몽환적인 구름 사이를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먹먹한 안개가 자욱히 낀 어느 작은 마을을 달리는 느낌도 들었다. 그 속에서 서정적인 울림들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꿈을 꾸는 듯한, 지상에서 약간은 붕 뜬 듯한 느낌. 그게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워크맨의 음악에 대한 이미지였다. 그런데 실제 공연장에서 만난 이들은 훨씬 더 ‘성숙’ 했다. 분명히 개러지에서 시작했을텐데, 지금까지 한번도 커다란 대중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텐데, 네장(혹은 여섯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지내온 지난 7년의 세월동안 그들은 굉장히 어른스러운 음악인이 되어 있었다. 상당히 고전적인 형태의 악극을 하나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애디트 삐아프의 공연처럼 말이다. 시작부터 마구 달려서 관객들을 미치게 만드는 그런 요즘의 공연들이 아니라 극의 순서가 명확히 정해져 있는 그런 공연말이다. 정중하게 인사하며 시작하고, 새로운 앨범에 속한 곡들을 먼저 순서대로 다 들려준 후, 예전 곡들중 지금 현재 의미를 가지는 곡들을 설명과 함께 다시 연주했다. 그 흔한 앵콜 요청에 응하면서도 “you still stay here” 라고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멤버들을 한명씩 소개하며 끝내는 무대. 뭔가 고전적인데 뭔가 색달랐다. 가장 최근에 싱글 커트된 “angela surf city” 로 공연을 시작해 그들의 시작을 알렸던 초기 히트곡 “the rat” 을 앵콜에 포함시키는 그런 회귀적인 공연 구성이었다. 공연 내내 무척 여유로워 보였고, 무대 장비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당황하는 기색없이 공연장의 흐름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몇번이나 소름이 돋았는지 모른다. 보는 내내 참 좋았다. 최근에 이렇게까지 만족한 공연이 또 있었나 싶다. 세시간 넘게 서있다 보면 결국 막판에는 지치거나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비록 허리는 쑤셨을지언정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워크맨의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다른 축인 브라스가 공연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브라스가 요긴하게 쓰인 좋은 곡들을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

wine, gathering, and some thoughts.



요즘 블로그에 글을 쓸 의욕이 잘 안생긴다. 잘 써지지도 않고. 누군가 이 블로그를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괜히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보여주기 싫어서 자판이 잘 눌러지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만약 그 훔쳐보는 사람이 뒷담화잘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라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래도 뭐 어떡할건가. 이미 워드프레스에 돈까지 내고 스페이스까지 늘렸는데 ㅠ 꼼짝없이 1년은 더 여기 있어야 겠지. 이 블로그로 이사오면서 결심한 건 절대 오프라인 지인들에게 알려주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남들이 말하는 ‘이중생활’ 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뭐 어짜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설명해봤자 제대로 이해할지도 의문이지만, 나는 그저 내가 마련한 나만의 소중한 공간을 침해당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이 공간에서 내가 누구와 무슨 짓을 하든 제발 신경을 쓰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난잡한 짓거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하루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머리속에 실타래처럼 얽힌 생각들을 풀어내기도 하는 그런 일기장같은 곳일 뿐이다. 그렇게 특출날 것도 없고, 그렇게 도드라지게 내세울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인터넷 공간들중 하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비밀스러운 곳이 아니라면 굳이 숨길 필요도 없잖아.”

맞다. 하지만 굳이 모두에게 떠벌리고 다닐 필요도 없잖아. 그냥 자기 방문 닫고 들어가는 딸내미처럼 그냥 내버려 두면 안되는 걸까.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공간 자체가 중요한 거다. 그걸 오지랍넓은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튼.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을 내가 차단할 수 없으니 알아서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오늘은 K 가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저녁을 먹었다. 2주에 한번씩 주말에 다함께 모여 거나하게 저녁을 먹고 노는 친구 무리들이 있는데, 나는 그 무리들중 유이한 한국인중 하나라는 이유로 한국 음식을 소개한다는 임무를 부여받고 미리 도착해 간단한 일들을 도왔다. 애피타이저로 굴전과 생선전, 그리고 부침개를 내놨는데 역시 굴전과 생선전의 인기가 상당히 좋았다. 메인 메뉴는 비빔밥과 닭볶음탕이었다. 비빔밥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미지근했다. 이유를 분석해 보니 역시 ‘비빈다’ 라는 개념이 약간 희박해서가 아닐까. 젓가락 사용에 대한 장벽도 있었을테고. 브뤼또도 비비는 개념이긴 한데 그건 판매자가 알아서 비벼주니까. 암튼 맛있게 저녁을 먹고 (저녁식사가 주였는지 와인과 소주가 주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술도 맛있게 마시면서 다함께 ALCS 를 시청했다. 텍사스 출신 친구가 하나 있어서 모두 레인저스를 응원했는데 어이없게 8회에 우르르 무너지면서 지고 말았다. 양키즈에게는 또 하나의 포스트시즌 전설을, 레인저스의 젊은 친구들에게는 잊지 못할 악몽으로 기억될 밤이었다.

