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wildernessdowntown project

http://www.thewildernessdowntown.com/

여기로 들어가면 아케이드 파이어와 구글이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체험할 수 있다.

Scott showed me his fit and amazingly we could see his sister’s car in their music video.

안타까운 건 서울 및 기타 한국 지역을 위한 서비스가 잘 안된다는 점인데…

아케이드 파이어는 천재집단같다. interactive 한 뮤직비디오를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이제 다 끝났으니까 하는 이야기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시작하기 전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그보다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이 요구된다. 그 모든 자기 검열을 성공적으로 끝냈을 때 비로소 짝사랑을 시작해야 한다. 누군가를 좋아함으로써 생기는 수많은 문제들을 떠맡기 위한 책임감을 만들어 내기 위한 일종의 청문회과정이다. 조목 조목 따지고 잘잘못을 끄집어 내어 적격 여부를 가리는 이성적인 과정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내가 과연 이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을 계속 가질 수 있는 만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성찰 정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근데 그게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고 정당성이 어디 있겠는가.  함수처럼 그렇게 딱 맞아 떨어지는 이유가 있다면 사람사는 세상이 이처럼 재밌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수로 세상을 표현하려고 하는 경제학이란 참 바보같은 짓거리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자기 자신을 통제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성이 아무리 감정을 잘 통제하는 유형의 사람이라고 해도 그 마음이 커지면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 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니까 나는 최근에 그놈의 사진을 보면서 더이상 이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니, 여전히 이쁘기는 하지만.. 뭐랄까, 예전처럼 하염없이 보고 있게 되지는 않게 되었달까. 처음 보는 듯한 사진 몇장을 몇초만에 휘리릭 넘겨본 후 아무런 망설임없이 창을 닫는 나를 보면서 아, 때가 됐구나 싶었다.

나는 아직도 그가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꼭 한사람의 여자로서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다. 나는 그와 사귀어본 적이 없으니 그와 내가 연인 사이로서 잘 어울리는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여러가지 티니한 문제들에 대처해 나가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런 것들까지 잘 맞을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꽤 오랜 기간 그를 내 옆에 두고 지내온 경험을 토대로 어느 정도 확신하는 바는, 그는 나와 잘 어울리는 ‘사람’ 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한다. 그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한다.

오케이, 단지 취향이 비슷하다는 건 아무 것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이건 내가 잘 알지.

예컨데 이런거다. 내가 시청에 간 날 그도 거기 있었다. 한창 시청 주변이 시끄러웠고 시청 광장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던 그 때 말이다. 나도 혼자 갔었고, 그도 혼자 갔었다. 우리는 열혈 당원도 아니었고 그저 다음날 뭐할지 고민하는 소시민들이었지만 뭔가 가만히 책상앞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잠시 마실나가는 기분으로 다녀왔다. 내가 시청에 있을 때 그도 거기에 있었다는 건 다음날 문자를 주고 받으며 알았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그도 보고 있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도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취향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어떤 것을 볼지 결정하는 그의 시각도 좋아 했지만 그 것을 보고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좋아 했다. 물론, 그 이후 택하는 행동도 좋아했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생각하기 보다 자기 자신에게 먼저 보여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하는 그런 행위들을 좋아했다. 그는 참 착한 행동을 하고도 나 이거 했어, 저거 했어 하고 자랑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해야 했기에 했다는 투로 얘기했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선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부끄러움. 그는 부끄러워 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이 한낱 자기 부정이나 포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피드백되어 어떻게 자기 자신의 삶에 쓰여지는 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부끄러워 할 줄 알았기에 그는 항상 스스로를 절제했다. 그리고 그랬기에, 그는 자신에게 허락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자체가 드문 현실에서 그정도의 현명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방을 높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방까지 함께 낮추어 지게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를 보며 나 자신을 낮추게 됐다. 그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방만함과 게으름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결국 채워 넣는 것들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그릇의 단단함이 가지는 문제이다. 나는 그의 어설픈 듯 하지만 결코 허투루 만들어 지지 않은 듯한 단단함이 좋았다. 화려한 무늬나 장식은 없지만 본래의 기능에 충실한 좋은 질그릇같은 그가 좋았다. 약간은 무겁고 색깔도 화사하진 않지만 한번 담은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그런..

