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eption: Christopher Nolan

작년부터 입소문도 무성하고 또 그만큼 개인적으로도 적지 않게 기대를 하고 있었던 영화였다. 한국사람들끼리만 가면 도저히 이해가 안될 것 같아서 미국 친구와 영어 잘하는 볼리비아 친구도 데리고 갔는데, 결론적으로 “영어는 문제가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다른 사람들의 해석을 읽으며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을 보완(?) 했다. 스토리는 대충 정리되는 느낌이다.

이 영화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Macro 적으로는 별로 독창적일 것이 없는 영화다.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에서 다루어온 주제이기 때문에 놀란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Micro 적으로 놀란은 영화라는 매체를 이용해 사람이 이 주제에 대해 다룰수 있는 극한까지 끌고 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헐리우드라는 울타리안에서 만들어 지는 영화들 중 이쪽과 관련된 주제로 내놓을 수 있는 최상의 품질이다. 그의 천재성은 네러티브를 만들어 내는 능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액션씬과 그가 만든 세계의 구조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그에게 큰 loss 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베트맨 시리즈를 찍기 시작하면서 거대 자본을 영화속에 이식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것은 그의 장기가 아니었다. 다만 <메멘토> 부터 <인섬니아> 를 거쳐 <프레스티지>, <배트맨 비긴즈>, 그리고 <다크 나이트> 까지 오는 그의 대표작들은 하나같이 네러티브가 매우 뛰어나다는, 또 장면 장면의 구성이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그는 헐리우드에서 억단위로 넘어가는 거대 자본을 가지고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몇 안되는 감독일 것이다. 그가 천착해온 주제는 일관되게 실존주의적인 경향을 가진다. 서구 지식 사회를 지탱해 온 하나의 철학적인 축에 대한 의심을 끈임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마 당분간 헐리우드 자본 시스템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이 그를 매우 흥미로운 시선으로 지켜보게 한다. 그는 ‘작가’ 이면서 동시에 ‘흥행 감독’ 이다. 몇없다. 지구상에 이런 감독.

An Education: Lone Scherfig

(Spoiler)

어제 DVD 를 빌려서 봤다.

줄거리는 대충 이러하다. 1960년대 영국. 런던 근교에 제니라는 총명하고 이쁜 16살 아가씨가 살고 있다. 극성스러운 아버지의 닥달을 받으며 옥스퍼드 진학을 위해 일로매진하던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데이빗이라는 청년을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제니의 부모도 옥스퍼드 출신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데이빗과의 교제를 허락한다. 명문대진학을 위해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살던 제니에게 화려한 ‘어른’ 들의 세상은 별천지다. 급기야 학교를 빠지면서까지 데이빗과 그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고, 함께 옥스퍼드로 여행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데이빗의 실체를 알게 된 제니지만 데이빗의 설득에 넘어가 교제를 멈추지는 않는다. 급기야 그에게 청혼을 받게 되고, 그를 아끼는 교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니는 결혼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약간의 반전 후 제니는 뼈저린 반성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Lynn Barber 의 autobiography 를 바탕으로 Nick Hornby 가 영화를 위해 각색했으며 Lone Scherfig 가 연출했다. 지난 한해 선댄스와 토론토 영화제를 필두로 많은 영화제에서 화제가 되었으며 비평가들로부터도 적지 않은 찬사를 받은 영화라고 들었는데 정작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어제 우연치 않은 기회에 마음먹고 보게 됐다.

네러티브는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그런지 이야기의 흐름에 막힘도 없고 비약도 없다. 십대 중반을 통과하는 한 소녀가 겪게 되는 외부로부터의 충격, 그로 인한 내적인 갈등과 가치관의 혼란등을 매끄럽게 담았고, 그래서 결말도 매우 안전하다. 중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김기림의 시 “바다와 나비” 의 영화적 응용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동경, 지금 있는 현실에 대한 고단함, 억눌린 기성세대로부터의 탈출, 이상향에 대한 동경 등. 십대라면 누구나 한번쯤 크게 고민해 봤을 법한 주제를 효과적인 영화적 언어를 사용해 구현하고 있다.