식사중 M 이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보여주며 N 과의 약혼 소식을 알렸다. 아리따운 우크라이나 아가씨를 잡은 N 은 정말 땡잡았구나 생각했다. C 는 여자친구와 어떤 문제가 있어 보였고, 그의 룸메이트 E 가 부연 설명을 해줬다. 난 처음에 C 와 E  사이가 수상해 보였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아이가 있는 C 의 여자친구를 위해 C 와 여자친구가 데이트할 때 아기를 대신 봐주는 정도의 관계?

애들을 돌려보내고 술에 취해 잠든 K 대신 한시간에 걸쳐 설거지를 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였다. 가끔 아버지께서 친구들과 집에서 술을 드실 때가 있었다. 일년에 몇번 없는 일이었는데 암튼 밤늦게까지 술을 드시다가 친구분들이 떠나시는 걸 배웅나갔다가 들어오면 확- 하고 느껴지는 술 + 담배 냄새가 참 인상적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외부인의 냄새와 합쳐져 익숙한 ‘우리집’ 풍경 안에서 기묘한 이질감같은 걸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난 그 냄새를 ‘어른들의 것’ 이라고 정의내렸다. 그 당시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냄새였으므로. 그리고 십몇년이 지났다. 오늘은 오후부터 술이 땡겼다. 이런 날이 내 인생에 몇번 없는데, 요즘 하도 격무(?) 에 시달리느라 달콤쌉싸름한 와인이 그렇게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K 집에 가면서 한병도 아닌 두병을 사서 갔다. 내가 좋아하는 Rhone 지방 레드와인과 리쿠어샵에서 추천하는 보르도산 화이트와인. 다들 하나씩 가져온 와인을 차례로 뜯으며 홀짝 홀짝 넘기는데 우크라이나 출신 친구 M이 담배를 밖에서 피우고 들어올 때마다 어렸을 때 느꼈던 그 냄새가 확- 하고 났다. 아, 어른이 됐구나. 열몇살짜리 아이들이 나를 보면 어른이라고 생각하겠구나. 이렇게 이룬 것도 없이 쉽게 되는 게 어른은 아닐텐데. 와인맛이 약간은 더 쓰게 느껴졌다.

아무튼 손님 접대는 힘든 일이다. (헤럴드 동기들이 이 글을 본다면 이 부분에서 한번쯤 웃지 않을까) 한시간에 걸쳐 설거지와 간단한 뒷정리를 끝내고 K 가 도저히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냥 냅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찬물로 설거지를 장시간하니 약간은 술이 깨는 느낌이었다. 집에 와서 전화기를 보니 C 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C: Jong you seemed sad and not bc of the rangers

J: bc i was worrying about dishwashing.. i just finished it.

C: ah I c

C: Thanks for washing!

J: haha it’s joking (it’s not joking i just finished it) i’m happy with it. i was just uncomportable with K seemed still think of me as her boyfriend

C: Yeah I can see that.. I wondered a couple times tonight if y’all were together again :(

C: Is it harder bc we all hang out together?

J: nooooo it does not matter. it is just because i did wrong action, giving her wrong signal. i will correct it soon. dont worry too much. thanks!!

