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2

관계를 시작하는 일보다 끝내는 일이 몇배는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 대부분 좋은 감정을 가지고 관계가 끊어지지는 않는다. 힘껏 싸우고 헤어지는 연인 사이이건,  점점 심리적 혹은 물리적 거리가 멀어져 연락이 뜸해지게 되는 친구 사이이건 간에 말이다. 일순간에 확 끊어지는 관계나 서서히 사라져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되는 관계나 내게 몹시 고통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내가 사람을 쉽게 사귀지 않는 이유중 하나는 바로 이 끝맺음이 영 서투르고 익숙치 않아서 일게다. 섣부르게 시작한 관계는 마찬가지로 무책임하게 마무리되기 쉽다. 내 말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보다 더 확실하게 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요즘인데, 관계맺음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렵게 시작하고, 어렵게 끝내고 싶다. 앞으로 시작하는 관계들은 그렇게 가져가고 싶다.

인연

어제 한 교수님의 초대를 받아 저녁을 얻어 먹었다. 내 아버지가 이분의 석사 지도교수였다. 이 분은 석사를 한국에서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오셨고, 지난 해 내가 있는 학교에 조교수로 부임하셨다. 상당한 인연이다. 아마 코 질질 흘리고 있을 무렵의 내 모습도 몇번 보셨을 것이다. 인연은 이렇게 돌고 돈다. 내가 유학을 고민하고 있을 무렵, 사학쪽으로 방향을 잡을지 경제학을 계속 공부할지 고민하던 차에 찾아가 상담을 받은 교수님이 한분 계셨다. 경제사를 전공하시던 분이셨는데, 마침 사학과 경제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던 터라 여러가지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분은 내 아버지가 박사과정 당시 사사했던 지도교수님의 아들이었다. 사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경제학을 택해 교수로 재직하던 차에 자신의 아버지의 제자였던 사람의 아들이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그분도  적잖이 놀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대가 중첩되어 가면서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거나 받기만 하지는 않는다. 내 아버지는 내가 찾아 뵈었던 교수님이 코를 질질 흘리고 있던 시절부터 스승님댁으로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다. 어제 나를 초대해 주신 교수님도, 어렴풋하게 몇번 본 기억이 있는 꼬마놈이 자신과 같은 학교의 박사과정에 있다는 사실이 퍽 흥미로우셨을 것 같다. 이제 막 태어난 그 교수님의 아들놈도 나와 나중에까지 인연을 이어가게 될까? 방긋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 하염없이 쳐다보다 돌아왔다. 부디 부끄럽지 않은 ‘아저씨’ 가 되어야 할텐데.

Gamecocks shocks No.1 Wildcats, and NCAAM’s world

My best American friend, Scott, who is from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gave me a lot of eagerness to go for Gamecocks since I have watched NCAAM. I had no hometown in US, so I had to choose one team that I would be mad about (you know, if you love at least one team in any league of sports, then you got more fun to watch). Scott introduced to me his college, and it’s perfect fit for me. I dislike a kind of contender team, and I love young, underdog team. USC is such a team like that. I don’t know much about the football team of USC, but it’s also fun to watch.

Yesterday, Chris, KS, and I, were really excited bout one game, USC vs. Kentucky. Kentucky Wildcats are number one team in this country, having really good depth, super freshman like Wall and Cousins, and pretty good head coach although I dislike him. Gamecocks, on the other hand, lost two second best players, and have an ace whose height is just 5’9” or so. And they’ve never beaten NO.1 team in their program history. But, however, they won, over Kentucky. It was amazingly fun, and super entertaining. Downey, the ace, made some shots and all of those were really tough, and pretty amazing from acrobatic. His dribbling was non-defensible. Wall is pretty good defender and Bledsoe is future lock down defender, but they never stopped him. The game was so close, and we never knew which team gonna win until the last seconds.

This is the one of virtues that the college sports have, and the reason why I love sports. (If you ask me to choose only one between sports and lover, oh God, I don’t know)  Of course there are lots of money games, but I believe there’s still purity of sports. Good work ethic, eagerness for the win, and sacrifice for the team can make a miracle sometimes. Watch the video from ESPN. The players will never forget the last night.

