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고귀한 취향도 없고 저급한 취향도 없다. 간혹 자신의 취향이 남들보다 ‘우월’ 하다고 믿고 그것에 대해 프라이드를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음악을 듣다 보니 흔히 리스너라 일컬어 지는 사람들중에 종종 그런 오류를 범하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남들이 듣지 않는 것을 듣는다고 조금 더 나은 취향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Xiu Xiu 가 Lily Allen 보다 항상 우월한 앨범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한 사람이 가진 취향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추측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그리고 한 사람이 가진 취향으로 인해 그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취향은,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니까. 하지만 한 사람의 인격이나 됨됨이를 취향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본다. 취향은 그냥 그 사람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해와 평가, 많이 다른 개념이다.

많은 사람들이 취향과 인격 사이에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완전히 틀린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인격이 천박할 수는 있지만, 취향이 천박하다는 말은 왠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자주 찾는 블로그를 거칠게 카테고리화하면 그 중 한 부분은 ‘아스날을 좋아하는 여성 블로거’ 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나의 취향은 아스날을 좋아하는 여성 블로거들이 쓴 글을 좋아한다는 거다. 그리고 재밌게도 그분들중 상당수, 아니 대부분이 한국의 아이돌을 좋아한다. 매우 좋아한다. 어떤 분은 탑을, 어떤 분은 슈퍼주니어를, 그리고 많은 분들은 2PM 을 좋아한다. 우리가 ‘팬질’ 이라고 매도하고 무시하기 쉬운 ‘아이돌을 좋아하는 행위’ 는 사실 그 어떤 취향과도 동등한 위치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약간 다를 뿐이다. 박재범이 영구탈퇴 조치 당해서 JYP 사옥 앞에 모여 농성을 벌이는 팬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들이 글라스톤베리에 모여드는 히피들보다 수준이 낮다고 평가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모네의 그림을 경매하는 자리에서 터무니없는 값을 부르는 갑부보다 하등 못할 것이 없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우직한 충성을 바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똑같다. 그리고 취향의 본질속에는 그런 우직한 애정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나는 주변에서 이런 아이돌에 대한 ‘팬질’ 을 경시하고 매도하는 사람들을 종종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중 대부분은, 최소한 하나 정도 스스로 ‘프라이드’ 가 있다고 자신하는 취향을 가지고 있다. 내가 볼땐, 다 똑같다. 남들이 잘 모르는 것, 남들보다 조금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져야 접근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자부심을 느낀다면 그 사람의 ‘인격’ 이 비루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내가 바로 그랬다. 열세살때 레드 제플린의 <Physical Graffiti> 를 좋아했다. 무려 더블 앨범이었고 그 당시 레드 제플린의 음악에서 한 정점을 찍은 앨범이었는데, 나는 그 앨범을 좋아한다고 믿었다. 쉬는 시간마다 함께 음악을 듣던 친구와 이 앨범에 대해 수다를 떨었는데 우리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을 은근히 즐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하게도,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좋다. 하지만 최소한 취향의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취향이 ‘우월’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자신의 취향보다 훨씬 열등한 다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이 부분에서 상당한 오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10 thoughts on “취향

    • 영국 프리미어 리그 축구 클럽이예요. 런던을 기반으로 하는 :) 베르캄프가 뛰던 시절부터 좋아했는데 지금은 그냥 light fan 이예요.

  1. 어머! 아델라님! 찌찌뽕!
    그래서 종혁님. 아스날을 좋아하는 여성 블로건란 말은 결국 아스날 팬인 여성 블로거를 말씀하신 건가요? 아님 그 뜻에 무슨 다른 뜻이 있나요?

    • 아 제가 그을 좀 모호하게 썼나 봐요. 죄송해요. 블로그를 만들고 이분 저분의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제가 자주 찾는 블로그들의 성격이 어느정도 categorized 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그중 네 다섯분은 아스널을 매우 좋아하시고, 또 모두 여성분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더라구요. 저도 아스날이란 팀을 참 많이 좋아하고 또 그분들의 취향이 퍽 마음에 들었던 지라 자주 찾게 되었죠. 그런 의미였어요.

      당연히 아스날을 좋아하지 않는 여성 블로거들을 제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구요. :)

  2. 자신과 다른 취향이란 이유로 눈을 내리깔며 쳐다보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말도 섞고싶지 않아요. 전 그냥 취향을 인정하자는 주위에요. 여전히 저 역시도 불혹이면서도 젊은 아이돌 팬질을 하고 락음악이 좋아요. 예전에 후배들이랑 여행을 간적이 있는데 집에 오는 버스안에서 엠피쓰리를 듣고 있는데 언니 뭐 들어요. 라고 묻는 후배에게 이어폰 한쪽을 내어줬더니만 1분만에 돌려주면서 언니가 락음악을 들을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더라구요.
    전 예상하지 못했던 상대의 독특한 취향에 반하는 취향?? 이라서..ㅋㅋ 제 주변에는 특이한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러고보면 전 평범한 사람보다는 조금 독특한 사람을 좋아하는 취향일지도..ㅎㅎ

    • ‘편견’ 이라는 게 참 무섭고 사람을 많이 피곤하게 하죠. 그런거 신경쓰지 않고 그냥 살기에는 우리가 또 너무 소심하고…^^ 그냥 상대방의 취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고 인정해 주는 자세가 참 이상적인데, 관습이나 환경이라는 거에 생각보다 많이 종속되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전 미미씨 누님의 귀여운 인형 좋아하는 거나 요리 좋아하는 것들 좋아해요 :)

  3. 취향이란 게 갈수록 복잡한 역할을 하고 있네요. 그냥 기분 좋게 즐기는 것을 일컫는 게 아니라 남들에게 평가받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취향이 다른 사람이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당신이 뭘 아는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

    • 그쵸. 취향을 통해 상대방을 짐작하는 것 까지는 나쁘게 볼 수 없는 것 같아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또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까. 근데 그게 마치 그 사람을 결정짓는 잣대처럼 사용되는 경우를 종종 봐서 좀 안타까워요. 가지지 말아야 할 아집이나 자존심을 내세우는 경우도 많이 보구요. 최소한 저는 안그러도록 노력해야 겠죠 :)

  4. 얼마 전에 CNBlue의 뮤직비디오를 포스팅했던게 생각나는데요?^^
    사실 가요는 안 들어요.
    아무리 들어도 가사나 멜로디가 마음에 와닿지가 않아서.
    그렇다고 그것들이 천박하다고 생각해본적은 없는데,
    제가 좋아하는 취향 중에 한국가요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것과 비교해볼때 극히 작은 부분일뿐인거죠.
    우월감, 열등감.
    참 못난 감정들이죠.
    상대를 자연스럽게 인정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 그 이후 표절시비가 나고 그래서 약간 관심있게 지켜봤어요 ㅋ

      그냥 단순한 차이죠. 근데 그걸 우월함과 열등함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많이 답답해요. 제가 그런 쪽으로는 또 오지랍이 있는 편이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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