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아홉

하루종일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골똘하게 해도 한줄을 쉽게 써내려 갈 수 없다. 그저 지껄이는 수준이면 좋으련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쓰는 글은 쉽게 써내려 갈 수 없다. 이십대 중반에 한 친구에게 글 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자만심에 가득차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지금, 이십대 후반에 이르러선 단어 하나 선택하는 것이 참 고되고 힘든 작업이다. 비단 한국에서 영어로 표현 수단이 달라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머릿속에 많은 것이 들어갈 수록,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록 내가 얼마나 한숨나오는 수준에 있는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겁이 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무모하게 살아 왔는가 뼈저리게 후회하기 때문이다. 하룻강아지가 호랑이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순간 얼마나 섬찟한 기분이 들까. 두려움에 차마 도망가지조차 못하지 않을까.

나의 이십대 끝자락은 그런 기분에 휩싸여 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다. 내가 못났음을 모르고 살아온 지난 세월보다는 훨씬 더 생산적이고 행복할 테니까. 어둠속에 빛이 한자락이라도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말이다. 나는 맹자의 말을 따라 30세에 이립(而立) 할 수 있을까? 더 많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목표 설정.

농구 시합을 마치고 집에 오니 열한시가 조금 넘었다. 밤 열시 시합은 이번 학기 들어 처음 경험해 본다. 지난주에 이어 두번째. 농구 시합을 마치면 하루가 끝난다. 덴버에서 통학하는 멤버들은 버스가 끊겨서 (..) 시합을 뛰지 못할 정도. 서울처럼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 아니라서 밤 열시 경기는 상당히 생소하다. 오늘도 무사히 승리. 우리가 뛰는 리그는 C-league 인데 A,B,C 리그중 전체적인 수준이 가장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상대팀보다 평균 나이가 열살정도 많은 고령의 대학원생 연합팀에게는 그조차 벅찰 때가 있다. 다행이 이번 시즌에는 만나는 상대들이 그나마 해볼만 해서 아직까지 패배없이 잘 이어 오고 있다. 다음 주부터 플레이오프인데, 어디까지를 우리 팀의 목표로 잡을지 잠시 고민해 보았다. 지난 시즌 우리는 4강까지 올라 갔다. 비록 C 리그에서의 4강이었지만 졸업하고 학교를 떠나는 5년차들을 위한 값진 선물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은..? 에이스인 댄 없이 치루는 첫번째 시즌인데 아직까지 잘 하고 있으니 개인적으로 만족하고 있긴 한데, 플레이오프에서도 한번쯤은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내 커리어의 목표는 어떻게 잡으면 될까. 이번 학기도 중반을 통과하고 있다. 나는 슬슬 학기말까지 써야 하는 텀페이퍼들에 대한 아이디어도 생각해야 하고, 리서치 메쏘드 시간에 써야 할 내 박사학위 논문의 첫번째 쳅터에 대한 생각도 구체화 해야 한다. 지금 쓰고 있는 페이퍼도 마무리지어야 하고. 단기적으로는 이렇게 하고 있는 연구들에 대한 방향 설정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넓게 보면 내년, 혹은 내후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정해야 한다. 계속 이 학교에 머물러 있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학교에서 새 출발할 것인지부터 정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단기적인 과제들은 약간 긴 텀의 계획에 영향을 받게 된다. 조금 더 넓게 보면, 내가 학위를 어디서 받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전적으로 영향받는다. 예를 들어 무사히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한국의 적당한 직장에 취직해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영위하고 싶다면 지금 있는 학교로도 충분하다. 여기서 살아 남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만약 조금 더 넓게 보고 싶다면, 그러니까 조금 더 리스크가 크지만 약간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원한다면, 다른 옵션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내가 하버드나 MIT 에서 학위를 받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선/후천적인 능력의 차이도 물론 있거니와, 그런 수준의 학교에 들어가고 학위를 받는다는 건 이미 대학교 수준에서 결정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학교 1학년때부터 박사과정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면, 도전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다. 심지어 그렇게 살아오고 노력한 사람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도 하다. 내가 볼 때 너무나 완벽한 대학 시절을 보낸 선배도 하버드보다 아래에 있는 대학원에 들어 갔다. 물론 그곳에서 완전 잘하고 계시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곳은 그러니까 정해져 있는 셈이다.

욕심을 부려볼까, 아니면 여기서 하던 거나 무사히 잘 끝낼까. 나이도 걸리고, 결혼 생각도 해야 하고, 지금까지 해온 것들에 대한 가치도 무시 못한다. 하지만, 가끔 심심할 때 들어가 훑어 보는 유명한 학자들의 CV 들에서 왠지 모를 자극을 받는다. 나도 이제 이 바닥에서 3년째 구르고 있는 터라 CV 를 보면 대충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러니까 대학교때부터 대학원에서의 위치나 위상, 그리고 졸업 후 필드에 안착하는 과정같은 것들이 대충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학자들 중에는 대학교때부터 엄청 뛰어나서 단 한번의 위기도 겪지 않고 순탄하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도 있는 반면,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결국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어 여기까지 살아 남은 사람도 있다. 학계는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이야기되지만 사실 상당히 솔직한 구석도 있는 것이, 결국 모든 것은 그 사람이 쓴 논문에 의해 결정지어 진다. 그 사람이 나온 학교, 지도 교수진의 명성, 국적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사실 끝내주는 논문만 쓰면 결국 인정받게 되는 것이 학계이다. 한국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미국은 그렇다. 결국 자신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 내고 그 결과물로 얼마나 좋은 퀄리티의 논문을 발표하느냐의 싸움이다. 나도 코스웤 과정에서 문제를 겪었고 지금도 거기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결국 이 모든 험난한 과정을 뚫고 나가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보면 모두가 처음부터 완전 잘난 사람들만은 아니었다는 거다. CV 를 보면 중간에 몇년이 텅 비어 있는 걸 가끔 발견하게 된다. 혹은 학부 졸업 후 석사 학위 취득 시점까지 굉장히 긴 텀을 가지고 있는데 별다른 설명이 없는 경우도 있고. 다 뭔가 사연이 있었다는 거다. 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집중해서 읽게 되는 부분은 최근 발표한 논문 목록이지 학력이나 국적이 아니다. 나도 나중에 나의 CV 에 빈틈을 남길 지언정 꽤나 그럴듯한 논문 경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어디에서 공부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많이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가도, 그냥 내가 잘하면 될 것 같기도 하다.