Jason Reitman : Up in the Air

[주노] 를 너무 인상깊게 봤는데, 사실 [주노] 를 보고 나서 머릿속에 각인된 사람은 감독인 레이트먼이 아니라 주연 배우였던 앨런 페이지와 각본을 썼던 디아블로 코디였던 것 같다. 하지만 디아블로 코디의 감칠맛 나는 대사를 화면으로 자연스럽게 옮기고, 앨런 페이지의 아이디어들을 받아들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출했던 사람은 바로 감독인 레이트먼이었다. [up in the air] 는 그의 후속작이다. 한국에서는 [마일리지] 라는 기괴한 이름으로 개봉한다던데, 이 영화를 나중에라도 보신다면 한국어 작명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는지 알게 되실 것이다. [up in the air] 를 그대로 가져다 쓰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내 아이디어는 [사랑도 마일리지가 되나요] 였다. 물론 한국어 제목을 듣고 비꼬듯이 한 말이다.

조지 클루니가 분한 라이언 빙햄은 특이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해고를 대행해 주는 일이다. 어느 회사나 해고를 할 때 얼굴을 마주 대하고 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문자나 이메일로 해고를 통보하는 건 미국식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으니, 라이언처럼 얼굴 괜찮고 말주변이 좋아 사람을 잘 달래는 재주를 가진 사람을 대신 고용해 해고를 하는 것이다. 경기가 불황일수록, 라이언은 더 바빠진다. 그는 집보다는 호텔이 훨씬 편하고, 검색대를 통과하는 데에 귀신이며, 패키지를 간편하게 꾸리는 데에도 선수다. 그의 커리어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서 ‘백팩’ 을 인생에 비유해 커리어 조언을 하는 강연을 겸하기도 한다. 경력이 특이하긴 하지만 잘나가는 비지니스맨이다. 그는 공항 호텔에서 알렉스 (베라 파미가가 분했다) 라는 매력적인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비슷한 시기에 나탈리라는 신참을 받아들여 함께 전국을 순회하며 그에게 ‘해고를 잘하는 법’ 을 가르친다. 그 와중에 라이언의 조카의 결혼식이 다가오고, 조카에게 선물할 재미있는 사진을 찍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나름 반전이 있기 때문에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정도에서 그만 써도 될 듯 하다. 사실 줄거리가 중요한 영화는 아니다. 다만 대사는 하나도 놓치지 말고 잘 들어야 한다. [주노] 보다 더 감칠맛나고 현실적이며 동시에 통찰력있는 대사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수십개의 미국 도시들이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결국 세명의 배우에게만 집중해야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나는 조지 클루니를 좋아하고, 베라 파미가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 영화에서 이 두명의 연기 앙상블은 한마디로 “끝내준다”. Two thumbs up! 개인적으로 헐리우드에서 표정연기가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조지 클루니를 꼽는다. [마이클 클레이튼] 의 엔딩씬을 기억하시는지. 영원히 잊지 못할 그 표정에서 나는 조지 클루니가 가진 재능의 극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는, 어찌보면 뻔한 가치를 결론으로 내세운다. 대사에서 찾을 수 있는데, 결혼에 회의적인 라이언이 조카의 신랑에게 하는 한마디.

“Life’s better with company.”

뻔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언제나 새겨 들을수 밖에 없는 그런 가치.. 라이언의 집의 황량하다 못해 인간미가 전혀 없다.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오마하에 자리잡고 있는 그의 집은 극단적으로 흰색이 강조되는데, 이 영화에 쓰인 흰색은 공허함, 혹은 외로움을 상징하는 색인 듯 하다. 그에겐 호텔 키가 집 열쇠보다 더 편하고, 항공사 1등 회원권이 운전면허증보다 더 좋은 신분증이 된다. American Airline 에서 10만마일 이상 여행한 고객에게 주는 황금카드를 선물받고 노령의 기장에게 어디에서 왔냐는 물음을 받았을 때 라이언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I’m from here.”