근데 딱 거기까지다. 이 영화에는 아무런 새로움도 없다.  보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를 발견하게 하거나 곱씹게 만드는 무언가가 다른 ‘별 네개짜리’ 영화들에 비해 현격히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굳이 하나 억지로 끄집어 내자면, 각색자 닉 혼비와 감독 론 슈어픽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 정도? 그러니까 기성세대가 설계해 놓은 시스템안으로 다시 “반성” 과 함께 투항하는 장면을 보수적인 시각으로 읽어야 할 것인가? 하는 부분. 이 영화는 틀을 박차고 나오는 모든 행위를 경멸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지 않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는 주인공을 상당히 따뜻한 시선으로 어루만지고 또 이해하려고 애쓴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다만, 그 이후에 시행착오를 수습하는 과정의 방법론이 반드시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회귀해야 하는 것 뿐이냐, 에 대한 의문은 남아 있다. 영화에서는 그 과정 (직접적으로 말하면 제니는 재수를 선택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결국 옥스퍼드에 가서 잘먹고 잘살게 된다) 을 굉장히 나이브하게 묘사하고 있다. <뷰티풀 마인드> 에서 존 내쉬가 공부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처럼. 그래서 별 감흥이 없다. 주제 의식을 조금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텐데 감독은 상당히 쉬운 쪽을 택한 것 같다. 마지막 장면쯤 제니가족이 옥스퍼드에서 편지를 받는 장면은 마치 <빌리 엘리엇> 의 그 장면에 대한 오마주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흡사하다. 새로운 것이 별로 없는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별로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역시 여주인공 제니 역을 맡은 Carey Mulligan 때문이 아니었을까. 기대 이하로 매력적이지 않았던 데이빗 역때문에 더 돋보였을 수도 있겠다. 첫느낌은 어린 케이티 홈즈였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 6부터 나오기 시작한 그 레지던트와도 비슷한 느낌이기도 했고.. 암튼 이쁘다. +_+ 매력적이다. 연기도 잘한다. 이 배우와 영화속 제니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생각이 떠올랐고 또 할말도 많은데,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지라 생략해야 겠다. 브리티시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iphone 4 and kindle dx

오늘 아이폰4가 도착했다. 이로써 나는 한손에는 킨들을 다른 손에는 아이폰을 들고 다니게 됐다 +_+

음 우선 아이폰4는,

내가 최근에 나온 다른 스마트폰들을 전혀 사용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우선 화질이 참 선명한 것 같다. 과연 셀폰으로 HD 화질의 영상을 얼마나 볼런지는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동영상도 참 괜찮게 나온다. 화면이 작아서 선명한 화질이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뉴욕타임즈나 블룸버그 뉴스를 볼 때도 선명해서 눈이 덜 피곤한 듯 느껴진다. 화질의 선명함 외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 신제품이니까 당연히 속도는 빨라야 할 것인데, 그 속도도 결국 3GS 와 큰 차이는 없는 정도다. 네트워크 속도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도 많으니 더 그럴 것이다. 카메라는 확실히 좋아진 것 같은데, 무엇보다 앞쪽에서 카메라가 부착되어 있어 셀카를 찍기에도 좋은 것 같다. 나처럼 사진 찍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에겐 별 쓸모 없는 기능이지만.. 아무튼 공짜인 포토샵 어플과 함께 사용하면 500 megapx 의 아이폰 카메라로 왠만한 일상 스냅샷은 소화가 가능할 것 같다. 카메라 살 돈 굳은 게 최고 +_+ 그 외에 자잘하게 업그레이드된 기능이 있지만 일상 생활에서 큰화를 불러올 정도는 아니다. 어짜피 어플리케이션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스마트폰의 성질이기 때문에 현재처럼 아이튠즈 앱스토어가 거의 포화 상태에 다다른 상황에서 하드웨어의 업그레이드를 통한 또 한번의 혁신은 어쩌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아이폰4를 사지 않았다면 싼 값으로 3gs 를 사는 게 더 현명한 것 같다. 물론 3g 는 사지 말고.. 3g 와 3gs 와의 차이가 3gs 와 4 와의 차이보다 더 큰 것 같다. 디자인은 쏘쏘. 오래 쓰면 (말많은) 안테나 부분이 뜨거워진다. 케이스를 얼른 사야겠다. 데드 그립? 데쓰 그립? 문제는 아직 잘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킨들 DX 는,

재밌는 디바이스다. 이북리더는 정말 포지셔닝이 독특한 것 같다. ‘화면’ 을 보고 있지만 컴퓨터나 TV 화면과는 완전히 다르다. 정말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실제 책의 지면의 느낌과 상당히 흡사한 환경을 구축해 놓았다. 눈에 무리없이 몇시간이고 활자를 읽을 수 있는데 이게 디지털이라니! 아이패드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시장을 형성할 것 같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웹서핑도 하는 사람에겐 아이패드가 더 나은 선택같다. 하지만 난 킨들을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책읽기를 제외한 모든 기능은 랩탑 혹은 아이폰으로 다 가능하기 때문에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않으며,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디바이스는 킨들이기 때문이다.