본인이 해야 하는 말을 할 줄 알고, 하지 말아야 할 말들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는 모습도 좋았다. 물론 나와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나친 침묵으로 일관한 그에게 섭섭한 감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거야 뭐 특수한 경우이니 그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닐 것이다. 적절한 단어의 선택과 그 단어들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는 그의 태도는, 그가 나에게 남긴 몇안되는 유산들중 하나이다. 나는  글을 쓸 때 가끔 그의 간결한 문체를 떠올린다. 흉내내고 싶지는 않지만 본받으려고 노력한다.

.
.
.
.

다 끝났으니까 하는 이야기다. 그의 이런 부분들이 좋았다는, 일종의 후일담이다.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도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짜피 이제는 정말 다 끝난 이야기니까.

글쓰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

나는 내 자신이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글 잘쓰는 사람을 보며 가지는 열등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가지는 어느 정도의 확신이다. 다만 글 쓰는 것을 두려워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한때는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던 적도 있다. 많이 어렸을 때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불과 몇년전 이야기다. 읽으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거나 비문을 생산해 내는 사람의 글을 보면 인상이 찌푸려 졌다. 무시하기도 했다.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꼭 글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꼭 글을 잘 써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잘 쓰지 못한 글은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은데, 그럴 때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는 않는다.

글쓰는 것과 말하는 것 모두에 서툰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꼭 멍청한 건 아니다. 그저 글을 잘 쓰지 못하고 말을 잘 하지 못할 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그들이 그것에 대해 평가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그들에게 나쁜 말을 해줄 필요는 없다. 또한 어떤 인간적인 애호의 문제도 아니다. 이건 말을 잘한다고 해서 (혹은 글을 잘 쓴다고 해서) 꼭 매력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던 경험의 응용이기도 하다. 말을 잘 못한다고 해서 (혹은 글을 잘 못 쓴다고 해서) 매력적이지 않다는 건 아니라는 것.

하지만 이런 건 있다. 글쓰는 것과 말하는 것에 있어서 상대방을, 그러니까 독자나 청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을 느낄 때 가지는 어떤 불쾌함. 그것이 의도적인 경우일 때에는 말할 것도 없고, 의도적이지 않다고 해도 그 사람의 배경과 현재 상황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실망이나 불쾌함을 느끼기는 하는 것 같다. 글과 말은 모두 관계맺음의 일부분이다. 관계는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시작되고, 상대방을 이해함으로써 지속되며, 그 둘 사이에 조화를 이룸으로써 완결된다. 하지만 자신만의 언어로 상대방의 이해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뱉어내는 글과 말은 관계맺음의 관점에서 그닥 매력적이지 않을 뿐더러 때로는 폭력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느낌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섹스와 다를 바 없다.

책을 읽을 때도 나는 항상 글쓴이와 대화한다고 생각하며 읽는다. 문체와 단어 선택, 그리고 문단의 구성등에서 필자의 성격 혹은 삶의 철학을 읽을 수 있다. 너무 과대망상인가? 하지만 나는 아주 이성적으로 쓰여진 전공 서적이나 논문을 읽을 때에도 글쓴이의 밥먹는 모습이 보인다.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이고, 걷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상상한 그 모습들이 실제와 다르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다. 글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서 참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함부로 배설하듯 써재끼거나 입밖으로 튀어나오는 대로 말해 버리는 건 이십대 초반에 끝냈어야 한다.

그리고 그만큼 중요하게, 자신이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 정도의 글쓰기나 말하기 능력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청자나 독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자기 중심적인 글쓰기 혹은 말하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경계하고 의심해야 한다.

최근의 대화에서 느낀 점들이다.

스프링클러 소리

내가 사는 family housing apt 는 일종의 학교 부설 기숙사 아파트다. 볼더는 부동산 가격이 상당히 높은데, 때문에 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이 패밀리 하우징은 인터내셔널 대학원생들이나 학교 직원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이다.

밤 열두시가 지나고 새벽 한시가 조금 넘으면 어김없이 “촤르륵”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소리다. 이 소리가 들리면 오늘 하루도 끝났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잠자리에 들 시간임을 알려 주는 좋은 알람이다.

