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Days of Summer : Marc Webb




어제 집에서 DVD로 봤다.

벨 엔 세바스챤에 대한 언급이 직접적으로 나오고 The Smith 를 통해 가까워 지는 남녀에 대한 이야기라면, 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충 이 로맨틱 무비가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답습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감정도는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 몇장면에서 <High Fidelity> 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런류’ 라고 따로 카테고리화시킬 수 있는 어떤 취향의 문화가 미국내에서는 존재한다.  브릿팝을 좋아하고(그것도 블러가 아닌 스미스), 전형적인 사랑 얘기에는 금방 지루함을 느끼며 존 레논보다는 링고 스타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영화가 가지는 특수한 색깔이 있는 것이다.

나는 Summer 라는 여자 주인공의 존재 자체가 거대한 맥거핀처럼 느껴졌다. 정작 ‘이 취향’ 을 가진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은 남자 주인공인 탐 한센이 직장을 관두면서 일갈한 그 몇마디에 집중되어 있는 듯 했다. 영화의 흐름에서 아주 뜬금없이 티어 나오는 그 씬은 예상외로 길게 진행되고, 단순히 탐이 직장을 관두게 되는 계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뭔가 작정하고 쏟아 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에 와서 hallmark 같은 거대 회사에서 나오는 수만가지 기념 카드들에 참 창의성도 없고 지루하기 그지 없는 멘트들만 써 있는데 사람들은 좋다고 그걸 사가는 것을 보고 의아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 주인공은 그 멘트들을 지어내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카드로 대변되는 ‘메인스트림 문화’ 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면서 직장을 관두게 된다.

하지만 ‘이런 류’ 의 취향을 가진 이들이 가진 본질적인 한계는 대안을 마련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탐은 자신의 원래 꿈이었던 건축을 다시 하기 위해 도전한다. 그가 도전에 성공하는지는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훨씬 말쑥하게 차려 입고, 훨씬 더 좋은 건물에 들락날락거리는 장면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기성 문화를 거부한 대가로 오는 건 더 권위적인 곳으로의 ‘신분 상승’ 이라는 건가? 그게 본인이 원래 원했던 삶이고 꿈이었다고 해도 변명이 잘 되지는 않는다. 이 마지막 결말 부분은 감독이 배급사와 적절히 타협한 듯한 느낌을 준다. 어쨌든 제작비는 뽑아야 하니까.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열광했을 법한 Summer 역인 Zooey Dechanel 에 대해서는, 난 우선 She & Him 의 음악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짝퉁’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은 참 매끈하게 잘 뽑아 냈다. 그리고 대단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뮤직비디오에서 아무리 이쁘게 춤을 춰도 ‘어디서 많이 본듯한’ 기시감만을 불러 일으킬 뿐이다. 난 차라리 Jenny Lewis와 그녀의 밴드 릴로 카일리가 훨씬 좋다. 똑같이 배우 출신의 인디 밴드를 한팀만 꼽으라면 말이다. 배우 출신 뮤지션들이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같은 건 있다. 몸에 베어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무대 메너라던가 목소리에서 미묘하게 느껴지는 ‘연기’ 에 대한 의심같은 것들. 그런 면에서 제니 루이스가 주이 드샤넬보다는 훨씬 낫다.

그녀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고, 그녀가 맡은 캐릭터때문에 그녀 자체가 가진 매력을 폄하할 이유도 없다. (말인 즉슨 난 Summer 의 캐릭터가 참 싫다. 지극히 비현실적이지만 그걸 눈치채지 못하게 교묘하게 꾸미려 하는 감독의 의도가 싫다)

이 영화가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후 무거운 마음을 가지게 된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차근 차근 영화를 보기를 권한다. 이 영화는 그렇게 현실적인 영화는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왔던 영화들이 너무 비현실적이었을 뿐이다.

그 다음은..?

시간 순서대로 말씀드릴게요. 세개의 에피소드가 다 나름 이어지는 구성이라서 ㅋ 으악 쓰기도 전부터 오글오글.

뒷얘기들이 그닥 상큼하진 못해요

2.
선물을 툭 던져주고 뒤돌아서 집으로 오는데 뒤에서 잡더라구요. 오빠 미안해서 어떡해.. 이러면서. 미안하긴 뭘, 지가 선약이 있다는데 뭐 별 수 있나. 그때 왜그랬는지 모르지만 하이파이브 한번 하고 돌려 보냈어요.

사실 이 친구와는 심각하게 만나는 관계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굳이 같이 안보내도 되겠다 싶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 그때 누군가에게 꼭 선물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때 당시 만나는 여자라곤 그 친구 하나뿐이었으니까 그 친구에게 선물을 주게 된거죠. 사실 나중에 주려고 했는데 우연히 급 만나는 바람에 원치 않게 쿨하게 휙 던져주고 오게 된거구요. 아무튼, 선물을 주고 전 집에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는 거예요. 부모님은 부모님끼리 데이트하러 하동으로 내려가시고 누나는 누나대로 또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러 가시고.. 그날 오랜만에 티비와 함께 밤을 지새웠어요. 라면도 끓여 먹고..

