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

중학교때 이론을 하나 만든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을 하나의 매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거대한 이론이었는데, “행복 에너지 보존의 법칙” 이라고 이름붙였다. 중학교때 배운 질량 보존의 법칙을 심리적인 부분에 응용해 본 거다.

이론은 간단하다. 누군가가 행복한 만큼, 누군가는 불행해 진다. 이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 마음 각각에 들어가 있는 행복한 마음의 양을 전부 합친다면 그 양은 disturbances 로 설명 가능한 부분내에서 항상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는 거다. 때문에 그 에너지의 총합을 지구의 인구수만큼으로 나누면 평균적인 행복 에너지양이 계산되는데 (1/n) 인구가 증가하면 할수록 어쩔 수 없이 평균 행복 에너지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왜 현대인들이 점점 웃음을 잃어 가는지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었다. 애초에 신이 있었다면, 그 신은 인간에게 일정 한도내의 행복만을 허용했다. 천국 혹은 극락에서 무한한 행복이 보장된다면, 신은 일종의 맛뵈기만 보여주는 거다. 행복이란게 이렇게 좋은 것이니, 착하게 살아서 천국에 들어오렴, 하는 일종의 signal 인 셈이다. 그래서 유신론적 관점에서 봐도 행복의 양은 항상 일정하다. 무신론적 관점에서 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는 항상 일정하고 행복감, 혹은 기타 감정들이 현실속에 반영되는 경우가 왕왕 있으므로 행복또한 에너지의 하나로 치환될 수 있다면 (가정이다) 결국 행복또한 다른 에너지처럼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거다.

물론 많은 이들에게 거부당했다. 특히 그당시 우리 가족의 철학적 패러다임을 지배하고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먼지 이론’ 에 밀려 힘 한번 못써보고 완전히 사장되었다. -먼지 이론은 후에 ‘누군가에 의해’ 대중화되었는데, 인간 개개인은 결국 하나의 먼지에 불과하다는 염세론적 관점이다-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웃자고 하는 얘기다. 허점투성이이고, 어린 나이에 생각하기엔 지나치게 ‘멜서스적인’ 비관론이다. 결국 인류는 점점 불행해 질거라고 예언하는 거나 다름없으니.

나는 이 이론을 오래전에 포기했다.

하지만 나는 점점 더 불행해 지고 있다.

최소한 남녀관게에 있어서만큼은 그렇다. 잠깐 희망을 가져 보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비관적이 될 수 밖에 없다. 2002년 이후 내 인생에서의 남녀 관계는 항상 ‘기대에 어긋나고 현실에 고통을 가져다 주는’ 관계였다. 항상 그랬다. 아주 짧았던 단 한순간을 제외하고.  전적으로 내 탓이지만, 현실을 부정할 정도로 괜찮은 변명 거리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속이 상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한국가서 선봐야 겠다.

tumblr

새로운 블로그를 하나 열었다. 투모로우님의 소개로 알게 된 사이트인데, 오늘 하루 둘러본 바로는 트위터의 블로그화 정도로 보인다. 블로그를 follow 하고,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새로운 계정을 열게 된 이유는, 기본적으로 영어로 포스팅을 할 공간이 필요해서였고, 그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공간이 약간은 무겁게 느껴져서 일 것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사람과의 소통에 대한 자신감 – 혹은 희망 – 이 어느 정도 생겨서였을 수도 있다. 나는 언젠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때가 되면 지금처럼 하루중 거의 대부분을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마치 꿈을 꾼 것과 같은 아련한 과거로 기억될 것이지만, 최소한 지금만큼은 영어로 소통하는 법을 조금 더 배우고 싶다.

블로그 주소가 조금 길다. 하지만 퍽 마음에 든다.

pleasedonttellme.tumblr.com

Ingrid Michaelson: Keep Breathing

경수 누나가 <Grey’s Anatomy> 사운드트랙에 있는 곡이라며 들려 주었는데,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기억해 두었다가 여기에 남겨 둔다. 요즘 내 기분이 매우 depressed 되어 있는데, 그런 마음을 그나마 조금 이완시켜 줄 수 있는 곡인 것 같다. 비디오는 아마도 이 드라마의 한부분같다. 요 드라마는 보지 않았는데, 전형적인 메디컬 드라마 구조에 주인공들의 연애 얘기가 곁들어 지는 식이라고 한다. 굉장히 재밌다고. 나중에 (먼먼 나중에) 시간이 나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health care 개혁안 하원 통과

