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체성과 남성성

지금은 내가 아주 많이 좋아하는 블로그 친구인 D 님을 실제로 처음 만나 뵙고 받은 첫번째 질문은

“혹시 게이예요?”

였다. 이런 식의 질문을 대여섯번 받아본 것 같다. 아주 가까운 사이부터, 처음 보는 사이까지 물어본 사람은 다양하다. 콕 짚어서 게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고, 에둘러 자신의 궁금증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글만 읽고선 여자인 줄 알았다는 분도 계셨고, 가끔 여자와 대화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던 오래된 친구도 있었다. 실제 생김새를 보면 꼭 그렇게 느껴지지도 않겠지만, 어쨌든 내게 일반적인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긴 하다.

나를 잘 아는 한 선배는 그걸 마초이즘이라고 표현했다. 남자라면 누구나 내재된 마초성이 있는데, 그걸 밖으로 구현해 내는 방법은 다 제각각이라는 거다. 아무리 매너좋고 부드러운 남자라고 해도 여성적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런 행동양식과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정체성의 문제인 것이다. 그것을 본인이 인식하고 있건 무의식중에 발현하건 간에, 우리가 “마초적” 이다 혹은 “남자답다” 라고 이야기하는 개인의 특성은 감추고 싶다고 감추어질 수도 없는 선/후천적으로 받아 들이게 되는 일종의 형질같은 것이다.

그 선배에 따르면 나는 그게 없다. 억제하고 있는 건지 결여되어 있는 건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상 생활중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남자다움’ 에 대한 동경도 선망도 없다. 멋진 수트를 입은 남자를 보면 나도 저렇게 멋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넌 내 여자니까 내가 지켜줄게” 같은 드라마 대사에는 질색을 한다. 성도착이나 복장도착은 아니다. 남성복 매장보다 여성복 매장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지만, 그 옷을 직접 입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저 여성이 가지는 아름다움이 남성에 비해 훨씬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때문에 더 높은 수준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즐기고 싶은 것 뿐이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찾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여자친구에게 입혀 보기를 더 좋아한다. 남성으로서 “해야 하는 역할” 에 대한 근본적인 반감같은 것도 가지고 있다. 여자인 척 흉내를 내는 남자들은 우스개거리가 되지만, 위악스럽게 일부러 남자임을 강조하는 표현을 써야 하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는 당시 연극쪽에 발을 담고 있었는데, 그쪽에서 동성애자 남자분을 만나 친해진 얘기를 내게 전해줬다. 전여자친구 말로는, ‘중성’적인 것이 무엇인지 처음 알았다고 했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어떤 제 3의 지대에 속해 있는 것 같은 느낌. 남성성이 거세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여성다움을 뜻하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의 성 정체성.

나는 동성애자는 아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다 여자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성애자가 반드시 자신이 속한 성을 부각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나는 비록 남자이지만 남자다움이 싫다. 여성스러움은 싫지 않다. 그리고 그냥 그런 규범에 얽메이지 않는 하나의 인간이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그런 나의 입장을 이해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 남자가 이성에게 어필하는 매력의 대부분은 그런 사회화된 남자다움에 기인할 때가 많다. 혹은 남자답지 못함을 배격하는 남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나만의 편견이겠지만, 나는 그래서 경상도 남자와는 잘 맞지 않는다. 물론 경상도 남자가 다 그런건 아니다. 이제 나도 제법 나이가 차고 사회적인 위치도 어느 누구에게 종속당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에 있어서 그런 문제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더이상 받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더이상 남자다움을 상징하는 행동양식으로 나 자신을 위장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받기는 많이 어렵다. 심지어 나를 사랑하고 전적으로 신뢰했던 전 여자친구들조차 이 부분에 있어서만은 이해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걸 매력중 하나로 간주하는 여자들도 가끔 있기는 한데, 그것이 또 반드시 이해나 공감과 직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암튼, 나는 이런 나의 성향을 고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나는 썩 마음에 들기까지 하다. 조금 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12 thoughts on “성정체성과 남성성

  1. 음… 한국식 남자다움이 부족하실진 모르겠지만 종혁님 글에서 딱히 남성성이 없다고 느낀 적은 없었는데. 신기했어요.
    요즘 균형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그러니까 꼭 A거나 B여야 할까 하는. 저는 종종 그러거든요. 둘 중 하나. 하나만 해야 한다, 이런 거요. 그런데 요새는 사실 A냐 B냐에 너무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가 하면 제가 여자답게 보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여자니까 귀여운 걸 좋아한다던가, 그런 거 있잖아요. 인식. 그래서 무언가에 감동을 해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내비치지 않고요. 귀여운 것도 보기만 하고 사지는 않습니다. (흐흐)

    • 밑의 댓글들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이번 포스팅은 “망한” 것 같아요 ㅋ
      저도 사은님이랑 비슷한 생각을 요즘 해요. 꼭 이거여야 하나 저거여야 하나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겠다, 싶은 거죠. 미리 형성된 가치관에 스스로를 의탁할 필요도 없고, 그것에 얽메일 필요도 없는 것 같아요.