그리고 그 친구와는 몇번 더 만났습니다. 집에도 바래다 주고, 전화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제가 호주로 어학연수를 빙자한 계절학기를 들으러 갔죠. 1월 초였을 거예요. 이 친구와는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헤어지게 됐어요. 호주에서도 꽤 오랫동안 제게 매일 전화를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제가 그곳에서 여자친구가 생기기 전까지.

3.
시드니에서 마술을 보여주고 유자차도 타주고 그렇게 다시 친해지게 됐고 캔버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며칠 뒤 제 세번째 여자친구가 됐습니다. 우리는 그 후로 몇개월동안 연인 관계를 유지했고, 그해 여름쯤에 공식적으로 헤어졌고, 제가 유학오기 전까지 계속 만났습니다. 중간 중간 스왈로브스키 귀걸이도 몇개 사줬구요. 다시 사귀고 싶지 않았지만, 굳이 만나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귀기 시작하고 몇주뒤에 둘이서만 시드니에 한번 더 놀러 갔는데요, 그 땐 마술도 없고, 유자차도 없었지만 내내 같이 있는 것만으로 좋았던 것 같아요. (redundant!)

1.
세번째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몇개월 뒤 만난 그 술자리는 약간 특별해는데요, 그 친구가 절 1년도 넘게 더 짝사랑해왔다고 고백한 날이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와는 결코 사귈수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고백이 상당히 뜬금없어서 잠시 벙쪄 있었는데 자존감이 지구 최강인 그 친구는 바로 응답이 나오지 않는다며 더 표독스럽게 굴기 시작했어요. 제가 세번째 여자친구를 사귀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친구였고, 중간에 안좋은 일이 생겨 힘들어 할때 옆에서 제 얘기를 들어주던 친구였거든요. 자존심강한 그 성격에 무던히도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동안 그 친구가 제게 했던 말이나 행동들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됐고, 그걸 곱씹어 보면서 술을 먹다 보니 제 앞에서 계속 까부는 그 녀석이 귀엽고 애틋하게 생각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냥 웃으면서 받아주게 된거죠.

집에 바래다 주는 길에 눈화장을 손으로 슥 닦아준 후에는, 그 친구 집으로 갔죠. 부모님이 안계시다고 해서. 갔더니 중학생정도 되는 어린 남동생이 하나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더라구요. 화장실 갔다가 바로 나왔죠. +_+ 동생이 절 싫어하는 눈치였음.

그 친구와는 그 이후에 연락이 잠시 끊겼어요. 그 친구 나름대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을테고, 저도 그 친구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건 왠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가 제가 유학때문에 한국을 떠나기 얼마 전 한번 마지막으로 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도 역시 술을 많이 먹고 여전히 제게 시비를 걸었는데 그 날은 둘다 왠지 기분이 나쁘지도 않고 되게 좋은 상태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헤어지기 싫었던 거죠. 우리는 만날떄마다 항상 둘중 한명이 트러블을 일으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헤어지기 일쑤였는데, 그날은 서로 마지막으로 보는 거다 싶어서인지 같은 말이라도 기분 좋게 받아 넘기는 상황이 이어진거죠. 그래서 모텔에 갔어요. 가서 졸려 쓰러질때까지 이런 저런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별다른 스킨십은 없었어요. 그냥 나란히 누워서 잤어요. 둘다 스킨십이나 섹스 뭐 이런걸 바라고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하고 싶지도 않았구요.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여기서 만약 섹스를 해버리면 그동안 우리가 만들었던 관계가 다 깨져버리는 거니까 안된다고. (그게 뭔지는 저도 잘..) 그 때 당시에는 이미 짝사랑같은 감정과는 약간 다른 감정으로 넘어간 듯 보였어요. 아무튼, 우리는 함께 아침을 맞았고, 그친구가 다니는 중국어학원에 데려다 준 후(;) 전 집으로 왔죠. 기분이 좋았어요.

올 여름 그 친구는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합니다. 살기 좋은 캘리포니아.. +_+ 부러우면 지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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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등장하는 세 여성분이 제 블로그를 보고 있을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여나 당사자의 허락없이 이렇게 옛 기억을 끄집어 낸 것에 대해 기분이 상했다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싶습니다.

중요한건 이 세분 다 엄청 이쁜 분들이었다는 거! +_+

이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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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너무 무겁고 칙칙한 얘기만 하니까 다들 댓글달기도 부담스러워 하시는 것 같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 기분이 썩 좋아지는 포스팅도 아니었고. 그래서 오늘 우연히 인터넷에서 보고 피식 하고 웃게 된 그림 하나 올려 본다. 더불어 가벼운 경험담도 함께.