불확실한 미래를 떠 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부를 하는 사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상상으로는 다들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결혼할 나이쯤 되면 유학생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가질 나이대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어학연수 일이년 정도에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공부를 업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유학생들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최소한 나의 경험상으로는 그렇다. 그냥 막연하게 힘들겠지, 혹은 할만 하겠지 추측할 뿐이다. 나 역시 회사생활하는 사람들에 대한 입장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같은 유학생 처지가 더 나은 것도 아니다. 유학생이 자기 안에 갇히지 않고 외연적으로 열려 있기란 또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만을 바라보며 자기안에 갇혀 세상을 좁게 볼 위험이 상당히 많다. 특히나 대학원생쯤 되면 한 분야를 깊게 판다는 얘긴데 그러다보면 주변의 다른 것들을 같은 눈으로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이 역시 관계에서 피해야 할 부분이다.

여자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나는 눈이 높으니까 (..) 걍 지금은 닥치고 공부나 하자고. 지금은 그것보다 더중요한 것에 집중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딱 나눠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이러다가도 또 어느 순간 뿅하고 누군가가 나타나 나를 낚아 챌 수 있다. 혹은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과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할 수도 있다. 앞날은 모르는 거다. 마음을 굳이 닫아 놓을 필요는 없다. 다만 결혼이나 여자 문제에 대해 너무 조급해 하지는 말자는 다짐 정도.. 는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은 진짜로 마음 깊이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이상해 보이지만 마음속에 누가 들어올 심리적인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만약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난다고 해도 “공부좀 하고” 라고 말할 것 같다. 우습지만 진짜 그렇다. 읽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신과 함께” 의 김자홍씨처럼 일만 하다가 객사해서 진기한 변호사님 만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you demand not me


요즘같은 팍팍한 세상에서 인간다운 정을 살갑게 느끼면서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내 주변에도 나를 필요에 의해 만나고 나에게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나에게 호의를 배푸는 사람들이 있다. 그 자체로 틀렸다거나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 역시 단순히 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지는 인간관계들이 있다. 물건을 사기 위해 점원에게 보이는 미소는 한낯 가벼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소한 관계들까지 신경쓰면서 살기에는 우리네 삶이 너무 바쁘고 정신없다. 다만, 내 여력이 닿는 한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진심어린 감정을 담아 관계맺기를 희망하고 노력할 뿐이다.