상당히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 통과를 위한 216표에서 간신히 세표 넘겨 통과됐다. 예상했던 대로 공화당 전체는 반대표를 던졌고, 민주당에서도 34표가 이탈했다. 이 건강보험 개혁을 위해 오바마는 많은 것을 포기했다. 지지율은 50% 밑으로 떨어졌고, 민주당의 텃밭인 메사추세츠 상원 보궐 선거에서는 공화당 후보가 당선됐다. 총선을 앞두고 콜로라도를 비롯한 많은 곳에서 민주당의 유력 후보들이 경선 포기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historic’ 한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약 20%에 달하는 보험으로 커버가 되지 않는 이들이 비슷한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제 교통사고를 당해 피를 흘리면서도 보험이 되지 않아 병원에 가지 못하는 빈민층의 수는 줄어들 것이다. 내 주변에서는 가난한 유학생들이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녀들의 비싼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을 적게 보게 될 것이다. 갑자기 실직을 당해 순식간에 의료보험이 끊겨 복용해야만 하는 약을 먹지 못하던 사람은 안전하게 약을 계속 탈 수 있을 것이며, “lawsuit” 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defensive” 하고 “expensive” 한 치료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의료계에게는 적절한 처방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는 이 개혁안을 처리하기 위해 공화당측에서 “사회주의자” 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이런 소리를 하는 공화당이 50% 의 지지를 받는 미국이란 나라도 참… 알다가도 모를 나라이다. 아무튼 최종적으로 수정안까지 통과가 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거의 구부능선을 넘은 셈이니 오바마로서는 큰 산을 하나 넘었다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그에게 지지를 보내는 입장에서 그의 첫번째 4년 임기중 가장 큰 고비를 넘긴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그의 브라켓은 산산이 무너졌지만 (Kansas.. -_- 나 역시 무너졌다. G’town 과 함께..) 그의 가장 큰 공약은 결국 그 완성을 코 앞에 두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 개혁안의 처리가 Social Security 나 Medicare, 혹은 심지어 린든 존슨이 했던 인종차별 폐지안에 비유될만큼 큰 사안이라고 한다. 물론 이 법안의 처리를 위해 많은 희생을 감내했기 때문에 오바마는 어쩌면 재선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록 그렇게 될지라도 그의 이름이 미국 역사에 오랫동안 기록될 것임은 분명하니, 결코 후회하거나 아쉬워 할 일은 없는 것 같다.

The Economist 지는 일요일 하원 투표 직전에 발간된 이슈에서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고 심대한 오류을 포함하고 있는 법안이지만 통과되어야 할 ‘당위성’ 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 법안의 통과를 지지한다.” 는 기사를 실었다. 오바마는이 법안이  “Morally” 정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위험과 아무런 실이득이 없을 수도 있는 이 법안을 끝까지 끌고 갔고, 결국 통과시켰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가 말한 “담대한 희망’ 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운 건 이 법안의 통과에 결정적인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세력이 민주당내 낙태 반대 의원들이라는 사실이다. 민주당 지도부와 백악관측은 1대1로 설득작업을 벌였다고 하는데 결국 강간등 원치 않은 임신에 대한 정부 보조금만을 허용하고 전반적인 낙태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허용하지 않는 수정안을 제출하는 쪽으로 타협을 했고, 결국 세표 차이의 통과를 만들어 냈다. 민주당내에서 낙태에 반대하는 의원이 스무명남짓뿐이라는 사실에 먼저 놀랐고 미국 정부가 낙태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사실에 두번째로 놀랐다. 나는 개인적으로 동성애는 찬성하지만 낙태는 반대한다. 이유는 두 경우 모두 같다. 평등한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서 차별없이 살아갈 당위성이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낙태라는 것도 일종의 차별이라고 본다. 생명을 제거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가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는 생명을 죽이는 행위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생명” 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고 본다. 낙태를 허용하고 싶다면 애초에 “임신” 이란 단어를 두 시기로 나누던가 해서 개념의 혼란을 막을 필요도 있고.

