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기와 독서 생활

요즘 읽기 시작한 책은 [The left : 1848~2000] 이다. 이성앞에서 ‘폼’ 잡고 싶은 먹물들이 주로 선택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참고문헌까지 포함하면 10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보니 단기간에 읽어 내려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있다.  지난 여름 한국에서 사온 책들중 가장 듬직한 체격을 자랑하는 책이기도 하다. 나는 영어책과 한국어책을 읽는데 걸리는 시간에 꽤나 큰 차이가 난다. 최근 읽고 있는 전공 서적 [Interest and Prices] 는 대학원 2년차인 내가 소화하기에 내용이 꽤나 어려워 한시간에 열페이지정도를 겨우 읽는다. 옆에 공책을 펼쳐 놓고 수식을 계속 계산하며 따라가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영어로 쓰여진 가벼운 비전공 책들, 그러니까 인문학 책이나 일반 독자를 위한 사회과학 서적들은 그보다 속도가 약간 더 빠르다. 한시간에 30 에서 50 페이지정도. 한국어 책은, 글씨가 여간 조그맣고 빽빽하지 않으면 대부분 수시간내에 읽는다. 물론 소설이나 비전공 서적에 한해서다. 하긴 한글로 쓰여진 전공 서적을 마지막으로 읽어본 건 [맨큐의 경제학] 이었으니, 거의 읽어본 기억이 없다고 해도 맞겠다.

학기중에는 그래서 영어로 쓰여진 비전공 서적은 거의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짬을 내어 한글로 쓰여진 비전공 서적들을 읽을 수 있다. 작년에는 온전히 게으름이라는 이유로 인해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2010년 들어서 책을 읽을 의지와 요령이 많이 상승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봐도 2010년은 확실히 내게 2009년보다 좋다. 마음의 여유를 많이 찾아서 주변의 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탓도 크다. 학기중, 그중에서도 주중에는 거의 책을 읽지 못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학과일에 시달린다. 수업 세개와 수업 참관 하나, 네개의 레시테이션과 네시간의 오피스아워를 소화하려면 아침 아홉시부터 저녁 다섯시까지 빽빽하다. 올 해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꾸준히 매일 실천하려고 노력중인 일까지 포함하면 밥먹을 시간을 내는 것도 가끔 힘들때가 있다. (요즘은 라이스 보울이나 브뤼또를 사서 그냥 걸어가면서 먹는다. 그래야 할 때가 일주일에 두번쯤 있다)  그러다보니 밀린 학과 공부와 과제는 결국 저녁을 먹고 난 이후로 미뤄진다. 그렇게 공부까지 얼추 끝내고 나면 밤 열한시를 훌쩍 넘기는데, 그 이후 시간에 집에 와서 읽고 싶었던 책을 ‘취미’ 로 읽는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많이 따른다. 결국 한가한 토요일 아침이나 오후 시간이 유일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인데, 이 시간은 또 장을 본다던가 밀린 빨래를 한다던가, 아니면 미뤄 두었던 지인들과의 약속을 위해 할애해야할 때가 많다. 학기가 시작하고 3주가 지났는데 사실 매주 그런 식이었다. 일요일은 상대적으로 다음주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담스럽다.

아까 화장실에서 문득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떨까?’ 아니, ‘결혼을 하게 되면 어떨까?’ 를 생각해 봤다. 그러면 책을 읽을 시간이 조금은 늘어날까? 아니면, 사랑하는 아내와 실컷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잠을 청해야 할 시간이 훌쩍 지나 있을까? 책을 좋아하는 아내라면, 함께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과일 약간과, 둘 다 인정하는 좋은 음악과 함께 토요일 아침을 그렇게 보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책을 좋아하고, 음악을 사랑하고, 수다를 좋아하며, 유머 감각이 그리 나쁘지 않은 여자를 찾아야 겠다고도 생각했다.

이런 허무맹랑한 상상보다는, 차라리 1년만 더 참으면 코스웤이 끝나고 논문학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니까 차라리 그걸 기다리는 편이 훨씬 빠르고 현실적이겠다, 라고 이내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때가 되면 프랑스어 수업도 듣고 라켓볼도 배우고 책도 잔뜩 많이 읽어야지, 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쪽이 훨씬 feasible 해 보인다.

어쨌든 아직은 혼자 사는 게 좋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정말 괜찮은 여자를 (지금 여기에서) 만나지 못했으므로.

10 thoughts on “혼자 살기와 독서 생활

  1. 오 종혁님이 생각하는 결혼 생활 낭만적이에요. 나중에 프랑스어 수업 들으실거에요? 안되겠다, 전 종혁님 공부하실 동안 불어 공부 열심히 해야겠군요. ㅎㅎ 종혁님은 원래 상급자니까!