위 그림에서 묘사하는 남자가 정확하게 나다! 라고는 못하겠고..  다만 비슷한 경험이 좀 있을 뿐이다. (..) 쓰다보면 손발이 오그라들거 같애 ㅋㅋ

1.
무거운 짐을 들어주고 힘든 일을 대신 해주는 것도 자꾸 반복되다 보면 그 효용이 떨어지게 된다. 여자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는 순간 사실상 유효기간 종료? ㅋ 하지만 가끔 만나는 사이라면 은근히 팽팽한 감정을 유지하게 하는 좋은 촉매제가 되는 것 같다.

내가 참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여자애가 하나 있었다. 굉장히 특수한 관계로 얽혀 있어서 자세하게 쓰긴 뭐하지만 암튼 가끔 한번씩 만나서 술을 먹거나 수다를 떠는 그런 사이였다. 지금은 내가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은 상태다. 별로 더이상 함께 공유할만한 가치가 없는 것 같아서. 아무튼, 우야돈동, 걔랑 술을 먹으면 반드시 싸우게 되어 있다. 성격이 참 불같고 결코 자신을 굽히지 않는 아주 나쁜 버릇이 있는 애였는데 그런 걔의 어처구니 없는 농간에 말려 들어가면 하염없이 말싸움을 하다가 감정이 격해진 상태로 헤어지곤 했다. 그러던 어떤 날은 내가 전혀 걔의 그런 푸르락거리는 도발에 넘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그냥 웃으면서 계속 받아주게 됐는데, 그러다보니 걘 더 약이 올라서 표독스럽게 달려 드는 거였다. 그렇게 한참을 대들고 받아주고를 반복하다가 술자리를 파하고 걔네 집에 바래다 주러 슬슬 걸어가게 됐다. 걸어가면서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걔의 눈썹 화장이 약간 번진 것을 보고 잠시 멈추라고 한 다음 술김에 손으로 슥 닦아 줬다.

그 다음은.. 뭐..

2.
또 다른 여자애를 잠깐 만났었다. 소개팅으로 만나 유일하게 그 다음에도 몇번 더 만난 여자애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나랑 아주 잘 맞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당시 복학해서 여자에 상당히 굶주려 있는 상태여서 그냥 상대방이 싫지만 않다면 늘 두근거리는 상태였고, 그 쪽도 내가 만나자고 하면 거절하지 않고 즉각 시간을 잡고 그랬던 걸로 보아 서로 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느날은 함께 내 sun glass를 사러 갔다. 안경집에 들어갔는데 여자애가 걸을때마가 쇳소리가 나는 것이 뭔가를 잘못 밟은 것 같아 잠시 앉아 보라고 하고는 무릎을 꿇고 신발을 벗긴 후 박혀 있는 압정을 뽑아 내어 다시 신겨 줬다. 그리고 며칠 뒤 크리스마스 이브가 돌아왔다. 그 친구는 자기 친구들이랑 이미 선약이 있어서 날 만날 수 없었는데 나는 그날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백화점에 가서 스왈로브스키 귀걸이를 하나 샀다. (메이커 이름을 굳이 말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런 후 친구를 신촌역에서 잠깐 보고 집에 가는 길에 그 여자애를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마치 아무렇지도 않게 귀걸이를 주고선 안녕~ 하고 뒤도 안돌아 보고 집으로 왔다.

그 다음은.. 뭐..

3.
호주에 잠깐 한달정도 어학연수를 빙자한 계절학기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우리가 있던 곳은 캔버라였다. 계획수도여서 별 재미가 없는 곳이었는지라 주말을 이용해 친한 사람들끼리 함께 시드니에 놀러 가기로 했다. 나는 그때 리더 비스무리한 것을 맡고 있어서 계획의 수립부터 진두지휘, 잡다한 뒤치닥거리까지 다 해야 했다. 동행하는 사람들은 신나서 놀기 바빴지만 나는 (가뜩이나 영어도 안되서 죽겠는데) 버스표를 끊고 유스호스텔을 예약하는 일부터 일정을 짜고 루트나 식당까지 알아봐야 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캔버라에서 시드니까지 고속버스로 세시간정도 걸렸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끼리 놀라고 하고 뒷좌석에 혼자 앉아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갔다. 출발하기 전에 하도 학을 떼서 더이상 그사람들과 섞이고 싶지 않았다. 고속버스안에서 일행이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서 어글리 코리안이 이런거구나 혼자 생각하며 조용히 창밖을 보며 가고 있는데 일행중 여자애 한명이 와서 왜 오빠는 같이 안놀아요? 하고 물어보길래 나는 너희들처럼 그렇게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들면서 놀 생각 없어, 하고 대답했다. 그 이후에 그 여자애가 나를 좀 무서워 하는 것 같아서 약간 마음이 쓰였는데 시드니에서 둘째날인가, 패가 둘로 갈릴 일이 있었다. 나와 나를 따르는 꼬마 남자애 하나, 그리고 그 여자애 이렇게 셋이서 따로 빠져 나와서 시드니 뮤직 페스티벌을 구경하고 숙소 근처 스타벅스에 앉아 몇시간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가 숙소로 들어와서 떨어진 일행을 기다리면서 여자애의 마음을 좀 풀어줄까 해서 간단한 마술을 보여줬다. 피곤해 보여서 가지고 온 유자차를 한잔 타줬다.

