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t of life

2008년 4월, 나는 두 학교에서 admission offer 를 받았다. 한 곳은 지금 다니고 있는 University of Colorado (CU) 였고 다른 한 곳은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NSSR) 였다. 뉴욕근처 대학을 나온 젊은 교수님과 내 학부 지도교수님, 그리고 미국에 나가 있는 유학 선배들의 조언을 받아 들여 CU 로 최종 결정했다. 이유는 두가지였다. 첫째는 펀딩이었다. CU 는 등록금에 Stipend 까지 커버되는 풀 펀딩을, NSSR 은 등록금의 1/4 만 커버되는 상당히 제한적인 펀딩을 제시했다. 뉴욕이라는 물가 비싼 곳에서 거의 펀딩없이 학교를 다니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 두번째 이유는 소위 말하는 학풍의 차이였다. NSSR 은 Marxism, 그러니까 비주류 경제학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사회주의 좌파에 속하는 경제학을 하는 곳이었고, CU 는 일반적인 미국 경제 대학원이 가지는 학풍, 즉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하는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무역쪽이 특히 강한 학교인데 현재의 신자유주의의 위치를 공고히하게 만든 주도적인 기제가 강대국 위주의 일방적인 무역이었음을 상기한다면 더 드라마틱하지 않나 싶다) 실제로 공식적인 랭킹에서도 차이가 꽤 많이 났고, 학위 취득후 취업 시장을 고려했을 때도 NSSR 에 가는 것은 “굶어 죽기 딱 좋은” 선택이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 볼때 많이 안타까운 점은 NSSR 을 나오고 한국의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중인 교수님들의 조언을 구하지 못한 것이다. 연세대에 한분, 국민대에 한분 계셨다.

내가 유학을 결심하고 경제학 공부를 반드시 해야겠다고 다짐할 당시 읽었던 책이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Wordly Philosophers> 였다. 그당시 이 책의 마지막 챕터를 읽고 큰 충격에 빠졌고, 저자의 다른 책 <비전을 상실한 경제학> 을 읽고선 무릎을 탁 치며 ‘이거다’ 싶었다. 그 두권의 책은 지금까지 읽은 모든 책과 논문들을 포함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경제학 서적이다. 현재 주류 경제학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과 문제점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그 대안까지 너무나 명확하게 제시하는 그 책들은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개별 경제 주체의 합리적 판단이 모여 사회 전체적인 의사 결정이 만들어 진다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적 발상은 세상을 규율하는 ‘룰’ 이 먼저 존재하고 그 환경의 제약하에서 각각의 경제 주체가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 판단을 한다는 하일브로너의 주장에 막혀 힘을 잃는다. 그 논증 과정이 아주 강렬하고 또 깔끔하게 논리적이다. 내가 미국에 오고 지금까지 줄기차게 거시 경제학을 파고 있는 것도 다 이 하일브로너 할아버지의 영향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CU 가 아주 강한 신자유주의적 학풍을 가지고 있고, 또 그래서 미시경제학이 매우 강한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CU 에서 보낸 2년동안 점점 유학을 결심할 당시 마음먹었던 “비전” 을 점점 상실하는 쪽으로 성장했다. 첫 1년간의 코스웤을 거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논리적인 명쾌함과 엄밀함에 점점 빠져 들었고, 이 주류 경제학에서 결핍된 “철학” 혹은 “비전” 에 대한 고려는 점점 시들해져 갔다. 2년차 세미나 과목을 들으며 나는 “tool” 을 익히는데에 집중했고, 논문을 직접 쓰는 과정에만 집착했지 그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2년을 보낸 결과 나는 꽤 탄탄한 주류 경제학에 대한 기본을 닦았지만, 결국 이렇게 방향을 상실하고 완전히 길을 잃어버리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작년 재지원을 했을 때도, 나는 이렇게 스스로가 쳐 놓은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단순히 거시 경제학이 유명한 학교 7곳을 골라 지원했다. 내가 “왜 거시 경제학을 하고 싶은지” 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뿌리를 잊고 그 위에 피어나는 꽃만을 바라보려 했다. 그러다 보니 보기 좋게 전부 낙방.

아마 더이상의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이 시점에서 무언가 결심을, 선택을 하지 않으면, 나는 CU 에서 지금처럼 그냥 저냥 살다가 어찌어찌해서 학위를 받던가 중간에 낙오해서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던가 할 것이다. 두 경우 모두 과연 내가 원하던 삶이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답은 아니다, 이다. 한국에 가서 많이 흔들렸다. 돈을 버는 친구들을 보면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어서 빨리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갖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 삶을 원한다면 CU 에 남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다. 못해도 한국 회사 연구직에는 들어갈테니까. 중간에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온다면? 아마 늦은 나이에 허겁지겁 취업 준비를 해서 조그만 회사에라도 취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었나? “비전을 상실한 경제학” 에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게 진짜 행복한 삶일까. 내 머리가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해낼 수준이 된다면, 아직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는다면, 최소한 내가 가슴 뜨겁게 호응했던 그 곳에 남은 일생을 헌신해야 하지 않을까. 비록 배고프고, 조금은 더 힘들겠지만 말이다.

학부 시절 경제학설사 책들을 읽으면서 들었던 가장 큰 궁금증은 “그 많던 경제학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였다. 경제학원론에는 오로지 아담 스미스와 리카르도, 존 메이나드 케인즈와 힉스, 월러스만 등장한다. 그들과 자웅을 겨루던 리스트, 하이에크, 존 헨리, 심지어 마르크스도 경제학 교과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가 훌륭한 경제학자였지만, 어떤 이들만 ‘선택’ 되었다. 나는 그 선택의 이유가 결코 순수하게 학문적인 영역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케인즈 이후 모든 경제학설들을 현실에서 검증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현실에서 검증을 받았다는 큰 무기를 가지고 있지만, 나머지는 그러하지 못하다.

다행히도 아직 세상 이곳 저곳에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여러 비주류 경제학자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최소한 밥값은 벌면서 산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금전적인 부담, 그리고 편안한 삶을 어느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현실 인식등이 나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2 thoughts on “rest of life

  1. 힘 내세욧! 오늘 한국이 이겼잖아욧! (별 상관은 없는듯?)^^
    한국에 가서 친구들 사는 모습 보고 충격을 많이 받으신듯? 비교하지 마세요. 그 친구들은 지금 그 자리에서 자신들이 해야할 것들을 하고 있고 종혁님은 이 자리에서 해야할 것들을 하고 있을 뿐. 아직 안 일어난 일들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 마시길. 다시… 힘 내세욧! 오늘 한국이 이겼잖아욧! ^^

    • 충격을 받은 건 아니고요, 그네들이 사는 모습이 많이 부러웠죠. 한국에서, 한국말하면서, 한국인들이랑 어울리면서, 한국음식 먹으면서 사는데 돈도 벌고 애도 낳고 친구들이랑 술도 먹는 그런 삶.. ^^

      저도 알아요. 여기까지 온 이상 다시 그런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 흔들림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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