관계에 있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실망하는 때가 온다. 그렇지 않다면, 그러니까 내가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충족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가족이거나, 사랑이거나, 평생 함께할 친구이거나 셋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실망할 준비라기 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기대감을 언젠가는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각오 정도. 차라리 그쪽이 마음이 더 편하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무작정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만, 또 한번쯤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좋은 친구들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인간 관계는 더 복잡해 지고 다양해 진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맨몸하나 가지고 온 이곳에서도 어느새 나를 찾는 사람들이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많아 졌다. 하루에도 이메일을 수십통씩 받고 답장해야 한다. 오피스에는 학생들이 찾아 오고, 나 역시 누군가의 오피스에 찾아 가야 한다. 밥을 함께 먹는 사람이 있고, 술을 함께 마시는 사람이 있다. 즐겁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공부를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지시를 따라야 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린다. 상대적이지만 결국 피상적인 관계들이 증가하는 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늘은 누군가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논문작성 프로그램 사용법을 가르쳐 달라는 단순한 메일이었다. 못할 것 없다. 그냥 한시간 정도 간단한 메뉴얼을 함께 돌려 보면 끝이다. 하지만 읽고 싶지 않은 행간이 눈에 들어 왔다. 얘는 정말 논문을 잘 작성하고 싶어서 나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일까?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나를 선택했을까. 그 전에 계속 눈에 밟혔던 그 친구의 행적들에 대한 기억도 아직 선명한 편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친구의 언행을 싸그리 무시하고 단지 프로그램의 사용법을 전달하기 위해 단둘이 만나야 하는 것일까. 정말 그 친구가 나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나와 키스를 하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나와 함께 밤늦게까지 놀고 싶어 한다. 술자리를 멀리 하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살갑지 않게 대하는 나의 퉁명스러운 반응은 곧잘 많은 오해들을 양산해 내기도 한다. 그 모든 현상들이 다, 나에게 무언가 원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오늘 동기들과 간단한 세미나를 하고 함께 저녁을 먹으러 근처 중국 식당으로 향했다. 동기중 가장 큰 형님의 미니밴을 타고 갔는데 참 좋더라. 나도 얼른 결혼해서 아이들을 뒤에 태우고 어디론가 놀러 다니고 싶다. 오늘 얘기하다 보니 동기들중 나만 아스펜에 가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기형들중 하나는 저녁시간에 걸어가며 끼니를 때우던 나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오지랍은!) 저도 얼른 이마가 이쁘게 까진 참한 색시 하나 얻어서 금쪽같은 새끼들 낳아 행복하게 살아야 겠네요, 라고 말하긴 했지만..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혼자 살아도 혼자 사는 게 아니고, 자유로울 것 같아도 꼭 그렇지도 않은 생활을 지금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가 중구난방이다. 지난 월요일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오피스에 틀어박혀 논문만 써댔다. 다음주 주말에는 기필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뒹굴거릴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딱 하루만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도 열두시를 넘기려나, 싶었다. 오늘 저녁만큼은 꼭 놀고 싶었다. 최소한 학교 밖으로 나가 머리에 시원한 바람을 조금이나마 쏘이고 싶었다. 매년 이맘때 덴버에서 하는 독일식 옥토퍼페스트에 가기로 친구들과 약속까지 잡았다. 하지만 월요일부터 누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그만 늦잠을 자버리면서 그 꿈은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거듭 사죄하고 잔뜩 꼬인 마음을 다잡고 다시 오피스안으로 들어가 책상앞에 앉았다. 더이상 오래 끌고 싶지 않은 리서치를 얼른 끝내야만 한다. 그런데 모델링이 잘 되지 않는다. 수학 실력이 부족한 내게 모델링은 늘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계량적 지식이 풍부한 것도 아니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떻게든 끝을 내보려고 한다. 이번주 내내 골머리를 썩었다. 어제 밤에는, 자정이 넘어 정신적으로 많이 지칠 무렵, 엄청난 페이퍼를 하나 발견했다. 오, 레이버마켓 프릭션을 거시로 이렇게 풀어내는 구나, 감탄하며 읽어 내려 갔다. 본능적으로 대체 이 논문의 저자는 누굴까 궁금해져서 찾아 보았다. 한분은 워싱턴에서 석좌교수로 계시고, 다른 분은 LSE 경제학과장님이셨다. 특히 후자는 유럽 노동경제학회 회장직까지 하고 계신 분. 아.. 그렇구나, 하며 기운이 쭉 빠졌다. 논리적으로 매끈하게 써내려간 논문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어제 밤에 마지막으로 읽은 논문은 40년동안 그 분야에만 매진해 일가를 이룬 장인들의 솜씨였다. 단어 하나에도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매듭이 있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이런 걸 해, 아니, 평생 공부만 해도 절대 저 수준 근처에도 못갈텐데, 하는 생각에 풀이 죽어 버렸다.

그렇게 오늘 낮까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모델링에 거듭 실패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용기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금요일이기 때문에, 한낮부터 술을 먹자는 친구의 제안이나 간단하게 커피나 한잔 하자는 선배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 더 힘이 들었다. 나는 햇빛을 쐴 자격이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회의감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오늘도 자정 무렵까지 학교에 있다가 빠져 나왔다. 위축된 내 자신을 추스리며 말도 되지 않는 숫자들을 끄적거리다가 그래도 오늘은 주말인데, 조금은 일찍 가자 싶어 열두시가 되기 직전 오피스문을 닫고 나올 수 있었다.

일교차가 심한 곳이라 밤이 되니 쌀쌀했다. 스프링클러는 여기 저기서 돌아가고 있었고, 학교에는 사람이 한명도 남아 있지 않은 듯 보였다. 가끔 한 건물에 하나씩,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나같은 대학원생인가 싶어 측은하게 돌아 보기도 했다. 학과 건물에서부터 집까지는 대충 15분 정도 걸린다. 집앞까지 가는 버스가 있긴 하지만, 왠만하면 걸어서 내려간다.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딱히 힘들지 않기도 하거니와 집에서 학교로 올때와는 다른 홀가분함이 좋아서이기도 하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때의 황망함과 긴장감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늦은 밤 차가운 공기가 뺨에 닿음을 느끼며 집으로 가는 기분만큼은 못한 것 같다. 학교 밖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소란스럽다. 목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밤까지 이어지는 파티의 연속. 가끔 아주 가까운 물리적 거리가 한없이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미국인들을 볼때도 그런 생각이 든다. 함께 살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간다고 느낄 때의 괴리감이 가끔 있다. 나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밤늦게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집으로 가는 것이 익숙하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애들처럼 내일에 대한 걱정없이 마음껏 소리지르며 놀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터덜터덜 걸어 내려오는 길은 의외로 쓸쓸하거나 외롭지는 않다. 그저 조명이 한국처럼 밝지 않은 미국의 길들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공부하면 그 다음엔 뭐가 오지, 혹시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불안감이 있다.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더 좋은 보수를 받기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니라, 정말 공부 그 자체로 평가받고 살아남는 사회에 발을 들여 놓은 내 선택이 정말 현명한 것이었을까에 대한 회의가 있다. 후회라기 보다는 끝없는 의심과 자기 반성이다. 어쩌면, 나는 너무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이 ‘바닥’ 을 얕잡아 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닌데, 무작정 잘될 것이라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절반쯤 내려오다 보니 찍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장면들을 놓치면서 걸어온 것이 약간 후회됐다. 그런데 멍청하게도, 나는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 작은 컴팩트 카메라로 바꾼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휴대성이었고 카메라를 산 이후 계속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아직 습관화가 덜 되었는지 카메라가 가방안에 있었는지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카메라를 꺼내 몇장을 찍었다. 어두운 밤길에 사진이 잘 나올 턱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웠던 이유는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하게 만들어 주는 사진의 고맙고도 놀라운 능력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행동한다. 혹은 남들에게 기억되기 위해 몸부림친다. 삶의 본질중 하나가 기억에 있다면 사진은 그런 의미에서 참 좋은 인생의 동반자다.