그 다음은.. 뭐…

으하하하 이미 오그라 들었어. 나란 남자 부끄러움을 아는 남자.

possible concert schedule: summer – fall

7/7 the hold steady at ogden theatre, denver

7/24 liars at bluebird theatre, denver

7/28 the new pornographers with the dodos at ogden theatre, denver

8/8 hot chip at ogden theatre, denver

8/9 crystal castles at ogden theatre, denver

8/10 the temper trap at ogden theatre, denver

8/14  the swell season at the rocky mountain folk festival, lyons

8/17 melissa etheridge at temple hoyne buell theatre, denver

8/17 cinderella and scorpions at 1st bank center, broomfield

8/19 norah jones with corinne bailey rae at red rocks amphitheatre, morrison

9/1 the chemical brothers at the fillmore auditorium, denver

9/3 beach house, vampire weekend and dum dum girls at red rocks amphitheatre, morrison

9/9 pavement with quasi at 1st bank center, broomfield

9/29 band of horses at the fillmore auditorium, denver

10/2 ben folds at boettcher concert hall, denver

10/2 muse at pepsi center, denver

10/5 eels at ogden theatre, denver

10/18 the walkmen with japandroids at fox theatre, boulder

10/18 the national with owen pallet at the fillmore auditorium, denver

11/13 brandie carlile at boettcher concert hall, denver

11/23 roger waters at pepsi center, denver

하앍 하앍

확정된 스케쥴만 이정도니, 올 하반기 라인업은 대단하다 +_+ 귀국하는 날 자넬 모네가 공연해서 땅을 쳤는데, 그거 생각할 여유가 없을 지경.

이중 절반만 가도 너무 좋지 않을까? 학기가 시작하면 이리 저리 쫓겨서 결국 많은 공연들을 보지 못하겠지만.. 신데렐라와 스콜피언스도 온다 하하하

꼭 보고 싶은 공연만 굵게 표시해 봤다. 문제는 역시 10월 18일. 내 페이보릿 밴드 네팀이 둘씩 편먹고 다른 곳에서 공연한다. 어찌 이럴수가. 무려 오웬 팔렛을 오프닝으로 내세우는 더 네셔널 공연을 가는 것이 이성적인 판단이겠지만 지리적인 이점과 워크맨의 공연이라는 희소성이 심리적으로 발목을 잡는다. 작년 아깝게 놓친 밴드들이 올해 다시 오는 경우도 있다. the dodos 가 그렇고, 뱀파이어 위캔드가 그렇고, 브랜디 칼라일이 그렇고, 스웰 시즌이 그렇다. 게다가 도도스는 뉴 포르노그래퍼스와 함께 온다. 재결성하신 페이브먼트 선생님들도 오신다. 일즈와 벤 폴즈의 공연을 보는 건 기적과도 같달까.. 이런거 보면, 결국 올해 공연 하나 놓쳤다고 크게 좌절할 일도 아닌 것 같다. 미국에 사는 이상 올해 왔던 밴드는 해체하지 않는 이상 언젠가 같은 장소에 또 들르게 된다. 그냥 기다리면 되는 것 같다.

rest of life

2008년 4월, 나는 두 학교에서 admission offer 를 받았다. 한 곳은 지금 다니고 있는 University of Colorado (CU) 였고 다른 한 곳은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NSSR) 였다. 뉴욕근처 대학을 나온 젊은 교수님과 내 학부 지도교수님, 그리고 미국에 나가 있는 유학 선배들의 조언을 받아 들여 CU 로 최종 결정했다. 이유는 두가지였다. 첫째는 펀딩이었다. CU 는 등록금에 Stipend 까지 커버되는 풀 펀딩을, NSSR 은 등록금의 1/4 만 커버되는 상당히 제한적인 펀딩을 제시했다. 뉴욕이라는 물가 비싼 곳에서 거의 펀딩없이 학교를 다니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 두번째 이유는 소위 말하는 학풍의 차이였다. NSSR 은 Marxism, 그러니까 비주류 경제학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사회주의 좌파에 속하는 경제학을 하는 곳이었고, CU 는 일반적인 미국 경제 대학원이 가지는 학풍, 즉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하는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무역쪽이 특히 강한 학교인데 현재의 신자유주의의 위치를 공고히하게 만든 주도적인 기제가 강대국 위주의 일방적인 무역이었음을 상기한다면 더 드라마틱하지 않나 싶다) 실제로 공식적인 랭킹에서도 차이가 꽤 많이 났고, 학위 취득후 취업 시장을 고려했을 때도 NSSR 에 가는 것은 “굶어 죽기 딱 좋은” 선택이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 볼때 많이 안타까운 점은 NSSR 을 나오고 한국의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중인 교수님들의 조언을 구하지 못한 것이다. 연세대에 한분, 국민대에 한분 계셨다.