스프링클러는 어김없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몹시 건조하고 우기가 따로 없어 잔디나 식물들에게 물을 담뿍 주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이곳에서는 새벽녘에 들려오는 기계 소리가 그리 삭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밥을 먹기 위해 스토브를 켜듯이 그저 그네들에게 꼭 필요한 ‘식사’ 시간이기에 방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괜시리 나까지 조용히 숨을 죽이고 그들의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기 위해 몸을 움츠려야 할 것만 같다. 가뜩이나 조용하고 소음이 없는 이 곳, 게다가  내 방앞을 지나가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가장 크게 느껴지기 까지 하는 밤이 되면 스프링클러가 항상 주인공이 된다. 인간의 시간이 잠시 멈춘 사이 잔디와 물이 그들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최근에 스프링클러 소리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몇년이 지난 후, 그러니까 한 칠팔년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지금 이 시점을 돌이켜 보면서 내가 과연 무슨 말을 할까. 대충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참 힘들었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그래도 숨은 쉬고 살 만 했어.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이건 지금을 이겨낸 사람의 미래에서 온 말이다. 만약 내가 지금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칠년 후의 나는 아마,

그 고비를 이기지 못해서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거겠지.

라고 말하지 않을까.

모든 것이 결과론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사람이 뒤를 돌아 보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사람에게 뒤를 돌아 볼 여유도 그렇게 돌아 볼만한 가치를 가지는 과거도 주어지지 않는다.

스프링클러는 돌아가고, 나는 잠시 멈추어 있다.

성정체성과 남성성

지금은 내가 아주 많이 좋아하는 블로그 친구인 D 님을 실제로 처음 만나 뵙고 받은 첫번째 질문은

“혹시 게이예요?”

였다. 이런 식의 질문을 대여섯번 받아본 것 같다. 아주 가까운 사이부터, 처음 보는 사이까지 물어본 사람은 다양하다. 콕 짚어서 게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고, 에둘러 자신의 궁금증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글만 읽고선 여자인 줄 알았다는 분도 계셨고, 가끔 여자와 대화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던 오래된 친구도 있었다. 실제 생김새를 보면 꼭 그렇게 느껴지지도 않겠지만, 어쨌든 내게 일반적인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긴 하다.

나를 잘 아는 한 선배는 그걸 마초이즘이라고 표현했다. 남자라면 누구나 내재된 마초성이 있는데, 그걸 밖으로 구현해 내는 방법은 다 제각각이라는 거다. 아무리 매너좋고 부드러운 남자라고 해도 여성적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런 행동양식과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정체성의 문제인 것이다. 그것을 본인이 인식하고 있건 무의식중에 발현하건 간에, 우리가 “마초적” 이다 혹은 “남자답다” 라고 이야기하는 개인의 특성은 감추고 싶다고 감추어질 수도 없는 선/후천적으로 받아 들이게 되는 일종의 형질같은 것이다.

그 선배에 따르면 나는 그게 없다. 억제하고 있는 건지 결여되어 있는 건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상 생활중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남자다움’ 에 대한 동경도 선망도 없다. 멋진 수트를 입은 남자를 보면 나도 저렇게 멋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넌 내 여자니까 내가 지켜줄게” 같은 드라마 대사에는 질색을 한다. 성도착이나 복장도착은 아니다. 남성복 매장보다 여성복 매장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지만, 그 옷을 직접 입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저 여성이 가지는 아름다움이 남성에 비해 훨씬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때문에 더 높은 수준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즐기고 싶은 것 뿐이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찾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여자친구에게 입혀 보기를 더 좋아한다. 남성으로서 “해야 하는 역할” 에 대한 근본적인 반감같은 것도 가지고 있다. 여자인 척 흉내를 내는 남자들은 우스개거리가 되지만, 위악스럽게 일부러 남자임을 강조하는 표현을 써야 하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는 당시 연극쪽에 발을 담고 있었는데, 그쪽에서 동성애자 남자분을 만나 친해진 얘기를 내게 전해줬다. 전여자친구 말로는, ‘중성’적인 것이 무엇인지 처음 알았다고 했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어떤 제 3의 지대에 속해 있는 것 같은 느낌. 남성성이 거세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여성다움을 뜻하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의 성 정체성.