라고 대답한다. 그럴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real life 를 갖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 왔으며, 고향과 가족없이 횡량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조카의 결혼식에 알렉스와 함께 참석한 뒤 라이언은 그의 누나에게

“Welcome back.”

이라는 인사말을 건네받는다. 그는 가족과도 관계가 소원했다. 그는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자신의 real life 가 결국 사랑임을 깨닫고 알렉스에게 달려가지만, 알렉스는 그에게 이렇게 답한다.

“You are parenthesis.”

라이언은 그녀에게

“I thought I was part of your real life.”

라고 울먹이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 하지만 전체적인 결론은 비극이 아니다. 라이언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의 real life 로부터 깨달은 가치를 선물하게 된다. 너무 늦게 깨달은 단순하면서도 소중한 가치를,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해주려고 애쓰는 라이언의 모습에서 밝은 기운을 느꼈다.

라이언은 사람을 해고하면서 항상 말한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 이라고. 하지만 영화의 처음과 끝에 실제로 해고당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이와는 다른것들을 많이 생각하게 했다.

이 외에도 인상적인 대사들이 많았는데, 내 영어가 짧은 관계로 옮기지 못하는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영화는 대단히 좋다. 미국 독립영화 감독이 메이저로 올라와 좋은 배우들과 함께 하면 어떤 결과물을 내어 놓을지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다. 공항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특히나 더 좋아하실 것이고, 미국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신 분들이라면 반가운 장면들이 많을 것 같다. 나는, 그저 조지 클루니와 베라 파미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음악이 좋은 것은 덤이다. [주노] 에서 이미 확인한 바이지만 레이트먼의 음악 선곡 센스는 대단히 탁월하다. OST 를 사야겠다고 다짐하며 나왔다.

추신. 나중에 혹여 보시거든, 영화가 끝나도 자막이 올라올때 계속 앉아서 기다리시길. 영화 제목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애인의 권리와 의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되면 사귀게 되고 그러다 보면 각별한 사이로 발전한다. 엄마보다 형제보다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많이 알게 되고 서로의 생활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사귀는 동안만큼은 그어떤 타인보다 나를 많이 오픈하게 되고 또 그만큼의 ‘간섭권’ 을 허용하게 되는 사람이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가 아닌가 싶다. 문제는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의 판단과정에서 심각한 견해 차이가 생길때 발생한다. 한사람은 매우독립적이어서 서로의 사생활을 되도록 많이 존중해 주기를 원하는 반면 다른이는 상호의존적이고 서로의 삶에 깊숙히 개입하는 관계를 원한다면, 과연 어떻게 이 충돌을 해결할 수 있을까. 난 철저히 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애정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미국에 와서 참 좋았던게 personal distance or personal space 를 서로 철저하게 지켜준다는 점이었다. 이건 심리적인 부분에도 해당이 될것같다. 결혼을 해서 몇십년을 같이 산 부부도 각자의 삶이 있다. 비밀이 없는 것과 각자 독립된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너무 이기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사귄다는 행위가 어떤 형식의 의무감을 형성하기 시작할때 갈등은 시작되는 것 같다. 감정적인 권리가 행동의 의무로 반드시 이어져야 할 당위성은 글쎄… 잘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걸 다 준다.”

는 말을 최근에 듣고 이 게 생각보다 굉장히 무서운 말이 아닐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아이폰으로 처음으로 쓴다는 글이 요따구다.

Most seriously hilarious video ever : Keynes vs. Hayek

My friend Scott recommended this video. Thank Scott. You hate macro, but I’m 70% sure that you did watch the end of this video.

How many students are suffering the old-and-never-wise debates among economists? It’s sometimes called “big or small government?” This video is pretty good text which shows not “how economic thoughts developed with brilliant manner”, but  “how economics can make students going crazy”. Good example. I will definitely try to find more videos of them. I guess, (maybe) Keynes should also fight against Friedman, or Lucas Jr.

