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

그날 아침을 기억한다.

나는 그날 아침 두명의 죽음을 접했다. 같은 날, 같은 시각. 가장 친한 친구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고, 한나라의 전 대통령은 어느 바위위에서 뛰어 내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두 죽음을 거의 동시에 전해 들었고,  친구 아버지의 빈소로 가는 택시안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의 마지막 순간들을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참으로 비현실적인, 몽롱하면서도 공중에서 약간 붕 뜬듯한 기분으로 그날 오전을 보냈다. 얼굴이 시뻘개질 때까지 울고 있는 친구의 옆에서 하루종일 자리를 지키면서 가끔 담배를 피러 밖으로 나갈때 영안실 로비의 큰 TV 로 비추어지는 봉하마을의 상황을 힐끗 쳐다보는 것이 그날 내가 한 일의 전부였다.

슬픔은 며칠 뒤부터 찾아 왔다. 눈물이 흐른 건 그로부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부터였다.

누군가에겐 그저 많이 싫어했던 대통령중 한명으로 기억될 것이고, 누군가에겐 눈엣가시였을 사람이다. 누군가에겐 그냥 이름을 많이 들어본 유명인사였을 뿐일 것이고, 누군가에겐 관심조차 쉽게 가지 않는 주변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에겐 그보다는 약간 더 큰 의미를 가지는 사람이다. 목적을 위해 살던 내게 가치를 위해 살라는 가르침을 준 사람이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려던 내게 신념을 지키라고 충고를 해 준 사람이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지긋이 삶의 방향을 지정해 준 사람이다. 그의 죽음을 통해 이 모든 것을 그에게서 받았다.

그가 탄핵을 당했을 때 나는 훈련병 신분이었다. 그해 1월 대선 투표를 하고 며칠 뒤 군대에 갔다. 그가 사실상 모든 권력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복학 후 내 앞가림을 하기에도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퇴임 후 가장 행복했던 몇개월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한국에 없었다. 나는 과연 그에게 얼마나 솔직하고 헌신적이었는가. 대답을 차마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다. 그런 그에게서 나는 많은 것들을 받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를 좋아하고 존경한다는 사람들조차. 어떤 부분은 좋아하지 않았어, 별로 맘에 들지 않았어, 그 부분은 분명 잘못했지, 혹은 관심이 별로 없었어, 싫어했어, 그런데 지금은 좋아해, 존경해, 혹은 그리워, 보고 싶어.. 그런 조건부 사랑이 과연 그에게 합당한 보답인가, 싶다. 그의 인생이 그런 조건부였는가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그에게 걸맞는, 어울리는 우리의 자세인가, 싶다.

지금은 정말 보잘것 없지만,
나는 나의 공부로, 나의 글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꼭, 그가 남긴 가치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방법으로든, 방식으로든지. 아직 내가 너무 많이 부족하고 나약하고 보잘것 없지만, 나는 그에게서 받은 빚이 있기 때문에, 그걸 갚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노빠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3 thoughts on “5월 23일.

  1. 첫부분을 읽고, 제 글인가. 했는데.ㅎ
    5월 19일 아침에 무슨 생각이 들어서였는지,
    갑자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아주 무관심하지도 않았으며, 그에 대해 열정적이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그날 아침 그 글을 쓰고 나서 조금 뜨거워졌을지도 몰라요.
    (오늘 밀린 코멘트 달고 다니는데 어쩐지 미안해져요. 오랫만에 온거 같아서.-_-;;)

    • 네 저도 Lydia 님 글 잘 읽었어요. Lydia 님은 종종 너무나 좋은 표현을 글에서 사용하시는데요, 5월 19일에 쓰신 그 글이 그랬어요. 그 글을 보고 저도 23일이 왔을 때 무언가를 끄적거려야 겠구나, 생각했죠.

      오랜만에 오셔도 좋고, 자주 오셔도 좋아요. 그저 감사하죠.

  2. Pingback: dignity | M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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