나는 동성애자는 아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다 여자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성애자가 반드시 자신이 속한 성을 부각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나는 비록 남자이지만 남자다움이 싫다. 여성스러움은 싫지 않다. 그리고 그냥 그런 규범에 얽메이지 않는 하나의 인간이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그런 나의 입장을 이해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 남자가 이성에게 어필하는 매력의 대부분은 그런 사회화된 남자다움에 기인할 때가 많다. 혹은 남자답지 못함을 배격하는 남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나만의 편견이겠지만, 나는 그래서 경상도 남자와는 잘 맞지 않는다. 물론 경상도 남자가 다 그런건 아니다. 이제 나도 제법 나이가 차고 사회적인 위치도 어느 누구에게 종속당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에 있어서 그런 문제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더이상 받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더이상 남자다움을 상징하는 행동양식으로 나 자신을 위장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받기는 많이 어렵다. 심지어 나를 사랑하고 전적으로 신뢰했던 전 여자친구들조차 이 부분에 있어서만은 이해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걸 매력중 하나로 간주하는 여자들도 가끔 있기는 한데, 그것이 또 반드시 이해나 공감과 직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암튼, 나는 이런 나의 성향을 고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나는 썩 마음에 들기까지 하다. 조금 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토요일 오후.

이번주 내내 손님을 치뤘다. 한국에서 온 귀한 손님이었는데 이런 식의 관계가 익숙치 않아서 그런지 지내는 내내 어색하고 힘들었다. 잘 해주지도 못한 것 같아서 많이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도 사람은 든자리보다 난자리가 더 표가 많이 나는 법이다. 동이 트기도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태워 보내고 해가 뜨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버스를 타고 오는데 느낌이 참 쓸쓸했다. 밤을 꼴딱 지새워서 몸이 몹시 피곤했는데도 잠을 쉽게 잘 수가 없어서 몸을 뒤척였다. 이 곳에서 산지 벌써 2년, 주변에 흐르는 적막이 무섭도록 실감나게 다가왔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체질이기에 한국말조차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꾸역꾸역 무한도전을 다운받아 억지로 다 보고 침대에 누웠다. 선잠을 자고 난 후에도 착 가라앉은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연락을 끊고 싶은 한국 사람들에게선 어제부터 계속 전화가 온다. 아마 어제 있었던 한국 유학생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것에 대해 물어보려는 것일 게다. 전화기를 멀리 두고 지내고 싶었으나 이내 미국인 친구들에게 술이나 한잔 하자는 문자가 온다. 쉽게 답장을 보내고 다시 컴퓨터를 열었다. 오늘은 블로그에 글이나 쓰며 오후 시간을 보내야 겠다.

인셉션 두번째 관람 후

간단하게 메모만.

극장에서 두번째로 봤는데 대부분 (약 95%..?) 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찾아본 정보들도 도움이 되었고, 대사들도 첫번째 관람시 당황해서 놓쳤던 것들 포함 많은 부분을 알아 들을 수 있어서 그것도 도움이 됐다. 영화를 주욱 다시 보니 감독이 중간중간에 심어 놓았던 ‘트릭’ 들이 발견되어 그 재미도 쏠쏠했다. 예를 들어 ‘노멀 엔딩설’ 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게 만드는 두가지 트릭이 있는데, 하나는 림보에서 만난 사이토와 콥의 행동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엔딩장면에 나오는 콥의 토템의 흔들림이 명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가지 모두 감독의 가벼운 장난 혹은 열린 결말을 좋아하는 팬들을 위한 배려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하다. 다시 보면 영화의 서사가 꽤 명확하게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팬들이 각기 다른 결론과 의미로 이 영화를 해석하고 있다는 건 -역설적이게도- 그만큼 이 영화가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만들어 졌다는 사실의 반증일 것이다. 처음에는 그렇게나 잘 안들려서 나의 원망을 샀던 디카프리오의 작은입에서 나오는 씹어먹는 미국식 영어도 이번엔 그럭 저럭. 역시 내겐 영국 영어가 더 어렵다. 톰 하디의 영어가 아직도 잘 안들리더라.

영화를 보기 전 시간이 약간 남아 근처에 있는 서점에 들렀는데 계산해주는 아저씨가 온화한 미소로 “merci beaucoup” 하고 인사를 하셔서 깜짝 놀랐다. 그 말 듣기 전에는 그냥 느끼하게 생겼다 생각했는데, 역시 난 부드러운 남자가 좋은 것 같다 ㅠ

현재

육체적인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이 멘탈의 붕괴다. 이건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에 적용되는 부분같다. 요즘 내 멘탈이 심상치 않다. 올 여름이 시작되면서 갑작스럽게 무너져 버린 후 좀처럼 회복이 되질 않는다. 나쁜 일들만 계속 생기는 것 같고, 기쁜 일은 거의 없다. 뽀미까지 더위를 먹어 쓰러졌다는 비보를 들었다. 내 삶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현재에 충실하자. 현재에. 제발 현재에만 집중하자. 과거에 대한 강한 집착도 미래에 대한 섣부른 희망도 내겐 참 좋지 않은 것 같다.