C: Okkkk :)

내가 착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거다. 다만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모두 이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나도 다시 잘됐으면 좋겠지. 이제 나이도 있으니까 나도 M 과 N 처럼 사이좋게 지내다가 (이들도 한번 헤어졌다) 약혼도 하고 결혼도 하고 그렇게 알콩달콩 대학원 생활 잘 마무리하고 싶지. 누가 그러고 싶지 않겠어.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보다 나은 상대는 찾기 어렵다. 감지덕지하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아닌 건 아닌거다 라고 외치고 있다. 나에게 허락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간하는 능력이 살면서 참 중요한데, 가끔 착각할 때가 있다. 지금 내가 그걸 착각하고 있는건가? 잘 모르겠다. 내일 풋볼이나 봐야겠다. 오하이오스테잇 내일 제발 져라. 위스컨신 화이팅.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매해 노벨상이 발표되는 시기가 되면 여기저기서 (특히 베팅사이트들) 수상자를 예측하기 바쁘다. 특히 유일한 사회과학분야인 노벨 경제학상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일반 대중이 착각하기 쉬운 맹점 두가지가 여기 있다. 첫째는 노벨상 수상자의 연구 경력을 현 경제 상황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건 언론쪽에서 주로 많이 하는 편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듯이 언론들은 노벨 경제학상이 가지는 ‘상징성’ 을 만들어 내기 바쁘다. 의학상이나 물리학, 혹은 화학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하고 또 그 상들이 갖는 ‘시의성’ 은 일반 기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이니 ‘만만한’ 경제학상에서 이야기꺼리를 만들어 내는 쪽을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경제학상을 수상한 사람들의 연구 경력은 지금 현재 세계가 가지고 있는 경제 상황과는 아무런 연관 관계가 있다. 경제학 분야에서의 노벨상은 그 사람의 업적과 경제학에의 공헌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그러니까 은퇴가 가까워져 온 학자의 걸어온 길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가 더 클 것이다. 물론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의 사회적 영향력은 일시적으로 커질 지 모른다. 예를 들어 재작년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같은 경우나 이전에 수상한 스티글리츠같은 경우에는 정기적/비정기적으로 대중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며 꾸준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노벨상 수상 이전부터 그렇게 행동했다. 노벨상 수상이라는 프리미엄은 붙는 건 아주 순간적이다.

다른 하나는 노벨 경제학상에 대한 논의가 주류 경제학의 테두리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착각이다. 실제로 주류 경제학의 발전에 공헌한 많은 이들이 이 상을 받았다. 하지만 반드시 주류 경제학의 테두리안에서만 수상자가 나오리라는 법은 없다. 작년 수상자인 오스트롬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우리 학과의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그녀가 노벨상을 받기 전까지 그녀의 논문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단 한번도 경제학과에 재직한 적이 없는 정치학자/사회학자이다. 그녀의 이론은 경제학분야에 국한해서 큰 공헌을 했다기 보다는 전체 사회과학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대한 발전 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았다. 사회과학분야의 유일한 상이니만큼 비록 이름은 경제학상이지만 관련된 다른 사회과학 분야에 공헌한 사람까지 고려하는 것이다. 영화로 유명해진 존 내쉬도 마찬가지 경우다. 현대 주류 경제학에서 내쉬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흔히 거론되는 ‘내쉬 균형’ 은 현대 미시 경제학 이론에서 아주 핵심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그는 수학자이고, 한번도 경제학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내쉬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은 경제학이 얼마나 수학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한국 경제학계에서 오스트롬의 수상은 상당히 낯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세계 곳곳에서 흔히 말하는 비주류 경제학은 열심히 발전중에 있다. 그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단단한 틀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주류 경제학이 갖는 맹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대안을 마련하는 데에 공헌하고 있다. 주류 경제학 분야에 공헌한 이유로 수상한 스티글리츠는 현재 비주류 경제학자로 분류된다. 경제학이 갖는 짧은 역사만큼이나 그 다이내믹도 활발한 편이다.