내일은 좋아하는 대학풋볼도 다 보지 못할 것 같다. 해야할 일이 산더미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하루가 또 지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일들을 끝내고 나면 나는 또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 내려올 것이다. 아마 거의 비슷한 풍경들을 또 지나올 것이지만, 그때는 지금과는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은 내일에 의해 기억된다. 내일은 그 다음을 위해 살아가고.

한국에서 온 선물

추석을 맞아 어머니께서 소포를 한아름 보내주셨다. 어머니도 이제 유학생부모 3년차, 어느정도 베테랑의 대열에 합류해야 할 시점이다. 광화문우체국의 한켠에는 유학생 어머니들이 소복히 모여서 열심히 무언가를 싸는 모습을 항상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어머니도 최근 그곳에서 “김치를 보낼 때는 양철통을 사용한다” 라는 팁을 얻어 오셨는지, 이번에 보내신 김치는 튼튼한 양철통에 담겨져 있었다. 덕분에 쉬거나, 새거나,  많이 부풀어 오르지 않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늘 먹고 싶던 종가집 포기김치와 맛김치, 그리고 묵은지와 갈비탕까지 보내 주셨다. 여기에 더해 추석에 떡 하나 먹지 못할 아들이 걱정되셨는지 약과를 조금 보내 주셨다. 오늘 학교에 가지고 와 친구들과 나누어 먹었다. 정신없이 나누어주다 보면 항상 내 몫을 챙기지 못하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특별히 내 몫으로 하나를 꿍쳐 놓아 무사히 달고 맛있는 약과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소포의 맨 윗부분에는 음식이 아닌 다른 추석 선물이 놓여져 있었다. 아버지께서 최근에 감명깊게 읽었다고 하신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와 어머니께서 최근에 읽었다고 언급하신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이 나란히 포개져 있었다. 새책의 뽀송뽀송한 느낌도 좋지만, 손때가 어느 정도 뭍고 눅눅해진 책들에서 느껴지는 정다운 느낌도 좋다. 읽어야 할 책이 두권 늘었다.

The Walkmen: Lisbon

뉴욕 출신 인디 밴드 워크맨의 네번째 정규 앨범이다. 멤피스의 한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고 한다. 선(후)천적으로 타고난 게으름으로 인해 1집부터 모든 앨범을 다 가지고 있는 뮤지션이 의외로 드문 편인데, 워크맨의 경우에는 데뷔때부터 꾸준히 새앨범이 발표되는 즉시 구입해서 듣는 몇안되는 밴드다. 상당히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1집에서 “The Rat” 이라는 곡 하나로 씬이나 평단에 큰 충격을 안겨주면서 데뷔했는데, 그 이후 발표한 2집과 3집은 사람들이 1집에서 기대했던 모습과는 상이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다. (부득이하게 영어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는데) experimental 한 곡의 구성과 분위기에 몽환적인 보컬이 얹혀진 이들의 음악은 nostelgic, smooth, elegance 등의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 듯 하다. 한결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그 안에서 내재적인 발전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은 밴드다. 사실 2집부터는 그곡이 그곡같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결코 나쁜 의미로 쓰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늘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끔은 정말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번 4집은 밴드의 역사에 있어 또 하나의 큰 성취를 해냈다는 느낌이다. 맬로디 라인은 보다 분명해진 느낌이고 훅은 살아 넘친다. 밴드 본연의 정체성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가운데 보다 듣기 좋고 조금 더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정도면 어느 정도 경지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 정도의 실력에 안착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음악이란 것이 늘 그렇듯이 현실에 안주하다 보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기에 방심하면 안되겠지만, 나는 이들의 아련하면서도 아름다운, 먹먹한 안개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너무 좋다. 1집때부터 이들 특유의 이 색깔을 너무 좋아했고, 그것이 4집에서 드디어 폭발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좋아하는 밴드다. 10월 17일에 볼더에 온다.

여담으로 오늘 스캇이랑 다른 한국 (여자) 동기 한명과 루프탑에서 낮술을 먹는데, 학위를 (만약에 가능하다면) 받은 후 어디에서 취직할까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눴다. 우리의 결론은 결국 공연때문에 미국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였다. 조금 큰 도시 근처 조그만 곳이라도 취직하면 언제든지 공연을 볼 수 있으니, 이 인생에서의 큰 축복을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꽤 괜찮은 분석이었다.

일상 기록

1.

