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많이 오는 금요일

비가 많이 온다. 볼더는 비가 좀처럼 오지 않는 곳이다. 겨울에 눈은 많이 오지만, 짧은 봄과 긴 여름을 거쳐 다시 짧은 가을을 지날 때까지 하늘에서 무언가가 내린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같은 장마가 없기 때문일 것이고, 록키산맥이 서쪽에 자리잡고 있어 대부분의 지형에 의한 강우도 로키산맥 서쪽 지역에 집중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비가 많이 온다. 며칠전부터 소나기처럼 굵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해서 오늘까지 이어진다. 드문 일이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에는 운전하기 힘들 정도로 비가 많이 내렸다. 비가 오면 측면과 후면 시야가 거의 가려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한국에서 비올때 운전을 해본적이 몇번 없으니 당연히 몰랐을 것이다.

비오는 금요일 오후. 나는 이제 한시간 후 지도 교수님을 만나 “왜 대체 저는 제가 만든 모델을 이해하지 못하겠죠?” 라는 질문을 해야 하고, 30분의 짧은 미팅을 마치면 학부생을 상대로 경제학원론의 한 쳅터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한다. 그리고 또 30분 뒤, 예일에서 온 경제사 교수님의 세미나를 들으러 가야 한다. 이것까지 마치면 다섯시가 조금 넘은 시간. 주차장으로 뛰어가 파킹 퍼밋을 갱신하고 성당에 가서 다섯시 미사를 볼 것이다. 여섯시가 되면 슬슬 배가 고플 것이고, 아마 금요일 오후 학교에 남아 있는 불행한 대학원생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함께 주변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컴퓨터로 음악을 듣던지, NBA 플레이오프를 틀어놓던지 하고 오피스에 앉아 풀리지 않는 내 모델을 다시 한번 계산해 볼 것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international finance 수업의 survey paper 를 위한 자료 수집을 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말내에 페이퍼를 하나 뚝딱하고 만들어 내야 하니까. 그렇게 열두시쯤 되면, 아마 “목숨을 걸고” 빗속 고속도로를 해치며 집으로 향할 것이다.

꽤 괜찮은 하루가 될 것 같다.

비오는 여름의 어느 하루를 좋아한다. 이유는, 내가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어느 때에 존재하건, ‘어떤’ 행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 차안이나 어느 실내에 앉아 에어컨을 틀어놓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것은 정말 괜찮은 순간이다. 만약 내가 밖에 있다면, 우산을 받쳐 쓰거나 우비를 입고 비를 맞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물’ 이 내 신체에 주는 어떤 특수한 느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순수한 물’ 이 얼굴이나 손에 튀길 때의 느낌에 집중할 때가 좋다. 한방중에 내리는 비는 약간 무섭긴 하지만, 빗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나쁘지 않다.

글을 다 쓰고 나서 창밖을 보니 비가 눈으로 바뀌어 있다. 기온이 떨어져서 그런가 보다.

아,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어라.

시와 – 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아 (live)

2 thoughts on “비 많이 오는 금요일

  1. “비오는 날 차안이나 어느 실내에 앉아 에어컨을 틀어놓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것은 정말 괜찮은 순간이다. ” !! 나도 그 서늘한 느낌 너무 좋아해요! 비오는날 맨발로 걷는 것도 좋을거같은데!

    • 맨발로 걸으면 뭐에 찔리지 않을까요 -_-; 나이 먹으니 소심해져만 가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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