킨들을 구매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크게 네가지였다. 첫째는 한국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공수하는 데 너무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 갔다. 둘째는 가지고 다니며 참고해야 하는 논문의 수가 너무 많이 늘어 났다. 셋째는 이북형태로 구매하는 쪽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생각했다. 넷째는 인터넷 사용시간을, 그러니까 컴퓨터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 가급적 줄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킨들을 통해 논문을 읽는 것은 대단히 효과적이다. 거의 1대1 크기로 보여지며 비록 PDF 를 읽을 때에는 노트 기능이 없긴 하지만 함께 구입한 킨들 케이스에 메모지를 부착할 수 있어 불편함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예전같으면 카페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도 2인치짜리 파일 뭉치를 두개씩 끌어 안고 다녀야 했다면 이젠 킨들 하나 달랑 들고 랩탑 하나 들고 나가면 어디서든지 원하는 레퍼런스를 꺼내 참고할 수 있다. 프린트하기 부담이 되는 몇백페이지짜리 문서들도 간단하게 해결 가능하다. 예를 들어 OECD 에서 나오는 Korea survey report 는 매년 출간되는 양이 200페이지가 넘는데, 이걸 모니터로 보고 있자니 눈물이 찔끔 찔끔 나오고 프린트하자니 프린터가 눈물흘린다. 그냥 킨들에 넣으면 오케이다.

내가 간과했던 건 한국과 미국의 이북 시장이 아직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아마존의 경우에는 그래도 많이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대중적인 소설이나 논픽션등을 제외하고 조금만 전문적으로 들어가더라도 이북 포멧으로 출간되어 있지 않은 책들이 수두룩하다. 한국의 경우에는 조금 더 상황이 좋지 않다. 알라딘이나 예스24등 온라인 서점 다섯 군데가 합심하여 ‘한국 epub’ 을 설립했는데 컨텐츠 공급이 아직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교보문고와 인터파크는 독자적인 이북리더와 컨텐츠를 가지고 있는데 크게 이 세군데 컨텐츠들이 전혀 겹치지도 않는다. 게다가 각각의 사이트에서 이북을 다운받아 보려면 각기른 액티브엑스와 프로그램 설치를 해야 한다. 상당히 불편할 뿐더러 그 결과 또한 신통치 않다. 에러가 자꾸 난다는 말이다.

이북 형태로 책을 구매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인 것은 맞다. 운송비도 들지 않고 책 원가도 훨씬 저렴하다. 하지만 반대로 종이책을 구매할 때 누렸던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한다는 말도 된다. 예를 들면 이코노미스트지를 페이퍼버전으로 1년 구독하면 거의 반값을 할인해 준다. 이슈 하나당 2달러가 채 되지 않게 받아 볼 수는 것이다. 하지만 이북형태로 한달 구독시 발생하는 비용이 약 11달러, 한 이슈당 2불에서 3불 사이다. 페이퍼버전 이슈 하나를 독립적으로 구매할 때 보다야 저렴하지만 1년 단위로 끊어 생각하면 이북으로 구매하는 것이 손해다. 뉴욕 타임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난 온라인 등록이 필요하고 온라인에서 컨텐츠를 다 볼 수 없는 파이낸셜 타임즈를 택했다. 매일 밤 열두시에 킨들로 신문이 배달된다. 거의 모든 그림과 그래프를 볼 수 있다.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는 것에 약간 불편해 했던 나로서는 킨들을 통해 한시간동안 집중해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다. 조금은 인터넷과 컴퓨터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좋고.

새로운 기계 두개를 거의 한꺼번에 만지게 되어서 정신이 없다. 재밌기도 하고 더 만져보고도 싶은데 시간이 너무 많이 뺏긴다 ㅎㅎ

불가능한 꿈들.

1.
아침 일찍 일어나 모닝 커피 마시며 신문 읽기 : 커피를 못마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일어나도 이불속에서 꼼지락거리기를 “너무” 좋아한다.

2.
폭탄주 퍼마시고 다음날 아침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서 운동하기: 술먹은 날과 그 다음날은 늙은 거 실감하는 날이다.

3.
혼자 밑반찬까지 차려서 근사한 저녁 한끼 해 먹기: 이건 먼 훗날 가능할지도.. (되게 먼 훗날)

4.
기분이 너무 우울한 날 초콜릿 먹으면서 기분 업시키기: 초콜릿을 못 먹는다.

5.
하루는 족발 그 다음날은 보쌈 먹고 나오면서 이쑤시개로 이빨 쑤시기: 돼지고기를 못먹는다.

6.
불 환하게 켜진 고층 빌딩에서 밤늦게 퇴근하면서 짜증나는 듯이 넥타이 풀기: 진짜 해보고 싶은데 고층 빌딩에 취직할 일이 없다.

7.
아침 일찍 출근하면서 직원들에게 “좋은 아침!” 인사하기: 단 한번이라도.. 내 인생에서 단 한번이라도..

8.
내 차로 미국 대륙 횡단하기: 하루에 맥시멈 운전 시간이 두시간이다.