지난 금요일에 계단에서 굴렀다. 슬리퍼를 신고 내려오다가 계단 어딘가에 걸린 것 같다. 한두바퀴 구른 후 시멘트 바닥에 착지(?) 했는데 당시 킨들을 들고 있어서 ‘킨들만은 구해야 한다!’ 는 일념으로 그놈을 보호하다가 킨들을 들고 있던 왼손등이 심하게 까졌다. 오른손바닥은 약간 찢어졌고, 오른손 엄지 손가락은 손톱이 약간 들렸다. (이게 제일 아픔 +_+) 무릎과 발목에도 약간의 타박상이 있는데 상태 양호. 덕분에 급하게 동네 마트가서 약품 쇼핑(?) 했다. 피를 흘리며 거즈와 붕대, 소독약과 상처 없애는 연고(Mederma) 를 사는데 그 재미도 쏠쏠. 무엇이든 쇼핑은 즐겁다. 그날 밤은 내 육체를 쇼핑할 수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지 마라! 는 큰 교훈을 얻었음. 1년에 한두번씩 꼭 정줄 놓고 걷다가 아주 크게 넘어지는 일을 당하는데 지난 토요일이 그랬다. 내가 은근히(?) 덜렁거리는 부분이 많아서 늘 이렇게 내 몸뚱아리가 고생이다.

2.

슬슬 학기가 미쳐가고 있다. 주중에 정신없이 뛰어 다니다가 주말에 축 늘어져 있는 패턴의 연속. 조금 더 분발해서 부지런히 살아야 겠다. 토요일 하루는 기필코 데이 오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금요일과 일요일을 조금 더 알차게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과목 드랍할까 말까 계속 고민중이다. 등록금 문제도 있고 해서 많이 생각하고 있다. 조삼모사다. 이번학기 널널하게 보내고 다음학기 빡세게 보낼 것이냐, 이번한기 조금 빡세게 보내고 다음학기 널널하게 보낼 것이냐의 문제. 나는 이와 비슷한 경우에는 항상 후자를 택했다. 눈앞의 시간은 저 멀리 있는 시간보다 항상 빠르게 오고 빠르게 가기 때문이다.

3.

차를 팔기로 결정했고 내일 카센터에 가서 점검을 받을 생각이다. 새주인에게 넘기기 전에 최대한 이것저것 손을 볼 계획이다. 나는 이 차를 처음 받았을 때 너무 하자가 많아서 정이 잘 안 갔더랬다. 지금은 세상에 둘도 없는 내 단짝이자 너무나 애틋한 존재가 됐지만, 잔고장이 많아 정을 붙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부디 새주인에게는 나처럼 첫인상 잘못 보여서 미움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손해보는 거 알면서 그냥 내 돈주고 고치기로 마음 먹었다. 미국에 온 후 가장 슬픈날의 업데이트가 조만간 날 기다릴 것이다. 자동차를 팔고 자전거를 사기로 한건 순전히 돈때문이다. 경기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학교 재정이 다음 학기에도 지금처럼 어렵다면, 나도 살림을 줄일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내가 가진 유일한 자산을 처분하기로 했다. 다음 차는 아마 취직한 다음에나 살 수 있겠지 ㅠ

4.

겨울에는 기필코 동부를 여행하기 위해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도 ‘동부는 어떻다 저떻다’ 말들을 많이 들어서 직접 한번 경험해보지 않으면 도저히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뉴욕 스타벅스 점원은 커피를 주면서 웃지 않는지, 길가다가 어깨를 치고 가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건조하지 않은 날씨’ 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정말 서울처럼 습한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기후인지.. 이상하게 서부의 해안 도시들, 그러니까 내가 가 본 시애틀이나 샌프란시스코는 ‘습하다’ 라는 느낌이 강하지 않았다. 겨울에 가서 그런가? 뉴욕 사람들이 얼마나 인상쓰고 다니는지 확인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 첫째, 둘째는 NYU 앞에 있는 그렇게 맛있다는 만두집에서 만두를 먹는 것, 가장 중요한 셋째는 맨해튼 어딘가에 있다는 교촌 치킨에서 치킨에 한국 맥주 먹는 것. 아 정말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5.

킨들을 대학원수업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임상실험(?) 중. 일단 다들 신기해 하긴 하는데,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조금 더 지켜 봐야 겠다. 수업중 이 논문 저 논문을 빠르게 뒤적거려야 할 때는 속도면에서 많이 뒤쳐진다. 게다가 중요 대목에 노트나 메모를 해야 한다면 정말 난감해 진다. 다만 몇십개 되는 레퍼런스를 몽땅 싸들고 어딘가에 처박혀 주구장창 읽어야 할 때는 매우 유용하다. 카페에 가든 집에 가든 킨들 하나 달랑 들고 가면 오케이. 무게면에서는 확실히 세이브되는 면이 많다. 펌웨어 업그레이드가 빨리 되서 PDF 에서도 메모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6.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를 하나 샀다. 돈이 없는데 왠 소리냐.. -_- 전자기기는 주기적으로 계속 새로 구입해 주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래서 주기적으로 목돈이 나가게 마련이다. 펜탁스 카메라를 싼값에 처분하고 아이폰4로 몇달 살아 봤는데, 확실히 한계가 있다. 일상 스냅으로는 괜찮지만 ‘사진을 찍는다’ 라는 행위에 대한 인식이 전혀 들지 않았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글을 쓰거나 노래를 부르는 행위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왠지 결여된 듯한 상태로 사니까 재미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라이카의 x1 을 알게 됐고 (-_-) 이건 아니다 싶어 d-lux 를 한참을 보다가, 거의 이걸 지르려고 결제 버튼이 어디있지 찾는 중에 이 카메라와 쌍둥이인 파나소닉의 lx3 를 알게 됐다. 성능은 똑같고 가격은 절반. 다만 라이카 특유의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는데 이건 같은 raw 파일을 공유한다는 점을 이용, 디룩스 raw 파일로 컨버젼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똑딱이 디카에 뭘 더 바라나.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면서 문득 지나가는 것들을 잡아 내면 그걸로 오케이. 플릭커에서 확인한 결과물들도 믿음을 더해 줬다. 난 큼지막한 DSLR 로 좋은 결과물을 뽑아 내는 것도 좋아하지만 결국 일상에서의 스냅을 주 목적으로 한다면 똑딱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결국 구도와 감성에 약간의 빛에 대한 컨트롤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굳이 백만원짜리 렌즈 달고 다닐 이유 아직 잘 못 찾겠다.