여튼, 올해 수상자는 모두 세명인데, 세 분 다 꽤나 유명한 분들이다. 이 분들이 수상한 이유는 거시 경제학에서 실업 문제를 획기적인 방법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흔히 노동 경제학은 미시 경제학의 세부 분야로 취급받는다. 그러니까 정태적인 상태에서 특정 산업 중심으로 분석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계량적인 방법론이 많이 개발되었고, 또 이를 통해 특정 산업 혹은 특정 지역의 노동 문제를 분석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발전이 있어 왔다. 거시 경제학에서 노동문제는 하나의 변수로 취급받는다. 전체 균형의 한 파트로서 기능할 뿐이다. 올해 경제학상을 받은 세분은 ‘labor search model’ 이라는 이론을 만들어 이 분야를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분석하는 데 공헌했다. 다이아몬드는 학부 교과서에 이름이 언급될 정도로 유명한 분이다. 한국 은행이나 금감원 시험 준비를 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그의 이론을 공부해 봤을 것이다. 미시경제학에서 발전한 pareto optimum 이나 market efficiency 의 개념을 거시경제학의 동태적인 분석에 성공적으로 대입해 초기 명성을 얻었다. 물론 이번에 그가 수상한 노벨상은 그 이후에 이룩한 labor search(matching) model 때문이다. 다이아몬드의 이 부분은 잘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Mortenson 도 거시경제학에서의 노동 문제에 천착했다. Sargent 가 고안한 labor friction problem 을 발전시키고 이를 서치 모델과 연결시켜 동태적인 실업률 문제를 전체 균형속에서 잘 이끌어 냈다. Pissarides 는 사실 이 분야의 대가이자 선구자다. 때문에 이 세명중 가장 큰 주목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는 서치 모델을 처음 고안하고 발전시킨 사람중에 한명이며, 거시 노동 분야의 바이블로 평가받는 <Equilibrium unemployment thoery> 를 집필했다.

labor search model 은 얼핏 굉장히 단순하고 심플한 이론이다. 노동 시장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있다. 수요자는 회사고, 공급자는 노동자 개개인다. 회사는 매 기마다 특정 수의 job 을 포스팅하고, 노동자도 매 기마다 가용한 노동력이 얼마인지 그 정보를 회사쪽에 제공한다. matching function 은 이 두 집단간의 posting 에 기반해 만들어진 함수다. 이 함수를 기반으로 노동자는 자신의 효용함수를 극대화하고 회사는 이윤을 극대화한다. 이를 동태적 모형으로 바꾸면 약간 더 복잡해 진다. 저번기에 고용되어 있던 노동자는 계속 이 회사에서 일할 지 자발적 실업자가 되어 다른 직장을 구할지 매기 초에 결정한다. 회사도 고용 규모를 바꿀지 결정해 이를 matching function 에 반영한다. 이 선택에 미치는 변수도 다양해 진다. 기대 임금과 실업 상태에서의 비용, 그리고 새로운 직장을 구했을 때의 기대 효용등이 노동자의 머릿속에 들어간다. 회사도 마찬가지로 이윤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변수들을 생각해야 한다. 이 모델은 굉장히 ‘미시스럽다’ 그러니까 한 사회 전체, 혹은 한 나라 전체의 실업률을 판단하기에 앞서 특정 회사와 특정 노동자간의 관계를 먼저 살펴 보자는 것이다. 이를 사회 전체적으로 확대하면 나라 전체의 실업률을 estimate 할 수 있다. 이 이론이 나오기 전까지 실업률 문제는 굉장히 종속적이었다. 단순한 가정하에 그저 여러 변수중 하나로 소개되었을 뿐이고 전체적으로 구해진 균형안에서 피상적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때문에 많은 거시 모델에서 꽤 괜찮은 균형을 구해 놓고도 simulation 에서 번번히 실패했던 부분도 바로 이 실업 부분이었다. 서치 모델은 미시 경제학의 전유물이었던 실업 문제를 동태적인 거시 모델안에서도 성공적으로 풀어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계략적인 방법론에 기대어 ‘귀납적’ 으로만 풀어낼 수 있었던 노동 문제를 ‘연역적’ 으로도 풀 수 있는 기초를 만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세분과 친하지는 않다. (..) 다만 지난 학기부터 시작해 얼마전에 끝낸 내 첫번째 페이퍼가 이 이론과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어 관련 서적과 논문을 많이 참조했다. 특히 피사리데스 교수의 책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 혹시 얼마전에 포스팅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를 기억하시는지? 그렇다면 그 포스팅에 등장한 LSE 경제학과장이자 유럽 노동경제학회장을 맡고 계신 분의 이름이 피사리데스라는 사실을 밝혀야 겠다. 그 분의 논문을 읽고 “참 정말 완벽하다” 라고 감탄했고, 도저히 빈틈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그의 글들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물론 엄청난 좌절감도 함께 느껴야 했지만. 몇주전 가까운 지인들에게 “내가 내 페이퍼에서 하려고 했던 것들을 이미 10년전에 다 해버린 교수가 있어서 찾아 봤는데 LSE 학과장이더라” 하고 말했더니 “넌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고 있다. 그 정도 레벨이 되는 사람들이 한 것과 너의 것을 비교하지 마라” 라는 타박을 받았다. 그리고 어제 바로 그 이야기의 대상이 노벨상을 받았다. 이 분들은 베팅사이트들의 예측 후보군에 속해 있지도 않은 분들이었다. 어제 오늘 나의 지인들은 나의 “혜안” 에 탄복했다. 크크.

