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2

관계를 시작하는 일보다 끝내는 일이 몇배는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 대부분 좋은 감정을 가지고 관계가 끊어지지는 않는다. 힘껏 싸우고 헤어지는 연인 사이이건,  점점 심리적 혹은 물리적 거리가 멀어져 연락이 뜸해지게 되는 친구 사이이건 간에 말이다. 일순간에 확 끊어지는 관계나 서서히 사라져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되는 관계나 내게 몹시 고통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내가 사람을 쉽게 사귀지 않는 이유중 하나는 바로 이 끝맺음이 영 서투르고 익숙치 않아서 일게다. 섣부르게 시작한 관계는 마찬가지로 무책임하게 마무리되기 쉽다. 내 말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보다 더 확실하게 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요즘인데, 관계맺음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렵게 시작하고, 어렵게 끝내고 싶다. 앞으로 시작하는 관계들은 그렇게 가져가고 싶다.

인연

어제 한 교수님의 초대를 받아 저녁을 얻어 먹었다. 내 아버지가 이분의 석사 지도교수였다. 이 분은 석사를 한국에서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오셨고, 지난 해 내가 있는 학교에 조교수로 부임하셨다. 상당한 인연이다. 아마 코 질질 흘리고 있을 무렵의 내 모습도 몇번 보셨을 것이다. 인연은 이렇게 돌고 돈다. 내가 유학을 고민하고 있을 무렵, 사학쪽으로 방향을 잡을지 경제학을 계속 공부할지 고민하던 차에 찾아가 상담을 받은 교수님이 한분 계셨다. 경제사를 전공하시던 분이셨는데, 마침 사학과 경제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던 터라 여러가지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분은 내 아버지가 박사과정 당시 사사했던 지도교수님의 아들이었다. 사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경제학을 택해 교수로 재직하던 차에 자신의 아버지의 제자였던 사람의 아들이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그분도  적잖이 놀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대가 중첩되어 가면서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거나 받기만 하지는 않는다. 내 아버지는 내가 찾아 뵈었던 교수님이 코를 질질 흘리고 있던 시절부터 스승님댁으로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다. 어제 나를 초대해 주신 교수님도, 어렴풋하게 몇번 본 기억이 있는 꼬마놈이 자신과 같은 학교의 박사과정에 있다는 사실이 퍽 흥미로우셨을 것 같다. 이제 막 태어난 그 교수님의 아들놈도 나와 나중에까지 인연을 이어가게 될까? 방긋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 하염없이 쳐다보다 돌아왔다. 부디 부끄럽지 않은 ‘아저씨’ 가 되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