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ester over

지난 수요일 밤은 정말 악몽과 같았다. 목요일 아침까지 due date 였던 마지막 페이퍼 하나, 그것을 마무리짓지 못해 자정까지 오피스에서 머리털을 쥐어뽑아 가며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수많은 커피와, 그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로 점철된 이번 학기의 마지막은 그렇게 너무나 ‘이번학기스럽게’ 마무리됐다. 교수님 메일 박스에 16패이지짜리 허접스럽기 짝이 없는 페이퍼를 집어 넣으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그렇게 이번 학기도 끝이 났다.너무나 아쉬운 것이 많은 학기였다. 하지만 조금씩 더 깨닫게 되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평생 주어진 과제같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조금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달까. 아직도 정답은 모른다. 조금씩 무지함이 벗겨져 갈 뿐. 많은 시행착오와, 그로 인한 고통들을 감수하면서 아주 천천히 전진하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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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졸업식 자원봉사를 했고 black hawk 에 선배들, 동기들과 함께 가서 부풰도 먹고 카지노도 즐겼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빠찡코’ 혹은 ‘슬롯 머신’ 을 처음으로 해봤는데, 그 짧은 시간에 20달러를 날려 버렸다. 그래도 재밌었다. 선배들은 블랙잭을 하면서 게임 이론을 적용해 보려고 애썼는데, 나는 그렇게 머리 쓰는 게임은 딱 질색이라 그냥 아무 생각없이 버튼만 누르면 되는 슬롯머신이 최고인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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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과목들과 교수님들에 대한 짧은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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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Markusen : 트레이드에 있어서 세계적인 거장. 나 역시 그 이름만을 보고 이 과목을 들었다. 형식적인, 외적인 권위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소탈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자신의 학문 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일말의 양보나 관대함도 없다. 수업이 끝나기 몇십분 전부터 자신이 왜 점심을 빨리 먹어야 하는가에 대해 몇번이나 설명할 만큼 소심하고 신경질적이기도 하지만, 뒤끝이 없고, 무엇보다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멘트들이 나같은 초짜들에겐 엄청난 intuition 을 제공해 준다. 진짜 ‘학자’ 라는 느낌이 팍팍 들었고, ‘대가’ 의 포스가 무엇인지 조금은 실감할 수 있었다. 수업 자체는 별로였다. 좋은 researcher 가 반드시 좋은 teacher 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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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Byford : 호주 멜버른 출신의 이 건방진 젊은 교수는 내년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수업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게으름쟁이에다가 학생들을 배려하지 않는 건방짐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안티가 꽤나 많다. 어떻게 하면 수업을 제낄 수 있을까를 매일 고민하기 때문에 수업의 질도 좋을리 없다. 하지만 이상한 방식으로 학생들을 괴롭히는 여타 교수들에 비해 굉장히 straightforward 한 policy 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퍽 만족했다. 내가 미시를 워낙 못하기 때문에 공부 내용 자체에 힘겨워 했던 것을 제외하면 티칭 스타일이 그렇게 나쁜 편도 아닌 것 같고. 솔직히 말해 이 과목에 시간 투자를 거의 못했기 때문에 관심도 없고별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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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bault Fally : 문제의 프랑스 출신 어시스턴트 교수. 이번 학기 처음으로 임용됐고, 이번 학기 유일하게 맡은 과목이 바로 이 대학원 트레이드 세미나 코스였다. 때문에 의욕이 넘칠 수 밖에 없었고, 학생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 들여 질지를 고민하기 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치려다 보니 당연하게도 very very demanding 한 코스가 되어 버렸다. 프랑스인의 영어 발음은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는데, 처음에 알아 듣느라 고생했다. 기말고사에 Melitz 의 수식을 정말로 풀으라는 문제가 나왔을 때가 절정이었다. 나는 자랑스럽다. 이런 시험 문제를 받아 볼 수 있어서. 사람은 굉장히 나이스하다. 소심하고 완벽주의자적 기질이 있는 건 어느 교수나 마찬가지일테고, 수학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말보다 수식이 먼저 튀어나오는 것도 경제학 교수답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 너무 순둥이고 착해서 차마 욕을 할 수 없었지만 과목은 정말 정말 사람을 힘들게 했다.

2 thoughts on “semester over

  1. 역시… Capri에 가서 부풰를 먹은거였어… ㅋㅋ
    어디가나 이런사람은 꼭 한명씩은 있군요. 저도 제가 수업받은 교수님들 몇몇 생각이 나네요. 좋은 Researcher가 좋은 Teacher가 아님은 확실합니다!

    • 네! 바로 그 카프리에서 먹었죠 ㅋㅋ 배터져서 죽는줄 알았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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