내가 유학을 결심하고 경제학 공부를 반드시 해야겠다고 다짐할 당시 읽었던 책이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Wordly Philosophers> 였다. 그당시 이 책의 마지막 챕터를 읽고 큰 충격에 빠졌고, 저자의 다른 책 <비전을 상실한 경제학> 을 읽고선 무릎을 탁 치며 ‘이거다’ 싶었다. 그 두권의 책은 지금까지 읽은 모든 책과 논문들을 포함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경제학 서적이다. 현재 주류 경제학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과 문제점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그 대안까지 너무나 명확하게 제시하는 그 책들은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개별 경제 주체의 합리적 판단이 모여 사회 전체적인 의사 결정이 만들어 진다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적 발상은 세상을 규율하는 ‘룰’ 이 먼저 존재하고 그 환경의 제약하에서 각각의 경제 주체가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 판단을 한다는 하일브로너의 주장에 막혀 힘을 잃는다. 그 논증 과정이 아주 강렬하고 또 깔끔하게 논리적이다. 내가 미국에 오고 지금까지 줄기차게 거시 경제학을 파고 있는 것도 다 이 하일브로너 할아버지의 영향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CU 가 아주 강한 신자유주의적 학풍을 가지고 있고, 또 그래서 미시경제학이 매우 강한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CU 에서 보낸 2년동안 점점 유학을 결심할 당시 마음먹었던 “비전” 을 점점 상실하는 쪽으로 성장했다. 첫 1년간의 코스웤을 거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논리적인 명쾌함과 엄밀함에 점점 빠져 들었고, 이 주류 경제학에서 결핍된 “철학” 혹은 “비전” 에 대한 고려는 점점 시들해져 갔다. 2년차 세미나 과목을 들으며 나는 “tool” 을 익히는데에 집중했고, 논문을 직접 쓰는 과정에만 집착했지 그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2년을 보낸 결과 나는 꽤 탄탄한 주류 경제학에 대한 기본을 닦았지만, 결국 이렇게 방향을 상실하고 완전히 길을 잃어버리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작년 재지원을 했을 때도, 나는 이렇게 스스로가 쳐 놓은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단순히 거시 경제학이 유명한 학교 7곳을 골라 지원했다. 내가 “왜 거시 경제학을 하고 싶은지” 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뿌리를 잊고 그 위에 피어나는 꽃만을 바라보려 했다. 그러다 보니 보기 좋게 전부 낙방.

아마 더이상의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이 시점에서 무언가 결심을, 선택을 하지 않으면, 나는 CU 에서 지금처럼 그냥 저냥 살다가 어찌어찌해서 학위를 받던가 중간에 낙오해서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던가 할 것이다. 두 경우 모두 과연 내가 원하던 삶이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답은 아니다, 이다. 한국에 가서 많이 흔들렸다. 돈을 버는 친구들을 보면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어서 빨리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갖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 삶을 원한다면 CU 에 남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다. 못해도 한국 회사 연구직에는 들어갈테니까. 중간에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온다면? 아마 늦은 나이에 허겁지겁 취업 준비를 해서 조그만 회사에라도 취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었나? “비전을 상실한 경제학” 에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게 진짜 행복한 삶일까. 내 머리가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해낼 수준이 된다면, 아직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는다면, 최소한 내가 가슴 뜨겁게 호응했던 그 곳에 남은 일생을 헌신해야 하지 않을까. 비록 배고프고, 조금은 더 힘들겠지만 말이다.

학부 시절 경제학설사 책들을 읽으면서 들었던 가장 큰 궁금증은 “그 많던 경제학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였다. 경제학원론에는 오로지 아담 스미스와 리카르도, 존 메이나드 케인즈와 힉스, 월러스만 등장한다. 그들과 자웅을 겨루던 리스트, 하이에크, 존 헨리, 심지어 마르크스도 경제학 교과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가 훌륭한 경제학자였지만, 어떤 이들만 ‘선택’ 되었다. 나는 그 선택의 이유가 결코 순수하게 학문적인 영역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케인즈 이후 모든 경제학설들을 현실에서 검증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현실에서 검증을 받았다는 큰 무기를 가지고 있지만, 나머지는 그러하지 못하다.