옛날 얘기 하나 생각난다. 때는 2005년 2월. 막 제대를 하고 세상에 적응하려고 몸부림치던 무렵 미리 제대해 있던 (그래봤자 두세달 차이..) 친구들은 복학생의 3대 필수품이라며 디카, 휴대폰, 엠피3를 빨리 구입하라고 부추겼다. 이 세개만 제대로 갖추고 있으면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그리 크게 어렵지 않다며 나를 현혹했다. 복학후 첫학기 수업에서 오른손을 직각으로 올리고 “예,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등 (군대 다녀온 남자만이 아는 군대 증후군들이다) 심각한 부적응에 시달리던 나는 그 친구들중 하나 끌고 남대문으로 가서 그 친구가 골라주는 대로 디카 하나를 장만했다. 그 날이 바로 오서방을 처음 만난 날이다. 그 후 얼마 뒤 오서방과 김군이 사귄다는 소식을 듣게 된거다. 아, 나에게 카메라를 골라준 친구는 바로 김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김군은 오서방을 만나기 위해 나를 활용한 것 같은데, 뭐 어쨌든.. 지금은 서로 다른 사람 만나 잘 살고 있으니. 말해도 되겠지? +_+

7.

이제 초콜릿을 먹어도 여드름이 나지 않는다. 닭고기를 먹어도 여드름이 잠깐 나왔다가 힘없이 사그라든다. 뭔가 좋으면서도 슬펐다. 내 피부는 이제 더이상 혈기왕성하지 않구나. 더이상 탱탱하지 않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그래도 새로 산 아이크림은 썩 마음에 든다. 바르고 안바르고 차이가 이렇게 큰 줄 알았다면 진작에 사는건데!

무한도전 WM7 감상문

“무한도전” 이라는 프로그램은 유학을 온 후부터 빠짐없이 보는 유일한 한국 TV 프로그램이다. 매주 금요일 저녁이 되면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토요일 아침이 되면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다운로드를 걸어 놓는다. 아이폰용으로 컨버젼한 mp4 파일을 따로 받아 아이팟이나 아이폰에 넣고 자기 전 침대에서 보기도 한다. 지금처럼 열심히 보지 않았던 시기에 방송됐던 과거 방송분도 찾아서 틈틈이 본다. 어느새 무한도전은 없으면 안되는, 삶의 cycle 을 유지시켜 주는 원동력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향수병을 달래주는 좋은 위안제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 방송이 담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른 예능 방송들이 가지고 있는 위악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이 최소화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계속 좋아하고 보게 되는 것 같다. 우선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점이 프로그램을 따분하지 않게 만들고, 특정 인물을 추켜 세우지 않고 심하게 조롱하지도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웃음을 만들어 낸다는 점도 좋아한다. 무엇보다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 그러니까 ‘진심’ 이 그대로 우러나온다는 걸 느낄때가 있는데, 이게 무한도전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최근에는 프로레슬링의 세계에 도전했다. 1년 장기 프로젝트였고, 마지막에는 정식으로 관중들을 불러서 경기를 치뤘다. 약 10주가 넘는 기간동안 방송이 됐는데, 아마 최장기간 방송된 프로젝트가 아닌가 한다. 그동안 멤버는 전진에서 하하로 바뀌었으며, 노홍철의 머리는 많이 자랐고, 손스타는 1년동안 “뮤지션이 아닌 프로레슬러로 살아” 왔다. 5년이 넘는 기간동안 무한도전이 한 무모한 도전은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그러한 도전들에 거창한 대의명분이 붙은 건 사실 오래 되지 않았다.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했던 봅슬레이와 베드민턴, 레슬링 특집이 그랬고, “한류를 알리고 한국 음식에 대한 홍보를 하기 위해” 기획되었던 식객 특집이 그랬다. 그런데 이번 레슬링 특집은 그런 대의 명분이 없었다. 그냥 제작진이 가져다준 여섯개의 CD 에서 하나를 “뽑기” 해서 우연히 그게 걸렸기 때문에 하게 된거다. 협회측과의 사전 협의나 협조 없이 손스타라는 아마츄어를 유일한 스승으로 삼아 연습한 과정도 마찬가지다. 프로레슬링 산업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이 기획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처음부터 무한도전은 그런 명분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 지하철과 달리기 시합을 하고 목욕탕 물을 빼야 했던 그 시절에 그런 명분이 어디 있겠는가. 그냥 “무모한” 도전을 하는 모습과 그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아주 말초적이고 단순한 형태의 웃음과 감동을 주는 것이 무한도전의 본질이었고 시작점이었다. 이번 프로레슬링 도전은 그런 무모한 도전을 했던 과거의 모습을 상기시켰다. 어깨와 목에 들어간 힘을 최대한 빼고 그냥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는 도전에 사활을 걸게 되었달까. 그 과정속에서 멤버들은 속임수도 없고 숨김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노출한다. 길은 겁을 내고, 노홍철은 도저히 몸이 따라가지 않는다. “정말 아프다” 라는 소리가 계속 나오고 열심히 하는 멤버과 슬슬 피하는 멤버가 그대로 보여진다. 무한도전의 가장 큰 미덕은 TV 속의 멤버들 하나 하나가 우리네 삶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낸다는 데에 있다. 모두가 잘나지도 않고, 잘난 정도도 제각각이며,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도 각각 다르다. 그들의 행동은 그래서 따로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된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그래서 이 부분에 있어서는 별로 불만이 없다.