4시간의 노력 후

이번 학기에도 세과목을 듣는다. research methods 라는 박사 과정생들을 위한 연구/논문작성법 수업을 의무적으로 3년차때 들어야 하고, 나머지 두과목은 세미나 과목으로 채워야 한다. 나는 Nonparametric econometrics 와 History of economic development 를 선택했다. 경제사는 한번 꼭 들어 보고 싶은 과목이었고, 계량경제학은 내 취약 분야중 하나였기 때문에 보강한다는 생각으로 신청했다. 아마 이번 학기가 세과목을 한꺼번에 듣는 마지막 학기가 될 것 같다. 다음 학기는 research methods part 2 와 재수강해야 하는 게임이론 한과목만 들을 예정이고, 한과목 남은 세미나 과목은 4학년때 새로운 논문을 시작하면서 교수님과 independence study 를 한번 더 해서 끝낼 생각이다.

… 그럴 생각이었다. 불과 몇분전까지.

metrics 수업은 총 네번의 숙제가 나오는데, 방금전까지 두번째 숙제를 하기 위해 끙끙거리다가 결국 포기했다. 증명 문제들은 모두 끄적거릴 수 있었지만 가우스 코드를 사용해 구해야 하는 코딩 문제는 오래 쳐다본다고 풀리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네시간여의 “쳐다봄” 후에 깨달았다. 난 매틀랩을 주로 사용하는데 교수님이 가우스 코드만을 올려 주시니 그걸 일일이 해석해야 했다. 첫번째 숙제때는 그럭저럭 어떻게 넘어 갔는데 두번째 숙제부터는 이게 장난이 아닌지라, 단순히 노력한다고 되는 뭐 그런 게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이럴땐 참 이과생 혹은 공대생이 부럽다. 암호와 흡사해 보이는 컴퓨터 언어들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걸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난 이제서야 더듬더듬 매틀랩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누구나 한두개쯤 자유자재로 만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공대생들은 C++ 이나 매틀랩, 혹은 가우스를 주로 다루고, 가끔 매쓰매티카를 쓰기도 하는 것 같다. 통계학을 하는 사람들은 가우스를 좋아한다. 매틀랩도 물론 사용하고. 나같은 문과생들은 일일이 코딩해야 하는 파워풀한 프로그램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stata 나 sas 같은 걸 선호한다. 대부분의 micro level economist 들은 스타타에서 멈춘다. 계량을 하는 사람들은 가우스나 이뷰즈를 쓰고, 거시를 하는 사람들은 타임시리즈 시뮬레이션때문에 매틀랩을 선호한다. 나는 지도 교수님이 매틀랩을 쓰셔서 덩달아 매틀랩을 배우고 있다. 물론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사람이 보면 한심해 할 것이다. 가우스나 매틀랩이나 그게 그건데 왜 못한다고 징징거리지, 하고. 하지만 내츄럴 본 컴맹으로 태어나 이정도까지 끙끙거리는 것도 내 딴에는 대견할 뿐이다 ㅎㅎ

그래서 결론은, 내일 얼른 계량 수업을 드랍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더이상 이 엄청난 괴로움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나처럼 research idea 가 계량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계량 이론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는 건 약간 손해인 것 같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내 지도 교수님중 한분께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분은 ‘tool’ 은 많이 배워두면 좋다는 식으로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참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 밤을 기점으로 더이상 참지 못할 것 같다 ㅋ 수업을 드랍해야 겠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마음이 한없이 편해졌다. 세상이 밝아 보였다. 불과 몇분전까지 모니터를  빨려 들어갈 듯이 노려보며 머리털을 잡아 뽑고 있었는데 마음 한번 고쳐 먹었다고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다니. 인간 참 간사하다.

이른바 조삼모사다. 지금 편하고 나중에 좀 고생할래, 지금 고생 좀 하고 나중에 편할래, 하고 묻는 것과 같다. 나는 일단 지금 당장 숨을 좀 쉬고 싶다고 스스로에게 답했다. 지금까지 참고 해온 것도 참 장한데, 조금만 더 넉넉하고 여유롭게 가보자, 하고 스스로를 달랬다.