9.
한국어가 네이티브가 아닌, 혹은 bilingual 과 영어로 수다 떨어서 친해진 다음 연애하기: 와 이거 진짜 불가능.

10.
게임 위닝샷 넣기: 이거 운좋으면 가능한데 박빙에서 애들이 나한테 공을 안준다. ‘위닝 자유투’ 는 성공한 적 있다.

11.
사장님 모셔놓고 프레젠테이션하기: 이거 6,7번과 일맥상통. 사장님이 아니라 교수님 앞에서는 한번 해봤는데 쉽지 않다..

12.
3년, 혹은 5년 연애하기: 롱디여도 좋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도 좋으니까 장기간 연애 한번 해봤으면. 근데 이미 나이가 찼다. (..)

13.
대도시의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완전 멋있게 주문하기(프랑스어나 이태리어 발음 짱 멋있게): 대도시에 갈 일이 없다.

14.
애큐라 혹은 링컨 몰면서 퇴근하기: 야 이건 뭐.. 이 차 모는 꿈도 한번 제대로 못꿔봤다.

15.
애큐라 혹은 링컨 세차하기: 완전..

16.
‘ㄷ’ 자형 부엌 갖기: 우리 엄마는 인생에 딱 한번 소원 성취했는데, 나는 출발하는 단계니까 뭐..

17.
AMC 냄비세트 한번에 구매하기: 엄마가 물려줘도 좋다. 굽신굽신

18.
되게 좋은 명품 오디오세트 구입해서 책읽으면서 음악 듣기: +_+ 죽기전에 단 일년만이라도..

19.
자식 네다섯명 낳아서 완전 시끌벅적 재밌게 살기: 키울 능력이 없다.

20.
JME 에 publish 하기: 하하하

21.
Princeton Univ Press 에 book  publish 하기: 하하하하하

22.
홀랜드 오퍼스처럼 나 은퇴하기 전에 주변 동료나 지인들이 조촐한 파티 하나 해주는 거 받으면서 눈물 흘리기: 대인관계 꽝인 나에겐 불가능에 가까움.

23.
밤 열두시에 눈감으면 바로 잠들기: 이거 진짜 진짜 힘들다.

24.
영어로 된 영화 자막없이 완전 잘 이해하기: 아직도 힘에 겨워한다. 인셉션 어떻게 보지?? 대사 무지 많다던데. 그래서 미국인 친구 두명에 볼리비아친구 한명 데리고 가기로 했다. 통역을 위해서 +_+

25.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읽다가 ‘어? 벌써 새벽 두시야? 어휴 나도 참..’ 이라고 한번만 중얼거려 보기: 제발 단 한번만.

26.
돌체 엔 가바나 정장이 몸에 딱 맞아서 “와 이거 안사면 안돼” 하고 옆에서 말해주는 친구 만들기: 젠장 어깨가 너무 넓다.

27.
영어로 말도 안되는 궤변 늘어 놓는 사람 면박주기: 아 한국어로 하면 자신있는데..

28.
영어로 아부해서 진심으로 점수 따기: 아 한국어로 하면 자신있는데..

29.
아침에 나 깨워주는 사람 있었으면: 이건 뭐 언젠가 생기겠지.

또 어떤 망상을 해볼까. 재밌다.
근데 은근히 많아서 우울하기도 하다.

Officially dissolved Dept. of Economics & Policy Studies at the University of Notre Dame

rink to the article

The power game between Orthodox and Heterodox economists at the university becomes the result of sweeping heterodox guys by neo one. Heterodox economics has been at the heart of the university since 70’s, by adapting Roman Catholic social justice and its application to the social science field, but after accepting some neo guys into the program there have been lots of quarrels between those two radically parted in their thoughts. As mainstream economics has dominated the world economics, the orthodox economists has been getting powered up, and finally some years ago the two groups have take apart each other. And recently, the dept. of economics & policy, where the heterodox guys were kicked out, has been closed officially. It was expected since 2003 they were not accepted to have new graduate students or invite new faculty members by the university authority. So now Notre Dame dept. of economics has 90% of neo guys and, 10% of heterodox guys who will be out soon. One of the most prominent researcher in heterodox field already has gone to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last year. As this result, the ranking of the program has been rapidly rising, and funding situation is pretty better than yesterdays. However there are criticism about this changes of Notre Dame since the university was built upon the spirit of Roman Catholic that argues the virtue of an acceptance of various voices, and the changes does not reflect it very much.

I think.. mixture of orthodox and heterodox economics is impossible. They criticize each other heavily, and we don’t know who the right part is. Historically so called “heterodox” thoughts have been always the front runner of science, but there is no reason that heterodox economics is that right pioneer in this century.

유럽 가톨릭 신자 감소

야후 코리아 기사

유럽을 제외한 국가의 가톨릭 신자는 11% 늘었는데 유럽의 가톨릭 신자수는 점점 감소하고 냉담자의 수도 큰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 꼭지.