  2. 전 종혁님, 섬세한 분이시구나,와 가끔 아, 이런 나쁜 남자!(끌릴 수 밖에 없는)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말씀 들으셨다니! 그럼 전 그걸 매력으로 간주하는 여자들 중 하나일까요ㅋㅋ
    생각해보니까 저는 타인의 성향에 대해서 아 이런 사람이구나,하는 생각부터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공감까지는 못하더라도 이해가 안됐던 적은 드물었던듯 하구요.
    오늘 우연히 친구의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게이였어요. 같이 있는동안 게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외형적인 것도 어느정도 그랬지만 그것보다 대화를 할 수록 남/여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느낌, 글에 쓰신 것처럼 제 3의 지대에 있는 그런 느낌이 무척 강했어요. 친구 말로는 천상 여자라고 하던데.
    틀린게 아니라 다른거니까..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 좋은 것 같아요. :)

    • 댓글들을 보면서 생각한건데, 저는 제가 쓴 글이 100% 저를 드러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했던 저와 또 많이 다른 것 같고… 다른 분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 더 많이 경청해야 겠어요 +_+

      제가 끌릴 수 밖에 없는 나쁜남자같아요? ㅎㅎ 사실은 완전 물러터진 바보멍충이인데..

  3. 글을 읽다 보니.. 제가 아는 어떤 남자랑 굉장히 비슷하네요.

    그 사람은 예전에 한번 그러더라구요.
    자기에겐 보통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공격성’ 이나 ‘지배의 욕망’이 없다고.
    그게 바로 내재된 ‘마초성’이겠죠, 남성 특유의 과시욕이나..

    그게 화법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자연적으로 우러나와서, 여자들이 더 편안하게 느끼고
    자기에게 속 얘기를 자주 꺼내놓는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리고 실제로..보통 남자들이 관심 있어
    하고 주로 화제에 올리는 주제들 (여자얘기나, 스포츠나, 자동차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남자동료들은 극단적으로’ 기지배 같다’고 했다고 그러더라구요. ㅋㅋㅋ
    근데 제가 느끼기엔 여성적이라거나 게이 같다거나..게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거든요.

    저도 종혁님 글에서..남자다움이 부족하다거나..그런 느낌은 전혀 못받았는데. 크크.

    스스로..어떤 성향인지, 확신하고 마음에 들어한다면..큰 장점으로, 매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 종혁님 결론은 옳아요 (..) ㅋㅋㅋㅋ

    • 저는 충분히 남자다운 건가요? +_+
      말씀하신 공격성, 지배욕망, 과시욕.. 맞아요 저한테는 그런 것들이 없는 것 같네요. 또 싫어하구요.
      하지만 전 축구도 좋아하고 농구도 좋아하고 자동차도 좋아하는데 ㅋ

  4. 그렇지만 지금은 난 종혁씨가 남자 같은걸요? 마초 같다거나 한게 아니라 게이나 제3의 성 혹은 여성과 남성의 특성을 두루 갖춘, 이 아니라 예의바른 청년, 바람직한 남자 같아요.
    :)

    • 하하 예의바른 청년… 그말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최근에 다락방님이 엄청 많이 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서울에 있었다면 퇴근하는 다락방님을 붙잡고 밥먹으러 가자고 했을지도 모르죠. 가끔 다락방님의 남동생이 참 많이 부러울 때가 있어요. 이런 누나를 옆에 두고 살다니 하고 ㅋ

  5. 아 이런. 이럴때 내가 미국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윽!
    뭐 미국은 땅덩어리가 워낙 넓어놔서 가까이 살지 않으면 지금 만나자, 해서 지금 바로 보기는 힘들겠지만 말예요.

    먼 거리에 있다는 건 가끔 좀 힘들어요.

    • 네 가끔 참 힘들죠. 그래서 가끔 서울이 그립기도 해요. 예전만큼 절실하진 않지만.. 보내주신 책들 잘 읽고 있어요. 때때로 참 좋은 위로가 됩니다.

  6. 단 두가지 종류?로 사람을 구분하는 데서 문제가 오는 게 아닐까 해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남자” “여자”로 구분하는것.. 종혁님은 그냥 종혁님인데, 굳이 어떤 틀에 넣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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