오늘은 학교에서 밤까지 돌아오지 말아야지.

아 빨래해야 하는구나 -_-

간단한 규칙.

내 삶에 간단한 규칙 하나를 만들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여덟시간 공부할 것.

고등학교 졸업 후 규칙적인 생활을 강제당한 적 없이 10년을 살다 보니, 하루에 루틴한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에서 상당히 멀어지게 되었음을 알게 됐다. 게다가 여름방학이 거진 석달이나 되다 보니  게을러지고 싶다면 한없이 게을러 질 수 있는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난 회사 생활을 아직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상당히 큰 컴플렉스이고 또 내 삶의 한 부분에서 분명 안좋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회사 생활을 흉내내기로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보다는 수필을 더 많이 좋아하는 편인데, 그의 수필을 읽다 보면 소설들이 그의 아주 규칙적인 일상에서 루틴한 작업을 통해 탄생했음을 알 수 있다. 나 역시 스트레스를 조금 덜 받기 위해서 스스로를 조금 더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기본은 그냥 단순히 일반적인 회사 생활을 흉내내는 것. 아홉시에 일과를 시작해 여섯시에 마친다. 하루 여덟시간의 ‘생산 활동’ 에 대해서는 예외가 없다. 다만 나에게 주어진 특권이라고 한다면 내 위에 군림하는 상사가 없다는 것. 그러니까 아홉시에 출근 도장을 찍지 못한다면 저녁시간에 그것을 벌충하면 된다. 가끔 시험 기간이나 중요한 페이퍼를 제출해야 할 때에는 ‘야근’ 도 하고. 다른 하나의 특권은 근무 장소다. 학교 오피스가 주가 되겠지만 도서관의 캐럴, 집, 혹은 근처의 카페도 좋은 장소가 될 수 있다. 내가 해야할 ‘무엇’ 과 강제되는 루틴한 시간에 대해서만 엄격한 규칙을 세워 놓는다면 나머지는 약간 플렉서블하게 가져가도 괜찮지 않을까.

아침형 인간이 아닌 채 꽤 오랜 시간을 살아 온 것 같다. 이제 조금은 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 두시가 넘어서 잠을 자면 다음날에도 여파가 꽤 큰 것을 느낀다. 그렇다고 열두시는 너무 이르다. 새벽 한시 전후에서 잠을 잔다면 일곱시반에서 여덟시 사이에는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오고 가며 낭비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해야할 첫번째 일은 인터넷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 이걸 실천하기 위해 랩탑을 학교 오피스에 두고 다니는 방안을 생각중이다. 도난의 우려는 없으니 집에서 인터넷을 하며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죽치는 시간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둘째는 침대위에서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 이불속에서 꼼지락거리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출근 시간을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는 세부 규칙을 정한다면 그 시간에 무조건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며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해야할 공부가 너무나 많은데 나는 너무나 게으르기 때문이다. 가끔 침대위에, 혹은 모니터속에 파뭍혀 있다 보면 그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조금 더 현실을 차갑게 느끼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최근 근황

– 프로포절 하나를 쓰고 있다. 저번에 쓴 프로포절이 마음에 안들어서 통째로 들어내고 다시 쓰는 중이다. 좋은 페이퍼는 좋은 프로포절에서 나온다는 말을 실감하는 중이다. 프로포절은 영화로 치면 일종의 프리 프로덕션 단계인 것 같다. 얼마나 사전 조사와 준비를 철저히 하느냐에 따라 실제 작업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 비용이 결정된다. 수업듣고 책읽고 시험보는 것보다는 논문 찾아 읽고 아이디어 짜내서 논문쓰는게 더 즐거운 걸 보면 나도 리서치 오리엔티드인 듯. 끝까지 가봐야 하겠지만 지금은 석사까지 하고 취직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돈이 궁해지면 또 모르겠지만..