면지와 속표지

[서재 결혼 시키기] 를 읽으면서 처음 안 사실인데, 속표지에는 저자의 서명이나 헌사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면 저자가 아닌 사람이 평소에 지인들과 책을 주고 받으며 하는 서명이나 헌사는 면지에 써야 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속표지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 저자에 대한 예의인 셈이다. 아직까지 나는 지인들에게 책을 건네며 서명을 할 때 속표지를 건드린 적이 없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면지와 속표지의 정의를 정확하게 몰라 며칠을 ‘찾아봐야지, 하지만 까먹었네’ 를 반복하다가 오늘에서야 겨우 정확한 정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면지 [面紙, endpapers]

서적의 표지 뒤에 붙이는 4페이지분의 종이.

서적의 속장과 표지를 연결하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따라서 면지에 사용되는 종이의 강약에 따라 서적의 내구성(耐久性)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므로, 면지로 쓸 용지는 그 책의 속장의 크기 ·지질 ·부피 ·무게 ·판지의 두께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선택해야 한다. 또, 면지의 종이결은 그 책에 대하여 반드시 세로결이 되도록 해야 한다.

면지는 장정(裝幀)의 한 요소로서 장식적 ·미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으므로, 색지나 무늬가 있는 종이를 쓰기도 하는데, 사진이나 그림을 인쇄하기도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 독자의 참고가 될 수 있도록 지도나 도표를 인쇄하여 쓰기도 한다.

출처: 두산 대백과 사전

Endpaper

The endpapers or end-papers of a book are the leaves of paper before the title page and after the text. One part is pasted to the inside cover. They hold the text and cover together. Also called end leaf or end sheet. The free half of the end paper is called a flyleaf. Booksellers sometimes refer to the front end paper as FEP. They can be removed from e.g. former library books.

Before mass printing in the 20th century it was common for the endpapers of books to have paper marbling. Sometimes the endpapers are used for maps or other relevant information. They are the traditional place to put bookplates, or an owner’s inscription.

출처 : 위키피디아

En.
속표지(-表紙) [명사]
발음 〔속ː–〕 [명사]<출판>책의 겉표지 다음붙이는 얇은 종이로 된 표지. 서적제목, 저자, 발행소 따위는다. ≒비지8(扉紙), 안장1, 안표지(-表紙).

출처 : 네이트 국어 사전 (두산 동아, 국립국어원)

책 구매 리스트

결국 폴스미스 폴로 셔츠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그 돈으로 책들을 구입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결제 버튼 앞에서 우물쭈물하더니 주말에 읽은 책 두권으로 인해 차라리 평소에 사고 싶었지만 사지 못한 책들을 구매하는 편이 더 낫다고 결론을 내려 버렸다. 참으로 미련하고 아둔한 결정이었다. (지금이니까 하는 말이다)

여기서 한국 책들을 주문할 때 항상 발생하는 이슈가 어디서 구매하느냐의 문제이다. 난 예스24를 싫어하기 때문에, 나의 선택지는 언제나 알라딘US 와 교보문고 해외배송 서비스다. 똑같은 구매 목록을 설정하고 결제창을 비교한 결과, 알라딘이 교보문고보다 한국돈으로 2만원 정도 쌌다. 결국 알라딘US 를 통해 구매하긴 했는데, 이 두 서비스는 본질적으로 다른 듯 하다. 알라딘US 는 달러로 결제하고, 일정 이상 구매하면 배송료는 공짜다. 아마 UPS 를 통해 배달되는 듯 싶은데 일주일에서 열흘정도 걸린다고 한다. 교보문고는 원화로 결제하고, 책 무게에 따라 배송료가 책정된다. 나는 총 일곱권을 샀는데 배송료가 약 75,000 원 정도 붙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나름 교보문고는 꽤 높은 레벨의 회원인데 이번에는 좀 아쉽게 됐다. 레벨이 어느정도냐 하면 평일 아무때나 가서 책을 한권도 안사도 주차가 두시간 무료인 정도!학부때부터 뼈빠지게 돈을 갖다 바쳐 얻은 상처뿐인 영광이다. (솔직히 그 광화문 사거리에 평일 저녁 차를 끌고 나갈 용기는 없다) 여섯살때부터 부암동에 살았으니 늦어도 국민학교 저학년때부터는 가족과 함께 광화문 교보문고에 습관적으로 갔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명동성당엘 다녔는데, 일요일 아침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성당 두시간 무료 주차권을 활용해 근처 명동교자에서 칼국수를 먹은 다음 소화를 시킬 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어슬렁거리며 책구경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한권씩 골라 집에 오는 것이 일요일의 루틴한 일상이었다. 물론 나는 책보다는 CD 와 테이프를 더 자주 골랐다. 가끔 컴퓨터 게임도 고르고, 잡지도 골랐다. 안 고를 때도 많았다. 그냥 그랬다는 말이다. 삼천포다.
어쨌든 목록은 다음과 같다.

