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years later.

오늘, 전 여자친구를 만났다. 사실 이번에 한국 들어와서 꼭 만나야 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김군과 대화 도중 한번 만나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온게 발단이었다. 옆에서 보기에 김군은 헤어진 전 여친들과의 사이가 돈독(?)한 편이다. 헤어진 후 관계를 원만히 유지했고, 한국 들어올 때마다 꼬박 꼬박 만났던 것 같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헤어질 때도 보통 한쪽이 고통스러워 하는 상태에서 헤어졌고, 그래서 장기간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으며,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된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사이로 발전하기는 힘들었다. 첫번째 여자친구만이 간간이 연락을 지속하며 현재까지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데, 이건 우리가 고등학교 동창이었기 떄문에 그 관계가 완전히 끊길 수 없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오늘 만났던 친구는 두번째로 사귄 여자친구였다. 약 7년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전화번호도 몰라 김군에서 물어봐야 했을 정도였다.

2001년 가을부터 2002년 겨울까지 약 1년동안 사귀었고, 군대가기 직전에 헤어졌다. 군대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지쳐 있었고, 우리는 뭔가 맞지 않는 불협화음을 자꾸 빚어 냈다. 둘중 누군가가 조바심을 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금와서 그런게 중요하진 않다. 우리는 한때 사랑했었고, 그러다 헤어졌다. 그게 전부다.

나는 그 후 군대에서 2년을 보냈고, 전역한 직후인 2005년 봄 딱 한번 다시 만났다. 그 이후 약 두번 정도 선배의 결혼식장이나 지인들의 모임에서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오늘 단 둘이 만나 몇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눈건, 한 5년만에 처음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여의도에서 만나 간단히 저녁을 먹고 근처 카페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헤어졌다. 세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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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반가웠다. 그는 얼굴이며 말투가 모두 예전 그대로였다. 물론 오랜 시간동안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 기억속에서 왜곡된 그의 모습을 다시 현실에 존재하는 그리고 존재했던 그의 모습과 일치시키는 데에 약간의 시간이 걸리긴 했다. 하지만 나의 몸과 마음은 별다른 저항없이 이내 7년전 그를 상대하던 때로 돌아갔다. 익숙하고, 또 반가운 그런 느낌.

아, 내가 왜 이사람을 그토록 좋아했는지. 7년동안 잊고 있던 그 이유를 단 몇분간의 대화 후에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맞아, 이런 모습때문에 내가 그를 좋아했던거야.

그는 여전히 수다쟁이였고, 말을 함에 있어 막힘이 없었으며, 단어 하나하나를 허투루 사용함이 없었다.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으며, 삶의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극도의 섬세함을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깊어지고 더 넓어 졌다. 내가 참 좋아했던 그만이 가지고 있던 그 감각, 그 관점, 그 느낌들. 여전했다. 아주 미세한 것도 놓치지 않지만, 너그러움과 잊혀짐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달라지기도 했다. 많은 면에서 그는 조금 더 나이를 먹었다. 많은 것을 포기했고, 또 그로 인해 어떤 것들을 얻었으며, 그렇게 획득한 것들로 인해 그의 인생은 조금씩 더 풍성해 지는 듯 보였다. 남들이 그저 깨달았다고 표현하는 많은 가치들을 그는 그만의 고민을 통해, 그만의 통로를 통해 자기 것으로 하나씩 체화해 냈다. 알던 길도 돌아가고, 익숙한 길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통과한다. 그게 그의 방식이다. 결코 그 어떤 것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겪어도 시간 낭비가 아니게 되고, 실패를 해도 실패가 아니게 된다. 나이는 차오르지만, 나이에 비례해 그의 얼굴도 점점 책임질 수 있는 부분들로 채워지는 듯 보였다.

나는 살면서 그보다 더 남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겨하면서도 결코 귀를 닫아 두지 않는다.  이후에 그걸 어떻게 체화시키는 지는 전적으로 청자에게 달린 문제이지만, 일단 화자에게 집중하고 그의 이야기를 받아 들이는 것조차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는 항상 화자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고, 잔뜩 이야기하게 만든다. 물론, 나와 그가 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나라는 구체적인 존재가 그와의 대화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위타세라쿤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다르에 대해 이야기하고, 백현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것들에 이야기하기 전 반드시 먼저 나의 의견을 먼저 구한다. 나는 정성스레 대답하고, 그는 경청한 후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나는 경청한다. 내 인생에서 과연 다른 어떤 누구와 이런 대화를 이토록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청하기 바쁜 세상이다. 아무도 내 입을 막지 않지만 그렇다고 입을 열게 허락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와의 이런 대화가 더 반가웠나 보다.

