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들: 이재용

몸이 안좋아서 집에 아홉시 좀 넘어서 왔는데, 이때쯤 집에 오면 몸이 퍼지는지라 눈이 자꾸 감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미친척하고 영화 한편 틀어놓고 슬슬 책이나 넘겨야 겠다 생각하고선 전부터 보고 싶었던 이 영화를 틀었다.

음, 물론 결론은, 영화에 집중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는거? 하지만 어쨌든 공부에 집중할 여력은 없었으니 후회는 없다.

전형적인 이재용식 영화라고 생각하며 봤다. “정사” 부터 이어지는 그만의 독특한 감수성이 있다. 그리고 남자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보다는 여자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데 매우 능했고, 남성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밋밋하고 재미없게 그려진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느꼈던 적도 있다. “여배우들” 은 그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여섯 여배우들의 입을 빌어서 한, 작은 소품같은 영화다. 가끔씩 매우 진부하게 느껴지는 장면들도 다 결국 여배우들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하면 다 넘어가 줄 만 하다.  뛰어난 걸작은 아니지만, 돈을 허투루 낭비하는 쓰레기 영화들보다는 훨씬 가치있는, 한국 영화사에 한자리쯤은 차지해도 될 정도의 가치는 지니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게다가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라 개인적으로도 만족해 하면서 봤다. 최지우는 제외. 최근에야 그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아내진 못했다. 윤여정은 그냥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에서 하도 매력적으로 나와서 좋아할 수 밖에 없고, 이미숙은 예전 류승범과 찍었던 “고독” 을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그 후부터 주욱 조아한다. 그 드라마가 아마 내가 군대가기 직전에 봤던 드라마였는데 첫회부터 마지막회까지 전부 다 본 처음이자 마지막 드라마였지 싶다. 원래 드라마를 끈기있기 잘 보지 못하는 편이다. 고현정은 뭐, 꿈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퍽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김민희는 최근에 좋아진 경우다. 김옥빈은 된장녀로 몰리면서 완전히 묻힐 때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꾸준히 애정을 주고 있다. 전형적이고 지루한 여배우와 유니크한 아우라를 가지는 여배우의 경계선상에 놓여 있는, 앞으로의 행보를 관찰할 가치가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임수정 역시 이 경계선상에 오래 머무르다가 결국 아티스트적인 아우라를 획득하지 못하고 무너진 케이스라면, 다음 제너레이션중에서는 김옥빈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편이다.

여섯명 모두 기본적으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기 때문에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이런 류의 영화에 잘 적응하는 듯 보였다. 역시 최지우는 제외.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가장 컸고 또 그래서 많이 튀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본 그의 모습중 최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마 실제 이 여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 캐릭터에 살을 붙여 (다른 말로 하면 거짓을 보태) 스토리를 만들어 낸 것 같은데 “무한도전” 의 캐릭터 형성 과정과 흡사하게 느껴져 퍽 흥미로웠다. 김옥빈이나 김민희도 연기를 참 잘했다. 이런 류의 독특한 촬영 과정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 여섯명중 김민희가 제일 좋다. 윤여정이 여배우로서의 출생부터 사그라짐까지 모든 과정을 다 겪고 배우로서의 삶 자체를 즐기는 단계이고 이미숙이 이제 막 그 단계로 진입한 장년층이라면, 고현정은 아티스트로서의 아우라를 마음껏 뽐내는 전성기이고, 최지우는 “중국시장을 공략하고픈” 전형적인 대중 배우로서의 삶이 익숙해 보인다. 흥미로운건 20대인 김민희와 김옥빈인데, 김옥빈은 이제 막 본인이 가지고 있는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해 나가면서 이걸 아티스트적인 기질로 승화시킬지 시장을 공략할지 고민하는 단계인 것 같고, 김민희는 이 모든 과정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의 작품 행보는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부터 “뜨거운 것이 좋아” 같은 작품까지, 일관적이지 않고 그 텀 또한 매우 길다. 본인이 영화에서 말한 대로 사적인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김민희가 좋은 이유는, 첫째로 이 영화에서 연기를 가장 잘 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냥 김민희가 좋다. 그런 스타일이 좋은 것 같다. 여자로서 어떻게 하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천부적으로 잘 알고 있는 그런 여자. 선배들에게 모나지 않게 행동 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후배에게 결코 가식적으로 착한척 하지 않는, 굉장히 솔직하면서도 처세술에 능한 그런 여자. 애교도 많고, 욕심도 많고, 그리고 자기가 어디가 잘난줄 너무 잘 알아서 자신의 소유물들을 남에게 뺏기고 싶지 않은 여자. 생각이 너무 깊지 않지만 또 너무 얕지도 않아서 적당한 선에서 생각을 잘 정리할 수 있는 그런 여자. 나는 그런 여자를 좋아한다.

물론 그런 여자와 사귀고 싶다는 건 아니다. 그건 또 별개의 문제다.

2 thoughts on “여배우들: 이재용

    • 꿈에서 손도 잡았는걸요. 지금은 그때만큼 좋아하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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