레이먼드 카버, 김연수 옮김,  대성당

한국에서 가져 온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없어서 한권 더 가지고 있을 요량으로 구입했다. 내 친 누나도 무척 좋아하는 작가라서 카버의 모든 책은 한국에 있다.

로맹 가리, 윤미연 옮김, 마지막 숨결
로맹 가리, 김남주 옮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다락방님이 단편집이 좋다고 해서.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정동섭 옮김, 바람의 그림자 1,2

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다락방님의 블로그 포스트를 보고 사기로 결심했다.

도리스 레싱, 이태동 옮김, 풀잎은 노래한다

잘 모르는 작가인데 페미니즘 문학에서 유니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들어서 구입했다. (난 버지니아 울프 팬) 읽어 보고 좋으면 ‘황금 노트북’ 도 사서 읽을 생각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황병하 옮김, 픽션들

단편들을 찾던 와중에 퍼뜩 생각나 충동 구매. 보르헤스보다는 마르께스의 작품들을 많이 읽어서 늘 마음 한켠이 허전했다.

아직 영어로 씌어진 책을 원서로 읽는 것에 익숙치 않다. 한국어책과 영어책을 읽는 속도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다. 이언 메큐언이나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꼭 원서로 읽고 싶다고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 실행에 옮기기에는 내 능력이 너무 벅차다. 논문으로 단련된 리딩 능력은 픽션이나 인문학 책을 읽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에밀 아자르 : 자기 앞의 생(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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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링을 해보니 알라딘 블로그에서만 130개가 넘는 이 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분명히 좋은 글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내가 이 책에 대해 장황하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다. 다만 여기서는 내가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한 두가지 다른 시선들에 대해 짤막하게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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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이 책의 저자인 에밀 아자르, 아니 로맹 가리의 시선에 대해서. 이 소설은 그의 저작중 내게 처음으로 읽혔다. 나는 이 책을 선물받기 전 그에 대해 전혀 들어본 바 없었으며, 이 책의 속표지를 훑어 보고서야 이 문제적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나는 그의 평전을 읽어보지 않았으므로 그의 철학에 대한 작은 추측조차 할 수 없지만, 그가 대단히 치열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이 소설을 써 내려 갔을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설은 대단히 건조하고 냉소적이다. 세부적인 묘사들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직관적인 풍자와 냉소적인 비웃음은 이 책을 형성하는 두개의 큰 줄기중 하나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건 열네살 소년 모모의 생각이 아니라 철저하게 작가의 시선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룬 그가 다시 한번 세상의 관심을 받기 위해,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받기 위해 가명으로 발표한 이 작품은, 그래서 펄떡 펄떡 살아 숨쉬는 문장들의 연속이다. 때때로 위악적이고, 그래서 불편함을 굳이 피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어어부 프로젝트의 음악이 계속 생각났다. 깊은 상처까지 발가 벗겨 드러낸 후의 앙상함과, 그래서 더 깊은 곳까지 볼 수 있는 혜안을 동시에 가져다 준다.