불만은 그 도전의 ‘위험성’ 에서 시작한다. 단적으로 마지막 방송분의 3경기에서 유재석이 한 허리케인 러너를 보면 아찔해 진다. 유재석의 목은 가까스로 비틀어지지 않고 온전히 몸과 붙어 착지했다. 아주 약간만 더 몸이 무거웠더라도 그의 목은 꺾여 부러졌을 것이다. 난 프로레슬링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지만, 최소한 그 상황이 매우 위험했다는 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에서 목에 충격이 왔을 때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너무 잘 봤기 때문에 나는 유재석의 허리케인 러너를 보면서 눈을 질끈 감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위험한 상황이 수십번, 아니 수백번은 더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정말 엄청난 행운을 가지고 있었다. 정형돈이 뇌진탕에 시달리고 손스타의 갈비뼈에 금이 간 정도로 끝난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프로레슬링은 매우 위험한 스포츠다. 나는 당최 WWE 에서도 금지된 기술을 굳이 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결국 실제로 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것도 ‘아마츄어’ 들이 말이다. 봅슬레이에서 “국가대표” 자리를 놓고 겨뤘고 식객 특집에서 실제 미슐랭 3스타 쉐프와 손을 맞춰 봐서 이제 무한도전은 “프로페셔널해야 한다” 라는 강박관념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손스타 개인을 비난해서는 안되는 문제다. 무한도전이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의도가 협회와는 전혀 상관없는 “아마츄어리즘” 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상징하는 사람이 손스타라면, 그 이후에 진행되는 과정에서 기이하게도 조금 더 센 기술, 더 화려한 기술을 마치 프로처럼 완성하려고 하는 모습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다. 안전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점을 반드시 지적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엠뷸런스가 있으면 뭐하고 기 치료사가 있으면 뭐하나. 멤버들이 강행하자고 주장했다는 것도 핑계일 뿐이다. 사고는 예방을 해야지 사후 처리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

결국 이 과정에서의 불가해함은 멤버들의 ‘의지’ 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밖에 없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참고 견디게 만들었을까. “대한민국 평균 이하” 임을 누차 강조하며 여기까지 성장한 이들이 이젠 대한민국에서 극소수만이 할 수 있다던 기술을 마스터해서 관중들에게 선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 스스로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련은 사람을 단련케 한다. “하늘이 사람에게 시련을 주는 이유는 그 사람에게 더 큰일을 맡기기 위함이다” 라고 말한 맹자의 명언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사람은 시련과 고통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할 기회를 얻는다. 물론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포기하고 좌절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또한 삶이며 인생이다. 단적으로 WM7 에 이어서 방송된 박명수의 게릴라 콘서트는 준비 부족과 깨방정으로 인해 보기 좋게 실패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무한도전은 그 초심을 아직 잃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성공하는 천재들이 아니다. 실패하고 좌절하는 가운데 성장하고, 그 가운데 “가끔” 아주 멋지게 성공할 때도 있다. 그리고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프로레슬링 특집에서 가장 큰 감동을 준건 어려운 기술이 잘 들어 갔을 때 기술의 완성도를 보고 나오는 감탄이 아니라, “저렇게 아픈데도 결국 해냈구나” 하는, 인간적인 연민에서 나오는 친밀함이다. 애정이다. 안도의 한숨이며 응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동질감이다.

나는 무한도전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지난 겨울 무한도전 전시회 특집에서 유재석이 팬클럽미팅을 통해 한 말은 지금까지 내가 가슴속에 품고 사는 몇가지 가르침중 하나이다. 늦은 나이에 빛을 보게 된 그가 지금까지 성실함을 가장 큰 무기로 내세울 수 있는 건 그 역시 지금까지 잊지 않고 가슴속에 품고 있는 어떤 가르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예능 프로 하나 보면서 무슨 그렇게 많은 의미를 찾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어떤 부분은 제작진이나 멤버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게다. 하지만 나는 길거리의 거지나 지나가는 자동차에서조차 배울 것이 있고 발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세상의 그 모든 것이 내 스승이 될 수 있는데 굳이 웃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배제할 이유는 없다.

벌써 다음주 무한도전이 기다려진다. 이번에는 예고편도 없었다.