내가 그의 이런 부분들을 사귀는 동안에도 알았을까? 아니, 아니 맞을 수도. 머리로는 몰랐을 것이고, 마음으로는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으로 좋아했겠지.

나도 변했을까? 우리는 서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섣부르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야기했고 그도 그러했지만 서로에게 받은 인상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기껏 “얼굴이 그대로다” 정도만을 이야기했고, 나는 오늘 그가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듣지 못했다. 그나 나나 사람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그만큼 더 신중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궁금하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다.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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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몇 있는데, 그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람중 하나다. 모든 것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만나 보니, 나는 그동안 그에 대해 참 많은 것들을 잊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생물학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단 1년뿐이었지만, 그 이후 나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년이었다.

부디 그 사람의 앞날에 행운과 행복이 함께 하길. 그리고  5년뒤가 될지 10년뒤가 될지 모르지만, 죽기전 꼭 한번쯤은 더 볼 수 있기를.
하고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기도했다.

Blind Side: John Lee Hancock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안에서 봤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Michael Oher 라는 미식축구 선수의 고등학교 시절을 픽션으로 재구성했다. 그는 일종의 정신 장애를 앓고 있었고, 불우한 가정사를 가지고 홈리스처럼 떠돌아 다니는 문제아였다. 성적은 바닥이었고, 매일 똑같은 옷을 입어 냄새가 났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Leigh Anne Tuohy 라는 부유층의 백인 여성이 그를 집으로 거두어 들이고, 일종의 보모 역할을 하면서 그를 점점 사회에 적응시켜 나간다. 결국 Ms. Tuohy 는 그를 유능한 풋볼 선수로 키우고, Ole Miss 에 진학시키기에 이른다. 현재 실제 Michael Oher 는 볼티모어 레이븐스에 드래프트되어 NFL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실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Tuohy 와 그의 가족은 Oher 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게 사실이고, 드래프트되었을 때 무대위까지 초청되어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픽션보다 더 픽션같은 인생역전 과정을 거친 Oher 의 이야기는 어찌보면 굉장히 상투적인 미국식 성공드라마, 가족드라마의 범주에 머무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폄하하는 이유도 아무런 새로움없이 상당히 미적지근하게 끝나버리는 이 영화의 상투성에 집중한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꽤나 큰 감동을 받았는데, 크게 세가지 이유때문이다. 첫째, 산드라 블록은 mediocre 할 수 있었던 이 영화에 생명을 불어 넣는 연기를 펼쳤다. 그는 영화의 히로인을 장식하는 화려한 역할에서 완전히 벗어나 보수적인 공화당 중년 여성을 완벽하게 연기해 냈다. 결코 전형적이지 않고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여인, 하지만 그런 평범한 가치로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버릴 수 있음을 증명하는 위대함을 잘 표현해 냈다. 그녀 인생 최고의 연기일 것이다. 둘째,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부분에서의 왜곡과 과장을 있었을 지언정 전체적인 플롯을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밋밋함이 용서가 되고, 실제 Michael Oher 가 겪었을 고난과 고통이 와닿기 시작하면서 감동이 시작됐다. 풋볼을 좋아하고 미국 생활을 경험했다면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잔재미들을 만끽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Oher 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많은 유명 대학팀들의 감독들이 Tuohy 의 집을 방문하는데, 그중에는 LSU 의 Nick Savan – 당시 Savan 은 Bama 가 아닌 LSU 에 있었다 – , Gamecocks 의 Steve Spurrier 같은 사람들도 있다. 게으름으로 인해 검색해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실제 인물들을 카메오출연한 것 처럼 보였다. 아는 사람만 웃을 수 있는 부분이다. 셋째, 비행기를 타고올 당시 내 상황이 최악이었다. 나중에 자세히 기록하겠지만 정말 정말 최악이어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영화를 보다 보니 영화속 Oher 는 나보다 더 최악이었다. 나는 최소한 나를 반겨줄 가족이 있었다. 영화를 보며 많이 울었고, 또 영화를 통해 힘을 많이 얻었다.