타블로 사건


아직 이 사건이 진행중이라 확언같은 건 하지 못하겠다. 검찰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양측의 주장도 새롭게 reform 되어서 제기되고 있는 터라 아직 종결된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다만 지금까지의 추이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점 몇가지만 메모.

1. 인터넷 여론은 그 자체로 어떠한 권위도 획득하지 못한다. 인터넷에서 수십만명이 떠들어 봤자 공중파 방송 하나의 위력만 못하다. 다만 인터넷상의 소수의 그룹내에서 일종의 권위자가 출현할 수 있다. 미네르바라던가, 이번 사건의 핵심인 왓비컴즈같은 인물이 그렇다. 이들은 그 소수의 그룹내에서 여론을 이끌고 일종의 오피니언 리더로 군림한다. 하지만 그가 유력 언론 매체와 같은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이들을 대하는 일반 대중의 속성은 생각보다 미온적이고 유보적이다.

2. 공중파 방송을 포함한 각종 오프라인 매체들은 그 전까지 인터넷 여론의 댓글들을 베껴 쓰는 수준이었다. 연예신문들의 수준이 어느정도까지 참혹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요즘 연예부 기자는 평균적인 중학생 정도 필력이면 능히 해낼 수 있다.

3. 이렇게 권위를 획득하지 못한 인터넷 여론과 그걸 받아 쓰기 급급한 오프라인 매체들 사이에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반복해서 확대 재생산 되는 과정이 타블로 사건의 본질이다. 우리가 fact 라고 부르는 것에서 출발해서 엄청난 버블을 생산해 낸 것이다. 이 과정이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에너지 낭비적이었다는 데에는 나도 동의한다.

4. 하지만 타블로에 대해 의심을 가졌던 사람들중 상당수는 단순히 미치광이나 정신병자는 아니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의심이 타블로의 “허언증(?)”과 합쳐져 꽤 수긍할만한 추론들을 상당수 만들어 냈다. 타블로측의 결정적인 실책은 그를 의심한 모든 사람들을 타진요로 매도해 버린 것이다. 일반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증거들을 제출하면서 사건을 일단락지었어야 했다.

5. 결국 우리나라는 아직도 외국학력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증명한 꼴이 됐다. 한 사람의 학력이 위조냐 아니냐라는 이슈를 떠나서, 한 사람의 좋은 학력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는 이 나라의 환경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신정아라는 괴물이 나라를 한바탕 뒤집은 뒤에도 이와 같은 외국학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과 부러움이 섞인 시선은 수정될 줄을 모른다. ‘스탠포드’ 가 마치 하나의 브랜드처럼 팔린다. 그 간판이 지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뭔가 잘못됐다.

6. 문제는 엉뚱하게 세계 최고의 질을 자랑한다는 미국 학사 시스템과도 연결된다. 나도 한번 재학 증명서를 받아보려고 노력했다. 놀랍게도 받을 수가 없었다! 공식적인 재학 증명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학과의 대학원장님 혹은 graduate coordinator 의 싸인이 들어간 컨펌 레터가 나의 재학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뿐이었다. 미국의 좋은 학위 시스템은 그만큼 증가하는 학위 위조 시스템과도 연결된다. 학교 서버는 해킹의 단골 대상이 되고 학력 세탁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용이한 편이다. 수많은 이들이 실제 그렇게 학위만을 따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다. 이러한 풍속도 이번 사건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7. 그러니까, 미국은, 혹은 서구 사회는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사회가 출발한다. 그래서 거짓말은 상당히 큰 죄 혹은 잘못으로 취급된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고, 만약 그 믿음이 깨졌을 경우 묻게 될 책임은 상당히 크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누구나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사회가 형성되고 관계가 맺어진다. 누구나 속일 수 있고 속을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대통령부터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회다. 타블로 사건은 그의 진실 여부를 떠나 이렇게 피폐해진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8. 결국 권위를 가진 기관에서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선에서 마무리 될 확률이 높다. 우리는 그것을 검찰이라고 부른다. 언론보다 더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있고 더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일반 대중은 검찰의 결정과 판단을 존중한다. 법치국가에 사는 사람의 상식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헌데 요즘 검찰이 하는 짓을 보면 대중이 반드시 그렇게 하리라는 확신도 없다.

