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years later.

오늘, 전 여자친구를 만났다. 사실 이번에 한국 들어와서 꼭 만나야 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김군과 대화 도중 한번 만나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온게 발단이었다. 옆에서 보기에 김군은 헤어진 전 여친들과의 사이가 돈독(?)한 편이다. 헤어진 후 관계를 원만히 유지했고, 한국 들어올 때마다 꼬박 꼬박 만났던 것 같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헤어질 때도 보통 한쪽이 고통스러워 하는 상태에서 헤어졌고, 그래서 장기간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으며,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된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사이로 발전하기는 힘들었다. 첫번째 여자친구만이 간간이 연락을 지속하며 현재까지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데, 이건 우리가 고등학교 동창이었기 떄문에 그 관계가 완전히 끊길 수 없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오늘 만났던 친구는 두번째로 사귄 여자친구였다. 약 7년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전화번호도 몰라 김군에서 물어봐야 했을 정도였다.

2001년 가을부터 2002년 겨울까지 약 1년동안 사귀었고, 군대가기 직전에 헤어졌다. 군대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지쳐 있었고, 우리는 뭔가 맞지 않는 불협화음을 자꾸 빚어 냈다. 둘중 누군가가 조바심을 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금와서 그런게 중요하진 않다. 우리는 한때 사랑했었고, 그러다 헤어졌다. 그게 전부다.

나는 그 후 군대에서 2년을 보냈고, 전역한 직후인 2005년 봄 딱 한번 다시 만났다. 그 이후 약 두번 정도 선배의 결혼식장이나 지인들의 모임에서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오늘 단 둘이 만나 몇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눈건, 한 5년만에 처음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여의도에서 만나 간단히 저녁을 먹고 근처 카페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헤어졌다. 세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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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반가웠다. 그는 얼굴이며 말투가 모두 예전 그대로였다. 물론 오랜 시간동안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 기억속에서 왜곡된 그의 모습을 다시 현실에 존재하는 그리고 존재했던 그의 모습과 일치시키는 데에 약간의 시간이 걸리긴 했다. 하지만 나의 몸과 마음은 별다른 저항없이 이내 7년전 그를 상대하던 때로 돌아갔다. 익숙하고, 또 반가운 그런 느낌.

아, 내가 왜 이사람을 그토록 좋아했는지. 7년동안 잊고 있던 그 이유를 단 몇분간의 대화 후에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맞아, 이런 모습때문에 내가 그를 좋아했던거야.

그는 여전히 수다쟁이였고, 말을 함에 있어 막힘이 없었으며, 단어 하나하나를 허투루 사용함이 없었다.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으며, 삶의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극도의 섬세함을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깊어지고 더 넓어 졌다. 내가 참 좋아했던 그만이 가지고 있던 그 감각, 그 관점, 그 느낌들. 여전했다. 아주 미세한 것도 놓치지 않지만, 너그러움과 잊혀짐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달라지기도 했다. 많은 면에서 그는 조금 더 나이를 먹었다. 많은 것을 포기했고, 또 그로 인해 어떤 것들을 얻었으며, 그렇게 획득한 것들로 인해 그의 인생은 조금씩 더 풍성해 지는 듯 보였다. 남들이 그저 깨달았다고 표현하는 많은 가치들을 그는 그만의 고민을 통해, 그만의 통로를 통해 자기 것으로 하나씩 체화해 냈다. 알던 길도 돌아가고, 익숙한 길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통과한다. 그게 그의 방식이다. 결코 그 어떤 것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겪어도 시간 낭비가 아니게 되고, 실패를 해도 실패가 아니게 된다. 나이는 차오르지만, 나이에 비례해 그의 얼굴도 점점 책임질 수 있는 부분들로 채워지는 듯 보였다.

나는 살면서 그보다 더 남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겨하면서도 결코 귀를 닫아 두지 않는다.  이후에 그걸 어떻게 체화시키는 지는 전적으로 청자에게 달린 문제이지만, 일단 화자에게 집중하고 그의 이야기를 받아 들이는 것조차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는 항상 화자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고, 잔뜩 이야기하게 만든다. 물론, 나와 그가 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나라는 구체적인 존재가 그와의 대화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위타세라쿤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다르에 대해 이야기하고, 백현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것들에 이야기하기 전 반드시 먼저 나의 의견을 먼저 구한다. 나는 정성스레 대답하고, 그는 경청한 후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나는 경청한다. 내 인생에서 과연 다른 어떤 누구와 이런 대화를 이토록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청하기 바쁜 세상이다. 아무도 내 입을 막지 않지만 그렇다고 입을 열게 허락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와의 이런 대화가 더 반가웠나 보다.

내가 그의 이런 부분들을 사귀는 동안에도 알았을까? 아니, 아니 맞을 수도. 머리로는 몰랐을 것이고, 마음으로는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으로 좋아했겠지.

나도 변했을까? 우리는 서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섣부르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야기했고 그도 그러했지만 서로에게 받은 인상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기껏 “얼굴이 그대로다” 정도만을 이야기했고, 나는 오늘 그가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듣지 못했다. 그나 나나 사람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그만큼 더 신중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궁금하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다.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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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몇 있는데, 그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람중 하나다. 모든 것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만나 보니, 나는 그동안 그에 대해 참 많은 것들을 잊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생물학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단 1년뿐이었지만, 그 이후 나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년이었다.

부디 그 사람의 앞날에 행운과 행복이 함께 하길. 그리고  5년뒤가 될지 10년뒤가 될지 모르지만, 죽기전 꼭 한번쯤은 더 볼 수 있기를.
하고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기도했다.

4 thoughts on “5 years later.

  1. 죽기전 꼭 한번쯤은 더 볼 수 있기를 희망하게 되는 관계라니.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내게도 이런 사람이 있는가’ 하고 생각해 보고 있었어요. 과거의 연인들은 사실 이제 좀 기억이 희미해서, 위에서 finicky님이 말한것처럼, 만나고 나면 ‘아 내가 이래서 좋아했었지’하게 될런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는 그렇게 강하게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질 않는군요.

    그렇지만 지금 현재,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앞으로 그 친구와 어떻게 헤어지게 될런지 모르지만, 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지금의 감정이 참 좋고 소중해서, 이 사람이야말로 죽기전 꼭 한번쯤은 더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람이 있네요. 물론, 지금 순간에 그칠지도 모르는거지만.

    지금 막, 생각하게 된건데,
    죽기전 꼭 한번쯤은 더 볼 수 있기를, 보다는
    같이 살았으면 좋겠네요. 그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은 날씨가 좋아요.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 ‘몇’된다니, 참 잘 산것 같은걸요, finicky님. 앞으로도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을 더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더라도, 지금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오래오래 곁에 두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물론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는 함께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더 크죠. 굳이 헤어지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낫죠.

      누군가에게는 참 소중한 사람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사람이듯이, 지금 제게 참 소중한 사람은 그냥 저랑 우연히 가까워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사람이 딱히 훌륭해서나 제가 딱히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요. 엄청난 위인이 제 주변에 존재하지도 않고, 제가 또 그런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결국 소중한 사람을 만드는 건 순전히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 같아요.

    • 네 좋았어요. 좋은 사람이라 그런 만남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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