미국 영화의 미덕이라면 이런 류의 상업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 인 것 같다. 그 어느 나라도 이런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 이런 프로덕션 과정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Invictus: Clint Eastwood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안에서 봤다. 자막없이 시끄러운 비행기안에서 보느라 모든 대사를 제대로 듣지 못해서 이해를 완벽하게 했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비행기 소음을 잘 견디지 못하는 편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의 넬슨 만델라의 이야기다. 그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로 럭비라는 백인스포츠를 이용한다. 영화에 따르면 만델라는 분리주의나 근본주의같은 어느 한쪽에 치우진 regime 을 극도로 경계했고 하나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는데, 그 수단으로 럭비가 사용된 것이다. 럭비 월드컵에서 감동적으로 우승하며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남아프리카의 흑백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감독에 대한 극도의 신뢰감, 그리고 모건 프리먼과 맷 데이먼이라는 단단한 배우들이 만들어 낸 앙상블은 그 자체만으로도 황홀하다. 각 분야의 장인들이 방심하지 않고 만들어 낸 미끈한 완성품을 하나 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감동은 없다. 이스트우드답지 않은 참 오랜만의 범작이라는 느낌. 내가 그렇게 느낀 이유는, 미국을 떠나기 전 ESPN 에서 하는 30 for 30 시리즈에서 이 영화와 똑같은 주제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필름을 하나 봤기 때문이다. 공동 프로듀서겸 나레이터가 모건 프리먼이었으니, 아마 <Invictus>가 그 다큐멘터리의 motivation 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사실을 기반으로 재구성된 픽션을 감상하는 것보다 그당시 그곳에 실재했던 이들의 인터뷰와 기록된 실제 영상을 보는 것이 훨씬 더 임팩트있고 감동적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리 실재와 똑같이 재현했다고 해서 그와 비슷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건 아니다. 영화가 평생 가지고 가야할 한계같은 것이다. 현실은 허구를 압도한다. 항상.

하녀: 임상수

며칠전 압구정 CGV 에서 봤다. 전도연은 황정민과 더불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신뢰성을 주는 몇안되는 한국 배우군에 속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일정한 티켓 파워가 있다. 최소한 그들에게만 집중해도 본전치기는 했다고 생각할테니까.

<하녀> 는 딱 그정도의 영화였다. 전도연을 제외하면 그닥 값을 치뤄가며 볼만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다. 임상수라는 감독은 작품간 격차가 제법 있는 편 같다. <바람난 가족> 과 <오래된 정원> 사이의 간극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때 그사람들> 정도가 내겐 딱 좋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천부적-이라고 내가 믿는- 공간에 대한 감각은 여전히 빛을 발하지만 뭔가 모든 것이 5% 씩 과잉되어 있는 느낌,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컨트롤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못할 바에야 철학적인 통렬함같은 게 있어야 할 터인데 (혹은 그에게 그런걸 기대하게 될 터인데) 그것조차 밋밋했다. 계급? 복수? 불가해성? 대체 뭘 창조하고 싶었던 거지, 뭘 비꼬고 싶어서 그렇게 베베 꼬인거야? 이런 생각을 했다. 이것도 뭔가 과잉된 느낌.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 을 보는 듯 했다. 무슨말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는데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간 느낌. 그래서 재미가 없었다. 감독의 인터뷰와는 다르게 전형적인 히치콕식 스릴러 장치들이 영화에서 제일 볼만했다는 건 상당히 슬픈 일이다. 마지막 두 씬의 그 식상함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이고. 전도연은 참 좋았다. 연기 참 잘한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음. 서우는 확실히 정계쪽 거물의 스폰서를 받고 있다는 설을 확신하게 만들었고.

독서

결국, 역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서울 방문 기간동안 열심히 한글로 된 책들을 읽기로 했다.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책 열두권을 장바구니에 넣어 놓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열권으로 줄였다. 십만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다시 여덟권으로 줄였다. 결국 한권도 결재하지 못했다. 내일까지 도착하는 택배보다는 (아 펠릭스님께 보낼 택배 아직도 안 보냄 -_- 게으름이 죄요..) 발품을 팔아 한권씩 사는 편을 택했다. 잔뜩 쌓아 놓고 독파해 나가는 재미는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서점에 가서 책냄새를 맡으며 골라 보는 재미는 크게 느끼는 천성탓이다. 한권을 읽을 때마다 한번씩 더 서점에 가기로 했다.

유럽 학교들

나는 내가 사는 ‘곳’ 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고작 2년 살았다고, 벌써 서울 오면 공기가 탁하느니, 사람들이 너무 밀치고 다닌다느니 하는 불평을 하는 걸 보면 나는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환경에 순응하는 정도가 꽤 강한 편 같다. 미국으로 온 후 나는 미국이라는 환경에 맞게 나를 적응시켜 나가는 데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나의 단점중 하나다. vigilant 하지 못하다는거? 뭔가를 하고 있는 중에도 항상 이 것이 맞는지, 더 좋은 대안은 없는지 계속 두리번거려야 하는데 나는 그게 잘 안된다. 그러다가 한번 크게 디이면 뒤늦게 후회하고 그제서야 엉금엉금 다른 길을 찾아 본다.