다행히도 아직 세상 이곳 저곳에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여러 비주류 경제학자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최소한 밥값은 벌면서 산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금전적인 부담, 그리고 편안한 삶을 어느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현실 인식등이 나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unwelcoming comeback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를 몇번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가볍게 일기처럼 흘겨 쓰는 블로그 포스팅인데도 쉽게 써지지 않는다. 마음을 안정시켜 보려고 책을 펴도 글자가 눈에 잘 들어 오지 않는다. 가장 부담없고 또 잘 읽힐 거라 기대했던 한국에서 사온 잡지조차 글자가 머리에 와서 박히지 않고 튕겨 나간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보거나 장난을 걸어도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냥 웃거나, 니 말이 맞어 하고 인정해 버린다. 고 전 노무현 대통령은 유서에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수도 없는 고통에 시달린다고 썼다. 그 고통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인지, 죽음에 이르는 극한의 고통이 그로 하여금 글을 쓸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게끔 만든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나는 여기에 더해 음악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더 내셔널, 에리카 바두, 자넬 모네. 1년에 걸쳐 나와야 할 명반들이 최근 몇개월 사이에 쏟아지고 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뭐가 나를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든 걸까.

방향을 상실하고 길을 잃어 버린지 한달이 되어 간다. 어느 곳에도 나의 자리는 없는 것 같고, 나는 그저 세상의 짐처럼 느껴진다. 별 쓸모가 없는 것 같은 느낌.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의미없어 보인다. 나는 실패했고, 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다. 뭘 해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까. 이대로 주저 앉아 버리는 걸까, 아니면 또다른 도약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기 보다는 걱정이 된다.

미국으로 돌아온 지 나흘째이고, 새로 이사온 집에서 이틀밤을 보냈다. 어제 밤 친구의 도움을 받아 침대며 책상 따위의 큰 가구들까지 모두 옮겼고, 오늘 정리를 해야 한다. 아직 집은 난장판이다. 난장판인 집을 보고도 아무런 동요가 생기지 않는 걸 보면 내 마음 역시 이처럼 어지러운가 보다.

어제는 좋아하는 분과 문자를 주고 받고, 또 다른 좋아하는 분과 채팅을 해서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눈을 뜨니 여전히 햇빛은 너무나 맑고 강렬하게 창문을 넘어 내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하늘은 너무나 깨끗했으며, 사람들은 다들 너무 잘 지내는 것 처럼 보였다. 정말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든 걸까. 힘들지 않게 살수 있는데 내가 그렇게 만드는 건가 싶기도 하다.

대체 뭘 하려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건지 모르겠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내일이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갈 때에는 하루를 버는 셈이니, 내일 오후에 출발한다고 해도 미국에 도착하면 (다시) 내일 오후쯤이 된다. 연착이 되지 않는다면 아마 밤이 시작될 즈음 덴버에 도착할 것이고, 그곳에서 다시 볼더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내가 잠시 머물 곳에 도착하면 자정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자야 겠지만, (거의 확실히) 내일 밤은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다. 몸은 몹시 피곤하겠지만 말이다.

서울은, 한국은 많이 변했고 또 그리 쉽게 변하지 않기도 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도 조금씩 더 변한 것 같다. 나의 생활과 삶은 평균적인 내 나이 또래 젊은이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것이라는 걸 이번 방문에서 뼈저리게 확인했다. 이대로 몇년 더 살면 내 친구들과 더이상 공유할만한 이야기꺼리가 거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내가 지금 내 삶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듯이 내 친구들 역시 그들 각자의 삶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일찍 취직한 여자 친구들은 여전히 허둥지둥거리던가 약간은 자리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남자 친구들은 변화한 환경과 그보다 더 급격하게 변화해야 하는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채 서투른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떤이는 여자를 탐하고, 다른이는 돈을 탐한다. 사는게 영 재미없는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이 무엇을 쫓는지도 망각한 채 하루 하루를 그저 열심히만 살아가기도 한다. 모두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나는 그들과 점점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 현재 길을 잃었다. 방향을 상실한 상태다. 내가 어디로부터 나왔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 어디로 발을 내딛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는 거다. 미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시작된 이 극도의 혼란감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에 더 악화되기만 했다. 그 어디에도 나를 반겨주는 곳이 없는 것만 같았고, 나의 집, 내가 머무를 수 있는 “둥지” 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내가 지금 하는 것이 무엇이고 과연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본질적인 고민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한국에 머무는 동안 가끔 “공부를 왜 하냐?” 라는 질문을 받을 때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맞아, 내가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그거였어.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했다. 유학을 떠날 때 마음 먹었던 순수했던 고민들이 지금의 나에게도 아직 유효할까? 볼더에서 2년을 보내는 동안 나도 모르게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

‘어서 빨리 학위받고 번듯한 직장하나 얻어서 편안하게 한번 살아보자. 저녁에 퇴근하면 여유롭게 소파에 앉아 스포츠중계도 보고, 주말에는 느긋하게 책도 읽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다.’

