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속 잡념들

아침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눈이 내리고 있다. 덕분에 나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을 좋을 핑계를 하나 얻었다. 일요일에는 버스 시스템이 그닥 좋지 않기 때문에 자가용을 이용해야 하는데, 나는 눈오는 날 절대 운전을 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출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집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어짜피 공부는 잘 되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이상태로 내일 아침까지 눈이 계속 내리면, 휴교를 한번 기대해 볼 만 하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우리 학교는 아무리 큰 눈이 내려도 절대 휴교를 하지 않기로 유명하니까. 이번 학기에 딱 한번 휴교를 한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모두가 출근한 오후 한시에 내려진 반쪽짜리 휴교령이었고, 새로 부임한 총장이 학교 전통을 잘 몰라서 빚어진 “실수” 라는 루머까지 돌았다. (..)

어제는 참 외로웠다. 어제 밤에는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랬는데,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룸메이트 친구들은 모두 각자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러 나갔고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구글 토크에는 아무도 로그인해 있지 않았다. 부모님께조차 전화를 잘 하지 않는 내가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뜬금없이 전화할 리도 만무하고. 나는 외로움이 가끔 찾아올 때면 그 것을 이기기 위해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동원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아이폰이 좋은 장난감이 되어 주었고, 그전에는 리그 패스로 NBA 를 본다던가 이코노미스트같은 잡지를 뒤적거린다던가 하는 식으로 관심과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림으로써 외로움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외롭다고 친구들과 어울린다던가 여자를 찾아 헤메인다던가 (?) 하는 행동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솔직히 그럴 정도로 여유가 있었던 적도 최근에는 별로 없었고. 근데 어제는 딱 한명이라도 대화할 상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좀 컸던 것 같다. 물론, 아무나 내 옆에 있어 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내가 터놓고 내 이야기할만 한, 혹은 아주 편한 마음상태에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정도로 가까운 사이어야 하겠지.어제는 그냥 혼자 놀다가 잤다. 아주 우울한 마음으로.

개인적인 얘기 하나 해도 되요?

2007년 가을에 그를 왜 좋아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내가 참 많이 힘들 때 내 옆에 있어 줘서였다고. 위로가 많이 됐다. 사실 만난 적도 몇번 없다. 하지만 그와 내가 주고 받는 문자 사이에는 분명 굳건한 믿음과, 서로를 향한 애정이 있었다. 그 애정의 본질적인 색깔이 뭐였는지에 대해선 지금도 별 관심이 없다. 중요한 건 그에게 보내는 문자는 다른 것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고민해서, 손가락에 힘을 주어 꾹꾹 눌러 보냈고, 그에게서 받은 문자는 무척이나 소중하게 오랜 시간 간직했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은 다 믿었고, 그가 하는 모든 말들에서, 그의 진심을 읽었다. 진짜 나를 걱정하고 나를 생각해 주는 그런 마음. 그래서 좋아했다.

지금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해서 매우 힘들다. 그 사람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데, 나는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아니 있었는데, 그렇게 되려고 노력했는데, 도저히 못하겠더라. 노력하면 할수록 너무 힘이 들고 지치고 힘들었다. 누구 하나 잘못한 것이 없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힘들어졌다. 그래서 더이상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아니므로, 더이상 고통을 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그 생각때문에 몹시 외로웠다.

이런 생각을, 지난 여름 그가 했을까, 생각해 봤다. 그에게서 지난 여름 한국에 있을 때 받은 마지막 문자는 “계속 이렇게 미안하게 만드는 걸 보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였다.

짝사랑은 돌고 돈다. 나는 누군가의 사랑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 하고, 내가 찾는 사람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진다. 이젠 내가 누구를 찾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6 thoughts on “폭설속 잡념들

  1. 사람 마음은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래서 가끔은 완전히 타인인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한다는게 참 기적같은 일이라는 생각을 해요.
    우울해서 얘기할 사람이 필요하면 연락하세요. 제가 종혁님한테 위로가 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 진짜 날씨를 타는건지 겨울엔 유난히 기분이 우울해질 때가 많은 거 같아요. 저도 올겨울은 좀 롤러코스터 타는 것 같은 기분.

    • 감사합니다. 말씀만이라도.. :D 전 아직도 기적을 바라고 있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적당히 만족하고 살면 아무 문제없는데 말이예요. 제가 사는 곳의 겨울은 해가 유난히 짧아 더 우울해 지는 것 같아요.

  2. 저도 한 달 전엔가 갑자기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 휴대폰을 잡았는데 왠지 섣불리 전화를 할 수가 없었어요. 오랜만에 사람이 고파서 마음이 텅 비었었는데. 다른 걸로는 환기가 안되는 그런 외로움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돌고 도는 마음. 엇갈리는 교환. 굉장히 무겁고 끔찍하게 다가올 때는 정말… 어서 봄이 와야겠어요.

    • 이래서 결혼을 하는 건가부다, 싶기까지 했어요. 저에게 결혼이란, 제 인생 최고의 친구를 만나는 거랄까요. 그런 환상이 있어요.

      영국도 겨울이 길고 어둡죠? 얼른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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