유럽에서 꼭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지내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회가 당분간은 없겠지, 하고 체념했더랬다. 나중에 직장이나 한번 그쪽으로 구해볼까, 뭐 이런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바램들을 안고 살아 왔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아싸리 이번 기회에 유럽쪽 학교로 트렌스퍼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학제 시스템도 미국의 학교들의 그것을 많이 받아 들여 어느정도 비슷해 져 있고, 좋은 학교들은 공용어도 거의 영어로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적인 장벽도 크지 않을 것 같고.. 무엇보다 diversity 측면에서 미국 대학들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한것 같고.. 유명한 교수님들도 많고. (Pompeu Fabra Econ 같은 경우에는 퍼블리쉬하는 저널들이 막말로 후덜덜하다) 그래도 괜히 기분상 영국과 프랑스 학교들이 친근한 반면, 스페인이나 이태리 학교들은 왠지 꺼려진다. 스스로 언어적인 장벽을 느끼는 건가? 암튼 내게 맞는 프로그램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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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그날 아침을 기억한다.

나는 그날 아침 두명의 죽음을 접했다. 같은 날, 같은 시각. 가장 친한 친구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고, 한나라의 전 대통령은 어느 바위위에서 뛰어 내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두 죽음을 거의 동시에 전해 들었고,  친구 아버지의 빈소로 가는 택시안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의 마지막 순간들을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참으로 비현실적인, 몽롱하면서도 공중에서 약간 붕 뜬듯한 기분으로 그날 오전을 보냈다. 얼굴이 시뻘개질 때까지 울고 있는 친구의 옆에서 하루종일 자리를 지키면서 가끔 담배를 피러 밖으로 나갈때 영안실 로비의 큰 TV 로 비추어지는 봉하마을의 상황을 힐끗 쳐다보는 것이 그날 내가 한 일의 전부였다.

슬픔은 며칠 뒤부터 찾아 왔다. 눈물이 흐른 건 그로부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부터였다.

누군가에겐 그저 많이 싫어했던 대통령중 한명으로 기억될 것이고, 누군가에겐 눈엣가시였을 사람이다. 누군가에겐 그냥 이름을 많이 들어본 유명인사였을 뿐일 것이고, 누군가에겐 관심조차 쉽게 가지 않는 주변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에겐 그보다는 약간 더 큰 의미를 가지는 사람이다. 목적을 위해 살던 내게 가치를 위해 살라는 가르침을 준 사람이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려던 내게 신념을 지키라고 충고를 해 준 사람이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지긋이 삶의 방향을 지정해 준 사람이다. 그의 죽음을 통해 이 모든 것을 그에게서 받았다.

그가 탄핵을 당했을 때 나는 훈련병 신분이었다. 그해 1월 대선 투표를 하고 며칠 뒤 군대에 갔다. 그가 사실상 모든 권력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복학 후 내 앞가림을 하기에도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퇴임 후 가장 행복했던 몇개월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한국에 없었다. 나는 과연 그에게 얼마나 솔직하고 헌신적이었는가. 대답을 차마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다. 그런 그에게서 나는 많은 것들을 받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를 좋아하고 존경한다는 사람들조차. 어떤 부분은 좋아하지 않았어, 별로 맘에 들지 않았어, 그 부분은 분명 잘못했지, 혹은 관심이 별로 없었어, 싫어했어, 그런데 지금은 좋아해, 존경해, 혹은 그리워, 보고 싶어.. 그런 조건부 사랑이 과연 그에게 합당한 보답인가, 싶다. 그의 인생이 그런 조건부였는가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그에게 걸맞는, 어울리는 우리의 자세인가, 싶다.

지금은 정말 보잘것 없지만,
나는 나의 공부로, 나의 글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꼭, 그가 남긴 가치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방법으로든, 방식으로든지. 아직 내가 너무 많이 부족하고 나약하고 보잘것 없지만, 나는 그에게서 받은 빚이 있기 때문에, 그걸 갚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노빠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서울 생활 일주일

서울에 와서 생활한지도 오늘로 딱 일주일이 됐다.