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만약 내가 이렇게 생각했다면, 그것은 아직 내가 품지 말아야 할 금기와도 같은 일종의 방심이었고 교만이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질책하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질 못했다면, 돌아오는 결과에 대해서는 누구도 원망할 필요없이 다시 그 모든 책임을 스스로에게 지워야 함이 옳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노력으로 어떤 결과를 성취했는지에는 관심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일단 이 바닥에 들어온 이상 그렇다.

나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한국에서의 한달은 즐겁지만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을 실컷 보고, (누이는 남자친구 만나느라 많이 보지 못했지만..) 먹고 싶었던 음식 실컷 먹은 것만으로 괜찮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는 이 스트레스를 근복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어떤 곳에 누구와 함께 하던지 결코 순수한 마음으로 시간을 즐길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미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다시 혼자가 된다. 혼자 일어나서 혼자 밥을 해먹고, 혼자 도서관에 가서 혼자 공부하다가 돌아와 혼자 잠든다. 이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고 선후배들이 있지만, 나는 차라리 혼자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미국에 가면 조용히 혼자 책상앞에 앉아 곰곰히 생각을 정리해 봐야 겠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만을 위해 집중하는 1년을 보내고 싶다. 만약 1년으로 부족하다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30이 되기 전 무언가를 꼭 이루고 싶다.

twitter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하루종일 집안에서 빈둥거리고 있다. 이렇게 ‘시간을 낭비’ 할 때에는 인터넷도 더이상 할 것이 없어지게 되는데, 그래서 한번 트위터 계정을 열어 봤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는데 새로운 트렌드에 적응하는 것에는 항상 느리고 허둥대는지라 그리 쉽지도 않았다. 사실 아직도 시스템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트위터를 통해 전해 듣는 소식은 뭔가 더 살갑게 느껴지는 걸까? 다른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것보다 더 가깝게 셀러브리티들을 느끼게 되는 걸까? 그들의 허락없이 난 그냥 팔로잉할 수 있고, 그들은 나같은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들의 소식이나 그날의 소소한 감정들을 전해 준다. 방금전까지 팔로잉한 유명인들만 해도 벌써 오십여명. 유시민부터 Bon Iver 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그들이 트위터를 활용하는 방법도 그만큼 다양하다. 아주 식상한 의도를 가지고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색다른 맛을 느끼게끔 창의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일반인들도 트위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이 부분은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짤막한 글을 통해 나를 드러낼 수 있을까? 오히려 140자라는 한정된 공간안에 무언가를 드러내는 방식이 글쓰는 연습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다.

트위터를 배우는 사이에 나로호가 추락했다.

한국의 부모님집은 책을 읽기에 그리 적당한 장소가 아닌 것 같다. 미국에 가면 다시 혼자 살게 되는데, 어떻게 방을 꾸밀 것인지 궁리중이다. 그리 크지 않은 1 bed 1 bath 구조다. 침대가 들어가야 할 침실을 서재로 꾸미고 나머지 잡다한 생활 공간을 거실로 다 빼낼까도 생각중인데, 그러면 이불에 음식 냄새가 밴다는 단점이 있다. 침실에 침대만을 놓고 거실로 책상과 책들을 빼면 쉴곳과 공부할 곳이 겹친다는 단점이 있다. 궁리중이다.

글을 쓰는 와중에 안희정 당선자가 나를 트윗하기 시작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_- 이거 뭥미.

@notbadbutnogood : that’s my twitter!