– 큰맘먹고 킨들로 읽을 책 몇권을 샀다. 하나는 농구의 자료 분석에 관한 책이다. 야구에 세이버메트리션들이 대활약하고 있듯이 농구에도 그와 비슷한 숫자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만들어낸 통계와 분석에 대한 이야기다. 농구와 관련된 다른 책은 피닉스 선즈의 역사적인 “seven seconds or less” 시절의 이야기인데 이건 다음 기회에 사기로 했다. 이번에 구입한 다른 한권은 이언 매큐언의 소설이다. 영어 소설을 끝까지 정독할 수 있을까? 내게 영어의 아름다움을 느낄 만한 깜냥도 음미할만한 시간도 없지만 그래도 한번 용기를 내어 봤다. 또다른 책은 국제 금융 시스템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 새로운 학기의 시작이 다가온다. 나는 오피스를 지하에서 3층으로 옮겼다. 저녁마다 독한 음식냄새를 풍겨 나를 두통에 시달리게 했던 세르게이와의 동거에서 벗어나 스캇, 크리스와 함께 쓸 조촐한 작은 오피스로 이사했다. 좋은 점은 세명이서만 쓰는 오피스라 방해받지 않는다는 점, 나쁜 점은 에어컨이 중앙조절식이라 주말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 -_- 오늘 마치 한국에 있는 것 같은 끈적함을 느끼며 공부했다. 창문도 없어서 통풍도 전혀 되지 않는다. 1920년에 지어진 건물이니 많은 것을 기대하진 않는다. 그저 밤까지 맘편하게 공부할 수 있기만을 바란다. 스캇은 월요일에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초긴장상태다. 이놈 정말 신기한 것 중 하나가 꼭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컴퓨터로 틀어놓고 공부한다. 대체 그렇게 해서 공부가 되나?? 근데 자기는 잘된단다. 암튼 학기가 다가오면서 학교 근처에 사람들이 한명 두명 늘어간다. 나에게는 벌써 이곳에서의 세번째 시즌이다. 대학원내에서 어느새 중간층이 되어버렸음을 느꼈다. 함께 수업을 듣던 선배들은 졸업을 앞두고 논문을 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고, 작년 반갑게 맞이했던 2학년들은 새로운 얼굴들을 맞이할 생각에 가슴이 설레인다. 나는 어중간하게 그 틈에 끼여 남은 코스웤을 마무리하고 첫번째 논문을 써야할 한해를 준비하고 있다.

– 최근 내가 아주 좋아하는 친구의 생일이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지난 10여년간 알아 온 친구다. 그 친구가 좋아하는 꽃을 선물해 주고 싶어 그가 좋아하는 꽃집을 찾았으나 해외에서 주문 불가능하단다. 인터넷 주문을 받지 않는 작은 꽃집이었다. 그래서 교보문고에서 책을 한권 주문해서 택배로 보내주려고 주문까지 다 마쳤는데 아뿔싸, 그 친구에게서 받은 명함을 잃어 버렸다. 게다가 최근에 그 친구가 부서를 옮겼다는 소식도 들었던 기억이 얼핏 났다. 회사 생활 경험이 없는 나는 부서를 옮기면 주소가 바뀌나 싶어 혹시 배달 사고 날까봐 전전긍긍. 결국 선물을 보내주지 못하고 메신저로 축하한다는 말만 해줬다. 많이 아쉬었다. 선물을 받는 것은 싫어하지만 주는 것은 은근히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패했으니 낙담하는 마음이 제법 컸다. 게다가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선물이었는데.. 그날 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역시 그 친구에 대한 마음을 접어야 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잘 안되는 사이였나 보다. 인연이 있었다면 벌써 잘 이어지지 않았을까. 10년 가까이 친하게 지냈지만 친구 이상으로 발전되지 않았다면 그건 그냥 친구로 머물러 있으라는 어떤 징표(?) 가 아닐까. 유학을 온 후 항상 마음 한구석에 크게 자리잡고 있던 그에 대한 감정을 이제 확실히 정리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둘다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혼자 속을 끓이는 스타일이라 더 안타까운 순간들이 많았을 거다. 그래도 뭐.. 내 인생에서 그런 사람을 만났다는 것 자체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중에, 먼 나중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  인셉션에서 궁금한 것 한가지. (나쉬님, 아침해쌀님, 미엘님 헬프) 어떤 때는 꿈속에서 죽으면 그냥 꿈에서 깨는데, 어떤 때는 꿈속에서 죽으면 실제로 깨어나지 못하잖아요. 어떤 차이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