9. 최근 몇년간 한국의 여론을 잠식했던 몇몇 사건들의 공통점은 간단하다. “누군가를 미워하기” 다.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흠을 보인 특정 소수는 타겟이 되어 열렬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그 비난 속에는 논리적인 비판도 있고 비논리적인 비난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한두명을 매장시킨다음 다음 타겟을 찾아 어슬렁거린다. 인터넷 여론이 양날의 검인 이유다. 기존의 매체나 기관들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는 좋은 수단이자 민주주의의 또다른 실험의 장으로 기능하기도 하는 인터넷이지만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해결될 수 있는 일을 끄집어 내어 먹잇감으로 활용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공간은 침해당하지 않아야 한다. 그 자체로 열려 있어야 한다. 자체적인 자정작용의 힘을 믿어야 한다. 권력의 개입으로 제한당하기 시작하는 인터넷 공간은 더이상 순기능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시민 개개인의 정신적인 성장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3년전 이맘때.

3년전 이 즈음, 날씨가 추워질락 말락 찬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던 무렵 난 학부 마지막 학기를 다니면서 원서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영어를 지독히 못했던지라 영어로 된 외국대학 사이트들을 하루종일 쳐다보고 있는 것이 큰 고역이었다. 그때 당시 듣던 과목들도 힘들기 그지 없던 것들이어서 참 고되고 힘든 하루 하루를 보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참 입에 단내가 났던 날들이었다. 그때 자기 전 침대에 누워 항상 상상하곤 했다. 미국의 어느 대학에 들어가 수업을 듣는 모습, 아니, 그 전에 열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가서 미국 공항에 내리는 모습부터. 그렇게 스스로를 미래의 어느 순간에 가져다 놓으며 불확실하고 힘든 현재를 이겨내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되어 불합격 통지를 하나씩 받을 때마다 울컥하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다시 한번 애써야 했다. 제발 단 하나의 기회라도 꼭 붙들고 싶었다. 아무 대학이나 붙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만을 바랬다. 가기만 하면 정말 열심히, 잘 할 수 있는데.. 하면서 빌고 또 빌었다. 그만큼 절실했던 순간이 또 있었나 싶다. 이상하게 대학 입시때는 긴장이 크게 되지 않았던 것 같고.. 춘천 보급대에서 철원으로 가지 않게 기도할때? ㅋ (그래서 덕분에 더 빡센 곳에 걸려 2년동안 죽도록 고생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여기까지 왔다. 초심을 잊고 살 때가 많다.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곳에 처음 왔는지 망각하며 살 때가 많다. 그래서 지금 현재의 하루가 얼마나 가치있고 소중한지 잊어 버리게 된다. 내가 불과 몇년전 그토록 소망했고 바래 왔던 그 하루를 지금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데도 지금 현재의 하루가 이상향에 걸맞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부정당하기 일쑤다. 사람들은 늘 자기 위에 무엇이 있는지만 궁금해 한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밟고 서 있는지는 별 관심이 없다. 무엇에 감사해야 하고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잊은채 자신이 갖고 싶으나 갖지 못한 것에만 욕망한다. 나 역시 그런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가끔 쓸데 없어 보이지만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왜 이것을 지금 하고 있는지 다시 돌이켜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이 생각만큼 쓸데 없지 않을 수 있다. 어두운 가운데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지만, 늘 불확실한 미래가 하루살이처럼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기까지 왔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를 미친듯이 하고 있다. (이렇게 많고 힘들 줄은 정말 몰랐지만 ㅋ) 그럼 된 것 같다. 그저 감사하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뿐.

3년전 그 가을, 학부 마지막 학기때 듣던 수업중 한 교수님이 여담으로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경제학은 벽이 여러개 있는 것 같다고. 평탄하게 잘 가나 싶다가도 큰 벽 하나가 나타나고, 그걸 힘겹게 넘어서 좀 더 가다 보면 더 크고 높은 벽이 또 나온다고. 그렇게 여러개의 벽을 차례로 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나는 그 벽을 한 두개쯤 넘은 것 같다. 넘지 못하고 좌절한 벽도 있다. 하지만 다시 넘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아직)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넘어야 하는 벽을 한번 더 만난 것 같다. 이 벽을 넘으면 이제 좀 뭐가 보일 것도 같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벽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느꼈던 희열감이 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벽 너머에 있는 것이 나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건 확실히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