이 소설의 다른 큰 줄기는 사람과 사람, 혹은 한 사람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자아의 숭고함이다. 종교적, 사회적 관습성에서 최대한 자유로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 당시 사회적 최빈층이라 불리우는 자들을 그의 주변에 배치한 것은 결코 어떤 극적인 효과를 바라고 한 인위적 산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문화라는, 지식이라는, 혹은 도덕이라는 보호물 – 혹은 장애물 – 로 두텁게 가리워져 있는 인간의 순수한 가치는, 이 소설의 마지막 한 구절로 정확하고 간결하게 표현된다. 가진 것이라곤 전혀 없는 인물들의 초라한 이야기를 파헤쳐 냄으로써 결국 마지막에 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궁극의 결정체는, 바로 그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뭐, 당연한 말이겠지만 전적으로 내 주관적인 견해이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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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으로 이 책을 선물해 준 분에 대해. 읽는 내내 대체 내게 왜 이책을 보내 주셨을까를 곰곰히 생각했다. 그 분은 남에게 책을 허투루 선물하시는 분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기로 그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보다는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혹은 상대방에게 어떤 유의미한 반응을 불러 일으킬만한 책을 고심끝에 선택하시는 분이다. 지금까지 그 분이 보내주신 책은 한번도 내게 실망을 주지 않았다. 언제나 내게 일정 수준 이상의 공명을 불러 일으켰다. [채링크로스..] 가 그랬고, [건지 아일랜드..] 가 그랬으며, [대한민국 원주민] 이 그랬다. 헌데 [자기 앞의 생] 은, 약간 느낌이 달랐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뭔가 나에게 어떤 입장을 요구하는 듯 느껴졌다. 책에 대한 입장, 혹은 이 작가에 대한 입장말이다. 그분이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게 아니라, 책을 읽는 중간에 왠지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얘기다. 나는 그 분이 결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동정하거나 애틋하게 여기시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내 앞의 생’ 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에밀 아자르의 가난한 마음이 좋다. 그는 기름지지 않은 듯 했고, 그래서 대단히 아름다운 감정의 파고를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마찬가지로, 내 앞의 생에 대해 숙고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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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락방님이 작년 가을 보내 주셨고, 오늘 저녁에 읽었다. 읽는 내내 드뷔시의 피아노 솔로 모음을 들었는데, 감정적으로 묘한 작용을 불러 일으켰다. 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촉촉하고 아름다운 피아노곡들을 연속으로 듣는 동안 창녀의 자식들이 길바닥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책을 덮는 순간 나의 독서중 배경음악 선택은 매우 탁월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앤 패디먼 : 서재 결혼 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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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지적 허영심에 빠질 위험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연인과의 약속 시간에 늦었는데 인터넷 쇼핑몰을 밤새 뒤적거렸다고 말하기 보다는 찰스 디킨스의 낭독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 찰스 캔트의 책을 뒤적거리다가 늦게 잤노라고 말하는 게 조금 더 폼이 있어 보이지 않은가. 행위에 대한 허영심을 제하고서라도, 활자에 탐닉한다는 행위는 지식의 흡수라는 결과물에 도달하는 과정에서부터 많은 distortion 을 가질 위험이 있다. 가령 머릿속에 뭔가 좀 더 많은 글자들이 뒤엉커 있으면 조금이라도 배가 부른 것 같고, 그래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 경우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bookworm 들은 이런 저런 오해를 많이 사게 된다. 활자중독자들과 때로는 구분이 모호하기도 하며,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성들로 인해 선입견에 갇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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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정한 독서광 (‘광’자가 맘에 들지 않으면 독서애호가로 바꿔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사람들은 이런 저런 행위들에 대한 고민따위의 차원을 이미 뛰어 넘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글자를 읽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활자중독자들이라면, 독서애호가들은 책의 ‘내용’ 에 탐닉한다. 그러다가 어느새 책의 겉표지와 그 밖에 책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들이 독서광들이다. (결국 음악애호가들과 기본적인 시스템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각기 다른 자신만의 독서 방법과 그것들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확고한 독서관(혹은 취향) 을 가지고 있고, 독서를 통해 얻게 된 것들을 실생활과 어떻게 융합시키거나 분리시켜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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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실제로 음악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듯이,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실제로 글을 써서 먹고 살거나 책과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이 책의 저자인 앤 패디먼은 그런 행운아들중 하나다. 