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패디먼 : 서재 결혼 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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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지적 허영심에 빠질 위험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연인과의 약속 시간에 늦었는데 인터넷 쇼핑몰을 밤새 뒤적거렸다고 말하기 보다는 찰스 디킨스의 낭독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 찰스 캔트의 책을 뒤적거리다가 늦게 잤노라고 말하는 게 조금 더 폼이 있어 보이지 않은가. 행위에 대한 허영심을 제하고서라도, 활자에 탐닉한다는 행위는 지식의 흡수라는 결과물에 도달하는 과정에서부터 많은 distortion 을 가질 위험이 있다. 가령 머릿속에 뭔가 좀 더 많은 글자들이 뒤엉커 있으면 조금이라도 배가 부른 것 같고, 그래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 경우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bookworm 들은 이런 저런 오해를 많이 사게 된다. 활자중독자들과 때로는 구분이 모호하기도 하며,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성들로 인해 선입견에 갇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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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정한 독서광 (‘광’자가 맘에 들지 않으면 독서애호가로 바꿔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사람들은 이런 저런 행위들에 대한 고민따위의 차원을 이미 뛰어 넘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글자를 읽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활자중독자들이라면, 독서애호가들은 책의 ‘내용’ 에 탐닉한다. 그러다가 어느새 책의 겉표지와 그 밖에 책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들이 독서광들이다. (결국 음악애호가들과 기본적인 시스템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각기 다른 자신만의 독서 방법과 그것들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확고한 독서관(혹은 취향) 을 가지고 있고, 독서를 통해 얻게 된 것들을 실생활과 어떻게 융합시키거나 분리시켜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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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실제로 음악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듯이,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실제로 글을 써서 먹고 살거나 책과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이 책의 저자인 앤 패디먼은 그런 행운아들중 하나다. 그녀는 독서라는 행위에 관한한 그 누구보다 전문가인데, 전문가이기 전에 책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짤막한 에세이들의 모음집인 이 책에서 그녀는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한 아름다움을 찬양함에 있어 꽤나 영리하게 지적 허영심의 위험을 비켜 간다. 그 누구도 그녀가 가끔씩 보여주는 장광설적인 나열법을 ‘잘난척’ 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한 가족의 독서문화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을 ‘과시욕’ 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책을 읽다보면 그녀가 굉장히, 그리고 진실되게 책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심은 어디에서나 통한다. 결국엔 통한다. 그녀의 책과 독서에 대한 진심이 차분한 어조의 문체속에서 (때로는 유머와 함께) 전달되는 동안, 어느새 나는 수첩에 그녀에게서 추천받은 책 몇권을 메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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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패디먼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꽤나 책을 사랑하는 가족들 틈에서 성장했다. 이사할 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책들은 항상 큰 골칫거리였다. 패디먼의 부모처럼 나의 부모도 이사할 때마다 책장을 새로 짜야 했고, 거의 모든 벽을 책장으로 채워야 했다. 중학교시절부터 부모님의 책장을 염탐하며 한권씩 빼내서 읽기 시작했는데,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있던 책장속에서 문고판 고전들을 읽었고, 성에 대해 처음 배우기 시작했고, 한자도 거기서 깨우쳤다. 글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부모님 밑에 있다보니 자연스레 나도 읽고 쓰는 것에 익숙해 졌고, 그런 나의 배경이 지금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 크게 일조하지 않았나 싶다. 약간은 심심하고 정적인 취미를 가지고 있는 지금의 삶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 대부분이 부모님의 생활을 따라하다가 발전한 것들이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아버지는 반드시 네가지중 한가지를 하고 계셨다.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으시던가 (그래서 나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뒷모습뿐이다. 정면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마당에서 정원을 가꾸시던가, 어머니와 수다를 떠시던가, 오래된 전축으로 클래식 음악을 들으시던가. 지금 내 형편이 여의치 않아 할 수 없는 마당일을 제외하면 결국 내가 즐겨하고 또 좋아하는 일들은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따라하는 행위인 것 같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사랑하는 사람과 수다를 떠는 것. 여기에 영화보는 것까지 더하면 내 삶의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릴 적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높고 넓은 책장들이 부러워 나도 책장을 사달라고 졸라 댔고, 거기에 책을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책을 읽었다.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책장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초라하지만, 그렇게 나도 책장 네개를 채웠고, 미국에 와서도 새로운 책장 하나를 채웠다. 늙으면 늙을 수록 소설이 아닌 전공 서적으로 책장을 채우게 되는 게 슬프기는 하지만, 어쨌든 읽어 내려간 책들이 한권씩 쌓인다는 것은 내가 세상으로부터 그만큼 많이 배웠다는 뜻일테니 분명 기쁘게 받아 들여도 될만한 사실이다. 그 과정에 있어 놓치는 것이 없도록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며 책 읽는 행위에 있어 소홀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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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정말” 하고 중얼거리면서 동감하게 되는 구절들이 종종 눈에 띈다. 가령 노드스트럼에서 온 카탈로그를 탐독하는 행위에 대한 묘사라던지,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방에서 옐로우북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던지 (이건 결코 웃기려고 지어낸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는 부분들에서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음을 공유할 수 있었고, 자주 쓰는 단어들속에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는 성차별적인 단어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낼 때 내가 가끔 해 왔던 생각들이 정리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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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님이 한국에서 보내주셨고, 계속 챙겨두고 읽지는 못하고 있다가 어제 밤 몇시간만에 주욱 읽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