    • 그런가요 똥폼인가요 ㅎㅎ 꿈이나 한번 꿔보는거죠. 현실은 도서관 책상에 코박고 전공서적과 씨름중 ^^ 전 프랑스어 다 까먹었어요. 고등학교때 배우고 제대로 써먹어 본 적이 없네요.

  2. 한시간에 30-50페이지를 읽으신다니, 전공자인 저도 훔치고 싶은 능력인걸요? 그정도면 빨리 읽으시는 거 아닌가요..^^ 전 지난 기말고사 시험때, 시험 직전 2시간 동안 셰익스피어 논문 두 개를 다 읽어야 했었는데.. 인간의 능력이 급할 때 얼마나 높아질 수 있는가를 실감했었던-_-;

    책을 좋아하고 음악을 사랑하고 수다도 좋아하며 유머 감각도 괜찮고 거기다가 축구까지 좋아하는 사람을 전 만났었고 좋아했었는데 상대는 절 안좋아하더군요. Alas.
    종혁님은 꼭.. 괜찮은 여자분을 (가까운) 미래에 만나시길.

    • 아 뭔가 제가 착각한 것 같아요. 굉장히느리게 읽는다는뉘앙스로 쓴건데. 스무페이지 정도로 정정하죠 ㅋ 논문읽는 속도는 더 느리죠. 근데말씀하신 것처럼 항상 논문을 읽을 때는 굉장히 급박한 상황이라는 게 특이사항이죠 ㅋㅋ

      축구까지 좋아했다면 대단했을것 같아요. 비록 인연은 아니었지만 .. 저도 그런 사람 만나기를 빌어야죠 :)

  3. 저희 형부가 그러기를요, 자기는 안경쓴 여자는 죽어도 싫어서 절대로 안경쓰는 여자랑은 결혼을 안하겠다고 항상 생각을 했대요. 근데 울언니, 눈 대따 나쁘고 항상 안경 써야되거든요. 그게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나서. ㅋ
    위에 쓴 토요일 아침은 현실성 가능한것 같네요. 애 생기기 전까지만 이겠지만. ^^

    • 말씀하신 게 맞아요. 결국 이상형 혹은 이상향은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만큼 인간이 현실적인 존재라는 얘기겠죠. 애를 가지게 되면 토요일의 안락함은 20년쯤 연기되어야겠구요 ㅋ

  4.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여자주인공이 목욕하는걸 꽤 좋아하는데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서 책을 읽는 그런 장면이 나오거든요. 전 그게 조금 부러웠어요. 저도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좋겠어요. 오롯이 그 시간에 대화없이 자유롭게 책을 읽으면서 함께하는 느낌 로망하는 장면이기도 하고…혹은 책을 안 읽더라도 제가 책 읽는건 방해하거나 잔소리 하지 않는 사람…ㅎㅎ
    지난1년 동안 백수로 지내면서 책도 꽤 많이 읽기도 했던가 같아요. 요즘은 또 도통 읽지 않고 있는중이긴 하지만..
    예전에 일본어 원서로 꼭 읽고 싶은게 있어서 일본어를 시작했더랬는데 결국 일본어는 완성되지도 못하고 아직도 그 책은 읽지도 못하고..맘만 들떠서 원서 잔뜩 사 놓은건 책상에 가득하고…아, 쓰다보니 일본어 공부를 빨리 다시 해야겠네..이러고 있어요. ㅎㅎ

    • 책읽는 거는요 순전히 의지의 문제인 것같아요. 읽고 싶은 게 있으면 옆에서 누가 뭐라 해도 읽어야만 하는 것이고, 공부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밥은 굶더라도 해야만 하는 게 공부죠. 그정도의 의지라면 배우자도 능히 본인의 취향에 맞는 사람을 만날수 있지 않을까 하고도 생각해봐요. 물론, 취향이 배우자 선택의 우선순위는 아니지만요

  5. ‘책을 좋아하고, 음악을 사랑하고, 수다를 좋아하며, 유머 감각이 그리 나쁘지 않은 사람’+ ‘집에서 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눠먹을 수 있는 사람’이 제가 생각하는 결혼 생활이겠네요.^^
    어쩐지 비슷한 부분이 많다니깐요.

    • 제가 요리를 잘 하지 못해요. 그래서 요리와 관련된 건 어쩔 수 없이 항상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입장인데요. 맛있게 먹어주는 것도 어쩌면 요리를 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답례라는 생각을 했어요. 가끔 리디아님 블로그가서 열심히 레시피를 받아 적곤 해요. 그리고 가끔 시도해 봐요. 물론 그중 대부분은 실패지만요. 그래서 아무한테도 안주고 혼자만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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