추신. 근데 웃긴건 웃긴거긔 ㅋㅋㅋ

Pavement with Jenny & Johnny at Ogden Theatre, Denver

94년부터 음악을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커트 코베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배철수 아저씨로부터 전해 들은 시점부터 나는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그당시 듣던 음악들은 스키드로우니 건스앤로지스니 하는 뉴메틀이었고, 정작 너바나를 좋아한건 95년부터인가 일 거다. 너바나와 펄잼을 알기 시작하면서 핫뮤직에서 매달 선정했던 “명반 50선” 에서 헤비 메틀 음반들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머스트 헤브 아이템” 은 점점 너바나와 펄잼, 혹은 블러와 매시브 어택이 영향받은 “조상” 들을 찾는 식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나는 너바나를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궁금해 했던 것 같다. 물론 그것은 과거로서, 역사로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예컨데 이런 것들이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Loveless”, 픽시스의 “Doolittle”, 미트 퍼핏츠의 “Meat Puppets 2”, 소닉 유스의 “Daydream nation”, 그외 멜빈스, 바셀린스, 뭐 이런 밴드들.. 그중에 가장 중요한 앨범중 하나가 페이브먼트의 “Slanted and Enchanted” 였다. 몇년차이로 놓친 “역사” 들. 그렇게 음악을 배워 나갔다.

스티븐 말크머스를 실제로 본다는 거 자체에 엄청난 흥분을 한 건 아니다. 픽시스의 공연에서 느꼈듯이 전설이 된 밴드의 재결합은 확실히 트레이드 오프가 있다. 거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게되는 실제 공연 장면이라는 가치의 대가는 확 늙어버려 숨을 헐떡거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움이다. 페이브먼트가 마지막으로 투어를 돈 게 언제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걸 일일이 챙기지도 않았고. 어쨌든 이번 재결합은 밴드결성 20주년을 기념하는 베스트앨범을 홍보하기 위함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아마 멤버중 하나가 돈이 떨어졌거나,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은데 돈이 부족해서 투어를 계획했을 수도 있다. 전설들의 재결합은 내 경험상 생각보다 거창하고 멋있지만은 않더라.

아무튼, 팬들은 팬들대로 이 상황을 그냥 즐기면 되는거다. 중요한 건, 말크머스는 ‘전혀’ 늙지 않았다는 거다. 그냥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교보문고에서 정가의 두세배되는 돈을 주고 샀던 해외 잡지들에서 어렵게 볼 수 있었던 그의 얼굴 그대로 어제 무대위에 서 있었다. 다른 멤버들은 영락없는 아저씨가 되어 배도 나오고 머리도 벗겨지고 그랬는데, 말크머스만은 94년, 혹은 92년 그상태 그대로 있는 듯 했다. 공연 중간중간에 내뱉는 멘트마져 그 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 했다.

가끔 가사를 까먹고 박자를 놓치기는 했지만, 베스트앨범에 있는 모든 곡들을 연주하느라 공연이 후반부로 갈수록 많이 늘어지기는 했지만, 그들은 공연 자체를 즐기는 듯 했다. 무척 행복해 보였다. 왜 재결합을 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처럼 그들을 역사로서만 접한 사람에게 다시 오지 않을 값진 기회를 준 것 만으로 감사한다. 앵콜 첫번째 곡으로 말크머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라며 너바나의 “리튬” 을 불렀다.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부르는 사람들. 그들의 노래 제목처럼, 말크머스는 광중들에게 “fight this generation” 하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참 90년대 스럽다, 싶었다. 90년대를 너무 사랑하는 나에게는 최고의 무대였다. 허리가 많이 아팠지만 ㅋ

오프닝으로 나온 제니 엔 조니도 괜찮았다. 릴로 카일리나 그녀의 솔로 앨범에서 하지 않았던 시도 – 예컨데 정통 하드록 스타일이라던가 60년대 팝 스타일이라던가 – 가 많이 보였다. 아무리 봐도 이건 제니 루이스 원맨 밴드인데 -_- 어줍잖게 조나단 라이스가 껴 있는 느낌? 제니 루이스의 남자친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에게 미움을 받는 것 같다.

Arcade Fire: Suburbs


Arcade Fire 의 세번째 앨범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담대한” 욕망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그들의 비교 대상은 이제 브루스 스프링스턴이나 너바나가 되어야 한다는 피치포크의 평가는 일견 타당하다. 한 시대를 관통하며 지난 10년간 – 단 두장의 앨범만으로 – 가장 중요한 이름으로 기억되어야 할 이 캐나다 퀘벡 출신의 대형 밴드는 이제 인디록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조금 더 “큰 물” 에서 놀고 싶어하는 듯 보인다. 외연적인 확대를 꾀함과 동시에 아케이드 파이어 특유의 intensity 는 여전하다. 매우 단단하며, 또 여전히 폭발적이다. “꽤 괜찮은” 뮤지션이라면 인생에서 한번쯤 획기적인 앨범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머큐리 레브가 그랬고, 스피리츄얼라이즈드도 그랬다. 역사에 남을 만한 앨범을 한장쯤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세장 연속으로 입이 떡 벌어지는 앨범을 만드는 일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이들이 스트록스나 인터폴보다 훨씬 더 뛰어난 밴드라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부 리스너들이 호도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아케이드 파이어는 이제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뿐이다. 그들이 1집을 발표했을때 스트록스와 비교되었던 건 평자나 리스너들이 아케이드 파이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스트록스는 스트록스대로, 인터폴은 인터폴대로, 또 다른 누군가는 누군가대로 그들만의 위치가 있다. 그리고 난 그 위치에서 그들이 잘 못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스트록스의 3집이나 인터폴의 3집이 실망스러웠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쓰레기이거나 잊혀져야 할 이름인가? 아니, 단연코.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