덧붙여, 프랑스에서는 좌파연합(union de la gauche)이 지방 선거를 싹슬이 했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는 알자스와  레유니옹 을 제외한 24개구를 모두 석권했다는데, 이정도면 거의 지방의회 권력은 야당쪽으로 완전히 넘어갔지 싶다. 확실히 프랑스는 미국보다 훨씬 즉각적이고 또 의견의 개진이 활발한 듯 하다. 괜히 혁명을 성공시킨 나라가 아니겠지.. 총리인 Fillon 이 사직할 것은 거의 확실시되고, 내각 총사퇴까지 거론되고 있다. 현지 여론은 (나는 물론 현지 여론을 인용한 워싱턴 포스트같은 언론을 읽는다;) 사르코지가 모멘텀을 상실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2년 남았는데, 다시 루아얄처럼 인기를 끌 수 있는 좌파연합쪽 후보가 나올 수 있다면 정권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큰 것 같다. 프랑스는 이미 경제적으로 추가적인 성장 동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나라이고, 때문에 경기 침체에서 빠져나오기가 emerging countries 에 비해 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칼라 부르니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_- 더이상 사르코지가 버틸 재간이 남아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의 정권이 모델로 삼았던 미국의 건강보험은 이제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한국의 대통령이 롤모델로 삼았던 두명중 한명 (나머지 하나는 이태리의 베를루스코니 총리) 이 정치적 위기에 빠져 있다. 한명숙 재판 결과에 따라 한국의 지방선거도 요동칠 확률이 높다.

LaTex

논문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이름, LaTex 를 이용해 처음으로 페이퍼 하나를 완성했다. (아주 간단한 referee report 하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엔 워낙 잼병이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 자체를 꺼리는데, 경제학은 하도 수식이 많다 보니까 LaTex 를 쓰고 안쓰고의 차이가 크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워드와 워드 equation editor 를 이용해 페이퍼를 썼는데, 확실히 LaTex 에 익숙해 지면 이쪽이 훨씬 빠른 것 같다. 생각보다 언어 자체도 어렵지가 않고 (C+ 기반이라고 하는데 texworks 와 miktex 로 넘어 오면서 언어가 상당히 직관적이고 간편해 진 것 같다) 무엇보다 워드에서 일일이 논문 규격에 맞게 editing 했던 번거로움이 전혀 없으니까 결과물의 깔끔함이 마음에 든다. Submit 용 페이퍼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 이 프로그램의 파워풀함이 진가를 드러낸다고 하는데, 그건 바로 reference 를 정리함에 있어서 매우 편리하기 때문이란다. bibliography 용 editor 가 따로 있어서 처음 한번만 일일이 입력하는 수고를 해주면 자체적으로 archive 를 만들어서 다음에 다시 목록을 작성할 필요가 없이 그냥 불러오면 된다는 얘기. 게다가 페이퍼가 submit 이 되는 순간 온라인으로 citation number 까지 기록이 된다고 하니 나로선 거의 신세계나 다름없다. 다 친구들에게 주워 들은 말이라 직접 확인한 바 없지만, 이 프로그램으로 페이퍼를 쓰는 친구들이 하나같이 찬양을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좋은 구석이 많은 프로그램같다. 최고는 역시 공짜 배포라는 거. donation 을 통해 제작자들이 프로그램을 계속 개발중인데 사실 이 프로그램의 수요자들은 최하 석사 논문 쓰는 사람부터 최고 노벨상 수상자들이니, 기부만으로 개발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_- 노트북을 새로 샀고 MS office 를 아직 깔지 않았는데 LaTex 에 익숙해 지면 굳이 비싼 돈주고 Word 나 Excel 을 사야 할까 싶기도 하다. 아직 많이 서툴러서 try and error 를 통해 하나 둘씩 배워 나가고 있는 중이다. 당장 다음 주말까지 프로포절 하나를 써 내야 하는데 이 프로그램을 제대로 배워보는 기회로 삼아 보려고 한다. 수식 입력이나 표 작성, matlab 에서 만든 그래프 옮겨 오는 작업 따위를 배우려면 봄방학 일주일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

cf. LaTex 는 일종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로, 규격화된 논문을 작성하고자 하는 researcher 들을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이다. 코드와 함께 문자나 수식을 입력하면 원하는 결과물이 PDF 로 출력된다. 예를 들어 abstract 부분을 작성하려면 word 에서는 글자 크기를 줄이고 가운데 줄맞춤을 하고 폰트를 times new roman 으로 지정해야 한다. 하지만 LaTex 에서는 그냥 \begin{abstract} 라고 preamble 부분에 한번 써주면 된다. 워드는 입력과 결과가 동일한 화면에 출력된다면 LaTex 는 코딩하는 부분과 출력되는 부분이 나뉘어져 있다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워드에 익숙해져 있는 나는 아직 글을 완성해 나가는 느낌은 확실히 덜한 것 같다. 뭔가 글을 쓴다기 보다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는 느낌;

