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

한국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경남 하동에서 물탱크속 시체 두구 발견” 이라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덜컥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 별장이 하동에 있는데, 하필이면 “시체 두구” 여서 혹시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드렸는데, 역시나 어머니와 아버지는 무사(..) 하셨다. 어머니는 아직 감기가 온전히 떨어지지 않으셔서 고생중이신 듯. 어머니도 아버지도 환갑을 향해 잰걸음으로 가고 계시니, 이제 가벼운 감기도 그분들을 꽤 오래 괴롭히게 되었나 보다. 어머니는 서울에 계시고 아버지는 하동에 계시다고 하는데, 문단속 잘 하고 주무시라고 아무 도움 안되는 한마디만 덧붙였다.

어머니께서 마침 전화 잘했다고 하시면서 전해주시는 한국 친지분들 소식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나의 큰아버지는 몬시뇰이시다. 몬시뇰은 천주교 사제 서열에서 주교와 일반 사제직 사이에 있는 일종의 주교 대리 업무를 하는 직책이다. 주교 한사람이 하기 벅찬 일을 주교와 동등한 위치에서 관할한다. 왜 몬시뇰만 한국어로 번역을 하지 않았는지 가끔 궁금해 한다. 아무튼, 큰아버지는 몇년째 투병중이시다. 병세가 심해지자 몇년전 업무에서 은퇴하셨고, 대구 근처 조용한 시골에서 요양을 하고 계셨는데 최근 병세가 더욱 악화되 대구 가톨릭 병원에 계신다. 어머니께서는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 를 하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고 하셨다.

사람이 신체의 나이를 어느정도 채우면 세상을 등지는 것이 이 세계의 이치다. 누구도 이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게 똑 부러지는 정갈함만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나같은 범인은 헤어지는 것에 대한 슬픈 감정을 완전히 억제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뵙고 싶다고 당장 찾아갈 수 없는 신분이니,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우리 ‘집안’ 은 굉장히 독실한 가톨릭이다. 신부님인 큰아버지를 비롯해 고모님 두분이 수녀님이시니, 아버지를 비롯한 7형제중 세분이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된 셈이다. 이런 집안의 전통과 내력이 있다보니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가톨릭 문화에 굉장히 익숙해 질 수 밖에 없었고, 그런 나에게 큰아버지는 동경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사제의 길을 꿈꿨기에 성직자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고독하고 또 외롭고 힘든 길인지 옆에서 무척 잘 보아 왔다. 병을 얻어 힘들어 해도 옆에서 지켜줄 아내나 자식이 없다. 평생 풍요로운 생활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두 어깨에 짊어진 의무는 가벼워 질 기미가 없다. 사제는 공식적으로 은퇴를 하지 않는다. 형식상의은퇴는 그러한 의무를 약간 덜어주는 구실일 뿐이다. 사무직이나 본당 사제직에서 해방될 뿐,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기도해야 하는 본연의 의무는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나 하나만을 위해 살기도 벅찬 세상에서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 자체가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상상조차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물론 성인이 된 후 되먹지 못한, 쓰레기같은 신부들도 많이 보게 됐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부작용은 천주교에도 해당이 된다. 썩고 문드러진 사고 방식으로 사제라는 직함을 이용해 실리를 챙기려고 하는 사제들을 많이 경험했다.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내 주변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편지와 함께 보내 드리는 것 뿐이다. 매일 미사에 가서 아무리 기도해 봤자 무겁고 답답한 마음이 가벼워 지지는 않을 것 같다.

4 thoughts on “큰아버지

  1. 와 진짜 독실한 카톨릭 집안이셨군요.
    그래도 편지 받으시면 큰아버지도 좋아하실거에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여기서 종혁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해요. 저도 최근에 가까운 친척 어른이 돌아가셨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그 전에 안부 전화 한통도 안드린게 너무 후회되고 마음 아프고 그랬거든요. 큰아버지 병세가 나아지길 바랍니다.

  2. 성직자님들을 보면 (신부님이나 승려님들) 참 대단하단 생각을 많이 합니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으로서 인간의 욕심을 버리고 산다는건, 그건 참 어려운 일인것 같습니다. 그 노력만으로도 존경이 가는 분들이신지라, 요즘 법정 스님의 입적때문에 마음을 참 아파하고 있습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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