비행기안에서부터 굉장히 deperate and frustrated 되어 있는 상태여서 그닥 즐거운 출발은 아니었다. 비행기안에서부터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혼자 많은 노력을 했고, 흔들리지 않기 위해 심리적으로 상당히 힘들었다. 처음 사나흘동안 그런 상태였던 것 같다. 시차 적응은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아 새벽에 일어나게 되는데, 아침을 너무 일찍 시작하다 보니 하루가 굉장히 길게 느껴진다. 서울에 와서 시간이 훨씬 느리게 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부모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또 혼자 앞으로 살아나갈 궁리를 정리해 나가면서 어느정도 마음에 안정이 찾아 왔고, 계속해서 잘 할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도 약간은 생기게 됐다.

친구들도 조금씩 만나고 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굉장히 바쁜 일정을 소화했는데, 정작 만난 사람은 몇 없다. 미국 생활이 2년을 채우면서 조금씩 조금씩 관계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해 미국에 처음 갈 때의 생각보다는 아직 관계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하다. 이 공부를 시작하며 가장 두려웠던 것도 이부분이었다. 나중에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주위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관계에 대한 걱정. 1,2년도 아니고 5년 혹은 7,8년이나 끌어야 하는 장기 레이스였던 만큼 한국에서의 관계들을 유지할 자신감이나 여력은 전혀 없었고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관계들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생각했던 것보다는 속도나 페이스가 느리긴 하지만, 결국 그 과정상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느슨한 고리들부터 서서히 끊어져 나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기도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은 어떤 의미에서는 즐거움을 주는데, 과연 내가 이 관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해 봐야 한다. 하지만 지금부터 벌써 그런 고민들을 하고 싶지는, 않다.

부모님은 늙어 가신다. 어제는 고모님댁에 잠깐 들렸다. 사촌누나가 딸을 낳았다고 해서 미국에서 사온 애기옷도 드릴겸 고모부 생신 인사도 드릴겸 해서 찾아 뵈었는데 어머니와 동갑인 고모님은 1년새 아줌마에서 할머니로의 변화를 겪고 계신듯 보였다. 아마 손녀딸을 하루종일 대신 봐줘야 하는 고생스러움때문이기도 하겠다. 이제 나의 부모님과 그 친구분들이 환갑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 부모님은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늙어 가시는데,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미국에서 비싼 돈 써가며 공부를 해야 할까, 라는 생각에 공부 자체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나름 서둘러가며 빠르게 빠르게 진행시킨다고 한 공부도 결국 아버지의 정년 퇴직에 빠듯하게 맞출 정도다. 얼른 돌아와서 부모님 옆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진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짜를 변경하려고 어제 대한항공에 들렀다. 29일 예정이었는데 15일쯤으로 당길 수 있다고 한다. 경수 누나와 상의한 후 31일까지 결정해야 한다. 고민이다. 한국에서 볼일은 거의 다 봤다. 친척분들도 뵈었고, 부모님과 얘기도 얼추 다 끝냈고, 친한 친구들도 몇 봤으니 아쉬울 것은 없다. 이제 자장면 한그릇과 김밥천국의 김밥 한접시만 먹으면 더이상 머물 이유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몇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있어 쉽게 결정하지 못하겠다. 미련? 같은 감정이다.

자수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반격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1200톤짜리 배가 순식간에 침몰했으며 50명이 목숨을 잃었다. 북한군의 공격때문에.

명백한 패배이고, 휴전 이후 최악의 패배로 기록될 전투다. 전투도 아니겠다.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니.
이정도면 탄핵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책임은 져야 하는 거 아닌가. 북풍 한번 일으켜 보겠답시고 뭔가 시나리오 하나 만들어 내긴 했는데, 자승자박꼴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이 명백하고도 분명한 사안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 여론을 조성할 언론기관도, 정치 세력도 없다는 사실이다. 역대 최고의 승전을 기록한 적국에서는 오히려 자기네들이 한 짓이 아니라고 한다. 미국과 일본이 적극 지지하는 것은, 이런 식의 방법론을 이미 양국에서 충분히 활용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911이 터지고 나서 2000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희생된 후 미국 정부에서는 단 한명의 각료도 실각하지 않았고, 부쉬는 연임에 성공했다. 아프간 전쟁에 대한 지지율은 60% 를 넘었고, 부쉬에 대한 지지율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일본에게도 북한의 존재는 보수 우익 세력의 생존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납치문제는 선거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이슈이고 북핵과 미사일 이슈는 보수 세력에 대한 지지를 높이는 주요 수단이 된다. 한국은 그저 보고 배울 뿐이다.

재밌는 나라다. 아마 이번 선거도 파란색 물결이 일 것 같다. 안희정만이라도 어떻게 당선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