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내일이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갈 때에는 하루를 버는 셈이니, 내일 오후에 출발한다고 해도 미국에 도착하면 (다시) 내일 오후쯤이 된다. 연착이 되지 않는다면 아마 밤이 시작될 즈음 덴버에 도착할 것이고, 그곳에서 다시 볼더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내가 잠시 머물 곳에 도착하면 자정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자야 겠지만, (거의 확실히) 내일 밤은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다. 몸은 몹시 피곤하겠지만 말이다.

서울은, 한국은 많이 변했고 또 그리 쉽게 변하지 않기도 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도 조금씩 더 변한 것 같다. 나의 생활과 삶은 평균적인 내 나이 또래 젊은이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것이라는 걸 이번 방문에서 뼈저리게 확인했다. 이대로 몇년 더 살면 내 친구들과 더이상 공유할만한 이야기꺼리가 거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내가 지금 내 삶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듯이 내 친구들 역시 그들 각자의 삶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일찍 취직한 여자 친구들은 여전히 허둥지둥거리던가 약간은 자리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남자 친구들은 변화한 환경과 그보다 더 급격하게 변화해야 하는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채 서투른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떤이는 여자를 탐하고, 다른이는 돈을 탐한다. 사는게 영 재미없는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이 무엇을 쫓는지도 망각한 채 하루 하루를 그저 열심히만 살아가기도 한다. 모두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나는 그들과 점점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 현재 길을 잃었다. 방향을 상실한 상태다. 내가 어디로부터 나왔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 어디로 발을 내딛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는 거다. 미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시작된 이 극도의 혼란감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에 더 악화되기만 했다. 그 어디에도 나를 반겨주는 곳이 없는 것만 같았고, 나의 집, 내가 머무를 수 있는 “둥지” 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내가 지금 하는 것이 무엇이고 과연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본질적인 고민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한국에 머무는 동안 가끔 “공부를 왜 하냐?” 라는 질문을 받을 때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맞아, 내가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그거였어.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했다. 유학을 떠날 때 마음 먹었던 순수했던 고민들이 지금의 나에게도 아직 유효할까? 볼더에서 2년을 보내는 동안 나도 모르게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

‘어서 빨리 학위받고 번듯한 직장하나 얻어서 편안하게 한번 살아보자. 저녁에 퇴근하면 여유롭게 소파에 앉아 스포츠중계도 보고, 주말에는 느긋하게 책도 읽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다.’

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만약 내가 이렇게 생각했다면, 그것은 아직 내가 품지 말아야 할 금기와도 같은 일종의 방심이었고 교만이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질책하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질 못했다면, 돌아오는 결과에 대해서는 누구도 원망할 필요없이 다시 그 모든 책임을 스스로에게 지워야 함이 옳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노력으로 어떤 결과를 성취했는지에는 관심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일단 이 바닥에 들어온 이상 그렇다.

나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한국에서의 한달은 즐겁지만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을 실컷 보고, (누이는 남자친구 만나느라 많이 보지 못했지만..) 먹고 싶었던 음식 실컷 먹은 것만으로 괜찮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는 이 스트레스를 근복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어떤 곳에 누구와 함께 하던지 결코 순수한 마음으로 시간을 즐길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미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다시 혼자가 된다. 혼자 일어나서 혼자 밥을 해먹고, 혼자 도서관에 가서 혼자 공부하다가 돌아와 혼자 잠든다. 이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고 선후배들이 있지만, 나는 차라리 혼자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미국에 가면 조용히 혼자 책상앞에 앉아 곰곰히 생각을 정리해 봐야 겠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만을 위해 집중하는 1년을 보내고 싶다. 만약 1년으로 부족하다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30이 되기 전 무언가를 꼭 이루고 싶다.

2 thoughts on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1. 흠. 이글을 읽고 나서야 왜 종혁님이 그렇게 힘들어 하는지 알것 같네요. 그런데 미안하게됴 해줄 말이 없어요. 그냥… 힘내세요. 이것도 지나갑니다. ^^

    • 제가 주변의 위로나 격려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이라서 미안해 하실 필요 없으세요 ^^;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서 조금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은데 뭐 어찌 하다보면 잘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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