노무현, 유시민: 운명이다


이 책은 노무현에 대한 자서전이지만, 노무현이 직접 쓰지 않은 자서전이다. 때문에 주어가 ‘나’ 로 되어 있는 자서전적인 형식을 갖지만 실질적으로는 유시민에 의해 기록됐다.  유시민은 그동안 노무현이 직접 집필하거나 구술한 그의 인생 기록들을 참조하고 주변인들을 인터뷰함으로써 노무현의 일생을 재구성했다. 대부분 역사적 사실들과 이에 대한 노무현의 코멘트를 중심으로 기술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왜곡 가능성을 최소화시켰다는 것이 유시민과 출판사측의 주장이다. 운명하기 며칠 전부터 노무현 자신도 자서전을 집필해야 겠다는 의지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므로 아마 노무현이 자서전을 완성했다면 이런 식으로 썼을 것이다, 라는 추측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유시민이라는 사람에 의해 기록된 가짜 자서전이다. 그동안 발간되었던 노무현에 대한 거의 모든 기록들을 모아 집대성한 ‘노무현의 일생’ 에 대한 기록이다. 때문에 노무현에 입문해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떤 터닝포인트를 거쳐 그러한 삶을 살게 되었는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노무현을 사랑해 왔던 사람들에게는 그를 추억하기에 퍽 알맞은 책이 될 수 있다. 그의 철학과 가치관을 좋아했다면,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당신의 인생이 그것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유시민은 소위 지식인으로서의 한계를 명확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때문에 그러한 한계를 극복했던 노무현에 대한 동경심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언론에서 보여지던 노무현과 실제 그 자신이 회고하는 노무현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고, 이 책을 통해 그 차이를 하나 하나 되짚어 봄으로써 실제 노무현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어쩌면 노무현을 좋아했던 사람들조차 그를 오해하고 있었을 수 있다. 노무현을 싫어했던 사람들은 그 이유를 잘못 찾고 있었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러한 왜곡들이 바로잡아 질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읽은 유시민의 책들 중 가장 정치적인 의도가 덜 읽힌다는 느낌이다. 여담이지만 최근 그가 쓰는 책들을 읽다 보면 그가 다시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 같은 책을 쓸 수 없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든다.

봉하마을에서 받은 인상은 ‘성지’라는 것이다. 노무현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이미 그 곳은 하나의 성지가 되어 있었다. 동교동과 상도동이 그러했듯이, 전두환의 연희동 자택이 그러했듯이 봉하마을 역시 하나의 성지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이 가지고 있던 특유의 정서는 굉장히 상징적으로 받아 들여졌다.  그리고 이 책은 유시민이라는 노무현 지지자가 엮은 그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에 의하면 노무현은 그 자신이 신성시되고 하나의 상징으로 받아 들여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기능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모순이고 역설이다. 의도가 덜 읽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갈 준비.

공식적인 한국 일정은 오늘로써 끝났다. 사실 내일도 약속이 있고, 목요일에도 약속이 있다. 화요일쯤엔 가장 소중한 친구 한명을 만날까 생각중이다. 그러니까 일정은 앞으로도 주욱 잡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냥 내 맘대로 ‘공식’ 일정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지하철안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심적으로, 한국에서 해야할 일들이 대부분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또한 옳지 않다. 내일은 치과에도 가야 하고, 화요일에는 건강검진 결과 상담을 받아야 하고, 수요일쯤엔 입술에 있는 흉한 점도 빼야 한다. 해야할 일들이 아직 좀 남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냥 내 마음대로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정말 내가 꼭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다 끝났기 때문이다.

이제 거의 모든 것들이 확실해 졌다. 일종의 의식ritual같은 거였다. 나는 내 갈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뭔지는 확실하지 앉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의 마음이다.

한국은 괜찮은 곳이다. 맛있는 음식들이 있고 좋은 사람들이 있다. 언어문제도 없고 이쁜 옷도 많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이상 한국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 그래서 한국이 참 좋은 곳이라고 받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명박은 여전히 숨을 쉬고 있고 조선일보는 여전히 잘 팔리지만, 더이상 저주를 퍼붓지 않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많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변해간다. 친구들도 변해간다. 그 나이대에 걸맞는 고민들을 하게 된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알맞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친구는 여자를 찾아 헤메고 있고, 다른 친구는 돈을 벌고 싶어 한다. 가진 것에 대한 고마움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이 훨씬 큰 시기이기도 하다.

나도 변해간다.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호흡을 크게 하고, 보폭을 넓게 가져가기로 했다. 나는 28년 가까이 살아온 요즈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의 인간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그리고 나의 한계는 무엇인지 조금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나는 결코 큰 실패는 하지 않을 것이니, 내 자신을 믿고 원래 하려던 것을 찾아 흔들림없이 걸어 나가면 된다.

내가 계속 걸어갈때 내 옆에 있는 이들이 멈춰 있다면, 내가 무엇을 향해 걸어가는지 더 명확히 알게 된다. 내가 타인에게 강요할 이유는 없으니, 나는 그저 그들이 놓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속에 잘 간직하면 된다. 그리고 나 또한 놓치고 있는 것이 없는지 부지런히 살펴야 한다.

나는 이제 내 갈길을 갈 것이다. 2년의 유예기간이 끝났다. 공자는 30세를 이립(而立) 이라 하여 뜻이 서는 시기라고 했다. 배움의 결과가 어느정도 나와야 하는 시기라는 말일게다.

두고 보자. 2년뒤 30이 되었을 때 내 모습을. 나는 자신있다.

중국도 나이 계산법은 미국과 같으니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식 나이 계산법을 가진 나라는 3% 정도라고 한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