이유가 뭘까? 궁금하다. 직관적으로 분석이 가능하지 않아서 더 흥미로운 것 같다.
유럽의 인구가 계속 감소 추세에 있기 때문에?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그렇게 따지면 한국은 뭐지? – 아직 덜 개발된 종교 시장?
대부분의 구교 중심 국가들의 경제 사정이 계속 악화되고 있어서? 성당 다닐 틈이 없나 아니면 조금 더 종교에 대한 믿음이 약화된건가.
교화청은 “세속주의” 때문이라고 이유를 분석했는데 이건 아닌 것 같다.  그럼 왜 미국의 성당들은 미어 터지는데.
유럽의 개인주의와 성당이 가지는 개인적 성찰의 공간 제공이라는 순기능이 서로 잘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잘 맞을 것 같은데)
유럽식 전통이 붕괴되고 미국식 자본주의가 침투하면서 생기는 과도기적 문제인가? 내가 가본 유럽은 그렇게 크게 흔들리는 것 같지 않던데..
신교나 그리스 정교, 혹은 이슬람으로 넘어가는 비중이 그리 커 보이지도 않고.
어쩌면 역사가 오래된 유럽에서는 종교라는 것 자체가 화석화되어 버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더이상 종교가 종교가 아니게 되어버리는 상황.

나중에 시간날때 통계자료 한번 뒤적거릴만 한 것 같다.

(직업병) 요즘 경제학에서 가장 핫한 분야가 Family economics, religion economics, crime economics 인 것 같다. 무슨무슨 경제학이라고 갖다만 붙이면 다 말이 되는 것 같긴 하다. -_- 아무튼 응용 미시 경제학의 가장 최첨단을 달리는 이 분야들은 “괴짜 경제학” 을 쓴 레빗이나 그외 시카고 학파들에 의해 발전되고 있고, 일반인들의 일상 생활 영역같은 아주 마이크로한 부분까지 경제학이 침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한것 같다. 더 넓게는 구조주의와 아날학파에 대한 경제학의 작용/반작용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누나

최근에 아직 풀지 않은 한국에서 가져온 짐속에서 누나의 속옷을 발견했다. 왜 누나의 속옷이 내 짐속에 들어 있었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우리 누나라면’ 능히 그럴 수 있다고 이내 수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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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의 누나는 두살 터울이다. 단 하나 존재하는 나의 형제이며, 부모님을 제외한 나의 유일한 가족이다. 부모님과의 관계 설정은 20대 이후 성인의 시기를 살아 오면서 대부분 다시 조정되고, 큰 사건 사고가 없다면 원만하게 ‘모두가 원하는 그 방향으로’ 관계의 재 설정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어머니와는 조금 더 많은 수다를 떨게 되고 더 많은 것을 함께 하고 싶어 하게 된다. 아버지와는 술 한잔 기울이면서 진지한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신뢰를 갖게 된다. 하지만 누나와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될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다.

나는 가족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딱히 유별난 행동은 아니었다. 그 누구와도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집에서도 그리 특별할 것 없이 굴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고민이 있을 때 가족과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풀어 나가기 보다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책상앞에 머리를 처박은 채 고민하는 쪽을 택했다. 지금은 가족도 그런 나의 성격에 많이 적응이 됐지만, 그런 나의 모습을 지켜 보는 것도 많이 힘들고 지치는 일이라 한때는 아버지께서 소화불량에 걸리기까지 하셨다. (대입때였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누나와는 더더욱 말을 자주 섞는 편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몇번 심하게 싸우고 또 함께 뛰어 놀고 했었지만, 내가 중학교에 진학하고 누나가 고입 시험을 앞두면서부터 대화가 거의 단절되었던 것 같다. 그 후 누나의 고등학교 3년, 나의 고등학교 3년 시절을 보내면서 우리는 집안에서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어머니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전해 들을’ 뿐이었다. 그나마 서로 시간을 낼 수 있었던 일요일 저녁쯤 온 가족이 근처 동네에서 외식을 하면서 농담을 주고 받는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누나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장기간 육체적으로 떨어져 있어야 했던 시기부터였다. 군대에 들어가고 훈련병 시절 집으로부터 첫번째 편지를 받게 됐는데 하나의 봉투에 아버지의 편지, 어머니의 편지, 그리고 누나의 편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군대 훈련병 시절을 겪어본 모든 이들이 그러했겠지만 나도 그 첫번째 편지를 받고 참 많이 울었다. 아무튼, 누나는 그 장문의 편지에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장 크게 놀랐던 건, 그 편지의 내용중 대부분이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누나는 비록 나를 자주 만나지도 못했고 나와 대화를 나누지도 못한채 몇년을 살아 왔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 때까지의 나를 빠짐없이 지켜 보고 있었다. 어머니를 통해 전해 들었건, 당신이 직접 이리저리 살펴 봤건 간에 누나는 나를 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 걱정과 염려가 앞서서 – 할 수 없었던 따끔하고 정확한 충고를 해 주었다. 나는 그 편지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종종 누나가 보냈던 그 편지중 한 구절을 떠올린다. 내 삶의 지침과 같은 가르침들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누나가 보냈던 그 편지였다.