그녀는 독서라는 행위에 관한한 그 누구보다 전문가인데, 전문가이기 전에 책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짤막한 에세이들의 모음집인 이 책에서 그녀는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한 아름다움을 찬양함에 있어 꽤나 영리하게 지적 허영심의 위험을 비켜 간다. 그 누구도 그녀가 가끔씩 보여주는 장광설적인 나열법을 ‘잘난척’ 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한 가족의 독서문화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을 ‘과시욕’ 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책을 읽다보면 그녀가 굉장히, 그리고 진실되게 책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심은 어디에서나 통한다. 결국엔 통한다. 그녀의 책과 독서에 대한 진심이 차분한 어조의 문체속에서 (때로는 유머와 함께) 전달되는 동안, 어느새 나는 수첩에 그녀에게서 추천받은 책 몇권을 메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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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패디먼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꽤나 책을 사랑하는 가족들 틈에서 성장했다. 이사할 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책들은 항상 큰 골칫거리였다. 패디먼의 부모처럼 나의 부모도 이사할 때마다 책장을 새로 짜야 했고, 거의 모든 벽을 책장으로 채워야 했다. 중학교시절부터 부모님의 책장을 염탐하며 한권씩 빼내서 읽기 시작했는데,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있던 책장속에서 문고판 고전들을 읽었고, 성에 대해 처음 배우기 시작했고, 한자도 거기서 깨우쳤다. 글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부모님 밑에 있다보니 자연스레 나도 읽고 쓰는 것에 익숙해 졌고, 그런 나의 배경이 지금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 크게 일조하지 않았나 싶다. 약간은 심심하고 정적인 취미를 가지고 있는 지금의 삶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 대부분이 부모님의 생활을 따라하다가 발전한 것들이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아버지는 반드시 네가지중 한가지를 하고 계셨다.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으시던가 (그래서 나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뒷모습뿐이다. 정면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마당에서 정원을 가꾸시던가, 어머니와 수다를 떠시던가, 오래된 전축으로 클래식 음악을 들으시던가. 지금 내 형편이 여의치 않아 할 수 없는 마당일을 제외하면 결국 내가 즐겨하고 또 좋아하는 일들은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따라하는 행위인 것 같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사랑하는 사람과 수다를 떠는 것. 여기에 영화보는 것까지 더하면 내 삶의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릴 적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높고 넓은 책장들이 부러워 나도 책장을 사달라고 졸라 댔고, 거기에 책을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책을 읽었다.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책장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초라하지만, 그렇게 나도 책장 네개를 채웠고, 미국에 와서도 새로운 책장 하나를 채웠다. 늙으면 늙을 수록 소설이 아닌 전공 서적으로 책장을 채우게 되는 게 슬프기는 하지만, 어쨌든 읽어 내려간 책들이 한권씩 쌓인다는 것은 내가 세상으로부터 그만큼 많이 배웠다는 뜻일테니 분명 기쁘게 받아 들여도 될만한 사실이다. 그 과정에 있어 놓치는 것이 없도록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며 책 읽는 행위에 있어 소홀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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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정말” 하고 중얼거리면서 동감하게 되는 구절들이 종종 눈에 띈다. 가령 노드스트럼에서 온 카탈로그를 탐독하는 행위에 대한 묘사라던지,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방에서 옐로우북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던지 (이건 결코 웃기려고 지어낸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는 부분들에서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음을 공유할 수 있었고, 자주 쓰는 단어들속에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는 성차별적인 단어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낼 때 내가 가끔 해 왔던 생각들이 정리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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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님이 한국에서 보내주셨고, 계속 챙겨두고 읽지는 못하고 있다가 어제 밤 몇시간만에 주욱 읽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