그나저나 영어로 글쓰는거, 정말 너무 힘들다 ㅜㅜ

최근 모습들

큰아버지께 보낼 사진을 찾다 보니 정작 내 모습이 찍힌 사진이 몇장 되지 않음을 알게 됐다. 사진 찍히는 것을 즐기지 않기도 하지만, 나를 잘 찍어주는 찍사를 만나지 못한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김군이나 스티브 림같은 찍사가 주변에 있었다면 훨씬 더 좋은 사진들속에 내가 있었을텐데, 싶다.

아무튼, 이 블로그에는 내 (오프라인) 지인들도 몇 들락날락거리니, 그들을 위해서라도 올해 찍힌 사진들을 올려 둔다.

http://ihardyknowher.com/heuk

김길태와 가카의 독도 발언

김길태라는 흉악범이 검거되었고, 연일 한국 언론에서는 그에 대한 아주 세세한 내용까지 다루어 진다. 하지만 대통령이 일본 총리에게 독도와 관련해 “기다려 달라.” 고 말했고 또 이 것이 일본 주요 일간지에 의해 법적으로 확인 절차에 들어갔는데 이에 대한 뉴스는 어지간해서는 보기 힘들다. 진보적인 인터넷 매체에서만 다루어 질 뿐이다. 독도 문제는 단순히 애국심의 문제에서 다루어 질 만한 사안이 아니다. 독도라는 상징적인 영역에 대한 지리한 싸움의 본질에는 아직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일제의 잔재가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러한 과거의 유산을 모두 다 가지고 있는 일종의 “야후” 라고 본다. 우리는 어쩌면 아직 이 대통령의 진짜 모습을 구경도 하지 못했을 지 모른다.

언론 장악이라는 거, 우습게 본 사람들이 많을 거다. 하지만 언론이 “사실” 을 보도하지 않는 순간부터, 그 사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한다. 사실에 대한 “시각” 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사안에 대해 입장과 시각을 견지하는 것은 언론의 권리이자 권력이다. 하지만 사실을 제대로 “보도” 하는 것은 언론의 의무이자 국민의 권리이다.

전 대통령이 뭐라고 한마디만 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어떻게든지 흠집을 내려고 애썼던 무리들이 이제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현 대통령을 대한다. 이 것도 입장의 문제인가. 나는 그냥 수준의 문제같다. 저열하고 비열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김창완 : 안녕

봄방학까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마음이 잘 잡히지 않아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는 것에 대해 언제부터인가부터 굉장히 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것, 멍하니 인터넷을 하거나 TV 를 보면서 하루를 허비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모르는 바 아니나, 내게 주어진 의무를 끝내고 난 후에야 그런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강박관념같은 것이 미국에 온 후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까는 그래서 아껴 듣는 노래 중 하나인 Mercedes Sosa 의 “Solo le Pido a Dios” 까지 들었다. 들을 때마다 내게 큰 힘을 주는 음악이다.

어제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김창완의 노래를 무척 듣고 싶었는데, 한국의 80년대 음악들은 유튜브나 기타 인터넷상에서 찾기 힘들다는 에로사항이 있다.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젊은 세대들이 그만큼 덜 찾기 때문일 것이다. 김창완의 “안녕” 그의 동요 모음집에 들어 있던 노래중 하나다. 아버지께서 김창완을 무척 좋아하시는데, 그래서 대구 큰집으로 향하는 스텔라 차안에서 몇시간동안 계속해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새겨진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머리는 잊어도 몸은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세대에게 김창완은 그저 감초같은 역할을 종종 맡는 연기자로 기억되겠지만, 나에게는 산울림이라는 전설적인 그룹을 이끌었던 천재 작곡가로, 혹은 “안녕” 처럼 그의 맑은 음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좋은 노래를 만들어 내었던 싱어송라이터로 기억된다.