그 이후로 휴가를 나올때마다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나는 그 당시 첫 연애를 시작하고 있었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할 부분들에 대해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군대가기 전만 해도 연애를 제법 했던 터라 (..) 어떤 면에서는 도움을 준 측면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역한 후 지금까지는 내가 또 너무 바쁘고, 누나도 직장생활과 연애를 병행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닥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하지만 참 신기하고 오묘한 건, 누나보다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나와 대화를 더 많이 나눈 사람이 몇십명은 될텐데, 그 누구도 우리 누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핏줄은 진한 빛을 그렇게 은연중에 내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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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누나는 성격이 정 반대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다르다. 아버지와 친가쪽 성격을 많이 물려 받은 듯한 누나는 예술적 감성이 뛰어나고 (그래서 미대에 갔다) 성격도 불같다. 다혈질이지만, 그만큼 또 정이 많다. 굵은 정이 많은 대신 잔정은 별로 없는 편이다. 맏이로서 책임감도 있는 편이라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려고 하고 집안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려고 한다. 하지만 고집이 세고 의견을 좀처럼 굽히지 않아 내외적으로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성격이 화통하고 인간관계에 능해 적을 잘 만들지 않는 편이지만, 지나치게 정에 얽메여 가끔 일을 그르치기도 하는 것 같다. 자신만의 신념이 굳건하고 체력도 좋은 편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쉽게 지치고 화를 내기도 한다. 경제 관념이 좋아서 돈도 무척 효율적으로 아껴 쓴다.

나는 위에 나열한 누나의 성격중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혈액형이론을 절대 믿지 않는 이유중 하나다. 우리는 같은 B형이다)

생김새도 매우 다르다. 누나는 눈도 작고 코도 작고 입도 작고 얼굴도 작다. 피부도 매끈하고 다리는 비록 (상명부속중고를 나와서 어쩔 수 없이) 굵지만 몸도 날씬한 편이다. (요즘 술배가 많이 나왔다)

나는 누나의 생활 습관도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다. 누나의 방에는 어머니조차 들어가기를 꺼려 하시는데, 이유는 (당연히) 너무 지저분하기 때문이다. 가끔 누나가 산 책을 훔쳐 읽을까 하고 방에 용기를 내어 들어가면 컴퓨터 모니터에 걸려있는 속옷을 보고 기겁을 하며 뛰쳐 나온 적도 있다. 술을 너무 좋아해 매일 밤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온다. 새벽에 온 가족이 출동하여 술취한 누나를 찾아 온적도 있다. 연애를 할 때에도 지나치게 상대방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옆에서 어머니와 내가 많은 충고를 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고, 그래서 좋은 남자를 잃었다. (지금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누나와 나는 서로 일상생활을 공유하지도 않는다. 누나는 미술과 사진을 전공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많은 활동을 한다. 블로그도 한두개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고, 또 기자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글쓰는 것도 즐겨 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런 누나의 활동에 대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누나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같다. (아, 누나가 얼마전 이메일로 내 블로그 주소를 물어봤는데 내가 그냥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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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누나는 누나다. 비록 박봉에 시달리느라 내게 용돈 한번 쥐어본 적이 없는 누나이지만, 내가 그 어떤 심한 장난을 굴어도 허허 거리며 다 받아주는 사람이다. 내가 심한 잘못을 해서 부모님조차 실망할 때 끝까지 내 편을 들어 주었던 사람이다. 비록 외국에 있는 동생에게 따뜻한 안부전화 한통 하지 않는 무뚝뚝한 여자이지만 묵묵하게 아들이 없는 썰렁한 서울집에서 부모님을 모시는 사람이다. 나이 서른이 되도록 결혼 비슷한 소식조차 없는 사람이지만 밤늦도록 어머니와 아버지를 앉혀 놓고 수다를 떨고 재롱을 피울 수 있는 좋은 딸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누나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 기분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펑펑 울지 않을까?

작은 관심

작은 관심.
글쎄, 이 말 자체가 약간 어폐가 있는 것 같다. 관심의 크기는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나는 생일 선물받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생일 파티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내 생일로 인해 떠들석하게 무언가를 벌이는 것 자체를 결코 즐기지 않는다. 비단 생일뿐만이 아니다. 나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모든 일에 얼굴을 찌푸린다. 생일에 대한 의미 자체를 폄하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쑥스럽고 몸둘바를 모르기 때문에 그리 피해 다니는 것일 게다.

역설적이지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듣고 싶어한다. 선물이나 파티는 너무 거창하고 무겁지만, 가볍게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는 나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그가 나를 ‘기억’ 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무시할 만큼 가소로운 가치가 아니다. 사람이 왜 죽어서 그 자리에 비석을 세우는지, 사람이 왜 그렇게 무언가를 쓰고 그리고 만들어서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중 작지 않은 부분은 ‘기억’ 과 관련될 것이라고 짐작한다.

진심어린 한마디를 듣는 것이 오직 생일과 관련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을 때 힘내라는 말 한마디, 어떤 일로 인해 뛸듯이 기뻐할 때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평소에 나를 – 마음으로 –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그 모든 일상의 대화가 나에게는 큰 축복이자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그런 걸 되게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자신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남들에게 지긋한 관심을 끊임없이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사실에 대한 인식만을 한 채 행동으로 그 마음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은 반면, 그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가볍게 선물을 건네는 일이 마치 정성껏 식사 한끼를 차리는 일만큼이나 소중하고 어렵지 않은 일이 된다. 그리고 그 마음과 마음이 서로에게 통했을 때, 우리의 삶은 약간은 더 행복해 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그랬다. 주변 사람들을 참 잘 챙기고, 나도 그런 면때문에 그를 좋아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때 그가 불쑥 가져오는 작은 선물이나, 새벽녘에 불쑥 찾아오는 짧은 문자 한통이 그렇게 소중하고 가치있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참 많은 힘을 줬다.

요즘은 통 소식이 없다. 아무런 기척도, 연락도 없다. 안부조차 들을 수 없다. 이기적이지만, 그사람에게는 어떤 말이라도 듣고 싶었다. 아니 지금도 듣고 싶다. 아주 작은 말이라도 괜찮으니 그저 지나가는 말이라도 한마디 해 줬으면 좋겠다.

빅터 프랭클 저, 이시형 역 : 죽음의 수용소에서


우리가 지구상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으로 묶인 이상,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의 방법은 수도 없이 많을 지언정 그 탐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인 결국 서로 서로 다 통하게 되어 있다고 믿는다. 이걸 학문의 영역에서 종교의 영역, 혹은 개개인이 하는 사색의 영역으로 확장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조금 더 강하게 들었다. 책의 저자는 빈에서 정신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정신치료사이자 학자였고 나치의 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그리고 로고테라피라는 새로운 학파를 창시했다. 이 책은 저자의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로고테라피를 소개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는 가치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만이라도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자가 주는 가르침은 내가 성당에서 배웠던 그것과 흡사하다. 그렇다고 종교적인 책은 아니다. 철저히 인간의 생활 군상에서 증거를 찾아 자신의 학문적 소양과 인간 개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양심에 바탕을 두고 담담히 기술한 에세이에 더 가깝다. 그리고 독자는 아마 자신의 지나온 삶을 저자의 분석을 따라 그대로 적용해 볼 것이다. 어떤 대목에서는 아 맞아, 나도 이때 이랬는데, 하고 동감할 것이고 다른 구절을 읽고서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때 그사람이 이래서 그랬구나.. 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읽는 내내 자꾸 군대에서의 삶이 떠올랐다. 갇혀있는 곳, 타율에 의해 강제되는 삶, 폭력이 일상화되어 그 감각이 무뎌지는 곳. 물론 죽음에의 공포나 배고픔에 의한 신체적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군대도 수용소처럼 역시 사람을 변하게 한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과 완전히 달라진 환경이 사람을 변하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변하게 한다. 군대가 약간 더 극단적인 경우라면 우리가 속해 있는 각각의 집단 역시 하나의 작은 소우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에 대한 대응도 점점 변화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성격도 점점 변화한다. 그렇게 이 책은 우리 각자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 보게 한다.

인상적인 구절이 많아 책갈피를 꽂아 두고 싶은 페이지가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영어판 원제는 <Man’s Search for Meaning : An Introduction to Logotherapy> 다. 정신과 의사 이시형이 번역했다. 2010년 4월 초 다락방님께 선물 받았다.

the Hold Steady at Ogden Theatre, Denver


어제 Scott 과 덴버에 있는 Ogden Theatre 로 홀드 스테디 공연을 보러 갔다. 가는길에 내 인생 최악의 폭우를 겪었는데, 내 인생 최악의 운전 경험이기도 했다. 와이퍼가 완전치 않아 불안에 떨며 운전했는데 비가 너무 심하게 내려서 와이퍼가 필요없을 정도였다. 비오는 날이 드문 볼더/덴버 지역인데 올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것 같다. 비록 세번째 여름뿐이긴 하지만 ㅋ