“”Solo le Pido a Dios” 는 “I only beg God” 으로 번역되는 것 같다. Sosa 도 작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큰아버지

한국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경남 하동에서 물탱크속 시체 두구 발견” 이라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덜컥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 별장이 하동에 있는데, 하필이면 “시체 두구” 여서 혹시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드렸는데, 역시나 어머니와 아버지는 무사(..) 하셨다. 어머니는 아직 감기가 온전히 떨어지지 않으셔서 고생중이신 듯. 어머니도 아버지도 환갑을 향해 잰걸음으로 가고 계시니, 이제 가벼운 감기도 그분들을 꽤 오래 괴롭히게 되었나 보다. 어머니는 서울에 계시고 아버지는 하동에 계시다고 하는데, 문단속 잘 하고 주무시라고 아무 도움 안되는 한마디만 덧붙였다.

어머니께서 마침 전화 잘했다고 하시면서 전해주시는 한국 친지분들 소식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나의 큰아버지는 몬시뇰이시다. 몬시뇰은 천주교 사제 서열에서 주교와 일반 사제직 사이에 있는 일종의 주교 대리 업무를 하는 직책이다. 주교 한사람이 하기 벅찬 일을 주교와 동등한 위치에서 관할한다. 왜 몬시뇰만 한국어로 번역을 하지 않았는지 가끔 궁금해 한다. 아무튼, 큰아버지는 몇년째 투병중이시다. 병세가 심해지자 몇년전 업무에서 은퇴하셨고, 대구 근처 조용한 시골에서 요양을 하고 계셨는데 최근 병세가 더욱 악화되 대구 가톨릭 병원에 계신다. 어머니께서는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 를 하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고 하셨다.

사람이 신체의 나이를 어느정도 채우면 세상을 등지는 것이 이 세계의 이치다. 누구도 이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게 똑 부러지는 정갈함만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나같은 범인은 헤어지는 것에 대한 슬픈 감정을 완전히 억제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뵙고 싶다고 당장 찾아갈 수 없는 신분이니,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우리 ‘집안’ 은 굉장히 독실한 가톨릭이다. 신부님인 큰아버지를 비롯해 고모님 두분이 수녀님이시니, 아버지를 비롯한 7형제중 세분이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된 셈이다. 이런 집안의 전통과 내력이 있다보니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가톨릭 문화에 굉장히 익숙해 질 수 밖에 없었고, 그런 나에게 큰아버지는 동경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사제의 길을 꿈꿨기에 성직자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고독하고 또 외롭고 힘든 길인지 옆에서 무척 잘 보아 왔다. 병을 얻어 힘들어 해도 옆에서 지켜줄 아내나 자식이 없다. 평생 풍요로운 생활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두 어깨에 짊어진 의무는 가벼워 질 기미가 없다. 사제는 공식적으로 은퇴를 하지 않는다. 형식상의은퇴는 그러한 의무를 약간 덜어주는 구실일 뿐이다. 사무직이나 본당 사제직에서 해방될 뿐,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기도해야 하는 본연의 의무는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나 하나만을 위해 살기도 벅찬 세상에서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 자체가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상상조차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물론 성인이 된 후 되먹지 못한, 쓰레기같은 신부들도 많이 보게 됐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부작용은 천주교에도 해당이 된다. 썩고 문드러진 사고 방식으로 사제라는 직함을 이용해 실리를 챙기려고 하는 사제들을 많이 경험했다.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내 주변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편지와 함께 보내 드리는 것 뿐이다. 매일 미사에 가서 아무리 기도해 봤자 무겁고 답답한 마음이 가벼워 지지는 않을 것 같다.

San Diego?

뜬금없이 크리스와 스캇이 샌디에고에 가자고 난리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얘네가 이렇게 뭔가에 메달리는 것을 본적이 없다. 그 광경이 재밌기도 하고, 난처하기도 하고. 나는 내 나름대로 봄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대충 구상을 끝내놨던 터라, 갑작스레 놀러 가자고 하는 말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비행기표도 싸고, 아주 싼 호텔도 알아 놨으니, 그냥 가자는 거다. 아마 expedia 나 다른 항공권 포털 사이트에서 오는 deal 을 받아 보고 이러는 모양이다.

근데 샌디에고가 그렇게 좋긴 하다는데… 아마 라스베가스였다면 단호하게 거절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