스캇은 네번째, 나는 두번째 홀드 스테디 공연 관람이다. 작년 볼더로 직접 행차하셨을 때 처음으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홀드 스테디의 공연은 열광적이기로 소문이 나 있다.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번의 쉬는 타임, 숨고르는 시간도 주어지지 않고 맹렬하게 달린다. 밴드 멤버들도 땀범벅이 되고, 보는 관중들도 모든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하는 듯한 느낌이다. 볼더 공연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볼더에서의 대부분의 관객들이 대학생/대학원생/young professional 위주였다면 덴버 공연에선 의외로 중장년층 관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렇다고 공연의 관객층에 따라 분리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미국 관람 문화의 주된 특징중 하나인데, 철저하게 개인적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옆에 누가 있던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스포츠 경기때도 홀로 홈팬들 사이에 빙 둘러 싸여 원정팀을 응원해도 생명의 위협은 느껴지지 않는다. (격렬해 지면 좀 얘기가 달라진다)

밴드의 중심은 보컬/백킹 기타의 Craig Finn 과 리드 기타의 Tad Kubler 다. 이 두명이 거의 대부분의 작사/작곡을 맡고 있고 특히 Craig 은 홀드 스테디를 규정하는 “lyrically dense storytelling ” 을 형성하고 이어 나가는 브레인으로 평가받는다. 스캇은 천재라고 표현할 정도인데, 아주 전통적인 어메리칸 록 스타일에 이런 스토리텔링 기반의 가사가 합쳐져 홀드 스테디를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디 밴드중 하나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 홀드 스테디는 의외로 미국외의 지역에서 인기가 그리 높지 않은 편인데 예외적으로 영국, 호주, 독일에서 인기가 있다고 하니 이들 음악에서 가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은 편은 아닌 것 같다. (여담: 나 이번에 ESPN 에서 클린스만 영어하는 거 보고 완전 반함 +_+ 역시 영어는 기름기 좀 빼고 투박하게 해야 멋있다. 근데 어제 스캇이 말하길 미국도 그건 마찬가지라고. 미국 여자들도 영국식 영어발음하는 남자 완전 좋아한다고 한다. 나 처음부터 영어 잘못 배운 듯; 참고로 내 영어 스승 스캇과 크리스는 모두 southern 출신..)

공연 보기전 근처 바에 들려 맥주를 두병씩 먹었다. 스캇의 새로 산 HTC 스마트폰 자랑이 주된 대화 내용. 목소리로 문자를 보낼 수 있고 문자 보낼때마다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는 건 문화 충격이었다. 아이폰4가 미덥지 못해 AT&T 에서 스프린트로 이동통신사를 옮긴후 200불에 샀다고 했다. 아오 +_+ 그래서 나도 HTC 살까? 했더니 사지 말란다. 그냥 아이폰4 사란다. 왜? 하니까 그래야 자기도 아이폰4 구경해볼거 아니냐면서.. 나쁜눔

공연은 1집부터 최근 앨범까지 고루 커버하며 진행됐다. 나야 전 앨범 <Stay Positive> 부터 좋아하기 시작했으니 그 이전 앨범은 히트곡 몇개 빼고는 잘 모른다. 공연을 적당히 즐길 정도다. 함께 한 스캇은 홀드 스테디의 광팬이라 모든 노래에 미친듯이 열광하며 즐겼다. 같은 값을 내고 본 공연이지만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모두 각자 자신이 알고 보는 만큼만 얻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홀드 스테디의 스튜디오 앨범을 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곡들이 상당히 콘서트 지향적이다. 관객을 흥분하게 만들고 박수치게 만들고 환호성을 지르게 만드는 요소를 거의 대부분의 곡마다 담고 있다.

볼더 공연과 한가지 크게 달라진 점은 역시 키보디스트 Nicolay 의 부재.  공연에서도 세션맨으로 대체됐다. 녹음까지만 딱 함께 하고 밴드를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공연에서는 키보드가 중심이 되는 곡들이 모두 빠졌다. 대부분의 곡들이 기타 중심의 달리는 곡들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공연 전체적인 균형? 밸런스가 볼더 공연때보다 약간 떨어져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괜한 느낌뿐일 수도 있다.

앵콜까지 성실히 마친 밴드는 퇴장. 우리도 퇴장. 우리는 배가 고파 돌아오는 길에 Denver’s dinner 라는 24시간 레스토랑에 들어가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와이퍼가 마침내 고장. 비가 오면 어떡하지 하며 벌벌 떨며 왔는데, 집에 거의 다 올때쯤 비를 약간 맞으면서 왔다.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에 감사했다.

스캇도 나도, 지금 모티베이션이 필요하다. 둘다 뭔가 힘이 잔뜩 빠져 있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